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트랜스젠더를 아시나요?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3.29 08:42:08
  • 댓글 0개

여자이고 싶은 반쪽 여자, 그녀들은 아름다웠다

[일요시사 = 한종해 기자]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가 최근 방송에 출연해 "자궁이식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하리수 임신'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6일에는 하리수가 운영하는 트랜스젠더클럽에서 '네오젠더쇼' 콘서트를 열고 트랜스젠더들의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마음고생도 많이 했을 텐데 항상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준다" "아름답다"는 등 호평을 늘어놨다. 트랜스젠더가 우리 사회의 양지로 떠오르고 있는 것. 거부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비난부터 하는 사람들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음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트랜스젠더들이 대다수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사회적인 차별도 받고 있다. <일요시사>가 트랜스젠더들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기자는 먼저 트랜스젠더를 만나기 위해 성적소수자들이 많이 모인다는 한 사이트를 찾았다. 지난달 게이문화 탐방을 위해 가입해 놓은 아이디로 로그인을 하고 이번에는 트랜스젠더 게시판을 클릭했다. 게시판에는 호르몬제를 구한다는 내용의 글과 만남을 원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만남을 원하는 글 대부분에는 그들의, 아니 그녀들의 얼굴과 몸매 사진이 함께 게시되어 있었으며, 휴대폰 번호도 서슴없이 공개하고 있었다.

남자가 되고픈 여자
여자가 되고픈 남자

그런데 게시판에는 기자가 알 수 없는 생소한 단어들도 가득했다. '대전 씨디, 쉬멜 찾아요' '전 바이이고 여친있어요. 쉬멜분들과 친해지고 싶어요 등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가 수두룩했다. 이에 기자는 1:1대화 게시판을 통해 한 트랜스젠더에게 대화를 신청해보기로 했다.

대화를 신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화창이 열렸다. 기자는 먼저 이성애자임을 밝히고 취재 중임을 알렸다. 그러자 이 트랜스젠더는 '알고 있다'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회원정보를 보면 접속지역과 나이 성별, 이성애자, 동성애자 유무를 알 수 있어요. 대화 수락을 한 이유는 일반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고 싶어서예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현재 우리 사회에서 알려진 동성애자들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금세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장을 한 모든 남자' 혹은 '남자인데 여자로 수술을 한 남자'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달랐다.

트랜스젠더는 '남자 혹은 여자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자신의 신체와 반대되는 성을 정체성으로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남자가 여자로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여자가 남자로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들도 트랜스젠더라고 부른다는 것.

이 여성은 이어 여러 가지 용어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여기서라도 여자(?)이고 싶어" 허락되지 않은 그들
"예쁘다는 말 가장 좋아해…남자 아닌 여자로 봐달라"

"CD는 Cross Dresser의 줄임말로 이성복장을 함으로 인해 만족감을 얻는 사람을 지칭해요. 비슷한 말로 TV가 있는데요. 이는 이성의 복장을 함으로 인해 성적인 만족감을 얻는 사람을 말해요. CD는 순수한 만족감, TV는 성적인 만족감이죠. 그리고 바이는 Bi-sexual의 줄임말이에요. 말 그대로 이성과 동성 모두에게 성지향성이 있는 사람을 말하죠. 쉽게 말하면 바이는 자신의 성 지향성을 발견하기 전에 거치는 과정이라고 보면 돼요."

기자는 쉬멜에 대해서도 물었다.

"쉬멜(shemale)은 원래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여성이 되기 위해 가슴수술을 해 양성을 가지고 있는 수술이 덜 된 트랜스젠더를 칭하는 말이에요. 추가로 설명하자면 게이는 남자가 남자를, 레즈비언은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트랜스젠더에도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가 있을 수도 있어요."

대화를 나누는 내내 이 여성은 기자를 만나고 싶어 했다. 더 많은 정보를 알리고 싶다는 것. 기자는 그녀와 약속날짜와 시간, 장소를 잡고 대화창을 빠져나왔다. 용어도 알았고 인터뷰도 잡았으니 이제 현장으로 이동해야 했다. 기자는 소수민족들의 놀이터인 이태원을 찾기로 했다.

지난 19일 저녁 10시께 기자는 이태원 유흥문화에 통달한 지인과 함께 외국인과 젊은이들의 거리 이태원을 찾았다. 이태원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트랜스젠더 바가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바는 골목 곳곳에 한글로 '트랜스' 혹은 영어로 'trans'라고 적힌 간판과 함께 퍼져있었다. 바 입구에서는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은 트랜스젠더들이 버젓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이태원 트랜스젠더 바 중 가장 잘 놀기로 유명한 A트랜스젠더 바를 찾았다. 30대 초반인 지인은 이곳을 들어가는 기자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처음에는 트랜스젠더들이 야릇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이상한 기분이 들 거예요.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자신의 성정체성에 의심을 가질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녀들은 '예쁘다'라는 말을 가장 좋아해요."

알고 있었지만
어색한 분위기

기자는 지인이 건넨 말 중 '예쁘다'라는 단어만 머릿속에 기억한 채 A트랜스젠더 바의 문을 열었다. 기자는 순간 "일반 바를 찾아 들어온 게 아닐까?" 의심도 했다. 하지만 간판에는 분명 '트랜스'라는 단어가 크게 적혀있었다.

들어가는 순간의 느낌은 일반 룸살롱과 다를 게 없었다. 무대 중앙에는 몇몇 트랜스젠더들이 춤과 무용 등의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이른 시간인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자는 지인과 함께 일반적인 바와 같이 둥글고 긴 테이블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지인이 손을 들어 한 접대부를 불렀다. 접대부는 속이 훤히 비치는 짧은 드레스를 입고 테이블로 다가와 주문을 받기 위해 쭈그려 앉았다. 벌어진 치마사이로 여성의 중요부위가 보였다. 

"오빠, 오랜만이네, 뭘 주문하시겠어요?"

조각해 놓은 것 같은 가슴과 긴 머리, 겉모습은 영락없는 여자였지만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약간의 걸걸함은 남아있었다. 기자가 이 바에 입장하기 전 지인이 건넨 말이 그제야 생각났다. 물론 이들이 성전환수술을 한 여자, 즉 남자였던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이 같은 분위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자보다 예쁘다는 이유로
어린시절 당한 성폭행

어색해하는 기자를 알아챈 걸까? 테이블 옆의 그녀는 기자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처음 오셨나보네. 그냥 편하게 놀다가요. 분위기가 좀 그러면 룸으로 옮길까요?"

손님들 중 이들과 좀 더 사적인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룸이 제공됐다. 기자도 지인과 눈빛을 주고받은 뒤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단 주문을 하기 위해 메뉴판을 펼쳤다. 가격은 약간 비싼 편이었다. 35만원짜리 양주 500ml 세트를 시켰고 접대부가 나가자 본격적으로 룸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룸 중앙에는 노래방기기가 설치돼 있었으며 타원형의 테이블 주변으로 푹신한 쇼파가 위치해 있었다. 일반 룸살롱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어느새 의상을 갈아입은 트랜스젠더들이 다가왔다. 자신을 '마담'이라고 소개한 은희(40)는 얼굴과 몸을 모두 성형한 완전한 여성이었다. 또 다른 여성은 아롱(28)이라고 했다. 아주 깡마른 몸매의 아롱 역시 전신성형으로 여성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술과 안주를 들고 들어온 여성은 아주 앳된 모습의 유미(23)였다. 그녀는 아직 수술을 다 마치지 못해 양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우리 팀이 오늘의 첫 룸 개시 손님이었다. 기자가 "트랜스젠더 바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 찾아왔다"고 말하자 마담 은희씨가 화제를 이끌었다.

"오늘 놀아보면 알거에요. 그쪽은 맨 정신으로는 아무것도 못 하니까 술부터 마셔요."

쉬멜, CD, 바이…뭔지 아세요? 트랜스젠더 24시
얼굴·몸매 모두 여자, 숨길 수 없는 걸걸한 목소리

부담감이 생기긴 했지만 곧 술잔이 오고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옆에 앉아 있던 트랜스젠더들이 한 명씩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노출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가슴은 거의 노출돼 유두가 보였고 등과 엉덩이 노출은 기본이었다.

자리가 술자리인 만큼 솔직한 대화도 주고받았다. 유미씨는 2년 전 일본에서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고아라는 그녀는 연거푸 술을 들이키더니 어려서부터 매우 힘들게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고아원에 갔다가 일본으로 입양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여자보다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왔고 저도 제가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제 오빠가 저를 성폭행했고 '부모님께 알리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어요. 그래서 집을 뛰쳐나왔고 부모님을 찾기 위해 한국에 와서 지금 돈을 벌고 있네요. 완전한 여성이 되면 부모님을 찾을 거예요."

하소연을 하며 눈물을 보이자 순간 술자리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기자는 축 처진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그래도 정말 여자보다 더 예쁘다"는 말을 건넸다. 말을 꺼낼 때는 어색했지만 그녀들이 예쁜 것은 사실이었다. 그 말을 들은 아롱씨가 밝은 얼굴로 얘기를 시작했다.

"그래도 저희는 나은 편이에요. 워낙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트랜스젠더들이 많기 때문에 그나마 바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죠. 제가 아는 트랜스젠더들 중 일부는 성매매에 종사하기도 해요. 물론 생계는 어느 정도 해결되겠지만 수치심, 열등감에 매일 밤 몸서리치고 일반 성매매 여성들이 느끼는 자괴감과 거의 동일한 기분을 느껴요."

기자는 슬쩍 "그들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유사성매매 업소에도 있고 프리랜서식 성매매도 있어요. 인터넷 사이트 같은 데서 즉석만남을 하는 식이죠.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남산타워 인근이에요. 그런데 대부분 남산타워에 있는 언니들은 나이가 들어서 일선에서 밀려난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남산 근처에 트랜스젠더가 있다는 소문이 나서 찾아와주는 남성들 덕에 먹고사는 거죠. 그마저도 없다면 그들은 더욱 힘들었을 거예요."

취재 내내 씁쓸
현실과의 괴리

한창 대화를 나누던 중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다. 단골손님인 듯 기자 테이블에서 술을 먹던 은희씨가 달려 나가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어느덧 시간은 자정 무렵. 슬슬 일어나야 했다.

르포 취재를 하면서 이번처럼 씁쓸했던 기분은 처음이었다. 성적 소수자들도 분명 하나의 인간인데 떳떳하게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고 변변한 직업조차 가지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많이 완화됐다곤 하지만 아직도 음지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을 보니 아직 현실과의 괴리가 느껴졌다.


<미니인터뷰> 트랜스젠더 미미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

지난 20일 오전 10시, 기자는 전날 성적소수자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만난 트랜스젠더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의 한 커피숍을 찾았다. 커피를 한 잔 사들고 질문내용을 정리하는 사이 기자의 휴대폰이 10초 가량 울리다가 끊어졌다. 수신 내역을 확인하는 동안 피곤해 보이는 한 남성이 아니, 여성이 기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짙은 화장을 했고 한껏 멋을 냈지만 남성의 모습을 숨길 수 없었다. 지난 19일 저녁 이태원 트랜스젠더 바에서 만났던 여성들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가슴은 나와 있었지만 떡 벌어진 어깨와 다리 근육은 굳이 말하자면 여자보다는 남자였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그녀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줬다. 올해 30세의 김모씨였으며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2로 시작됐다. 김씨는 자신을 미미라고 불러달라고 말했다. 기자는 미미씨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많이 피곤해 보인다. 밤새 일 했나?

-새벽 5시까지 남산 소월길에서 일했다. 한때는 트랜스젠더 바에서 일하기 위해 무척 애쓴 적도 있지만 나 같은 얼굴은 받아주지 않았다. 내가 너무 여자답지 않게 생겼기 때문이다. 여성으로 성을 바꾼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보통 여자보다 더 여자다워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못생긴 주제에 성전환수술을 했냐고 질타하기도 한다. 컴퓨터를 전공해 관련 자격증만 7개지만 내가 일할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생계를 꾸리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현재 어디에 살고 있나? 가족들은 없나?

-고시원을 전전하면서 산다. 운이 좋을 때는 손님이 여관방을 밤새 끊어주기도 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과 여행도 다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내가 성전환수술을 하고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더 이상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 가끔 어머니만 내가 있는 고시원을 찾는다.

▲자신이 여자라고 느껴졌을 때가 언제인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여자보다는 남자에게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했고 집에 얘기조차 할 수 없었다.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결국 10년 전, 일본으로 건너가 성전환수술을 받았고 수술 직후 호적도 여자로 바꾸고 개명 변경도 법적으로 다 마쳤다. 비로소 완전한 여자가 됐다. 

▲트랜스젠더가 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는가?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여자로 살 수 있다는 행복감에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 여자로만 살 수 있다면 힘든 것은 우리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꿈이 무엇인가?

-평범한 여자로서의 삶이다. 좋은 남자 만나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싶다. 정말 좋은 남자 만나 좋은 가정을 꾸린 친구들이 많이 있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