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한’ 아베의 노림수

다같이 죽자고? ‘막장 가미카제’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한국과 일본은 오월동주(舟) 관계다. 양국의 상호 의존도가 높아 상대를 겨눈 칼의 끝은 필연적으로 본인을 향한다. 그럼에도 최근 양국 간 갈등은 끊이질 않고 있다. 과거에도 하루아침에 파국을 맞는 경우는 흔했지만 이번 갈등은 과거와 달리 더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정부는 왜 툭하면 한국을 때릴까.
 

▲ 문재인 대통령(사진 오른쪽)과 아베 일본 총리

지난 1일 일본은 ‘한-일 신뢰관계 손상'을 명분으로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시 통관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안보상 우호국가)서 한국을 제외하는 시행령 개정 계획을 발표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의 첫 배상 판결이 나온 지 8개월이 되는 시점으로, 일본 최대 공영방송사인 NHK는 이 발표의 배경을 강제징용 판결을 둘러싼 갈등으로 보도했다.

반한 감정↑
보수 결집?

하지만 이번 수출규제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터질 게 터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본은 손바닥 뒤집 듯 한국의 수출규제 이유를 바꿨다. 처음엔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라 했다. 이에 정치적 동기에서 빚어진 '경제 보복'이라는 여론의 비판이 일자, 한국 정부가 북한에 전략 물자를 밀반입한다는 이유로 안보상 수출규제를 강화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일본이 북한에 밀반출한 전략물자 목록을 밝히자, 일본은 수출규제가 아닌 수출관리 운용을 재검토하는 차원이라며 다시 말을 바꿨다.


일본 측 주장의 논리가 빈약하다는 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본은 배제 이유로 한국의 캐치올(Catch-all) 규제가 미흡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캐치올이란 수출 ‘통제 리스트’에 속하는 전략물자 품목은 아니지만, 최종 사용자와 용도를 파악해 무기 제작 개발에 전용될 것으로 확인되거나 우려되는 경우에 이뤄지는 수출 통제 제도다. 하지만 국가별 적용은 오히려 한국이 일본보다 더 엄격하게 운영하고 있으며, 통제 대상 품목 역시 일본과 유사하다. 캐치올 규제가 없는 국가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대상에 있는 것으로 볼 때 일본이 한국에만 차별적 규제 강화를 강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산업에선 양국의 상호의존도가 높아, 일본의 수출규제가 강화되면 양국 모두 손실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일 무역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승자가 없는 치킨게임으로 치닫아 양국 모두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하단 것이다.

만약 한국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 전략물자는 무기로 쓰일 수 있는 품목마다 개별허가를 받아야 하고 민간 물자엔 캐치올 규제가 적용된다. 캐치올 규제의 경우 품목에 제한이 없다 보니 일본 정부가 임의로 규제를 확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왜 툭하면 한국 때리나
한일 갈등 진짜 이유는?

일본의 경우는 향후에 수출규제를 철회한다고 해도 비즈니스 신뢰 관계 회복에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일본은 정치적 사안을 경제 문제로 치환시켰고, 이번 경제규제는 일본 외교의 불안 요인을 분명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지난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로 인한 보복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사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한일 분쟁의 뿌리는 1965년 6월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업화를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1개의 한일기본조약과 4개의 한일청구권협정에 서명해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이뤘다.
 

▲ 문재인 대통령

한일기본조약 제2조에는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선언한다”고 명시했다. 을사조약과 ‘경술국치’로 불리는 병합조약을 포함, 한일 간 체결한 모든 조약을 무효화함으로써 강제징용과 군 위안부 등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청산하고자 한 일본의 속내였다.

여기서 ‘이미’라는 부사어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라는 부사어를 통해 과거엔 ‘합법·유효’했지만, 일본의 전쟁 항복과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으로 1965년 현재는 무효가 됐다는 해석을 내놨다.

이는 “무효임을 선언한다”는 구절을 통해 여러 조약들은 체결 당시부터 ‘불법·무효’였다는 한국의 입장과 대척점에 있다. 조약의 열린 해석으로 인해 과거사 책임에서 벗어난 일본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현재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의 정당성 판단을 유보한 대가로 박 전 대통령은 3억달러의 무상 자금과 2억달러의 차관을 일본으로부터 제공받았다. 이 돈의 대부분은 국가사업에 쓰였고, 군 위안부와 같은 역사의 피해자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다. 이후 대한민국은 한일협정이 잉태한 불안 위에서 고도 성장국의 길을 걷게 됐다.

지난 2005년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 등은 한일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며 기존 견해를 수정했다.

두려운 건
재팬 패싱

2012년 5월 대법원은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되지 않았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더 나아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고, 전범기업 미쓰비시 측에게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위자료 1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과정서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청구권협정에 이를 포함시키겠다는 내심의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애초부터 한일협정으로 지급한 정치적 ‘보상’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에 아베 총리는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확인된다’는 한일협정 제2조를 근거로 한국정부가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베정부도 한일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고노 다로 외무상도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공식적인 자리서 인정한 바 있다. 다만 일본은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어도 ‘외교적 보호권’은 상실했다는 논리로 맞섰다.

개인에게 소송할 자유가 있어도 그 권리를 정부가 외교적으로 보호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판결을 찬성해 온 일본 변호사 자이마 히데카즈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서 "개인 청구권이 있는 사람이 민간 기업을 상대로 제기를 했을 때 이에 대해서 국가 간 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으니 개인이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맞지 않는 이야기"라며 반박했다.

이어 "개인 청구권이 존재하고 그 권리가 있다면 법원에선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라며 "권리를 법원이 인정해서 진행을 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문제가 없는 것인데 국제법 위반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할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저희로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라 덧붙였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 측에게 위자료 지급을 선고해 일제의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정조준했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판결은 폭거이며 국제법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라며 강하게 반발, 강제징용 문제 중재위 설치를 요구했다.

손바닥 뒤집듯
이랬다 저랬다

한국정부는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사법부 판단에 행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점을 들어서 일본 쪽 요구를 거부했다.

민주당의 내부 분열로 2012년 중의원 선거서 자민당이 압승하면서 아베총리는 지금까지 총재직을 연임하고 있다. 1955년 보수정당인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하여 만들어진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일본 정치사서 안정적인 집권을 해왔다. 아베 총리는 일본 내 온건 보수보다 더 강경한 입장을 가진 우익 세력을 등에 업고 있다.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를 인정한 ‘고노 담화’를 부정하며 역사 수정주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비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적 정체성 강화는 자민당의 집권 열쇠인데, 과거사에 대한 한국의 압박은 일본이 근간을 다시 바로 잡아야하는 과정으로 아베 세력을 흔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 최고의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기시는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으로 미국의 강요로 만들어진 평화헌법 개정에 강한 염원을 보였다. 평화헌법 9조는 국가 간의 분쟁 해결수단으로 전쟁과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아베 총리는 이 조항의 개헌을 정치 인생의 숙명적 과제로 꼽았다.

일부 언론은 이번 수출규제를 참의원 선거를 위한 보수 결집 수단으로 분석했다. 지난 22일에 있었던 참의원 선거는 평화헌법 개정 발의에 가능한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선거였다. 비록 개헌 추진에 필요한 3분의 2(164석)에 못 미치는 160석에 그쳐 개헌 행보에는 브레이크가 걸렸지만 과반을 확보했다.
 

▲ 아베 일본 총리

강제징용 판결로 인해 반한 감정이 악화된 상태서 보수 세력을 결집시켜 쏠쏠한 재미를 봤다는 분석이다. 아베 총리는 앞으로도 개헌 의석 확보를 위한 정치적 동력으로 ‘한국 때리기’ 카드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반면 일각에선 수출규제는 애초부터 선거용이 아니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를 통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되찾았다는 좋은 평가를 받으며 안정적인 지지율을 얻고 있다. 특히 20대 유권자들 중 70%가 아베 총리를 지지하고 있다.

수출규제라는 자기 파괴적 보복 카드를 꺼낼 만큼 아베가 궁지에 몰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참의원 선거가 끝난 당일 아베 총리는 “청구권협정 위반 상황에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가 안 될 것”이라며 단편적인 선거용 꼼수가 아님을 시사했다.

잘못 끼워진 첫단추
승자 없는 치킨게임


또 다른 전문가들은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을 경제 분야서 굴복시킴으로서 '재팬 패싱'을 극복하려는 외교용이라는 분석을 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시행령 개정 계획은 지난 G20 직후 남·북·미 판문점 3자 회동이 있고 난 이틀 후에 발표됐다. 아베정권의 외교정책은 기본적으로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기반으로 한다. 일본은 지금까지 한·미·일 공조하에서 한국과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따로 발휘하며 동북아서 패권을 쥐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출범 후 남북 관계가 평화 기조로 들어서면서 비핵화 문제서 일본만이 철저하게 배제됐고, 아베정권은 이에 계속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왔다.

그밖에도 일본이 반도체 산업서 한국을 강력히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동아시아 기술 경쟁서 한국에 우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일본의 조치가 한국 경제의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 산업을 정면으로 겨냥했다”며 “우리의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것이 의도라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아베 총리가 보수층 결집용으로 강한 카드를 꺼냈지만, 일본 내부서도 지나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갈등의 장기화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러 복합적 요인이 얽힌 한일 갈등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우선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수습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난 22일에 열렸던 ‘한일관계 악화, 해법은 무엇인가’ 토론회서 박인환 변호사는 “지금 문제시 되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 문제는 정치적, 외교적 해결 방안으로 제3국 중재위원회 구성해 절차를 시도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전쟁이나 식민지 지배와 관련해 국가 상호 간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상대방 국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제사법재판소 등 국제적, 중립적 재판기구에 의한 판단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타 오사무 도시샤대 교수는 “한일협정 2조는 일본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개정이 어려운 문제”라며 양국 간의 역사인식을 좁히기 위한 양국 사회의 노력이 필요함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어 이번 분쟁을 통해 국산화의 필요성이 더욱 제기된 만큼 이를 계기로 국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부품·소재 산업을 육성해 기술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일본 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를 탈피해 한국이 일본 경제를 뛰어넘자는 것이다.

양국 관계
돌이킬 수 없나

무엇보다 한일 무역 전쟁은 양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분쟁으로, 이를 끝내기 위해선 평화 파트너십을 구축해 양국의 입장차를 좁히려는 외교적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우리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를 반대하고 철회를 요청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과 같이 반일감정만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으므로 ‘백색국가리스트 조정 최종 각의결정’을 연기하도록 일본에 제안하고 양국 간 공식 논의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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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가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월 초 후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는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