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의 LG 계열분리 시나리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최근 LG그룹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구광모 LG 회장의 삼촌 구본준 LG 부회장의 향후 거취 때문이다. 구 부회장이 LG그룹 내 모든 직책을 내려놓은 상황서 계열분리 시나리오가 다양하게 나오고 있는 상황. 어떤 계열사를 들고 독립할까. 어떤 시나리오가 됐든 실현되면 ‘기둥’ 하나는 내줘야 한다. 삼촌과 조카의 복잡한 셈법을 확인했다.
 

▲ 구광모 LG 회장

LG그룹은 최근 연말인사를 단행했다. ‘안정 속 변화’란 평가가 나왔다. 임원급은 젊어졌지만 결정적으로 각 계열사를 책임지고 이끌 부회장급 인사는 없었다. 다양한 추측이 나왔다. 이번 인사가 향후 예상되는 계열분리 시나리오의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변화냐
안정이냐 

하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지주사 LG를 비롯해 핵심계열사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LG생활건강 등의 대표이사 부회장은 모두 유임됐다. 이들의 나이가 60대로 결코 적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안정을 택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수뇌부의 변화없는 인사를 두고 계열분리의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계열분리의 방향성이 없는 상황서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실제 LG그룹은 계열분리에 대해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구광모 LG 회장은 지난 6월 별세한 아버지 고 구본무 전 회장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회장직에 올랐다. 재계에서는 당시 상무였던 구 회장이 여러 직급을 건너뛰고 단숨에 회장직에 오른 것을 두고 의외라는 시각도 있었다.


구 회장이 회장직에 오르자 시선은 자연스럽게 구본준 LG 부회장에게로 쏠렸다. 구 회장이 그룹을 이끌게 된 상황서 그룹 내 넘버2 역할을 자처한 구 부회장의 역할이 감소할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구 부회장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구 전 회장의 두 번째 동생이고 구 회장에게는 삼촌이 된다. 구 부회장이 그룹 내에 남아 있는 것은 구 회장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어떤 계열사 들고 독립?
삼촌-사촌 복잡한 셈법

구 부회장의 결단은 비교적 빨랐다. 구 회장이 회장직에 오르자 경영 전면서 물러나기로 한 것이다. 조카에게 지우는 부담을 최소화했다. 계열분리에 대한 구체적인 말은 없었지만 실리까지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LG그룹은 그동안 수차례 형제경영을 이어오다 성공적으로 계열분리를 해왔다. LG그룹은 맏형이 그룹을 이어받고 동생들은 사업을 하나씩 들고 독립하는 것이 그간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 구철회 명예회장의 자손은 1999년 LG화재를 계열분리해 LIG그룹으로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나머지 동생들인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형제는 전선부문 사업을 들고 나와 2003년 LS그룹을 세웠다.
 

▲ LG전자

구본무 전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은 구 전 회장이 회장직에 오른 이듬해인 1996년 계열사를 분리해 희성그룹을 세워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당연히 구 부회장이 어떤 계열사를 들고 독립할지의 여부에 눈길이 쏠렸다. 다양한 계열분리 예상안이 나왔지만 현재까지는 모두 설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계열분리를 하든지 LG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구 부회장이 노릴 수 있는 계열사는 크게 LG상사, LG전자 사업부문, LG디스플레이 정도다. 이들 계열사들의 덩치가 만만찮다.

못 하는 
속사정은?

구 부회장이 LG상사의 지배력 확보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LG상사를 중심으로 한 계열분리의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구 부회장은 현재 지주사 LG의 지분 7.72%를 보유하고 있다. 주식수로 환산하면 1331만7448주다. 지난 19일 LG 종가가 7만1300원인 점을 감안하면 9495억3404만원 수준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LG상사의 주주구성을 보면 지분 24.69%를 가지고 있는 LG가 최대주주로 특수관계자 지분을 모두 합치면 26.31%(1019만9290주) 수준까지 올라간다.

LG상사의 지난 19일 종가가 1만6250원인 점을 감안했을 경우 1657억3846만원의 자금을 투입하면 LG가 가지고 있는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 시가총액 역시 1조1000억원대 수준이라 지배력 확보에는 어려움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 부회장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 범위 안에서 충분히 노려볼 수 있는 시나리오다.

구 부회장과 LG상사는 인연도 깊다. LG상사는 지난해에 들어서 LG그룹에 편입됐다. 지난해 11월 계열사로 편입되기 전까지 최대주주는 지분 3.01%를 가진 구 부회장이었다. 구 부회장을 비롯해 특수관계자의 지분을 모두 합치면 26.29%까지 지분율이 오르는데 이를 LG가 매입하면서 LG그룹 ‘울타리’에 들어왔다.

LG상사는 판토스, 헬리스타항공, 한울타리 등을 지배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 10월 구광모 회장 및 오너 일가가 가지고 있던 판토스 지분 중 19.9%를 전량 매각했다는 점이다. 당시 거래로 구 회장은 1000억원 가까운 유동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다양한 시각이 뒤따랐다. 상속세 마련을 위한 재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애증의 관계를 청산하려는 의도로 해석하는 시선도 있었다.
 

구 회장과 판토스는 애증의 관계였다. 알짜배기 실적으로 곳간을 든든하게 만들어줬지만 일감 몰아주기 논란서 자유롭지 못했다. 판토스는 지난해 기준 1조3897억원의 매출액을 내부거래로 올렸다. 총 매출의 69.6% 수준이었다. 물론 구 회장과 특수관계자가 보유한 지분율이 20%를 넘지 않아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기준을 피했지만, 꼼수 일감 몰아주기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공정위도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였다. 결과적으로 구 회장이 판토스 지분을 처분하면서 이 같은 논란을 피해가는 모양새가 됐다.

물론 계열분리에 대한 말도 나왔다. 구 회장이 판토스 지분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레 LG상사의 계열분리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판토스 지분의 51%는 LG상사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LG상사의 매출 규모를 생각하면 구 회장 입장에선 쉽게 내주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LG상사의 경우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2조8272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같은 기간 LG그룹 총 매출액이 126조9000억원 수준임을 감안할 때 총 매출의 10%를 웃도는 비중인 셈이다.


LG상사가 계열사에 갖는 지위도 무시할 수 없다. LG상사는 다른 계열사들과 연관성이 크다. 상사와 계열사 간 시너지효과를 통해 서로 ‘윈윈’하는 전략이 성공했다는 평가가 있다. 만약 계열분리를 하게 된다면 그룹의 외연이 축소됨과 동시에 그룹 내 파장이 만만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LG상사를 중심으로 한 계열분리가 구 회장에게 뼈아플 것이라는 관측은 이 같은 배경서 나왔다.

재계에선 LG디스플레이를 떼어주는 시나리오도 돌았다. 일단 구 부회장이 LG디스플레이를 이끈 경험이 있어 사업 이해도가 높다는 분석이다. 구 부회장은 과거 LCD와 OLED를 주력 생산하던 LG디스플레이를 이끌어 평판디스플레이 부문 1위 기업으로 올려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시나리오도 구 회장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LG디스플레이는 그룹 내 핵심 계열사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연결기준 27조790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룹사에서 봤을 때 전체 매출의 20%를 웃도는 계열사를 내주긴 힘들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LG디스플레이의 지분은 8조원 수준이다. 구 부회장이 경영권을 가져올 만큼의 지분 확보가 어렵다.

현실적으로 거론되는 곳은 지분 매입으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는 LG이노텍이다. LG이노텍은 지난해 연결기준 7조641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선례 따라
갈등 없이?

주요 주주구성을 살펴보면 LG전자가 40.79%(965만3181주)로 최대주주 신분이다. LG전자가 가지고 있는 LG이노텍의 지분 가치는 지난 19일 종가 기준(8만9500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8639억5969만원 수준이다. 구 부회장이 동원할 수 있는 유동성으로 지배력 확보가 가능한 상황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선 배임 문제를 거론하지만 이는 일부 사업부문만 따로 떼어냈을 경우다. 지분 매입을 통해 최대주주 신분으로 올라서는 것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 LG이노텍 인수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유다. 
 

▲ 구본준 LG 부회장

하지만 구 회장으로서는 LG이노텍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종합전자부품 기업인 LG이노텍의 경우 LG전자나 LG디스플레이 등 주력 계열사와의 직접적인 시너지효과가 크다. 매출구성을 보면 광학솔류션사업부 56.45%, 기판소재사업부 16.04%, 전장부품사업부 14.17%, LED사업부 7.11% 등이다.

매출을 떠나 주력 계열사의 타격 우려 때문에 LG이노텍을 중심으로 한 계열분리 역시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전체 매출액의 17.1% 수준인 1조3080억원을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LG전자의 전장사업부문을 중심으로 계열분리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각 계열사가 전장사업부문만 따로 떼어내 가져가는 시나리오다.

LG전자의 경우 구 부회장의 애정이 많은 계열사이기도 하다. 주요 이력이 LG전자에 쏠려 있다. 구 부회장은 현재 LG전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금성사에 1987년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력을 쌓았다. 이후 LG전자의 다양한 사업을 맡아 경영을 했다. 그의 아들 구형모씨도 LG전자서 과장으로 재직하며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LG전자의 계열분리 시나리오에는 전장사업부가 포함된다. 구 부회장은 전장산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떤 식이든 부담될 것”
부정적인 다양한 추측

구 부회장은 자동차용 헤드램프 기업 ZKW를 인수하면서 “앞으로 LG의 미래사업을 위한 핵심 역량은 내외부의 힘을 모아 키우고, 필요하다면 선제적으로 투자해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주력하는 자동차 부품 사업의 시장 선도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며 전장사업부문을 핵심 미래성장동력으로 꼽았다. 특히 전장사업의 핵심인 VC사업본부는 구 부회장이 LG전자 대표이사를 맡았던 당시 신설했다.

LG전자 외에도 전장사업을 맡고 있는 계열사가 있다. 재계에선 이들 사업부를 따로 떼내 가져가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LG이노텍의 전장부분과 LG상사의 오토모티브 등이 후보군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

하지만 LG그룹이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전장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구 회장이 삼촌 구 부회장에게 사업을 넘길 가능성은 낮다.

LG전자 역시 전장사업부분에 대한 투자로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는 상황이다.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 2015년 설립된 이스라엘 스타트업 ‘오디오버스트’와 차세대 첨단 차량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구축을 위해 협력키로 했다. 그룹사에서 전장사업에 갖는 관심을 반영하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구 회장과 구 부회장 간 의견 조율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계열사 간 연관성이 높은 LG그룹의 특성상 예전과 같이 어떤 한 계열사를 독립시키는 것은 어렵다는 분석이다. 계열분리가 연쇄적으로 그룹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LG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규모가 주요 그룹 가운데서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 비중은 주요 10대 그룹 가운데 가장 높다. 지난 8월 기준 LG그룹의 내부거래 비율은 68.15%로 조사 대상 그룹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폭풍전야
고요한 긴장감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구광모 회장 입장에선 그룹사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구본준 회장의 계열분리를 진행하고 싶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현재 나오고 있는 시나리오는 (구 회장에게) 껄끄러운 내용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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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