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A씨는 직장 선배인 B씨와 퇴근 후 회사 근처서 술을 마시고 함께 산책을 하다가, 골목길에 버려진 소파에 함께 앉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B씨가 A씨를 껴안고 입을 맞췄고, A씨는 그날 이후 이 사건을 떠올리면 너무 괴로워 B씨를 강제추행으로 고소했습니다. 그런데 수사기관은 B씨에게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을 내렸고, 이에 B씨는 A씨가 자신을 강제추행으로 무고했다며 A씨를 무고죄로 고소했습니다. 이 경우 A씨에게 무고죄가 성립할까요?
[A] 무고죄는 타인이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인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다만 신고 내용에 일부 객관적 진실이 아닌 내용이 포함돼있다고 해도 그것이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사실 A씨는 B씨에게 입맞춤을 당하기 이전, B씨와 단둘이서 4시간 동안 술을 마시고 꽤 상당한 시간 동안 산책을 하다 자연스럽게 B씨와 손을 잡기도 했습니다. B씨가 입맞춤을 하기 직전까지 폭행이나 협박 등의 강제력을 행사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A씨는 기습적으로 입맞춤을 당한 직후에 너무 당황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의 방법은 생각도 못하고 허둥거리다 스스로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러한 정황을 이유로 원심에선 B씨가 입맞춤을 하는 데 폭행·협박 등의 강제력을 행사한 바가 없어 B씨에게 강제추행이 성립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B씨를 강제추행죄로 고소한 A씨는 무고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최근 사법부는 성범죄에 대해서 상당히 엄격한 판단을 하고 있는데요. 과연 대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대법원은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가 피해사실에 대해 문제를 삼는 과정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이러한 사회적 여건상 성범죄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별적 사안에서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진정한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피해자다움’을 내세워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대법원은 여기서 더 나아가 설령 입맞춤 이전에 A씨가 자발적으로 B씨와 손을 잡았던 것처럼 일정 수준의 신체접촉을 용인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언제든 그 동의를 번복하거나 자신이 동의한 범위를 넘어서는 신체접촉에 대해서는 이를 거부할 자유가 있다고 봤습니다.
A씨는 신체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갖는 주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A씨가 B씨와 장시간 데이트를 하고 손을 잡는 스킨십을 자발적으로 했다 해도, 그 이후 기습적인 강제 키스를 당했다는 것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A씨는 B씨를 무고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그리고 이는 설령 B씨가 강제추행 무혐의 결정을 받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최근 성범죄 판결에선 피해자의 입장을 적극 고려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안처럼 합의가 있었던 스킨십과 없었던 스킨십이 혼재하는 정황 때문에 고소를 망설이시는 피해자가 있다면, 좀 더 용기를 갖고 대처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아울러 남녀 구분 없이 성적 접촉에 있어서 상대방과의 ‘합의’에 대해 더욱 섬세하게 신경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02-522-2218·www.lawnkim.co.kr>
[김기윤은?]
▲ 서울대학교 법학과 석사 졸업
▲ 대한상사중재원 조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