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코오롱에 입사한 지 13년 만에 해고된 최일배(44)씨. 그는 “일은 잘해도 회식 때 노래방가면 도우미와 잘 놀지 못해서 잘랐다”는 기막힌 사유와 함께 투쟁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벌써 해고된 지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에 와서도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투쟁의 한복판에서 온몸으로 느낀 노동자의 저력을 생각하면 지금도 설렘과 함께 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이 되살아난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지난달 26일, 지하철 4호선 정부종합청사역 4번 출구 앞에 위치한 농성장에서 그를 만났다.
“2005년 5월21일 78명이 코오롱에서 정리해고 됐습니다. 해고자 50명이 모여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벌인 지 8년째입니다.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 중앙노동위원회, 법원 어느 곳도 우리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남은 16명이 생계팀, 투쟁팀으로 나뉘어 계속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더 이상 우리의 복직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정리해고의 사회적 병폐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희망 발걸음을 옮기는 이유입니다.”
“해고는 살인이다!”
해고대상자 선정에 있어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은 없었다. 최일배씨는 하루아침에 정리해고자로 선정된 것이 억울해 부서장에게 찾아가 해고 사유를 얘기해달라고 했다. 돌아온 답변은 “일은 잘해도 회식 때 노래방 도우미와 잘 놀지 못해서”라거나 “식당에서 밥을 많이 먹어서”라는 기상천외한 내용이었다.
“이는 그만큼 기준이 없이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정리해고를 단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사람의 일생이 좌우될 수 있는 정리해고를 단행하면서 그런 식으로 쉽게 얘기를 한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죠.”
막가파식 정리해고에 의해 78명의 노동자는 그렇게 버려졌다. 대다수가 전임 조합간부와 현장에서 자기주장이 강한사람들이었다. 그 중 28명은 사표를 내고 50명이 모여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코오롱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이하 정투위)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부당해고와 관련한 복직투쟁에 나섰다.
“2004년 8월 말 근무형태가 변경되면서 실질임금 20%를 삭감하고 회사로부터 ‘구조조정을 안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는데 불과 석달 뒤 정리해고 협박과 함께 구조조정이 시작됐어요. 처음엔 1400명 구미공장 조합원 중 300여명을 구조조정 한다고 했는데 당시 430명이 희망 퇴직했죠. 목표치를 초과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협박을 멈추지 않아서 당시 노조 집행부가 임금을 15% 삭감했고요. 이렇게까지 노조 측에서 양보했는데 막가파식 정리해고를 단행한 코오롱의 행태를 알려내는 투쟁들을 해왔죠. 또 ‘경영상의 위기’라는 정리해고는 사실상 ‘노조 죽이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있어요.”
그 이후 정투위는 ‘지난한 투쟁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8년 째 이어지는 투쟁으로 생계를 위해 많이 떠나고 지금은 16명만 남아 정투위를 끌어가고 있다.
복직을 요구하며 노조는 구미공장 송전철탑에서 농성을 벌였고, 코오롱 본사 로비를 점거하기도 했으며, 이웅렬 회장의 집에 조합원 10여 명이 담을 넘어 들어가 만나달라고 요구하다 구속되기도 했다.
‘경영 위기’ 이유로 해고…사실상 ‘노조 죽이기’
“우리 문제가 해결되어야 내 문제가 해결 된다”
지난 5월에는 3명의 조합원이 청와대 근처 타워크레인에서 11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이는 등 안 해본 투쟁 없이 모든 걸 시도했다. 노동계의 깊은 고민을 함께하기 위해 올 초 ‘희망 뚜벅이, 희망광장’에 참여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이나 집사람에게 경제적인 미안함 빼곤, 사실 정리해고 된 후 얻은 게 더 많아요. 일터와 집만을 오갈 때에는 무의미한 생활 속에서 회의감이 든 적도 있었죠.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요. 그런데 투쟁을 이어오면서 전국을 다니며 주위에 힘들고 열악한 조건들의 비정규직 사업장들을 보고, 자기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마치 자신의 일처럼 연대해주는 동지들을 보면서 깨달은 것들이 많아요. 아직 코오롱 복직투쟁이 연관되어 있긴 하지만 저희의 투쟁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작은 활동이라는 보람과 긍지가 크죠. 제가 할 일을 찾았다는 느낌이랄까요.”
8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사실상 원직복직의 확신은 없다. 그때마다 ‘그럼 무엇 때문에 투쟁을 하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땐 “우리로 인해 정리해고의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고 노동자의 억울함을 알려내는 것 정도의 역할은 했고, 앞으로도 하고 싶다”고 최씨는 답한다.
원직복귀가 최종목표이긴 하지만 정리해고 철회가 1차적인 목표다. 정리해고자라고 결정이 나면 죽을 때까지 전과자와 같은 해고자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정리해고 철회가 된다면 최소한의 명예는 되찾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최씨는 자신이 당하지 않으면 못 느끼는 현실에 아쉬워했다.
“막상 자신이 당하지 않으면 못 느끼는 현실이 바로 1%밖에 안 되는 자본들에게 당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당하지 않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데 노조 운동이나 활동들이 물론 정규직의 힘이 필요하지만 그것보단 바닥에 있는 열악한 동지들의 투쟁을 만들어 내는 것, 여기에 노조의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정리해고노동자들의 고독하고 외로운 싸움, 그리고 그들의 패배감과 노동운동의 위기. 이로부터 우리 사회 역시 한 켠의 짐을 안고 있는 노동자들은 오늘도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우물 ‘밖’ 개구리 되다
“결국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리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투쟁을 이어오면서 느껴요. 하나의 거점에서 함께 모여 공동의 소리를 내는 것이 결국 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길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죠. 과거에 비해 달라진 ‘노조투쟁’을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에도 힘을 얻어요. 오래 투쟁하고 있지만 ‘아직도’가 아닌 끊임없는 ‘관심’이 투쟁동력을 이끌어내는 힘이니까요. 물론 개개인의 문제로 싸우고 있지만 투쟁하고 있는 단위들이 모인 투쟁 속에서 분명 사회 변화가 만들어진다고 믿고 있어요. 앞으로도 노동자들이 함께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더 많은 자리가 만들어 졌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