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27)합심

연개소문의 유지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무슨…….”

“할아버지께서 왜 당나라에 뼈와 살을 뿌렸는지 그 의미를 헤아려보란 말이다.”

“제 짧은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셨다고 당에 항복하신 게냐?”

“그야…….”


헌성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남건의 뜻

“할아버지께서는 장기적으로 보신 게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듯이. 여하튼 너는 아버지를 모시고 당으로 투항하여 목숨을 보전할 일이야. 네가 아버지와 신라에 항복한다면 당나라가 더욱 죽이려 안달할 게고. 또 그 압력에 신라가 어찌 대처할지 모르고.”

“무슨 근거로 그리 말씀하십니까?”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저 네 아버지에게 그리 전하도록 해라.”

헌성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는 듯 연정토의 얼굴을 빤히 주시했다.

“결국 네가 네 형 손에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이야기냐?”


가만히 남건의 말을 새기던 연정토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숙부, 형님이 항복하면 저들은 형님을 앞세우고 고구려 침공을 서두를 것입니다. 여하튼…… 우리 가문을 살리고 아버지의 뜻에 부응하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이곳에 남아 너와 함께 최후의 일전을 벌이도록 하마.”

“아니 됩니다, 숙부. 희생은 저 하나로 족합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숙부는 그저 고구려의 신하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굳이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연정토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라에 자리 잡은 연정토가 저녁 무렵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즈음에 하인으로부터 김유신이 방문했다는 전갈을 받았다.

고구려와 관련된 소식을 가지고 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급히 대문가로 나서자 하인의 손에 술과 안주를 들리고는 노구의 김유신이 서 있었다.

“바로 들어서시지 않으시고.”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야지요.”

답을 하는 유신의 표정이 밝지 못했다. 그를 살피며 만감이 교차되는 마음을 억누르고 가벼이 미소를 보냈다.


“여하튼 잘 오셨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연정토가 자신의 하인에게 김유신의 하인의 손에 들린 술과 안주를 받으라 하고는 서둘러 안으로 안내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 겸사겸사해서 장군과 함께 술 한잔 하고 싶어 들렀는데 결례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결례라니 당치 않습니다. 이 모든 게 대장군의 덕인 걸 모르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고향 집만 하겠습니까?”

“당치 않으십니다. 이 늙은이 결코 대장군의 은혜 잊지 못할 일입니다.”


두 사람의 진심을 감춘 상견례가 이어지기를 잠시 후 하인이 급히 조촐하게 주안상을 마련했다.

“대장군께서 하실 말씀이 있어 어려운 걸음을 하신 듯합니다만.”

연정토가 김유신의 잔을 채우며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이어 김유신이 병을 받아들어 연정토의 잔을 채웠다.

“바로 말하겠소.”

말을 꺼내놓고는 유신이 주저하자 연정토가 가벼이 입맛을 다셨다.

“이미 예측하고 계셨겠지만 기어코 신라군이 당나라군의 평양성 함락을 지원하기 위해 진군하기로 하였소.”

연정토가 고개를 돌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연정토의 눈치를 살핀 김유신이 잔을 들어 마실 것을 권유하자 이어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잔을 비워냈다.

미처 안주 먹을 겨를도 없이 이번에는 유신이 술병을 들어 두 개의 잔을 채웠다.

“허면 당나라가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신성이 당나라 수중에 넘어갔다 하더이다.”

“허허.”

연정토가 허탈한지 헛웃음을 흘리고 잔을 비워냈다. 그 모양을 살피던 유신도 천천히 잔을 비웠다.

남건, 자신이 죽어 당나라 견제하도록…
김유신과 연정토 “함께 당을 몰아내자”

“이제 고구려의 패망은 단지 시간문제입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리 오래가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하시면 대장군께서도 참여하셔야겠습니다.”

유신이 답을 하지 않고 공허한 웃음을 흘렸다.

“무슨 의미인지요?”

“소장은 이번 전투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게 무슨, 대장군께서 출정하지 않으신다니요?”

“나이도 나이지만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구려. 그래서 왕에게 간곡하게 부탁드렸고 그를 감안하여 그냥 이곳에 남아 있기로 하였습니다.”

그 말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함인지 연정토가 침묵을 지켰다.

순간 유신이 천천히 술병을 들어 다시 두 개의 잔을 채웠다.

“이 술을 바라보니 문득 연개소문 대감이 생각납니다.”

연정토가 지속적으로 침묵을 지키자 유신이 잔을 비워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다 운명인 게지요, 운명.”

더 이상 침묵을 지키지 않겠다는 의미인지 연정토가 운명을 되뇌며 잔을 비우고 빈 잔을 채웠다.

“형님께서도 자주 그 이야기를 거론하더이다만.”

“소장이 대감을 만났을 때도 그런 이야기를 주더이다.”

유신이 잠시 회상에 잠겨들었다가는 지난날 고구려에서 연개소문과 나누었던 대화의 대강을 상기시켜주었다.

“그 일은 형님 생전에 대충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여하튼 형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이렇게 비참하게 결말을 보지는 않을 터인데.”

“이 모든 게 운명이지요.”

“이미 대장군께서는 그를 알고 있고, 그런 연유로 금번 출정에 빠지시기로 하셨습니다.”

“반드시 그렇다고 이야기 할 수 없소만, 내 연개소문 대감과 굳게 약조한 부분이 있소.”

“약조라면.”

“고구려의 운명이 여기까지라면 이 후가 중요하지요.”

“후라!”

“이제 우리 민족이 대동단결해야 합니다.”

연정토가 민족을 되뇌며 다시 잔을 비워내자 유신이 잔 두 개를 채웠다.

“장군.”

“말씀하시지요.”

“이제 장군과 제 역할을 찾아야지요.”

“형님의 유지를 받드는 일 말입니까?”

“당나라가 고구려까지 멸망시킨다면 그리 오래지 않아 저들의 야욕을 드러낼 것입니다.”

“물론 그러하겠지요. 백제는 물론이고 고구려 영토도 손아귀에 넣으려 하겠지요. 또한 지금 상태를 보면…….”

“그래요, 저들이 지금 신라 영토까지 넘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장군의 역할이 크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면 우리 민족이 힘을 합쳐 당나라를 몰아내자는 이야기입니다.”

유신이 답을 하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뜻이 있습니까?”

“연개소문 대감이 생각나서 그런다오.”

“무슨?”

“연개소문 대감이라면 당나라 놈들을 몰아내는 차원이 아니라 당나라를 점령하여 우리민족의 고토를 반드시 회복하려 할 터인데.”

“당연히 그리하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당나라 점령은 고사하고 그저 그들을 몰아내려는 생각에 빠져 있으니 자괴감이 일어납니다.”

민족끼리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그 한축을 감당했던 사람으로서 유구무언입니다.”

유신의 고뇌에 찬 표정을 살피며 연정토가 잔을 기울이고 길게 여운을 남겼다.

“여하튼 소장으로서는 형님의 유지를 받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합시다, 장군. 우리 후손들이 더 이상 우리끼리 싸우지 않도록 장군과 함께 헤쳐 나갑시다.”

천천히 말을 마친 김유신이 잔을 비우고 북녘 하늘 방향을 바라보자 연정토의 물기 어린 시선 역시 그곳을 따라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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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