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21)백제의 맥

연개소문의 약속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대감께서는 당나라 군사들에게 기습타격을 가하여 고구려 영토로 유인하여 몰살시키자는 말씀이십니다.”

가만히 뇌음신의 말을 되새기던 지수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깊게 고개 숙였다.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우리의 계책대로 움직여줄지는 장담할 수 없소. 그러나 여하한 경우든 장군과 부여 풍의 목숨은 반드시 유지할 수 있어야 하오.”

백제를 구하라


연개소문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잠시 휴식을 취한 지수신이 뇌음신이 거느린 고구려의 정예병사 500명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와 시기를 같이하여 연개소문이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국경으로 이동했다.

뇌음신과 지수신이 백제 지역으로 들어섰을 때 부여 풍이 웅진강 전투에서 패하고 백강(白江)으로 이동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급히 서둘러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백강 전투에서 패하고 당나라 군사들에 의해 포위된 상태로 대처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삼족오가 그려진 깃발을 앞세운 고구려 병사들이 기습공격을 감행하자 당나라 군사들이 일시적으로 공격을 멈추었다. 

그 틈을 이용하여 부여 풍과 함께 주류성으로 퇴각했다. 

“고구려 장군 뇌음신이 전하를 뵙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패배의 고뇌를 삼키는 중에 지수신과 함께 뇌음신이 부여 풍을 찾았다.

그를 살피던 풍이 자리에서 일어나 뇌음신의 팔을 굳세게 잡았다.

“이 고마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소.”

잠시 상견의 예를 마치고 지수신과 뇌음신이 연개소문의 의중을 전했다.

그를 듣는 풍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고 이야기를 모두 마치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해서 정녕 백제는 사라지고 마는가!”

한탄조에 가까운 풍의 말에 지수신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전하, 달리 생각하심이.”

뇌음신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말이오?”

“연개소문 막리지의 의도대로 된다면 백제의 구토는 당연히 풍 전하께서 유지토록 할 것입니다.”

“그게 가능하겠소?”


풍의 반문에 뇌음신이 당군에 포로로 잡혀가는 의자왕을 구출하기 위해 기벌포까지 다녀갔던 일, 그리고 당에 포로로 잡혀서 굴욕적인 삶을 영위하던 의자왕을 구출하기 위해 애를 썼던 일들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곁들였다.

“그런 일이 있었구려.”

“그러니 현 상태에서는 연개소문 막리지의 의중에 따라 움직여주심이 타당하리라 사료됩니다.”

풍이 답을 하지 않고 지수신의 얼굴을 주시했다.

“비록 소장이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했지만 연개소문 대감의 의지는 전하의 의지처럼 확고했습니다. 절대로 오랑캐인 당나라에 굴복할 수 없다는, 아니 반드시 당나라를 쳐서 우리의 뿌리를 확고히 하자는 생각이셨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운명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지수신의 말이 끝나자 뇌음신이 덧붙였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소?”

풍과 지수신의 시선이 뇌음신에게 집중되었다.

“일단 중요한 건 전하의 옥체입니다.”

“그야 당연하지요.” 

지수신, 고구려군과 부여 풍 구하러…
고구려에 당한 당나라, 신라만 닦달

지수신이 추임새를 놓듯 말을 받았다.

“하여 전하께서는 측근들과 함께 고구려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먼저 고구려 국경으로 이동하십시오. 그곳에서 연개소문 대감께서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두 분은?”

“당나라 놈들을 끌고 가도록 해야지요.”

“그럴 수는 없소. 짐도 장군들과 함께하겠소.” 

“전하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여타의 전투와는 다릅니다. 그야말로 기습공격과 그에 합당한 효과를 노려야 하기에 속전속결이 중요합니다.”

“전하, 뇌음신 장군의 의견에 동조해주십시오.”

지수신이 가세하자 풍이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날이 밝자 뇌음신이 지수신과 함께 당나라 병사들의 동태를 살피고 부하들에게 휴식을 취하도록 명을 내렸다.

한편으로는 풍이 그날 저녁 고구려를 향해 이동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주류성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뇌음신이 자신의 수하 100여명으로 풍의 고구려행을 호위하도록 지시하고, 나머지 군사들은 지수신이 거느리는 백제 군사들과 함께 야음을 틈타 웅진성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웅진성에 다다르자 전날 승리의 감흥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경비가 허술했다.

그 틈을 이용하여 성으로 들어간 뇌음신이 동정을 살피고는 지수신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이어 곧바로 장군기가 펄럭이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곳곳에 밝혀놓은 불빛에 ‘郎將曺秉錫(낭장 조병석)’이란 글귀가 시선에 들어왔다.

그를 확인하며 불빛이 미치지 못하는 어둠을 틈타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다행스럽게 막사 앞에는 시위하는 군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막사의 문을 조심스럽게 젖히자 일찌감치 잠에 빠져든 조병석이 코를 골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서자마자 칼을 뽑아 들었다.

이어 조병석의 심장에 칼을 맞추고 힘차게 내리 찔렀다.  

코 고는 소리인지 숨을 고르는 소리인지 분간 못 할 소리가 잠시 일더니 그대로 조용해졌다.

그를 살피던 뇌음신이 품에서 ‘고구려 막리지 연개소문’이라 쓰인 종이를 꺼내서 조병석의 배위에 올려놓고는 곁에 놓여 있던 조병석의 칼로 배에 고정시켰다. 

순식간에 피가 종이로 번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종이가 피에 젖지 않도록 위로 치켜 올리고는 들어올 때처럼 조심스럽게 막사를 벗어났다.

막사를 벗어나자 지수신이 불화살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뇌음신이 눈짓을 보내자 지수신의 고함이 어둠속에 울려 퍼졌다.

순간 불화살이 어두움만큼이나 고요한 밤하늘을 가르고 당나라 군사들의 막사에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당나라 진영은 화염에 휩싸여갔다. 

고구려군에게 기습공격을 당한 당나라 군사들이 이전의 경험을 이유로 추격을 포기하고 그를 빌미로 은근히 신라에 압력을 가하고 나섰다.

신라군의 적극적인 지원이 부족하여 그런 일이 발생하였다는 이유였다.

그를 빌미로 유신이 문무왕을 찾았다.

무리한 요구

“전하, 소장 이만 물러날 수 있도록 윤허 바랍니다.”

“대장군께서 물러나신다니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었는지 문무왕의 목소리가 절로 올라갔다.

“소신 이제 너무 나이가 차고 몸이며 정신이 예전 같지 못하여 전하를 올바로 보필할 수 없으니 이제 그만 물러나려 합니다.”

“절대로 아니 될 말입니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대장군, 아니 외숙부께서 저를 돌보아주지 않으면 어쩌란 말씀이십니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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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