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구 하이마트 회장, 날개 없는 추락 사연

벗겨낼 때마다 새로운 비리 ‘양파회장님’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회사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서 임직원 여러분께 대단히 죄송합니다! 성실히 조사에 응해 오해를 풀도록 하겠습니다.” 공금 횡령 및 탈세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은 임직원들에 이런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마지막으로 잠적했다. 현재 선 회장에 걸려있는 혐의 내용은 1000억원대의 재산 해외도피와 탈세, 회사의 M&A(인수합병) 과정에서 배임, 그리고 수억원의 골프장 회원권 구입을 납품업체에 강매한 의혹 등. 이번 일로 하이마트 역사의 ‘산증인’이자 국내 전자제품 유통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선 회장은 경영자로서 일생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상황은 심각하다. 한 꺼풀 벗겨낼 때마다 새로운 비리가 드러나는 모습이 마치 양파와 같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다’는 말이 딱 선 회장을 두고 한 말인 듯싶다.

인수자 선정 편의 대가로 600억원 유진과 이면계약
임직원 몫으로 지급된 ‘위로금’ 200억원 챙긴 혐의

검찰에서 ‘저승사자’로 통하는 중앙수사부가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을 향해 칼을 빼든 건 지난달 25일. 1000억원대의 자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를 잡고서다. 중수부는 하이마트 본사와 관계사, 선 회장의 도곡동 타워팰리스 자택 등을 차례로 압수수색했다. 먼지 하나까지 샅샅이 털어내겠다는 각오다.

검찰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빼돌린 1000억원대의 회삿돈과 개인재산 중 일부를 아들 현석씨와 딸 수현씨에게 증여한 혐의를 포착했다. 특히 검찰은 빼돌린 자금을 조세피난처를 거쳐 세탁한 것으로 보고 계좌추적을 벌였다. 또 1500억원대 골프장 리조트 건설사업을 추진하면서 협력사에 장당 2억원의 회원권을 강매했다는 의혹도 집중 추궁하고 있다.

1000억대 자산 해외
빼돌려 세탁한 혐의

수사가 진행될수록 선 회장이 회사 안팎을 가리지 않고 저인망식으로 부당한 돈을 긁어모은 정황이 드러났다. 한 꺼풀씩 벗겨낼 때마다 새로운 비리가 나오는 모습이 마치 양파와 같다.

먼저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AEP)의 지분 매각 입찰 당시 유진그룹이 인수자로 선정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가로 선 회장이 600억원 가량을 받기로 유진 측과 이면계약을 맺은 사실이 확인됐다. 이를 통해 유진그룹은 1500억원 높은 입찰가를 써낸 GS홀딩스를 제치고 인수자로 선정됐다. 검찰은 이 같은 선 회장의 행위가 하이마트에 손실을 끼친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또 M&A 성사 이후 임직원들 몫으로 지급된 ‘위로금’ 500억원 가운데 100억~200억원이 선 회장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간 정황도 포착됐다. 직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으로 배를 불린 셈이다. 이런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선 회장은 M&A 직후에만 800억원을 챙긴 게 된다.

또 지인들을 협력사인 납품업체 ‘바지사장’으로 앉히는 방식으로 돈을 빼돌린 혐의도 드러났다. 현재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하이마트 협력업체는 모두 12~13곳. 선 회장은 이들 회사에서 각종 리베이트와 횡령 등을 통해 뒷돈을 챙겨 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선 회장이 이들을 사장으로 앉혀 놓고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아 왔던 것으로 보고 있다. 납품업체 가운데 일부는 선 회장의 자녀들에게 수년간 법인카드나 회사 차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 회장이 하이마트에서 매년 100억원대 연봉을 받아온 사실도 확인됐다. 하이마트는 선 회장을 포함해 31명의 임원이 있는데 임원 연봉의 총 한도가 210억원으로 정해져 있다. 임원 전체 연봉의 절반을 선 회장이 받아가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연봉을 결정한 이사회 과정이 적법하게 이뤄졌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검찰 측 관계자는 “선 회장이 이면계약으로 막대한 돈을 받기로 한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라며 “임직원에게 돌아갈 위로금도 일부 착복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선 회장이 지나치게 높은 연봉을 받아온 데 대해서도 불법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횡령한 돈으로
고급빌라 매입?

최근 선 회장이 현석씨 이름으로 미국 베버리힐스의 고급 빌라를 매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검찰은 선 회장이 횡령한 자금으로 이 빌라 구입자금을 충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집을 산 시점은 2008년 초이며, 구입가격은 200만달러 가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베버리힐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할리우드와 가까워 미국 유명 연예인들의 저택이 즐비한 고급 주택지이다.

2008년 초는 ‘리먼쇼크’ 직전으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조짐으로 환율이 급등하던 때였다. 검찰은 선 회장 일가가 이 집 외에도 하이마트에서 횡령한 회삿돈을 해외로 빼돌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또 선 회장 일가가 벌여온 골프장 사업에도 회삿돈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선 회장 일가는 2009년부터 사업비 1500억원 규모로 강원 춘천시 일대 51만여평의 대지에 27홀 규모의 골프장 엔바인리조트 개발 사업을 벌여왔다. 이 골프장 사업 투자금 대부분은 선 회장과 그의 자녀 주머니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IMF 위기로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될 당시 대우전자 판매총괄본부장이었던 선 회장은 대우전자의 국내 영업부문이 대우전자에서 분사, 대우전자 제품을 국내에 총판하는 하이마트 전신인 ‘한국신용유통’이란 회사와 합쳐지자 직원들이 동요될 때 구심점 역할을 한 인물이다.

임원 전체 연봉의 절반인 100억원 받아온 사실 확인
지인들 납품업체 ‘바지사장’ 앉혀 돈을 빼돌린 혐의

이후 선 회장은 국내·외 가전제품들을 한자리에서 비교해 살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한 ‘양판점’ 개념을 도입, 대형 가전업체 대리점 주도의 유통시장을 바꿔나갔다. 이후 매출 3조원대의 전자전문점 1위 기업으로 하이마트를 키워냈다. 현재 하이마트는 국내 가전 유통시장의 4분의 1을 점유하고 있는 업계 1위 기업으로 전국 300여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2010년 6월에는 코스피에 상장했다.

하이마트의 급성장을 주도한 덕분에 선 회장은 스타 경영자로 각광받았다. 한국유통대상, 산업포장, 대한민국광고대상을 받았고 자신은 오너 경영자가 아니었지만 하이마트의 실권자로 명성을 이어왔다.

그만큼 선 회장에 대한 직원들의 지지는 절대적이었다. 지난해 유진기업과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도 직원들은 선 회장 편에 섰다. 임직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고, 350여명의 임원 및 전국 지점장이 철회를 요구하며 사표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선 회장의 비리 행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임직원들의 신뢰는 크게 무너졌다. 선 회장의 명성에도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됐음은 물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게 될 경우 사실상 재기가 불가능 하리란 게 재계의 관측이다.

하이마트 상장폐지
가능성도 점쳐져

한편, 검찰이 선 회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하이마트의 매각도 현재 중단된 상태다. 유진기업과 HI컨소시엄, 선종구 회장 등 매각 주체 3자는 하이마트 지분 매각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끝나기 전까진 매각 작업의 재개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하이마트에 러브콜을 보내오던 신세계, 홈플러스 등 인수 후보들 역시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 인수에 나설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장 선 회장의 횡령 혐의가 확정되고 횡령액이 1000억원을 넘어서면 하이마트의 상장폐지도 가능해진다. 한국거래소의 상장 규정에 따르면 자산 2조원 이상의 법인은 자기자본의 2.5% 이상 금액에 대해 횡령·배임 공시나 검찰 기소가 있으면 상장폐지실질심사 대상이 된다. 하이마트가 상장폐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횡령액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기업가치 추정도 힘들어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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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