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구 하이마트 회장, 날개 없는 추락 사연

벗겨낼 때마다 새로운 비리 ‘양파회장님’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회사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서 임직원 여러분께 대단히 죄송합니다! 성실히 조사에 응해 오해를 풀도록 하겠습니다.” 공금 횡령 및 탈세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은 임직원들에 이런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마지막으로 잠적했다. 현재 선 회장에 걸려있는 혐의 내용은 1000억원대의 재산 해외도피와 탈세, 회사의 M&A(인수합병) 과정에서 배임, 그리고 수억원의 골프장 회원권 구입을 납품업체에 강매한 의혹 등. 이번 일로 하이마트 역사의 ‘산증인’이자 국내 전자제품 유통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선 회장은 경영자로서 일생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상황은 심각하다. 한 꺼풀 벗겨낼 때마다 새로운 비리가 드러나는 모습이 마치 양파와 같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다’는 말이 딱 선 회장을 두고 한 말인 듯싶다.

인수자 선정 편의 대가로 600억원 유진과 이면계약
임직원 몫으로 지급된 ‘위로금’ 200억원 챙긴 혐의

검찰에서 ‘저승사자’로 통하는 중앙수사부가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을 향해 칼을 빼든 건 지난달 25일. 1000억원대의 자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를 잡고서다. 중수부는 하이마트 본사와 관계사, 선 회장의 도곡동 타워팰리스 자택 등을 차례로 압수수색했다. 먼지 하나까지 샅샅이 털어내겠다는 각오다.

검찰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빼돌린 1000억원대의 회삿돈과 개인재산 중 일부를 아들 현석씨와 딸 수현씨에게 증여한 혐의를 포착했다. 특히 검찰은 빼돌린 자금을 조세피난처를 거쳐 세탁한 것으로 보고 계좌추적을 벌였다. 또 1500억원대 골프장 리조트 건설사업을 추진하면서 협력사에 장당 2억원의 회원권을 강매했다는 의혹도 집중 추궁하고 있다.

1000억대 자산 해외
빼돌려 세탁한 혐의

수사가 진행될수록 선 회장이 회사 안팎을 가리지 않고 저인망식으로 부당한 돈을 긁어모은 정황이 드러났다. 한 꺼풀씩 벗겨낼 때마다 새로운 비리가 나오는 모습이 마치 양파와 같다.

먼저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AEP)의 지분 매각 입찰 당시 유진그룹이 인수자로 선정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가로 선 회장이 600억원 가량을 받기로 유진 측과 이면계약을 맺은 사실이 확인됐다. 이를 통해 유진그룹은 1500억원 높은 입찰가를 써낸 GS홀딩스를 제치고 인수자로 선정됐다. 검찰은 이 같은 선 회장의 행위가 하이마트에 손실을 끼친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또 M&A 성사 이후 임직원들 몫으로 지급된 ‘위로금’ 500억원 가운데 100억~200억원이 선 회장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간 정황도 포착됐다. 직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으로 배를 불린 셈이다. 이런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선 회장은 M&A 직후에만 800억원을 챙긴 게 된다.

또 지인들을 협력사인 납품업체 ‘바지사장’으로 앉히는 방식으로 돈을 빼돌린 혐의도 드러났다. 현재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하이마트 협력업체는 모두 12~13곳. 선 회장은 이들 회사에서 각종 리베이트와 횡령 등을 통해 뒷돈을 챙겨 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선 회장이 이들을 사장으로 앉혀 놓고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아 왔던 것으로 보고 있다. 납품업체 가운데 일부는 선 회장의 자녀들에게 수년간 법인카드나 회사 차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 회장이 하이마트에서 매년 100억원대 연봉을 받아온 사실도 확인됐다. 하이마트는 선 회장을 포함해 31명의 임원이 있는데 임원 연봉의 총 한도가 210억원으로 정해져 있다. 임원 전체 연봉의 절반을 선 회장이 받아가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연봉을 결정한 이사회 과정이 적법하게 이뤄졌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검찰 측 관계자는 “선 회장이 이면계약으로 막대한 돈을 받기로 한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라며 “임직원에게 돌아갈 위로금도 일부 착복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선 회장이 지나치게 높은 연봉을 받아온 데 대해서도 불법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횡령한 돈으로
고급빌라 매입?

최근 선 회장이 현석씨 이름으로 미국 베버리힐스의 고급 빌라를 매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검찰은 선 회장이 횡령한 자금으로 이 빌라 구입자금을 충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집을 산 시점은 2008년 초이며, 구입가격은 200만달러 가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베버리힐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할리우드와 가까워 미국 유명 연예인들의 저택이 즐비한 고급 주택지이다.


2008년 초는 ‘리먼쇼크’ 직전으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조짐으로 환율이 급등하던 때였다. 검찰은 선 회장 일가가 이 집 외에도 하이마트에서 횡령한 회삿돈을 해외로 빼돌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또 선 회장 일가가 벌여온 골프장 사업에도 회삿돈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선 회장 일가는 2009년부터 사업비 1500억원 규모로 강원 춘천시 일대 51만여평의 대지에 27홀 규모의 골프장 엔바인리조트 개발 사업을 벌여왔다. 이 골프장 사업 투자금 대부분은 선 회장과 그의 자녀 주머니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IMF 위기로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될 당시 대우전자 판매총괄본부장이었던 선 회장은 대우전자의 국내 영업부문이 대우전자에서 분사, 대우전자 제품을 국내에 총판하는 하이마트 전신인 ‘한국신용유통’이란 회사와 합쳐지자 직원들이 동요될 때 구심점 역할을 한 인물이다.

임원 전체 연봉의 절반인 100억원 받아온 사실 확인
지인들 납품업체 ‘바지사장’ 앉혀 돈을 빼돌린 혐의

이후 선 회장은 국내·외 가전제품들을 한자리에서 비교해 살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한 ‘양판점’ 개념을 도입, 대형 가전업체 대리점 주도의 유통시장을 바꿔나갔다. 이후 매출 3조원대의 전자전문점 1위 기업으로 하이마트를 키워냈다. 현재 하이마트는 국내 가전 유통시장의 4분의 1을 점유하고 있는 업계 1위 기업으로 전국 300여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2010년 6월에는 코스피에 상장했다.

하이마트의 급성장을 주도한 덕분에 선 회장은 스타 경영자로 각광받았다. 한국유통대상, 산업포장, 대한민국광고대상을 받았고 자신은 오너 경영자가 아니었지만 하이마트의 실권자로 명성을 이어왔다.

그만큼 선 회장에 대한 직원들의 지지는 절대적이었다. 지난해 유진기업과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도 직원들은 선 회장 편에 섰다. 임직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고, 350여명의 임원 및 전국 지점장이 철회를 요구하며 사표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선 회장의 비리 행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임직원들의 신뢰는 크게 무너졌다. 선 회장의 명성에도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됐음은 물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게 될 경우 사실상 재기가 불가능 하리란 게 재계의 관측이다.

하이마트 상장폐지
가능성도 점쳐져

한편, 검찰이 선 회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하이마트의 매각도 현재 중단된 상태다. 유진기업과 HI컨소시엄, 선종구 회장 등 매각 주체 3자는 하이마트 지분 매각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끝나기 전까진 매각 작업의 재개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하이마트에 러브콜을 보내오던 신세계, 홈플러스 등 인수 후보들 역시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 인수에 나설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장 선 회장의 횡령 혐의가 확정되고 횡령액이 1000억원을 넘어서면 하이마트의 상장폐지도 가능해진다. 한국거래소의 상장 규정에 따르면 자산 2조원 이상의 법인은 자기자본의 2.5% 이상 금액에 대해 횡령·배임 공시나 검찰 기소가 있으면 상장폐지실질심사 대상이 된다. 하이마트가 상장폐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횡령액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기업가치 추정도 힘들어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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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