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生현장 르포>Senior 그들만의 아지트를 가다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2.22 11: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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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노년 신(新)문화 "늙었다고 다 서글프다는 편견은 버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돈도 있고 시간도 있지만 갈 곳은 없다. 풀릴 듯 말 듯한 날씨 덕에 공원 나들이도 쉽지 않다. "요즘 뭐하세요?"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다. "늙어서 주책이다"는 말도 듣기 싫다. 누구일까? 적극적인 소비와 문화 활동을 한다는 데서 기존의 '실버' 세대와는 구별되는 '시니어' 세대들이다. 이들은 경로당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탑골공원을 떠도는 백발의 노인들과는 다르다. 본격적인 은퇴시기와 맞물려 여유를 갖게 되면서 그들이 젊은 시절 누렸던 감성과 과거의 문화적 향수를 찾아 나서면서 서울시 종로구에 '시니어 특수'가 형성되고 있다. 노인전용영화관과 식당이 생겼고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됐던 카페에도 노인들만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 <일요시사>가 서울 종로구 낙원동을 찾았다.

영화도 보고 국화빵도 먹고…단돈 2000원에?
노년들만을 위한 식당, 라이브공연과 DJ까지

"이번 역은 종로3가역, 종로3가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지난 13일 오후 12시께 두 번의 환승을 거쳐 기자가 도착한 곳은 1호선 종로3가역. 개찰구를 빠져나와 1번 출구로 나가는 기자 앞을 멋들어진 중절모와 반짝이는 머리핀으로 한껏 멋을 낸 중년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지나갔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다.

종로구에 날아든
'시니어 특수'

스마트폰을 꺼내 탑골공원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잠깐 고개를 숙인 사이에 중년부부는 H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발걸음을 재촉해 기자도 커피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중절모를 쓴 노신사가 메뉴판을 보다가 이내 능숙하게 커피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레귤러 사이즈 두 잔하고 ○○머핀 한 개 줘요"


주문을 마친 노신사는 진동벨과 영수증을 들고 창가 쪽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의 부인에게 다갔다. 기자도 얼떨결에 커피 한잔을 주문해 그들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 뒤 할아버지가 쟁반에 담긴 커피와 빵을 받아와 할머니 앞에 놓아줬다. 커피를 마시며 나긋나긋하게 담소를 나누는 그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30여 분 뒤 쟁반을 말끔하게 정리한 노부부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손을 꼭 잡고 커피숍을 떠났다. 기자도 밖으로 나와 낙원상가로 향했다.

낙원상가를 가기위해 탑골공원 오른편 종로17길로 들어섰다. 이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담배꽁초와 종이컵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3000원짜리 이발소와 2000원짜리 밥집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방금 만난 노부부와는 다른 분위기의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100원짜리 커피를 마시거나 대낮부터 벌건 얼굴로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데 여념이 없었다. 사람은 많았지만 활기는 느낄 수 없었다.

200여m를 지났을까? 국내 최대의 악기매장인 낙원상가가 보였다. 장기판을 펼쳐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노인들을 지나 2층으로 통하는 외부계단을 올랐다. 세상의 모든 악기들을 다 모아 놓은 것 같은 악기 매장 사이를 한참 해맨 끝에 4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문이 닫히고 다시 열리는 순간 달콤한 국화빵 냄새와 함께 밝은 표정의 노인들이 기자를 반겼다. 국내 1호 노인전용영화관 '허리우드클래식'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족히 200여 명은 넘어 뵈는 노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기자에게 꽂힌다. 주위를 둘러보니 젊은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김은주 허리우드클래식 대표를 만나 취재요청을 하고 본격적으로 극장 탐방에 나섰다.

가장 먼저 기자의 발길이 닿은 곳은 매표소. 멀티플랙스급 영화관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상영됐던 영화의 포스터나 눈이 흐릿한 노인들을 배려해 큰 글씨체로 적혀있는 안내문들이 어딘지 모르게 정겹다.

영화 관람료를 확인해봤다. 55세 이상은 2000원, 대학생을 포함한 일반인은 7000원, 학생은 5000원. 1000원 짜리 지폐 2장을 내고 영화표를 받아들고 가려는 노인 한명을 매표소 직원이 붙잡는다.

"할아버지~ 쿠폰 받아가셔야죠~ 국화빵 안 드실 거예요?"


영화관 입구로 이동하던 노인이 급하게 매표소로 다시 돌아와 손바닥보다 작은 종이 한 장을 받아갔다. 노인을 따라 영화관 한쪽의 휴게실로 들어섰다. LP판이 가득한 DJ박스에서는 추억의 팝송과 가요가 흘러나왔고 60대로 보이는 노인 두 분이 연신 국화빵을 구워내고 있었다. 옆에서는 자원봉사 명찰을 단 할머니 한 분이 손님들의 쿠폰을 받고 고깔모양의 종이에 국화빵을 두 개씩 담아 건네고 있었다.

달달한 국화빵 향기
극장 안에 가득

어느덧 오후 1시가 훌쩍 넘은 시간, 출출해진 기자가 '1000원어치만 싸 달라'고 하자 국화빵 뒤집기에 여념이 없던 할아버지 한 분이 안 판단다. 이유를 물었다.

"여기 국화빵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거든 젊은 양반 말고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들 팔라고 해. 그런데 그러면 여기가 너무 복잡해지더라고. 돈 때문에 이런 것 하는 게 아니야. 여기 취재 왔다니까 내가 특별히 공짜로 줄게."

갓 구워낸 따끈한 국화빵 두 개를 받았다. 쿠폰 개수를 파악하던 자원봉사 할머니는 "오늘만 벌써 500명이 넘게 왔어"라며 커피 한 잔도 건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손에 들고 있는 국화빵 두 개가 사라졌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지금 막 신청곡 쪽지를 받아 LP판을 바꿔 트는 DJ 장민욱씨와 얘기를 나눴다. 장씨는 지난해 6월부터 이곳에서 노인들을 위한 DJ로 활동하고 있다. 장씨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른 카페나 다방, 방송국에서 DJ를 할 때보다 행복해요. 아직 조금이라도 어린 내가 이 자리에서 인생의 선배들에게 아날로그의 추억을 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트는 노래로 인해 노인들이 인생의 황금기를 되돌아 볼 수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이 일을 할 생각이에요."

옆에 앉아 장씨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할머니도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1월에도 왔고 12월에도 왔어. 저번 달에는 여기서 여고동창 모임도 했지. 인터넷에서도 들을 수 없는 노래 들으려고 여기 오는 사람들 많아. 영화를 안 봐도 여긴 올 수 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영화관, 365일 전석 매진
아직 갈 길이 멀다… 노인 '맞춤형' 문화 절실

노인들과 정겨운 수다를 나누던 도중 상영관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영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니 한바탕 축제분위기다. 기자를 발견한 김 대표가 다가와 "왜 이렇게 늦었냐"고 타박이다. 매주 월요일 오후 2시30분에 노인들을 위한 자선공연이 펼쳐진 다는 것. 기자가 도착했을 때는 전통가락에 맞춘 풍물패 공연이 한창이었다. 브라운관 앞 무대에서 북과 꽹과리, 징 등을 치며 공연을 하는 사람들, 공연을 보며 박수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모두 50대를 넘긴 노인들이었다. 풍물패가 연주하는 가락의 박자가 바뀔 때마다 흘러나오는 환호는 <전국노래자랑>을 방불케 했다. 비록 노인들과의 시간가는 줄 모르는 대화 덕에 앞부분 '복고 통기타' 공연은 놓쳤지만 그 당시 분위기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20여 분간의 공연이 끝나고 브라운관에 김은주 대표가 나타나 화재 시 대피로를 설명했다. 영화 시작 전 화면에는 요실금, 임플란트, 관절파스 등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 광고가 비춰졌고 이내 이번 주 상영작인 <율리시스>(1954년작)가 시작됐다. 상영관은 장애인석 5석을 제외한 295석 모두 만석이었다.

허리우드클래식에서 현재까지 상영된 작품은 140편이 넘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년) <해저2만리>(1954년) <하녀>(1960년) <미워도 다시 한 번>(1968년) <별들의 고향>(1974년) <지옥의 묵시록>(1979년) <영웅본색>(1986)년 등의 고전영화는 물론 <러브 액츄얼리>(2003년) <맘마미아>(2008년) <시>(2010년) 등 비교적 최신영화도 상영했다.

매달 적자지만
봉사하는 마음으로


상영관을 빠져나와 김 대표를 만나 영화관의 모든 것을 들어봤다. 취재를 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의문점은 '영업을 어떻게 할까?'였다. 김 대표는 개인 돈으로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김 대표에 따르면 그녀는 시사회 전용관을 운영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지난 2009년 1월 낙원상가 4층에 허리우드클래식을 개관했다. 반응은 한마디로 폭발적이었다. 지난해에만 관객 15만6000여 명이 이 극장을 찾았고 전국 곳곳에서 영화관을 찾았던 노인들이 영화관으로 감사의 선물을 보내온다. 김 대표는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적자가 나도 사업을 접을 수 없다고 했다.

"집도 팔고 차도 팔았어요. 가끔 들어오는 광고수익과 기부금으로는 연간 5억 가까이 되는 운영자금을 충당하기 힘들어요. 그런데 어르신들 스스로가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시며 전단지를 돌려주시기도 하고 떡이나 제사음식, 과일 같은 선물도 자주 보내주시니까 '보람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젊은 시절 (시사회 전용관을 운영하며) 돈 많이 벌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요."

뉘엿뉘엿 서산에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오후 5시30분께 영화를 보고 나오는 노인들 틈에 껴 낙원상가를 빠져나왔다. 가만히 노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대부분 식사를 하러 가는 듯 했다. 노인전용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노인들은 어디서 식사를 할지 궁금해졌다. 뒤를 따라 걸었다. 노인들은 기자가 낙원상가를 가기위해 지나왔던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탑골공원 돌담을 따라 2000~3000원짜리 메뉴로 가득한 허름한 식당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노인들이 그 중 한곳으로 들어가리라 생각했던 기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골목을 빠져나간 그들은 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건물을 올려다보니 '파고다타운'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식당 내부는 라이브공연이 한창이었으며 골목에서 봤던 식당과는 다르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아버지 대신에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박상준 사장의 안내에 따라 가게 전경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박 사장의 말에 따르면 이 식당은 노인전용식당이다. 지난해 3월 오픈한 이 식당은 초기부터 노인들을 대상으로 삼아 영업을 해왔다. 종업원들도 50대 이상이며 정기적으로 무료급식도 진행한다. 식당 내부는 노인들을 배려해 모두 금연구역이고 영업시간도 노인들의 생활패턴에 맞췄다. 종업원 모두 이윤을 추구하기보다는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가게를 빠져나와 60세 이상의 어르신 바리스타가 직접 커피를 타고 서빙도 한다는 실버카페로 향했다. 안국역 5번 출구를 나와 50여m를 걸었을까? '삼가연정'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실버 북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과 포근한 느낌이 드는 인테리어는 여느 북카페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근무하는 직원들이 조금 달랐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 노인들이 카운터를 지키고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커피류는 2000~3000원으로 서울 시내의 커피전문점에 비해 저렴하고 직접 만든 케이크, 양갱, 쿠키는 1000원에 제공됐다. 

운현궁이 잘 보이는 창가 쪽 자리에는 노인들이 자리했고 군데군데 직장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한 노신사는 "자주 이곳을 찾냐"는 기자의 질문에 칭찬일색이었다.


"카페는 젊은층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 쉽게 찾아지지 않았는데 이곳은 마음 편히 책도 볼 수 있고 저렴한 가격에 차도 마실 수 있어 자주 찾아요."

노인전용공간
아직 부족하다

이밖에도 시니어 문화 발전을 향한 다양한 모색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지난 7일 포항시시설관리공단 문화사업팀이 주최한 실버영화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유료상영에도 인기를 끌었던 실버영화제는 <겨울나그네> 상영을 시작으로 오는 12월까지 매월 두 번째 주 목요일 오후 2시 무료입장으로 진행된다.

그런가 하면 각 지역마다 60세 이상 노인들이 참여하는 악단 창설도 붐이다. 각자 방법은 다르지만 이 모두가 시니어세대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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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