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해 왔지만 변칙적인 '오너 곳간 채우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일감 몰아주기'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에서도 발견된다. 오너일가 소유의 특정 자회사에 물량을 대주는 편법 지원이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심한 편이다. 그중 한 곳이 쿠쿠홈시스다.
국내 밥솥시장의 선두주자인 쿠쿠홈시스는 '쿠쿠전자'와 '엔탑'이란 관계사를 두고 있다. 그런데 모두 오너일가 지분이 있으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두 회사는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 적지 않은 실적이 '안방'에서 나왔다.
LG가와 먼 친척
쿠쿠전자는 1978년 11월 설립 이후 20여 년간 LG전자에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밥솥을 납품하다가 1998년 '쿠쿠'란 자체 브랜드를 출시했다. 전기압력밥솥을 비롯해 주스믹서기·식기건조기·김치냉장고·정수기 등 주방용 전기기기 제조업체로,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매출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문제는 쿠쿠전자의 자생력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분석 결과 매출의 90% 이상을 계열사에서 채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통해 매년 수천억원대 고정 매출을 올리고 있다.
쿠쿠전자는 지난해 매출 2727억원 가운데 2491억원(91%)을 관계사와의 거래로 올렸다. 쿠쿠전자에 일거리를 준 '식구'들은 쿠쿠홈시스(2435억원)와 중국 청도 생산법인인 청도복고전자유한공사(55억원) 등이다. 쿠쿠전자는 제품을 만들어 판매를 담당하는 쿠쿠홈시스 등에 납품하고 있다. 2010년에도 쿠쿠홈시스(2221억원), 청도복고전자유한공사(26억원) 등 관계사들이 총매출 2428억원 중 2248억원(93%)에 달하는 일감을 쿠쿠전자에 맡겼다.
쿠쿠전자가 계열사들과 거래한 매출 비중은 ▲2001년 87%(총매출 799억원-내부거래 698억원) ▲2002년 90%(1180억원-1066억원) ▲2003년 92%(1328억원-1220억원)였다. 이후 ▲2004년 99%(1309억원-1302억원) ▲2005년 99%(1616억원-1599억원) ▲2006년 99%(1929억원-1913억원) ▲2007년 98%(1965억원-1921억원) ▲2008년 98%(2020억원-1973억원) ▲2009년 97%(2095억원-2028억원)로 올랐다.
쿠쿠전자는 계열사들이 '힘'을 실어준 결과 안정된 매출을 기반으로 꾸준히 몸집을 불려왔다. 2000년대 들어 적자 없이 매년 100억∼200억원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거뒀다. 총자산은 2001년 367억원에서 지난해 1536억원으로 10년 만에 4배 가량 불었다. 같은 기간 265억원이던 총자본도 1226억원으로 4배 이상 늘었다. 그동안 경기가 좋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수천억 고정거래' 매출 90% 이상 계열사에 의존
사실상 오너일가 개인회사…매년 수십억 고배당
내부거래 비중이 심상찮은 쿠쿠 계열사는 또 있다. 바로 엔탑이다. 1985년 10월 설립된 엔탑은 알루미늄판 제조업체로, 당초 쿠쿠산업에서 2007년 10월 쿠쿠기전을 흡수합병한 뒤 2010년 12월 현 상호로 변경했다.
엔탑의 주거래처는 쿠쿠전자다. 매년 평균 매출의 70% 이상을 기대왔다. 엔탑이 쿠쿠전자로부터 올린 내부거래율은 ▲2001년 41%(144억원-59억원) ▲2002년 60%(177억원-106억원) ▲2003년 72%(192억원-139억원) ▲2004년 80%(181억원-145억원) ▲2005년 86%(220억원-190억원) ▲2006년 94%(238억원-223억원) ▲2007년 74%(279억원-206억원) ▲2008년 81%(377억원-304억원) ▲2009년 77%(376억원-290억원) ▲2010년 76%(416억원-316억원)로 나타났다. 지난해의 경우 총매출 510억원에서 300억원(59%)을 쿠쿠전자와의 거래로 채웠다.
엔탑 역시 이를 바탕으로 해마다 40억∼100억원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기록해 왔다. 이 결과 총자산과 총자본은 2001년 각각 225억원, 196억원에서 지난해 678억원, 630억원으로 모두 3배 이상씩 늘어났다.
쿠쿠전자와 엔탑의 내부거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너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쿠쿠전자는 쿠쿠 창업주인 구자신 회장이 지분 24.8%를 소유한 대주주다. LG그룹 ‘구씨’집안과 먼 친척뻘인 구 회장은 장남 구본학 사장과 함께 쿠쿠전자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엔탑은 지분의 절반 이상을 오너일가가 소유 중이다. 최대주주는 42.2%의 지분을 보유한 쿠쿠홈시스. 나머지는 구 사장(25.7%)과 동생 본진(17.9%)씨, 구 회장(7.1%)과 부인 최영순(7.1%)씨 등이 나눠 갖고 있다.
쿠쿠 오너일가는 내부거래로 유지되는 쿠쿠전자와 엔탑에서 매년 두둑한 배당을 챙기고 있다. 쿠쿠전자는 지난해 55억원을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구 회장은 14억원을 받아갔다.
내부거래로 유지
앞서 쿠쿠전자는 2002년 11억원, 2004년 45억원, 2005년 46억원, 2006년 46억원, 2007년 28억원, 2008년 37억원, 2009년 46억원, 2010년 55억원 등 2003년만 제외하고 해마다 배당금을 지급해왔다. 각각 배당성향이 23∼45%에 달하는 고배당이었다. 물론 총배당금의 25% 정도가 구 회장의 몫이었다.
엔탑은 지난해 무려 350억원을 배당했다. 이에 따라 구 사장은 96억원, 본진씨는 63억원, 구 회장과 최씨는 각각 25억원을 챙겼다. 엔탑은 2001년 12억원, 2002년 16억원, 2003∼2006년 20억원씩, 2007년 40억원, 2008∼2010년 80억원씩 배당한 바 있다. 쿠쿠일가 4명은 그때마다 개인당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을 주머니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