자유민주당 소속 중의원 아베 신조(安倍 晋三)
현재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 또 전쟁 가능 국가가 되기 위해 헌법에 자위대 근거 조항을 추가하는 개헌 추진 등 한일 무역 분쟁 중심에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만약 아베 총리가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닮았다면 어땠을까요?
이를 가정하기에 앞서 우리는 아베 총리의 가족관계를 알아봐야 합니다.
아베의 친조부 아베 간, 그리고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그들의 자녀인 아베 신타로와 요코, 이들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아베 신조입니다.
아베의 친조부 ‘아베 간’은 양조업에 종사하며 많은 논과 밭을 소유한 대지주였습니다.
동경대 법학부 정치학과를 진학할 만큼 공부를 잘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주의를 주장했던 정치가라는 점입니다.
당시 일본이 제국주의로 치닫는 상황에서 반전과 평화를 주장하며 맞섰던 것이죠.
그러던 1946년 총선거 준비 중 심장마비로 급사하게 됩니다.
아베 간의 아들이자 지금의 아베 신조의 아버지 아베 산타로, 그는 친한파 정치인으로 유명했습니다.
아마 그의 아버지인 아베 간을 무척이나 존경했던 것 같습니다.
1954년 마이니치 신문사를 나와 1958년 총선거에서 야마구치 1구에 입후보하여 정치에 입문했고, 재일 동포들과의 친교가 두터웠으며 이때 친한파 정치인으로 유명해졌죠.
하지만 총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었던 1991년 급사하게 됩니다.
평화주의 정치를 펼쳤던 아베 간, 친한파 정치를 펼쳤던 아베 신타로, 그런 할아버지와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아베 신조.
무엇이 지금의 아베 신조를 만들었을까요?
아베 신조는 평소 존경하는 인물로 자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를 꼽습니다.기
시 노부스케는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용의자였으나 기소되지 않고 석방된 인물로 이후 내각 총리로 정치 활동을 하면서 일본의 극우 보수 세력의 기틀을 다졌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정치체제의 틀을 만든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아베 신조의 어린 시절 정치 활동으로 집을 비우기가 일쑤였던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인 요코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가 가끔 돌봐주기도 했는데, 아마 이때 외조부의 영향을 받지 않았겠느냐고 추측합니다.
그 일화로 외할아버지는 A급 전범 용의자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이러한 분위기에 반발심이 생겨 외할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또 대학 시절 자신을 소개할 때는 아베 신타로의 아들이 아닌 “기시 노부스케의 손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만약 아베 신조가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길을 함께 걸었다면 지금의 한일 관계는 어떻게 흘러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