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트랜스젠더를 아시나요?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3.29 08: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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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이고 싶은 반쪽 여자, 그녀들은 아름다웠다

[일요시사 = 한종해 기자]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가 최근 방송에 출연해 "자궁이식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하리수 임신'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6일에는 하리수가 운영하는 트랜스젠더클럽에서 '네오젠더쇼' 콘서트를 열고 트랜스젠더들의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마음고생도 많이 했을 텐데 항상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준다" "아름답다"는 등 호평을 늘어놨다. 트랜스젠더가 우리 사회의 양지로 떠오르고 있는 것. 거부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비난부터 하는 사람들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음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트랜스젠더들이 대다수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사회적인 차별도 받고 있다. <일요시사>가 트랜스젠더들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기자는 먼저 트랜스젠더를 만나기 위해 성적소수자들이 많이 모인다는 한 사이트를 찾았다. 지난달 게이문화 탐방을 위해 가입해 놓은 아이디로 로그인을 하고 이번에는 트랜스젠더 게시판을 클릭했다. 게시판에는 호르몬제를 구한다는 내용의 글과 만남을 원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만남을 원하는 글 대부분에는 그들의, 아니 그녀들의 얼굴과 몸매 사진이 함께 게시되어 있었으며, 휴대폰 번호도 서슴없이 공개하고 있었다.

남자가 되고픈 여자
여자가 되고픈 남자

그런데 게시판에는 기자가 알 수 없는 생소한 단어들도 가득했다. '대전 씨디, 쉬멜 찾아요' '전 바이이고 여친있어요. 쉬멜분들과 친해지고 싶어요 등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가 수두룩했다. 이에 기자는 1:1대화 게시판을 통해 한 트랜스젠더에게 대화를 신청해보기로 했다.

대화를 신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화창이 열렸다. 기자는 먼저 이성애자임을 밝히고 취재 중임을 알렸다. 그러자 이 트랜스젠더는 '알고 있다'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회원정보를 보면 접속지역과 나이 성별, 이성애자, 동성애자 유무를 알 수 있어요. 대화 수락을 한 이유는 일반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고 싶어서예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현재 우리 사회에서 알려진 동성애자들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금세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장을 한 모든 남자' 혹은 '남자인데 여자로 수술을 한 남자'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달랐다.

트랜스젠더는 '남자 혹은 여자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자신의 신체와 반대되는 성을 정체성으로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남자가 여자로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여자가 남자로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들도 트랜스젠더라고 부른다는 것.

이 여성은 이어 여러 가지 용어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여기서라도 여자(?)이고 싶어" 허락되지 않은 그들
"예쁘다는 말 가장 좋아해…남자 아닌 여자로 봐달라"

"CD는 Cross Dresser의 줄임말로 이성복장을 함으로 인해 만족감을 얻는 사람을 지칭해요. 비슷한 말로 TV가 있는데요. 이는 이성의 복장을 함으로 인해 성적인 만족감을 얻는 사람을 말해요. CD는 순수한 만족감, TV는 성적인 만족감이죠. 그리고 바이는 Bi-sexual의 줄임말이에요. 말 그대로 이성과 동성 모두에게 성지향성이 있는 사람을 말하죠. 쉽게 말하면 바이는 자신의 성 지향성을 발견하기 전에 거치는 과정이라고 보면 돼요."

기자는 쉬멜에 대해서도 물었다.

"쉬멜(shemale)은 원래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여성이 되기 위해 가슴수술을 해 양성을 가지고 있는 수술이 덜 된 트랜스젠더를 칭하는 말이에요. 추가로 설명하자면 게이는 남자가 남자를, 레즈비언은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트랜스젠더에도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가 있을 수도 있어요."


대화를 나누는 내내 이 여성은 기자를 만나고 싶어 했다. 더 많은 정보를 알리고 싶다는 것. 기자는 그녀와 약속날짜와 시간, 장소를 잡고 대화창을 빠져나왔다. 용어도 알았고 인터뷰도 잡았으니 이제 현장으로 이동해야 했다. 기자는 소수민족들의 놀이터인 이태원을 찾기로 했다.

지난 19일 저녁 10시께 기자는 이태원 유흥문화에 통달한 지인과 함께 외국인과 젊은이들의 거리 이태원을 찾았다. 이태원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트랜스젠더 바가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바는 골목 곳곳에 한글로 '트랜스' 혹은 영어로 'trans'라고 적힌 간판과 함께 퍼져있었다. 바 입구에서는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은 트랜스젠더들이 버젓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이태원 트랜스젠더 바 중 가장 잘 놀기로 유명한 A트랜스젠더 바를 찾았다. 30대 초반인 지인은 이곳을 들어가는 기자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처음에는 트랜스젠더들이 야릇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이상한 기분이 들 거예요.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자신의 성정체성에 의심을 가질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녀들은 '예쁘다'라는 말을 가장 좋아해요."

알고 있었지만
어색한 분위기

기자는 지인이 건넨 말 중 '예쁘다'라는 단어만 머릿속에 기억한 채 A트랜스젠더 바의 문을 열었다. 기자는 순간 "일반 바를 찾아 들어온 게 아닐까?" 의심도 했다. 하지만 간판에는 분명 '트랜스'라는 단어가 크게 적혀있었다.

들어가는 순간의 느낌은 일반 룸살롱과 다를 게 없었다. 무대 중앙에는 몇몇 트랜스젠더들이 춤과 무용 등의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이른 시간인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자는 지인과 함께 일반적인 바와 같이 둥글고 긴 테이블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지인이 손을 들어 한 접대부를 불렀다. 접대부는 속이 훤히 비치는 짧은 드레스를 입고 테이블로 다가와 주문을 받기 위해 쭈그려 앉았다. 벌어진 치마사이로 여성의 중요부위가 보였다. 

"오빠, 오랜만이네, 뭘 주문하시겠어요?"

조각해 놓은 것 같은 가슴과 긴 머리, 겉모습은 영락없는 여자였지만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약간의 걸걸함은 남아있었다. 기자가 이 바에 입장하기 전 지인이 건넨 말이 그제야 생각났다. 물론 이들이 성전환수술을 한 여자, 즉 남자였던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이 같은 분위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자보다 예쁘다는 이유로
어린시절 당한 성폭행

어색해하는 기자를 알아챈 걸까? 테이블 옆의 그녀는 기자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처음 오셨나보네. 그냥 편하게 놀다가요. 분위기가 좀 그러면 룸으로 옮길까요?"

손님들 중 이들과 좀 더 사적인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룸이 제공됐다. 기자도 지인과 눈빛을 주고받은 뒤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단 주문을 하기 위해 메뉴판을 펼쳤다. 가격은 약간 비싼 편이었다. 35만원짜리 양주 500ml 세트를 시켰고 접대부가 나가자 본격적으로 룸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룸 중앙에는 노래방기기가 설치돼 있었으며 타원형의 테이블 주변으로 푹신한 쇼파가 위치해 있었다. 일반 룸살롱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어느새 의상을 갈아입은 트랜스젠더들이 다가왔다. 자신을 '마담'이라고 소개한 은희(40)는 얼굴과 몸을 모두 성형한 완전한 여성이었다. 또 다른 여성은 아롱(28)이라고 했다. 아주 깡마른 몸매의 아롱 역시 전신성형으로 여성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술과 안주를 들고 들어온 여성은 아주 앳된 모습의 유미(23)였다. 그녀는 아직 수술을 다 마치지 못해 양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우리 팀이 오늘의 첫 룸 개시 손님이었다. 기자가 "트랜스젠더 바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 찾아왔다"고 말하자 마담 은희씨가 화제를 이끌었다.

"오늘 놀아보면 알거에요. 그쪽은 맨 정신으로는 아무것도 못 하니까 술부터 마셔요."

쉬멜, CD, 바이…뭔지 아세요? 트랜스젠더 24시
얼굴·몸매 모두 여자, 숨길 수 없는 걸걸한 목소리


부담감이 생기긴 했지만 곧 술잔이 오고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옆에 앉아 있던 트랜스젠더들이 한 명씩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노출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가슴은 거의 노출돼 유두가 보였고 등과 엉덩이 노출은 기본이었다.

자리가 술자리인 만큼 솔직한 대화도 주고받았다. 유미씨는 2년 전 일본에서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고아라는 그녀는 연거푸 술을 들이키더니 어려서부터 매우 힘들게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고아원에 갔다가 일본으로 입양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여자보다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왔고 저도 제가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제 오빠가 저를 성폭행했고 '부모님께 알리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어요. 그래서 집을 뛰쳐나왔고 부모님을 찾기 위해 한국에 와서 지금 돈을 벌고 있네요. 완전한 여성이 되면 부모님을 찾을 거예요."

하소연을 하며 눈물을 보이자 순간 술자리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기자는 축 처진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그래도 정말 여자보다 더 예쁘다"는 말을 건넸다. 말을 꺼낼 때는 어색했지만 그녀들이 예쁜 것은 사실이었다. 그 말을 들은 아롱씨가 밝은 얼굴로 얘기를 시작했다.

"그래도 저희는 나은 편이에요. 워낙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트랜스젠더들이 많기 때문에 그나마 바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죠. 제가 아는 트랜스젠더들 중 일부는 성매매에 종사하기도 해요. 물론 생계는 어느 정도 해결되겠지만 수치심, 열등감에 매일 밤 몸서리치고 일반 성매매 여성들이 느끼는 자괴감과 거의 동일한 기분을 느껴요."

기자는 슬쩍 "그들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유사성매매 업소에도 있고 프리랜서식 성매매도 있어요. 인터넷 사이트 같은 데서 즉석만남을 하는 식이죠.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남산타워 인근이에요. 그런데 대부분 남산타워에 있는 언니들은 나이가 들어서 일선에서 밀려난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남산 근처에 트랜스젠더가 있다는 소문이 나서 찾아와주는 남성들 덕에 먹고사는 거죠. 그마저도 없다면 그들은 더욱 힘들었을 거예요."

취재 내내 씁쓸
현실과의 괴리

한창 대화를 나누던 중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다. 단골손님인 듯 기자 테이블에서 술을 먹던 은희씨가 달려 나가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어느덧 시간은 자정 무렵. 슬슬 일어나야 했다.

르포 취재를 하면서 이번처럼 씁쓸했던 기분은 처음이었다. 성적 소수자들도 분명 하나의 인간인데 떳떳하게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고 변변한 직업조차 가지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많이 완화됐다곤 하지만 아직도 음지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을 보니 아직 현실과의 괴리가 느껴졌다.


<미니인터뷰> 트랜스젠더 미미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

지난 20일 오전 10시, 기자는 전날 성적소수자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만난 트랜스젠더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의 한 커피숍을 찾았다. 커피를 한 잔 사들고 질문내용을 정리하는 사이 기자의 휴대폰이 10초 가량 울리다가 끊어졌다. 수신 내역을 확인하는 동안 피곤해 보이는 한 남성이 아니, 여성이 기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짙은 화장을 했고 한껏 멋을 냈지만 남성의 모습을 숨길 수 없었다. 지난 19일 저녁 이태원 트랜스젠더 바에서 만났던 여성들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가슴은 나와 있었지만 떡 벌어진 어깨와 다리 근육은 굳이 말하자면 여자보다는 남자였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그녀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줬다. 올해 30세의 김모씨였으며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2로 시작됐다. 김씨는 자신을 미미라고 불러달라고 말했다. 기자는 미미씨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많이 피곤해 보인다. 밤새 일 했나?

-새벽 5시까지 남산 소월길에서 일했다. 한때는 트랜스젠더 바에서 일하기 위해 무척 애쓴 적도 있지만 나 같은 얼굴은 받아주지 않았다. 내가 너무 여자답지 않게 생겼기 때문이다. 여성으로 성을 바꾼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보통 여자보다 더 여자다워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못생긴 주제에 성전환수술을 했냐고 질타하기도 한다. 컴퓨터를 전공해 관련 자격증만 7개지만 내가 일할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생계를 꾸리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현재 어디에 살고 있나? 가족들은 없나?

-고시원을 전전하면서 산다. 운이 좋을 때는 손님이 여관방을 밤새 끊어주기도 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과 여행도 다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내가 성전환수술을 하고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더 이상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 가끔 어머니만 내가 있는 고시원을 찾는다.

▲자신이 여자라고 느껴졌을 때가 언제인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여자보다는 남자에게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했고 집에 얘기조차 할 수 없었다.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결국 10년 전, 일본으로 건너가 성전환수술을 받았고 수술 직후 호적도 여자로 바꾸고 개명 변경도 법적으로 다 마쳤다. 비로소 완전한 여자가 됐다. 

▲트랜스젠더가 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는가?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여자로 살 수 있다는 행복감에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 여자로만 살 수 있다면 힘든 것은 우리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꿈이 무엇인가?

-평범한 여자로서의 삶이다. 좋은 남자 만나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싶다. 정말 좋은 남자 만나 좋은 가정을 꾸린 친구들이 많이 있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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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