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골프규정이 바뀌면서 깃대를 뽑지 않고 퍼트하는 골퍼가 눈에 띄게 늘었다. ‘필드 위 물리학자’ 브라이슨 디섐보(25·미국)와 여자골프 세계 랭킹 1위 고진영(24·하이트진로) 등이 깃대 퍼트 옹호론자로 꼽힌다. 그러나 미국 골프 전문 매체 <골프다이제스트>는 지난달 20일 “퍼트할 때 깃대는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전했다.
<골프다이제스트>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 골프 팀과 깃대 퍼트에 관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에 대한 분석은 흥미로웠다.
“깃대를 꽂고 퍼트할 때 핵심은 깃대 중앙을 맞추는 것이다. 하지만 퍼트 고수로 분류되는 선수도 깃대 중앙을 맞출 확률이 27.6%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72.4%는 깃대가 오히려 방해 요소로 작용할 확률이 높다.”
사람이 아닌 퍼트 연습용 기구를 사용한 실험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깃대를 뽑고 퍼트했을 때 성공률은 90%였으나 꽂았을 땐 성공률이 45%로 뚝 떨어졌다.
이 매체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정상급 골퍼라 해도 20∼25피트에 이르는 중장거리 퍼트에선 깃대 중앙을 맞힐 확률이 4%도 되지 않는다. 공을 굴려야 할 거리가 길수록 깃대 퍼트는 효용이 사라진다. 짧은 거리의 퍼트가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 유행하는 이 방법이 이로울지는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깃대 퍼트를 선호하는 골퍼는 깃대가 공을 굴릴 때 집중력을 높여주고 그린 경사를 읽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실질적·심리적 도움을 주는 퍼트 방법이라는 얘기다.
뽑고 성공률 90%…꽂고 45%로 뚝
선수들 선호도는 오히려 높아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인스퍼레이션에서 ‘호수의 여왕’으로 거듭난 고진영은 깃대 퍼팅의 대표 주자다.
우승을 확정한 18번홀(파5) 버디 퍼트를 할 때도 깃대는 홀 안에 꽂혀 있었다. 홀에 꽂은 채 퍼트해 깃대를 맞히면 2벌 타를 부과받던 지난해까지만 해도 볼 수 없던 풍경이다. 깃대 퍼팅은 올해부터 허용된 룰이다.
고진영은 짧든, 길든 거의 대다수의 퍼팅을 깃대를 꽂은 채 한다. 그는 이 방식으로 벌써 2승째를 올렸다.
깃대 퍼팅이 퍼팅 성공률을 높여준다는 공식 통계도 없고 깃대 퍼팅이 고진영의 우승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도 측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고진영은 “폭이 작은 깃대를 목표로 삼기 때문에 그보다 더 큰 홀에 공을 넣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개막전 롯데렌터카오픈 최상위 10명도 대다수가 깃대 퍼팅을 했다. 우승자 조아연(19)도 그중 한 명이다.
조아연은 “겨울 전지훈련을 통해 바람이 세게 불지 않는 일반적인 상황에선 깃대를 홀에 꽂은 채 퍼트하는 게 성공률이 높다고 판단했다”며 “깃대를 꽂은 채 경기하면 홀의 위치가 더 정확히 보이고 정렬선을 맞출 때 시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 선수들도 깃대 퍼팅의 성공률에 대해 내게 많이 물어본다”고 귀띔했다.
국내외 골프 전문가들의 의견도 선호도에 따라 제각각이지만, 현재 깃대 퍼팅은 룰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선택하는 추세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