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추천> 3월의 맛있는 여행-경남 사천

‘봄 도다리’ 드시러 삼천포로 빠지시이~소

봄이 오면 경남 사천 삼천포항에 도다리가 제철이다. 뼈째 썰어내는 세꼬시로 먹는데 살이 꽉 차서 찰지고 쫄깃하며 하얀 살과 함께 씹히는 뼈는 씹을수록 고소하다. 사천에는 봄 도다리만큼이나 매력적인 여행지도 많다. 해안데크 따라 바닷가를 산책할 수 있는 노산공원과 공원 안에 마련된 박재삼문학관,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연상케 하는 삼천포와 창선도를 잇는 삼천포대교, 황홀한 낙조를 감상하며 드라이브 즐길 수 있는 실안해안도로, 이순신 장군이 처음으로 거북선을 선보여 승전을 거둔 사천해전의 현장 등이 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사천 삼천포항 어부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제주도 근해에서 겨울 산란기를 지낸 도다리가 매년 3월쯤 삼천포 앞바다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봄 도다리, 여름 민어, 가을 전어, 겨울 광어’라는 말이 있듯, 봄에는 도다리가 제일 맛이 좋다. 이즈음 멀리 반도의 끝자락 사천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도 봄에 제철인 도다리가 있어서다.

새벽 3시 삼천포어시장
싱싱한 도다리 퍼덕퍼덕

사천의 항구 중에서 도다리를 만나기 쉬운 곳이 삼천포항이다. 경남 서부 연안어업의 중심지이자 우리나라 3대 어항의 하나다. 구항과 신항으로 이뤄져 있는데, 구항으로 행선지를 잡아야 도다리는 물론 항구 주변에 펼쳐진 어시장도 구경할 수 있다. 삼천포항에서 항구의 활력과 갓 잡아 올린 도다리의 싱싱함을 보려면 이른 새벽에 가야 한다. 밤새 바다에 나가 거친 파도와 싸우며 그물 가득 도다리를 걷어 올린 어선이 하나 둘 돌아오는 시간이 새벽 3시부터다. 이때부터 삼천포항은 활기가 넘친다. 어선은 항구에 정박하기가 무섭게 도다리를 쏟아내고, 바로 경매가 시작된다. 새벽 5시면 경매가 끝나고 삼천포어시장에 도다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리 바다가 좋더라도 입이 즐거워야 여행길이 더욱 풍성하고 행복한 법. 삼천포에 와서 도다리를 놓칠 수는 없다. 삼천포어시장에는 상점, 좌판 할 것 없이 도다리가 주인공이다. 노점과 좌판, 포장마차가 늘어선 바닷가쪽 도로변에서 싱싱한 도다리를 골라 회를 뜬다. 도다리는 뼈째 썰어내는 세꼬시로 먹기도 한다.

제철의 가격은 1kg에 3만5000~4만원선. 구입할 때는 어른 손바닥 만한 크기(15~20cm 내외)가 좋다. 큰 것은 보기에는 좋아도 뼈가 단단해서 세꼬시용으로 적합하지 않고, 너무 작으면 살이 별로 없다. 산란기를 끝낸 도다리는 살이 꽉 차서 찰지고 쫄깃하다. 하얀 살과 함께 씹히는 뼈는 씹을수록 고소하다. 도다리는 광어와 비슷해서 자칫 혼동하기 쉽다. 구별법은 ‘좌광우도’라는 말처럼 도다리는 눈이 오른쪽에 몰려 있다. 또 광어가 입이 크고 이빨이 있는 데 반해, 도다리는 입이 작고 이빨이 없다.

봄의 향기를 오감으로 만끽하고 싶다면 도다리 쑥국이 제격이다. 도다리 쑥국은 전라도의 홍어 애탕에 비견되는 경상남도의 대표적 봄철 음식이다. 구수한 된장을 푼 뒤 파릇파릇한 해쑥과 도다리를 넣고 끓여내면 잃었던 입맛을 되찾는 것은 시간문제다. 된장국의 진한 맛과 쑥향의 절묘한 배합, 쑥과 도다리를 함께 먹을 때 입안에 감도는 쑥향과 도다리 속살의 부드러움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맛으로 남는다.


노산공원 따라가면
시원스런 한려수도

삼천포어시장은 먹는 재미만큼이나 보는 즐거움도 크다. 삼천포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활어전문 상설전통시장이다. 40년 전만해도 인근 어촌과 도서지방에서 밤새 잡은 생선을 사고팔던 포구 물양장이었다. 싱싱한 생선이 들어오니 진주, 남해 등지에서 상인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됐고, 1978년 정식으로 시장이 개장했다. 항구를 중심으로 활어와 회를 판매하고, 농산물, 건어물, 조개류 등을 판매하는 상점과 노점이 즐비하다. 여느 전통시장과 다르지 않지만 풍성한 어류가 매대를 가득 메우고 있어 바닷가에 여행 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도다리의 봄 향기가 채 가시기 전에 발걸음을 옮겨 삼천포 구항과 신항 사이에 위치한 노산공원으로 향한다. 바다를 향해 돌출한 언덕에 위치한 노산공원은 시원스레 펼쳐진 한려수도의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포인트다. 동백꽃 떨어진 산책로를 걸어 바닷가로 가면 해변을 따라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데크는 신항의 등대로 이어진다. 바닷가를 걷고, 등대와 바다를 배경으로 멋진 추억 한 컷을 남길 수 있다. 노산공원에는 비릿한 바다내음만 풍기는 건 아니다.

공원 안에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는 시를 썼던 삼천포 출신의 고 박재삼 시인의 문학관이 조성되어 있다. 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며 우리 민족이 경험해야 했던 경제적 빈곤을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이해하기 쉽고, 가슴 깊이 새길 수 있는 시를 지은 시인의 시집과 수필집을 문학관에서 만날 수 있다.

노산공원에서 내려오면 삼천포에서 공항이 있는 사천읍까지 실안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한다. 실안해안도로로 가는 길 중간에 대방진굴항을 지난다. 삼천포항 옆에 있어 그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 작은 항구다. 몇 척의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대방진굴항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것은 방파제 끝에 서 있는 하얀 등대 때문이다.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 하얀 등대는 보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이고, 누구라도 멋진 여행사진을 남길 수 있는 장소다.

대방진굴항은 역사적으로도 유서가 깊다. ‘진’이란 군사시설을 일컫는 것으로, 대방진은 고려시대 말에 남해안에서 극성을 부리던 왜구를 막기 위해 설치한 군항시설의 하나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순신 장군이 수군기지로 이용했다고 한다. 현재의 굴항은 조선 순조 때 진주병마 절도사가 진주목 관하 70여 개 면의 백성을 동원해 돌로 둑을 쌓아 1820년경에 완공한 것이다. 남해 창선도, 적량첨사와 군사적 연락을 취하던 기지로 당시에는 300여 명의 수군과 전함 2척이 주둔하고 있었다 한다.

봄이면 만개하는
선진리성 벚꽃도 장관

대방진굴항에서 실안해안도로는 지척이다. 해안도로가 시작되는 삼천포대교 아래 대교공원은 ‘일몰이 아름다운 거리’라는 이정표가 있으니 찾기 쉽다. 공원 주차장에는 커다란 거북선이 놓여 있다. ‘해안도로와 거북선이 무슨 상관?’이냐고 의아하겠지만,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최초로 거북선을 출전시킨 곳이 사천해전이다. 사천해전의 승전을 주제로 60km의 바닷길을 조성한 것이 실안해안도로다.


실안해안도로는 바다와 어우러지는 길의 운치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볼거리가 많은 길이기도 하다. 제일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은 삼천포대교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연상케 하는 웅장한 자태가 매력적인 다리는 8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지난 2003년 4월에 제 모습을 드러냈다. 낮에는 범선의 돛대처럼 바다 위를 가로지른 풍경이 멋있고, 밤에는 오색의 조명이 반짝이며 아름다움을 뽐낸다.

삼천포대교를 뒤로 하고 길을 따라 달리면 이내 바다 한 가운데 나무 말뚝을 박아둔 게 보인다. 죽방렴이다. 죽방렴은 조류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원시어장이다. 말뚝을 조류가 흐르는 방향에 맞춰 V자로 벌려두고 끝에 원통형 대발을 설치한다.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힘을 잃은 물고기가 대발에 모이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 바다 물살이 가장 센 곳은 해남과 진도 사이의 울돌목이고, 그 다음으로 물살이 센 곳이 삼천포 대교가 있는 사천 앞바다이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죽방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죽방렴이 가장 빛을 발할 때는 해질 무렵이다. 세상을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해와 바다, 그리고 죽방렴이 어우러져 멋진 낙조를 만들어낸다. 실안낙조는 사천8경의 하나로 빼놓아서는 안 되는 풍경이다.

해안도로가 숨겨 놓은 마지막 볼거리는 선진리성이다. 선진리성은 바다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 때문에 고려시대부터 조창이 설치되어 주변에 쌓은 토성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사천 지역을 장악한 왜군이 조창 터에 돌로 성을 쌓으면서 왜성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선진리성의 역사적 가치는 이순신 장군으로 인해 더욱 빛난다. 이순신 장군은 선진 앞바다에서 거북선을 등장시키며 왜선 13척을 침몰시키는 승리를 거뒀다. 역사는 이를 ‘사천해전’이라 적고 있다. 선진리성은 공원으로 정비되어 돌로 쌓은 성의 형태가 잘 남아 있고, 안에 이충무공 사천해전승첩비가 세워져 있다. 무엇보다 여행자들에게 인상적인 것은 성내 1000여 그루의 벚꽃이 만개하면 은백색의 물결 사이로 사천바다가 출렁이며 장관을 이룬다는 점이다.


자료출처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당일코스
노산공원(박재삼문학관) → 삼천포항 → 대방진굴항 → 창선·삼천포대교 → 실안해안도로

♣1박2일코스
①첫째 날 :  남일대 코끼리바위 → 진널전망대 → 노산공원(박재삼문학관) → 삼천포항 → 대방진굴항 → 창선·삼천포대교 → 실안해안도로 낙조
②둘째 날 : 실안해안도로 → 사천대교 → 선진리성 → 항공우주박물관 → 다솔사 → 비토섬

♣대중교통 : 서울남부버스터미널-삼천포시외버스터미널(4시간 10분 소요)

♣자가운전 : 대전통영간고속도로 진주JC → 남해고속도로 사천IC → 3번 국도 → 사천시청 → 삼천포항

♣음식점
·삼천포한정식 : 회정식, 사천시 선구동, 055)832-7345  ·자연산횟집 : 도다리쑥국, 사천시 서동, 055)832-2228  ·해안횟집 : 도다리쑥국, 사천시 서동, 055)832-2700  ·재건냉면 : 냉면, 사천읍 수석리, 055)852-2132  ·시골여행 : 칼국수, 사천시 대방동, 055)835-5554  ·삼천포돌게장 : 돌게장백반, 사천시 벌리동, 055)835-9052  ·오복식당 : 해물정식, 사천시 동동, 055)833-5023

♣주변 볼거리 :다솔사, 남일대, 세종·단종태실지, 대곡숲, 비토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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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