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대 생활적폐’ 핵심은 사학비리다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1.20 08:33:22
  • 호수 11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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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을 대로 썩은 족벌사학 도려내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청와대가 8대 생활적폐 청산 과제를 선정했다. 사정기관과 정치권에선 생활적폐의 핵심은 ‘사학비리’라고 입을 모았다. 8대 생활적폐의 모든 문제점은 결국 사학비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사학비리 척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 근무하며, 족벌사학의 뿌리를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최근 불거진 사립유치원과 숙명여고 시험문제 유출 사건은 시작일 뿐이다.
 

▲ 사학비리 해체 집회 갖는 시민단체 회원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부른 권력형 적폐를 청산하는 작업이 마무리 단계다.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 이후 1년 동안 권력형 적폐 청산에 집중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국정 교과서 정책 폐지,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사건 조사 등이 이어졌다. 이 과정서 전직 대통령 두 명이 구속됐다.

민정실 주도
8개 항목 추려

청와대가 적폐 청산 2기에 본격 돌입했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민생분야 적폐 근절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시정연설서 “정부는 국민 요구에 응답해 권력적폐를 넘어 생활적폐를 청산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권익위원회를 비롯한 반부패정책협의회 참여 기관들은 그동안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논의를 거쳐 8개 생활적폐를 추렸다. ▲채용비리 ▲학사비리 ▲공적자금 부정수급 ▲재개발·재건축 비리▲불공정·갑질행위▲요양병원 보험금 수급비리 ▲안전사고를 유발하는 부패행위 ▲탈세 등을 8대 생활적폐 근절 과제를 확정했다.

채용·학사 비리는 출발선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차원서 선정됐다. 서울교통공사의 고용 세습 의혹이 가장 최근 부각된 사례다. 경제적 약자에 대한 불공정 갑질도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 폭행과 엽기 행각을 비롯해 그 사례가 넘쳐난다. 기득권 세력의 부정한 사익 편취에는 지역 토착 비리와 보조금 횡령 등이 포함된다.


최근까지 부동산 시장이 과열로 이어지면서 재개발·재건축 비리도 8대 청산 과제에 포함됐다.

안전에 쓰여야 할 돈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는 관행도 청산 대상으로 꼽혔다. 지난 9일,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나 지난 1월 6명이 숨진 종로 서울장여관 방화사건 등은 모두 안전시설 미비로 인명 피해가 컸다.

선정한 청산 과제 목록 보니…
문제점 결국 사학비리로 귀결

사정기관과 정치권에선 8대 생활적폐의 핵심은 사학비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학사비리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 사립학교다. 더불어 8대 생활적폐를 자세히 보면 그동안 사학재단서 자행한 비리들”이라며 “사립학교만 제대로 수사해도 8대 생활적폐의 모든 문제가 쏟아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8대 생활적폐들은 ▲채용비리 ▲학사비리 ▲공적자금 부정수급 ▲재개발·재건축 비리 ▲불공정·갑질행위 ▲탈세 등 대부분 사학재단서 일상처럼 일어나는 비리들이다. 

사립학교의 채용비리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사장 친인척 낙하산은 기본이며, 점수 조작과 뒷돈이 일상처럼 여겨진다. 사립학교의 채용 비리 적발 건수는 3년 새 20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 문재인 대통령

지난달 9일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4∼2017년 시도별 사립학교 교원 채용 비리 적발 현황’에 따르면 최근 4년간 교원 채용 비리로 적발된 건수는 93건에 달했다. 박 의원은 “2014년 3건에 불과하던 사립학교 교원 채용 비리는 2015년 10건, 2016년 17건, 2017년 63건으로 20배 이상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소문만 무성했던 학사비리도 사립학교서 터졌다. 서울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이 쌍둥이 자녀에게 시험 문제와 정답을 유출한 정황이 드러났다. 전 교무부장은 구속됐으며, 쌍둥이 자녀는 퇴학 절차에 들어갔다. 이 사건은 학교 내신성적 관리에 경종을 울렸으며, 공교육 불신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비선 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과 학점 특혜도 대표적인 사례다. 정유라는 입학 취소가 됐으며, 정유라의 부정입학과 학점 특혜에 관여했던 교수들은 모두 실형이 선고 됐다. 

돈 제대로
쓰이고 있나

사립학교 공적자금 부정수급 논란도 현재 진행형이다. 2013년부터 올해 7월말까지 ‘사학연금 부정수급' 규모가 19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재직 중 형벌이 확정됐지만 사실을 숨기고 부정수급한 사례 39건, 총 12억3600만원, 사망 등 수급권상실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부정수급한 사례 129건, 총 7억700만원을 잘못 지급했다.

사립 유치원들의 정부 지원금 횡령도 대표적 사례다. 정부 지원금으로 유흥업소 출입은 물론, 성인용품까지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립유치원 비밀 근정 방안을 담은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수 십 만평의 부동산을 소유한 사학재단과 재개발·재건축 비리는 뗄래야 땔 수 없다. 2016년 동의대학교 내 건물 신축공사를 수주하려는 건설업자에게 2억원의 뒷돈을 받은 혐의로 법원은 김인도 동의학원 이사장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2억원을 선고했다. 제주 사립학교 남녕고 부지를 수십업원의 뒷돈을 받고 아파트 건설 등 개발사업을 하는 건설사에 매각한 백모 남녕학원 이사장은 징역 4년에 추징금 6억8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사립학교의 불공정·갑질행위도 매번 도마에 올랐다.

최근 경북 구미의 한 사립 중·고교가 체육교사들에게 매년 하프마라톤을 뛰도록 강요해 교권침해 논란을 빚었다. 또 남교사들에게 교대로 기숙사 사감을 맡기고 밤샘근무 이후 다음날에도 휴식을 보장하지 않아 교사들의 반발을 샀다. 중앙대학교 이사장은 2015년 학내서 정당한 문제 제기를 했던 교수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목을 쳐주겠다”는 폭언으로 충격과 사회적 공분을 샀다. 

교육부장관은
사실상 꼭두각시?

사립학교 탈세는 기업비리 못지 않은데 기숙사 불법 운영, 차명계좌 사용, 공금 횡령, 학교 회계 부당 집행 등 다양하게 나타났다.

2016년 부산시교육청이 사립학교 B고에 대해 특별감사를 벌였는데 해당고교는 2008년 3월부터 올 6월까지 재단 이사 S씨와 부인 K교장이 소유한 건물 2동을 무단으로 용도 변경해 학생 기숙사로 불법 운영했다. 기숙사비 총 11억여원을 행정실 직원과 친척 명의의 차명계좌로 받아 관리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사학비리 척결은 문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으로 근무하며 족벌 사학들의 뿌리 깊은 문제들을 직접 목격했다.

2005년 12월9일 국회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의 반대를 무릎 쓰고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과 교육계는 환호했다. 하지만 박근혜 당시 대표를 선두로 한나라당이 국회를 전면 보이콧하고 거리로 나갔다.

영남대의 박근혜, 홍신학원의 나경원, 현대학원의 정몽준 등 한나라당의 여러 의원들이 사학의 직간접 당사자였다는 점에서 예견된 일이었다. 한나라당과 뜻을 같이 하는 사학재단들은 신입생 모집 거부와 학교 폐쇄를 언급하고 나섰는데 특히, 보수적인 개신교 사학들이 앞장섰다.

이들은 사립학교법 개정은 위헌이고 전교조가 학교를 장악하려는 음모라며 학생들을 사회주의 전사로 만드는 법안이라며 색깔론을 꺼내들었다. 

권력형 이어 민생으로 ‘2라운드’ 
정부 차원서 강도 높은 드라이브

국회 올스톱이 장기화되자 예산안 처리에 비상이 걸린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정권은 예상보다 훨씬 거센 반발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결국 한나라당에 손을 내밀었다. 해를 넘긴 2006년 1월30일,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였던 김한길 의원과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던 이재오 의원이 북한산서 만나 ‘사립학교법 재개정 합의’에 이른다.


이른바 ‘산상합의’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전략적 후퇴(?)를 택했다고 변명했지만 사실상 항복 선언이었다. 이렇게 해서 어렵게 개정된 사립학교법은 제대로 시행도 해보지 못하고 그해 7월 재개정됐다. 
 

▲ 사학법 개정 반대 집회 갖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여권도 8대 생활적폐가 사학비리와 연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사립학교법 문제로 시끄러울 때 문 대통령은 당시 민정수석이었다. 사립학교법이 누더기 되는 과정을 직접 본 사람이다. 그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에 참여정부 때처럼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교육 비전문가인 유은혜 교육부장관을 임명한 것도 이런 정부 기조에 이견 없이 따라올 인사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참여정부 당시 당·정·청회의서 교육부장관이 ‘직’을 걸면서까지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민정수석으로 회의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그럼 관두시죠”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참여정부 실패
이번엔 잡는다

사실 전임이었던 김상곤 전 교육부장관은 사학비리 척결에 실패했다. 김 전 장관은 사학비리 척결을 기치로 내걸며 사학혁신추진단 등을 설치했으나 성과가 미미했다는 게 중론이다. 익명을 요구하는 사립학교 한 관계자는 “진보 교육인으로 꼽힌 김상곤 전 장관조차도 사학비리를 척결하지 못했다”며 “교육부 공무원들이 사학과 결탁돼있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서 강도 높은 드라이브를 걸지 않은 이상 사학비리는 청산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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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다시 건넌 탄핵의 강

8년 만에 다시 건넌 탄핵의 강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16년 12월9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야당이 발의하고 여당 의원 일부가 찬성표를 던져 가결됐다.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파면’이라는 결과를 낳은 국정 농단 사태의 ‘결정적 순간’이다. 8년 뒤 국회 본회의장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11일 만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시동이 걸린 탄핵 열차는 국회를 지나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향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헌재의 시간이다. 두 번 만에 직무 정지 지난 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300명이 참석해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가결됐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요건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즉 200명 이상의 ‘가’표다. 범야권으로 분류되는 192표 외에 국민의힘의 8표가 필요했다. 이날 본회의서 나온 찬성 204표 중 국민의힘서 12표의 이탈표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탄핵안 표결 전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의원 수인 7명보다 많다. 기권과 무효표 역시 국민의힘서 나왔다고 계산하면 23명의 의원이 당론인 ‘탄핵 반대’와 다른 선택을 한 셈이다. 탄핵안 가결 이후 우원식 국회의장은 탄핵소추의결서를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정 위원장은 탄핵소추의결서 정본과 사본을 각각 헌재와 대통령실로 보냈다. 14일 오후 7시24분 탄핵소추의결서가 대통령실에 전달되면서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탄핵안이 가결된 지 2시간여 만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맡는다. 한 총리는 탄핵안 가결 이후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온 힘과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한 총리는 현재 내란 혐의 관련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만일 야당의 탄핵소추로 한 총리의 직무가 정지되면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국무총리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피청구인’이 된 윤 대통령의 운명은 헌재에 달렸다. 헌재는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한 직후 ‘2024헌나8’의 사건번호를 부여했다. 사건명은 ‘대통령(윤석열) 탄핵’이다. 사건은 재판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재판부에 회부됐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재판하겠다”고 말했다. 헌재는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 때는 63일, 박 전 대통령 때는 91일 만에 헌재의 최종 판단이 나왔다. 헌재가 탄핵안을 인용하면 윤 대통령은 파면되고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기각하면 탄핵안은 즉시 파기되며 윤 대통령은 국정에 복귀할 수 있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이르면 내년 4월, 늦게는 8월에 조기 대선이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상계엄 이후 11일 만 국민의힘 이탈표로 가결 문제는 헌재가 현재 ‘6인 체제’라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이 퇴임했지만 여야가 추천 인원수를 두고 다투면서 3명을 임명하지 못했다. 헌재법 23조1항은 헌재가 사건을 심리하기 위해서는 재판관 7명의 출석이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6인 체제서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헌재는 앞서 탄핵소추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해당 조항의 효력을 임시로 정지시켰다. 그러면서 현재 6인 체제서 이 위원장의 탄핵 심판뿐만 아니라 헌재에 계류된 다른 사건의 심리를 모두 진행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사건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대통령 탄핵 심판이라는 헌정사에 중요한 사건을 6인 체제로 진행하는 게 헌재 입장서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6인 체제로 결론을 내릴 경우 만장일치가 돼야 한다.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정당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치권은 헌재를 ‘완전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다. 국민의힘은 여당 몫 후보로 조한창 변호사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정계선 서울서부지방법원장과 마은혁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를 각각 추천했다.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국회 본회의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다. 현재로선 한 총리가 이들을 임명하게 된다. 헌재로 공을 넘긴 정치권은 그야말로 시계 제로(0) 상태다. 지난 7일 1차 탄핵안이 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된 이후 일주일 만에 가결로 결과가 바뀌면서 본격적인 탄핵 정국에 돌입했다. 탄핵안 가결의 ‘키’를 쥐고 있던 국민의힘은 혼돈 그 자체다. 보수 진영 대통령이 두 번 연속 탄핵 심판대 위에 서게 되면서 ‘궤멸’ 위기에 직면했다. 끝까지 반성 없어 지도부 붕괴는 가시화됐다. 탄핵안 가결 이후 국민의힘 선출직 최고위원 5명(김민전·김재원·인요한·장동혁·진종오)은 모두 사의를 표명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선출직 최고위원 5명 가운데 4명이 사퇴할 경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넘어가게 된다. 한동훈 대표는 직무 수행 의지를 드러냈지만 의원총회서 사퇴 요구가 나오는 등 입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퇴를 선언했다. 당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친윤(친 윤석열)계와 당권을 쥔 친한(친 한동훈)계 간의 책임론 공방은 국민의힘을 극심한 내홍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친박(친 박근혜)계와 비박(비 박근혜)계가 갈등을 벌이다가 분당 사태까지 벌어졌던 8년 전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 이후 5년 만에 정권교체로 간신히 회복한 국민 신뢰를 또다시 잃게 됐다. 국민은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안 가결에 이르기까지 11일 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특히 지난 7일 1차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국회 본회의장을 떠나는 모습은 국민 분노에 불을 지폈다. 결국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보수 진영으로부터도 비판이 쏟아졌다. 윤 대통령은 헌재뿐만 아니라 국민 여론·수사기관·정치권 등에 완전히 포위된 ‘사면초가’ 상황에 빠졌다. 탄핵안 가결 이후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서 “저는 지금 잠시 멈춰 서지만 지난 2년 반 국민과 함께 걸어온 미래를 향한 여정은 결코 멈춰 서서는 안 될 것이다.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숨통 죄는 내란 혐의 그러면서 자신의 국정운영 성과를 강조했다. 정치권과 국민에 대한 당부 발언도 내놨다. 하지만 탄핵안 발의 배경인 12·3 비상계엄 선포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끝까지 국민에 대한 사과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윤 대통령의 태도에 비판이 제기됐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앞서 진행한 네 번의 대국민 담화서도 그는 모든 상황의 원인을 ‘야당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 정례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탄핵 표결 직전 11%까지 떨어졌다. 부정 응답은 85%까지 치솟았다. 긍정 응답은 60세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서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헌재 탄핵 심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다 해도 국정 동력을 기대할 수 없는 수치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TK(대구·경북)도 16%에 그쳤다.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특검 등 수사기관도 윤 대통령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현재 내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구속된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등 관련자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직접 진두지휘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쏟아내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내란죄는 외환죄와 함께 대통령 불소추특권의 예외 범죄다. 내란 우두머리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뿐이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과정서 그에게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했다. 지난 14일 구속된 여인형 방첩사령관도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들이 ‘윗선’ 즉, 내란 우두머리로부터 지시를 받았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 여당은 궤멸 직전에 몰려 헌재 9인 체제 결론 내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명태균씨 관련 수사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최근 몇 개월 새 이른바 ‘명태균 녹취록’이 민주당을 통해 일부 공개되면서 윤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여사는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었다. 명씨의 행보에 윤 대통령 부부의 뒷배가 작용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그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두 번 만에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낸 야권은 공세를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그간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국회 과반 의석(192석)을 무기로 윤 대통령을 압박해 왔다. 김 여사 특검법은 이미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황서 윤 대통령은 더이상 거부권을 쓸 수 없다. 내란 혐의를 받는 일부 국무위원과 군‧경 관계자에 대한 탄핵소추도 일사천리로 국회 문턱을 넘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탄핵안 가결 이후 “12·3 내란 사태는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며 “내란 수괴 윤석열의 직무 정지는 사태 수습을 위한 첫걸음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을 비롯해 내란 가담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로 사태의 전모를 밝혀내고 처벌이 내려질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사흘 만에 내놓은 대국민 담화서 법적·정치적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조기 퇴진 제안에도 ‘하야보다는 탄핵이 낫다’는 입장을 보이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나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심판 당시 한 차례도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지만 율사 출신인 윤 대통령은 직접 변론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앞선 대국민 담화서 비상계엄의 당위성에 대해 거듭 이야기했다. 헌재서도 자신이 왜 최후의 수단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 그 배경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만큼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회와 윤 대통령의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문제는 이 과정서 표류할 ‘대한민국호’의 상황이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각종 경제지표가 곤두박질치면서 이는 고스란히 국민의 짐으로 얹어지고 있다. 헌재 판결, 조기 대선 등 향후 이어질 정치 일정서 일어날 갈등도 국민에겐 피로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민이 극복하긴 했지만 피로 지켜온 민주주의가 상처 입은 점도 뼈아픈 대목이다. 피해는 국민 몫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윤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령 도박에 대한 대가는 한국의 5100만 국민이 할부로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비상계엄 선포부터 탄핵안 가결까지 걸린 시간은 열흘 남짓이다. 향후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최대 8개월까지 이 국면이 계속될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에게 청구될 계산서에는 얼마가 쓰여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