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27)합심

연개소문의 유지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무슨…….”

“할아버지께서 왜 당나라에 뼈와 살을 뿌렸는지 그 의미를 헤아려보란 말이다.”

“제 짧은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셨다고 당에 항복하신 게냐?”

“그야…….”


헌성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남건의 뜻

“할아버지께서는 장기적으로 보신 게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듯이. 여하튼 너는 아버지를 모시고 당으로 투항하여 목숨을 보전할 일이야. 네가 아버지와 신라에 항복한다면 당나라가 더욱 죽이려 안달할 게고. 또 그 압력에 신라가 어찌 대처할지 모르고.”

“무슨 근거로 그리 말씀하십니까?”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저 네 아버지에게 그리 전하도록 해라.”

헌성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는 듯 연정토의 얼굴을 빤히 주시했다.

“결국 네가 네 형 손에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이야기냐?”


가만히 남건의 말을 새기던 연정토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숙부, 형님이 항복하면 저들은 형님을 앞세우고 고구려 침공을 서두를 것입니다. 여하튼…… 우리 가문을 살리고 아버지의 뜻에 부응하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이곳에 남아 너와 함께 최후의 일전을 벌이도록 하마.”

“아니 됩니다, 숙부. 희생은 저 하나로 족합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숙부는 그저 고구려의 신하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굳이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연정토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라에 자리 잡은 연정토가 저녁 무렵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즈음에 하인으로부터 김유신이 방문했다는 전갈을 받았다.

고구려와 관련된 소식을 가지고 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급히 대문가로 나서자 하인의 손에 술과 안주를 들리고는 노구의 김유신이 서 있었다.

“바로 들어서시지 않으시고.”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야지요.”

답을 하는 유신의 표정이 밝지 못했다. 그를 살피며 만감이 교차되는 마음을 억누르고 가벼이 미소를 보냈다.


“여하튼 잘 오셨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연정토가 자신의 하인에게 김유신의 하인의 손에 들린 술과 안주를 받으라 하고는 서둘러 안으로 안내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 겸사겸사해서 장군과 함께 술 한잔 하고 싶어 들렀는데 결례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결례라니 당치 않습니다. 이 모든 게 대장군의 덕인 걸 모르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고향 집만 하겠습니까?”

“당치 않으십니다. 이 늙은이 결코 대장군의 은혜 잊지 못할 일입니다.”


두 사람의 진심을 감춘 상견례가 이어지기를 잠시 후 하인이 급히 조촐하게 주안상을 마련했다.

“대장군께서 하실 말씀이 있어 어려운 걸음을 하신 듯합니다만.”

연정토가 김유신의 잔을 채우며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이어 김유신이 병을 받아들어 연정토의 잔을 채웠다.

“바로 말하겠소.”

말을 꺼내놓고는 유신이 주저하자 연정토가 가벼이 입맛을 다셨다.

“이미 예측하고 계셨겠지만 기어코 신라군이 당나라군의 평양성 함락을 지원하기 위해 진군하기로 하였소.”

연정토가 고개를 돌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연정토의 눈치를 살핀 김유신이 잔을 들어 마실 것을 권유하자 이어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잔을 비워냈다.

미처 안주 먹을 겨를도 없이 이번에는 유신이 술병을 들어 두 개의 잔을 채웠다.

“허면 당나라가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신성이 당나라 수중에 넘어갔다 하더이다.”

“허허.”

연정토가 허탈한지 헛웃음을 흘리고 잔을 비워냈다. 그 모양을 살피던 유신도 천천히 잔을 비웠다.

남건, 자신이 죽어 당나라 견제하도록…
김유신과 연정토 “함께 당을 몰아내자”

“이제 고구려의 패망은 단지 시간문제입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리 오래가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하시면 대장군께서도 참여하셔야겠습니다.”

유신이 답을 하지 않고 공허한 웃음을 흘렸다.

“무슨 의미인지요?”

“소장은 이번 전투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게 무슨, 대장군께서 출정하지 않으신다니요?”

“나이도 나이지만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구려. 그래서 왕에게 간곡하게 부탁드렸고 그를 감안하여 그냥 이곳에 남아 있기로 하였습니다.”

그 말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함인지 연정토가 침묵을 지켰다.

순간 유신이 천천히 술병을 들어 다시 두 개의 잔을 채웠다.

“이 술을 바라보니 문득 연개소문 대감이 생각납니다.”

연정토가 지속적으로 침묵을 지키자 유신이 잔을 비워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다 운명인 게지요, 운명.”

더 이상 침묵을 지키지 않겠다는 의미인지 연정토가 운명을 되뇌며 잔을 비우고 빈 잔을 채웠다.

“형님께서도 자주 그 이야기를 거론하더이다만.”

“소장이 대감을 만났을 때도 그런 이야기를 주더이다.”

유신이 잠시 회상에 잠겨들었다가는 지난날 고구려에서 연개소문과 나누었던 대화의 대강을 상기시켜주었다.

“그 일은 형님 생전에 대충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여하튼 형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이렇게 비참하게 결말을 보지는 않을 터인데.”

“이 모든 게 운명이지요.”

“이미 대장군께서는 그를 알고 있고, 그런 연유로 금번 출정에 빠지시기로 하셨습니다.”

“반드시 그렇다고 이야기 할 수 없소만, 내 연개소문 대감과 굳게 약조한 부분이 있소.”

“약조라면.”

“고구려의 운명이 여기까지라면 이 후가 중요하지요.”

“후라!”

“이제 우리 민족이 대동단결해야 합니다.”

연정토가 민족을 되뇌며 다시 잔을 비워내자 유신이 잔 두 개를 채웠다.

“장군.”

“말씀하시지요.”

“이제 장군과 제 역할을 찾아야지요.”

“형님의 유지를 받드는 일 말입니까?”

“당나라가 고구려까지 멸망시킨다면 그리 오래지 않아 저들의 야욕을 드러낼 것입니다.”

“물론 그러하겠지요. 백제는 물론이고 고구려 영토도 손아귀에 넣으려 하겠지요. 또한 지금 상태를 보면…….”

“그래요, 저들이 지금 신라 영토까지 넘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장군의 역할이 크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면 우리 민족이 힘을 합쳐 당나라를 몰아내자는 이야기입니다.”

유신이 답을 하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뜻이 있습니까?”

“연개소문 대감이 생각나서 그런다오.”

“무슨?”

“연개소문 대감이라면 당나라 놈들을 몰아내는 차원이 아니라 당나라를 점령하여 우리민족의 고토를 반드시 회복하려 할 터인데.”

“당연히 그리하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당나라 점령은 고사하고 그저 그들을 몰아내려는 생각에 빠져 있으니 자괴감이 일어납니다.”

민족끼리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그 한축을 감당했던 사람으로서 유구무언입니다.”

유신의 고뇌에 찬 표정을 살피며 연정토가 잔을 기울이고 길게 여운을 남겼다.

“여하튼 소장으로서는 형님의 유지를 받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합시다, 장군. 우리 후손들이 더 이상 우리끼리 싸우지 않도록 장군과 함께 헤쳐 나갑시다.”

천천히 말을 마친 김유신이 잔을 비우고 북녘 하늘 방향을 바라보자 연정토의 물기 어린 시선 역시 그곳을 따라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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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