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다 내려놓은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2.05 10:55:06
  • 호수 11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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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내려왔나 억지로 내려갔나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내년부터 경영권서 손을 떼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불혹의 나이에 회장직에 오른 지 꼭 23년만이다. 대기업 오너 경영인이 갑작스레 퇴진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라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로 창업의 길을 가겠습니다.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밖에서 펼쳐보려고 합니다. 새 일터서 성공의 단맛을 맛볼 준비가 돼있습니다. 까짓거, 행여 마음대로 안 되면 어떻습니까. 이젠 망할 권리까지 생겼는데요.”

이웅열 코오롱 그룹 회장이 내년부터 경영 일선서 물러난다. 지난달 28일 코오롱그룹은 보도자료를 내고 이 회장이 내년 1월1일부터 그룹 회장직을 비롯해 지주회사인 코오롱과 코오롱인더스트 등 계열사의 모든 직책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청바지 입고… 
회장님의 변신

이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 타워서 임직원 200여명과 함께 사내 포럼인 ‘성공퍼즐세션’에 참석했다. 평소 이 자리서 좀처럼 발언을 하지 않던 이 회장은 이날 포럼 말미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은 뒤 연단에 올라 ‘폭탄 선언’을 했다. 

검은색 터틀넥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연단에 오른 이 회장은 “오늘 내 옷차림이 색다르죠? 제 얘기를 들으면 왜 이렇게 입고 왔는지 이해가 갈 겁니다”라고 말한 뒤 준비한 편지를 읽었다. 그는 “내년부터 그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떠난다. 코오롱그룹 회장직과 대표이사, 이사직도 그만두겠다. 앞으로 그룹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임직원에게 보내는 서신’으로도 퇴임을 공식화했다. 이 회장은 “1996년 40세에 회장직을 맡았을 때, 20년만 운전대를 잡겠다고 다짐했는데 3년의 세월이 더 지나갔다”며 “지금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아 떠난다”고 말했다.  

이후 행보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이 회장은 “저보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한다. 특별하게 살아온 것을 부인하지 않겠지만 책임감도 컸다”며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하지만, 특권도 책임감도 내려놓겠다.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코오롱 밖에서 펼치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로 창업의 길을 가겠다”며 “새 일터서 성공의 단맛을 볼 준비가 돼있다. 까짓거 마음대로 안 되면 어떻습니까. 이젠 망할 권리까지 생겼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년부터 경영권 손 뗀다”
1월1일 모든 직책서 물러나

오너 경영인의 갑작스런 은퇴 선언에 재계에선 배경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그룹 관계자는 “서신에 나온 대로 오랫동안 생각해온 결심을 실행에 옮긴 것”이라며 “평소에도 ‘내가 그룹의 걸림돌이 된다고 느끼는 순간 경영서 손을 떼겠다’는 말을 하셨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퇴진은 23년 전 부친인 이동찬 명예회장이 자리를 물려줄 때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이 명예회장은 1996년 예고 없이 회장직을 내려놨다. 21세기 새로운 사업은 새로운 세대가 맡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경영일선서 물러났다. 

당시 이 명예회장은 은퇴 후 미술 작품활동에 전념했다. 1992년 고희전, 2001년 팔순전, 2009년 미수전 등 개인전을 열면서 여생을 보냈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이 언급한 창업이 일반적인 사업이 아닐 수도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평소 사회 봉사활동에 대한 뜻을 내비친 것을 감안해 사회적인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동안 이 회장은 서울역 쪽방촌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등 봉사현장을 직접 챙겨왔다. 2001년에 제정한 ‘우정선행상’이 대표적이다. 매년 사회 곳곳서 일어나는 선행과 미담 사례를 발굴해 시상하고 있다. 

아울러 2004년부터 ‘코오롱 어린이 드림캠프’라는 행사로 어려운 환경서도 모범적으로 생활하는 초등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2012년에는 그룹 차원서 ‘코오롱사회봉사단’을 창단하기도 했다.

이 회장이 퇴임 이후 ‘창업’의 뜻을 밝혔지만, 향후 어떤 행보를 걸을지는 알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평소 이 회장이 친분이 깊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함께 ‘사회적 가치’에 관심이 많았다.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보기도 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20년간 투자한 끝에 세계 최초 관절염 세포유전자치료제 ‘인보사’를 개발한 뒤 이 회장이 바이오·벤처 사업에도 관심을 보인 걸로 안다. 이런 사업에 도전할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뚝심과 인내
23년 이끌어

이 회장은 1956년 4월18일 서울서 출생해 올해 나이로 63세다. 이 명예회장의 자녀 1남5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 명예회장의 다음을 이어 그룹을 이끌어갈 후계자로 지명됐고 코오롱의 해외지사(뉴욕 지사(1985년 2월), 도쿄 지사(1986년 2월))에서 근무하면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후 1987년 코오롱 상무이사, 1989년 그룹기획조정실장을 거쳤고 1996년 1월 그룹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97년 직후 외환위기를 맞았다. 당시 이 회장은 26개 계열사를 15개로 줄이고 부채비율을 대폭 낮추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위기에 대응했다. 또 광고회사 한인기획을 그룹서 분리했다. A&C코오롱, 코오롱씨드50, 코오롱호텔 등 3개사를 코오롱스포렉스에 합병했다.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코오롱메트생명보험, 코오롱전자, 한국화낙, 그리고 신세기통신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코오롱은 스위스 보스턴투자은행으로부터 5000만달러 외자를, 코오롱상사도 BMW로부터 2000만달러 외자를 도입했다. 
 

이 회장은 취임하면서부터 ‘원 앤 온리(One & Only)’를 경영방침으로 정하고 유망상품, 기술, 지역을 선점해 집중하는 전략을 펼쳤다. 

경쟁력 있는 신기술에 대한 이 회장의 관심은 차세대 소재인 투명 폴리이미드라는 성과로 나타났다. 폴리이미드는 수없이 접었다 폈다를 반복해도 본래의 형태가 훼손되지 않는 특수섬유 소재다. 이 회장은 2006년부터 투명 폴리이미드의 독자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약 10여년의 연구 끝에 2016년 세계 최초로 투명 폴리이미드 개발에 성공했다. 지난 4월에는 세계 최초로 양산 라인을 준공했다. 

지난달 삼성전자가 ‘폴더블 스마트폰’의 출시를 예고하면서 핵심 소재인 투명 폴리이미드를 생산하는 코오롱의 계열사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추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회사로 거론되고 있다.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시장 규모는 향후 5년 내에 1조원, 관련 시장은 4조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코오롱의 10여년간의 노력이 빛을 발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 최초의 골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Invossa)는 이 회장이 20년 넘게 공을 들인 작품이다. 1996년 회장직에 오를 때부터 바이오 사업을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은 이 회장은 1999년 미국 현지에 ‘티슈진’(현 코오롱티슈진)을 설립해 인보사 개발이 착수했다. 사업 초기부터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이 회장은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수백억원을 들여 임상 시험을 진행한 결과 2001년 7월 한국에서 29번째 국산 신약으로 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일본 ‘미츠비시타나베’와의 인보사 기술수출 계약이 임상 시험 절차 문제로 해지되면서 해외 수출이 주춤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지난달 미국 먼디파마와 일본으로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으면서 활로를 찾았다. 코오롱은 올해 7월 미국서 임상시험을 허가받아 이르면 2023년부터 미국서도 인보사를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은 인보사 개발을 두고 “성공 가능성이 0.00001%라고 할지라도 그룹의 미래를 생각할 때 주저할 수 없었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회장의 뚝심과 인내의 경영철학이 묻어나는 말이다. 

물론 뚝심과 인내가 언제나 통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3000억원을 들여 15년간 육성했던 올레드 사업은 자본잠식에 빠져 2015년 사업 철수를 결정해야 했다. 2007년 환경시설관리공단을 인수해 도전했던 수(水) 처리 사업도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수많은 악재도 있었다.

2014년 2월 코오롱이 운영하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서 열린 부산외국어대 신입생 환영회 도중 강당 지붕이 무너져 10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이 회장은 모든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하고 사재를 털어 피해자들에게 보상했다. 


코오롱은 지난 2009년 지주사 중심의 경영체계를 구축했다.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으면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수차례 지적을 받기도 했다. 공정위는 지난 5월1일, 2년 만에 코오롱그룹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다시 지정했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은 공정거래법 시행령 제21조 제2항에 따라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말한다. 

재계 총수들과
두루 친밀관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 금지, 순환출자 금지, 계열회사에 대한 채무보증 금지 등 추가적 규제가 적용된다.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적용되는 총수 일가 사익편취 금지,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주식 소유현황 신고 등 기존 규제도 계속 적용된다.

세무조사에서 추징금도 부과됐다. 코오롱그룹은 2016년 4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았다. 상속세와 듀폰과의 소송 비용의 회계장부 반영에 대한 조사였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요원 수십명이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코오롱인더스트리를 불시에 방문해 회계장부와 컴퓨터 등 관련자료를 압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오롱그룹은 2016년 10월 모두 743억원 규모의 추징금을 받았으나 조세심판원에 이의를 제기해 지난 4월 617억원의 추징금에 부과 처분 취소 결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코오롱글로벌은 지난 6월 중부지방국세청으로부터 2013∼2017년 법인세 통합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173억9216만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코오롱은 이명박정권과의 유착(특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실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이자 전 새누리당 이상득 의원은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코오롱 사장,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코오롱상사 사장으로 재직했다. 

이 전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의 여러 최측근 인사들 모두는 코오롱과 직간접적으로 연결고리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이 전 의원은 코오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마음과 마음 통하는 ‘심통’ 경영
40세 회장직 맡아 60대 창업가로

명예회장과 이 전 의원이 고향 선후배 사이로 서로 친밀한 관계다. 이 때문에 이명박정부와 코오롱의 유착 의혹은 아직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갑작스러운 퇴진에는 이명박정권과 연결된 관계로 현 정권의 견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련의 기록들로 이 회장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그는 그룹이 직면한 위기를 과감한 결단으로 돌파한 인물이자 임직원들을 진심으로 아낀 인덕으로 존경받았다. 

개인적인 성향 면에서 이 회장은 평소 호방한 성격으로 재계서 격의 없는 소통경영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경영자로선 껄끄러울 수 있는 노조와의 만남도 직접 나서는가 하면 직원들과의 난상토론도 즐긴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심통’(心通)이다. 지난 4월 서울 마곡산업단지 신사옥에 입주할 당시 “새로운 60년 화두는 소통”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새 사옥에 연구와 영업, 지원 인력이 모인 만큼 협업의 장으로 만들자는 의미다. 젊은 직원들과 식당서 회사 비전을 놓고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보에 ‘회장님, 밥 사주세요’라는 코너를 만들어 대리급 직원들과 난상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코오롱인터스트리 구미 공장을 여러 차례 찾아 직접 노조와 만나기도 했다. 그룹 회장이 노조를 직접 만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구미 공장 노조는 2004년 파업으로 회사와 극심한 갈등을 겪은 바 있다. 이 회장은 ‘행복 공장 프로젝트’라는 상생활동을 제안해 노조의 손을 잡았다. 그는 당시에 일에 대해 “다시는 같은 아픔을 겪지 말자는 데 교감을 이룬 뒤 수시로 소통하는 방식이 노사 화합으로 이어졌다”라고 회고했다.

각종 사건사고
사정기관 눈치?

사교성도 좋아 재계 총수들과도 두루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류진 풍산 회장,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골프를 비롯해 축구, 야구, 테니스, 탁구, 당구, 골프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 스포츠 매니아다.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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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