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生현장 르포>Senior 그들만의 아지트를 가다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2.22 11: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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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노년 신(新)문화 "늙었다고 다 서글프다는 편견은 버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돈도 있고 시간도 있지만 갈 곳은 없다. 풀릴 듯 말 듯한 날씨 덕에 공원 나들이도 쉽지 않다. "요즘 뭐하세요?"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다. "늙어서 주책이다"는 말도 듣기 싫다. 누구일까? 적극적인 소비와 문화 활동을 한다는 데서 기존의 '실버' 세대와는 구별되는 '시니어' 세대들이다. 이들은 경로당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탑골공원을 떠도는 백발의 노인들과는 다르다. 본격적인 은퇴시기와 맞물려 여유를 갖게 되면서 그들이 젊은 시절 누렸던 감성과 과거의 문화적 향수를 찾아 나서면서 서울시 종로구에 '시니어 특수'가 형성되고 있다. 노인전용영화관과 식당이 생겼고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됐던 카페에도 노인들만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 <일요시사>가 서울 종로구 낙원동을 찾았다.

영화도 보고 국화빵도 먹고…단돈 2000원에?
노년들만을 위한 식당, 라이브공연과 DJ까지

"이번 역은 종로3가역, 종로3가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지난 13일 오후 12시께 두 번의 환승을 거쳐 기자가 도착한 곳은 1호선 종로3가역. 개찰구를 빠져나와 1번 출구로 나가는 기자 앞을 멋들어진 중절모와 반짝이는 머리핀으로 한껏 멋을 낸 중년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지나갔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다.

종로구에 날아든
'시니어 특수'

스마트폰을 꺼내 탑골공원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잠깐 고개를 숙인 사이에 중년부부는 H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발걸음을 재촉해 기자도 커피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중절모를 쓴 노신사가 메뉴판을 보다가 이내 능숙하게 커피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레귤러 사이즈 두 잔하고 ○○머핀 한 개 줘요"

주문을 마친 노신사는 진동벨과 영수증을 들고 창가 쪽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의 부인에게 다갔다. 기자도 얼떨결에 커피 한잔을 주문해 그들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 뒤 할아버지가 쟁반에 담긴 커피와 빵을 받아와 할머니 앞에 놓아줬다. 커피를 마시며 나긋나긋하게 담소를 나누는 그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30여 분 뒤 쟁반을 말끔하게 정리한 노부부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손을 꼭 잡고 커피숍을 떠났다. 기자도 밖으로 나와 낙원상가로 향했다.

낙원상가를 가기위해 탑골공원 오른편 종로17길로 들어섰다. 이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담배꽁초와 종이컵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3000원짜리 이발소와 2000원짜리 밥집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방금 만난 노부부와는 다른 분위기의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100원짜리 커피를 마시거나 대낮부터 벌건 얼굴로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데 여념이 없었다. 사람은 많았지만 활기는 느낄 수 없었다.

200여m를 지났을까? 국내 최대의 악기매장인 낙원상가가 보였다. 장기판을 펼쳐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노인들을 지나 2층으로 통하는 외부계단을 올랐다. 세상의 모든 악기들을 다 모아 놓은 것 같은 악기 매장 사이를 한참 해맨 끝에 4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문이 닫히고 다시 열리는 순간 달콤한 국화빵 냄새와 함께 밝은 표정의 노인들이 기자를 반겼다. 국내 1호 노인전용영화관 '허리우드클래식'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족히 200여 명은 넘어 뵈는 노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기자에게 꽂힌다. 주위를 둘러보니 젊은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김은주 허리우드클래식 대표를 만나 취재요청을 하고 본격적으로 극장 탐방에 나섰다.

가장 먼저 기자의 발길이 닿은 곳은 매표소. 멀티플랙스급 영화관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상영됐던 영화의 포스터나 눈이 흐릿한 노인들을 배려해 큰 글씨체로 적혀있는 안내문들이 어딘지 모르게 정겹다.

영화 관람료를 확인해봤다. 55세 이상은 2000원, 대학생을 포함한 일반인은 7000원, 학생은 5000원. 1000원 짜리 지폐 2장을 내고 영화표를 받아들고 가려는 노인 한명을 매표소 직원이 붙잡는다.

"할아버지~ 쿠폰 받아가셔야죠~ 국화빵 안 드실 거예요?"

영화관 입구로 이동하던 노인이 급하게 매표소로 다시 돌아와 손바닥보다 작은 종이 한 장을 받아갔다. 노인을 따라 영화관 한쪽의 휴게실로 들어섰다. LP판이 가득한 DJ박스에서는 추억의 팝송과 가요가 흘러나왔고 60대로 보이는 노인 두 분이 연신 국화빵을 구워내고 있었다. 옆에서는 자원봉사 명찰을 단 할머니 한 분이 손님들의 쿠폰을 받고 고깔모양의 종이에 국화빵을 두 개씩 담아 건네고 있었다.

달달한 국화빵 향기
극장 안에 가득

어느덧 오후 1시가 훌쩍 넘은 시간, 출출해진 기자가 '1000원어치만 싸 달라'고 하자 국화빵 뒤집기에 여념이 없던 할아버지 한 분이 안 판단다. 이유를 물었다.

"여기 국화빵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거든 젊은 양반 말고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들 팔라고 해. 그런데 그러면 여기가 너무 복잡해지더라고. 돈 때문에 이런 것 하는 게 아니야. 여기 취재 왔다니까 내가 특별히 공짜로 줄게."

갓 구워낸 따끈한 국화빵 두 개를 받았다. 쿠폰 개수를 파악하던 자원봉사 할머니는 "오늘만 벌써 500명이 넘게 왔어"라며 커피 한 잔도 건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손에 들고 있는 국화빵 두 개가 사라졌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지금 막 신청곡 쪽지를 받아 LP판을 바꿔 트는 DJ 장민욱씨와 얘기를 나눴다. 장씨는 지난해 6월부터 이곳에서 노인들을 위한 DJ로 활동하고 있다. 장씨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른 카페나 다방, 방송국에서 DJ를 할 때보다 행복해요. 아직 조금이라도 어린 내가 이 자리에서 인생의 선배들에게 아날로그의 추억을 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트는 노래로 인해 노인들이 인생의 황금기를 되돌아 볼 수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이 일을 할 생각이에요."

옆에 앉아 장씨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할머니도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1월에도 왔고 12월에도 왔어. 저번 달에는 여기서 여고동창 모임도 했지. 인터넷에서도 들을 수 없는 노래 들으려고 여기 오는 사람들 많아. 영화를 안 봐도 여긴 올 수 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영화관, 365일 전석 매진
아직 갈 길이 멀다… 노인 '맞춤형' 문화 절실

노인들과 정겨운 수다를 나누던 도중 상영관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영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니 한바탕 축제분위기다. 기자를 발견한 김 대표가 다가와 "왜 이렇게 늦었냐"고 타박이다. 매주 월요일 오후 2시30분에 노인들을 위한 자선공연이 펼쳐진 다는 것. 기자가 도착했을 때는 전통가락에 맞춘 풍물패 공연이 한창이었다. 브라운관 앞 무대에서 북과 꽹과리, 징 등을 치며 공연을 하는 사람들, 공연을 보며 박수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모두 50대를 넘긴 노인들이었다. 풍물패가 연주하는 가락의 박자가 바뀔 때마다 흘러나오는 환호는 <전국노래자랑>을 방불케 했다. 비록 노인들과의 시간가는 줄 모르는 대화 덕에 앞부분 '복고 통기타' 공연은 놓쳤지만 그 당시 분위기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20여 분간의 공연이 끝나고 브라운관에 김은주 대표가 나타나 화재 시 대피로를 설명했다. 영화 시작 전 화면에는 요실금, 임플란트, 관절파스 등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 광고가 비춰졌고 이내 이번 주 상영작인 <율리시스>(1954년작)가 시작됐다. 상영관은 장애인석 5석을 제외한 295석 모두 만석이었다.

허리우드클래식에서 현재까지 상영된 작품은 140편이 넘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년) <해저2만리>(1954년) <하녀>(1960년) <미워도 다시 한 번>(1968년) <별들의 고향>(1974년) <지옥의 묵시록>(1979년) <영웅본색>(1986)년 등의 고전영화는 물론 <러브 액츄얼리>(2003년) <맘마미아>(2008년) <시>(2010년) 등 비교적 최신영화도 상영했다.

매달 적자지만
봉사하는 마음으로

상영관을 빠져나와 김 대표를 만나 영화관의 모든 것을 들어봤다. 취재를 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의문점은 '영업을 어떻게 할까?'였다. 김 대표는 개인 돈으로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김 대표에 따르면 그녀는 시사회 전용관을 운영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지난 2009년 1월 낙원상가 4층에 허리우드클래식을 개관했다. 반응은 한마디로 폭발적이었다. 지난해에만 관객 15만6000여 명이 이 극장을 찾았고 전국 곳곳에서 영화관을 찾았던 노인들이 영화관으로 감사의 선물을 보내온다. 김 대표는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적자가 나도 사업을 접을 수 없다고 했다.

"집도 팔고 차도 팔았어요. 가끔 들어오는 광고수익과 기부금으로는 연간 5억 가까이 되는 운영자금을 충당하기 힘들어요. 그런데 어르신들 스스로가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시며 전단지를 돌려주시기도 하고 떡이나 제사음식, 과일 같은 선물도 자주 보내주시니까 '보람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젊은 시절 (시사회 전용관을 운영하며) 돈 많이 벌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요."

뉘엿뉘엿 서산에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오후 5시30분께 영화를 보고 나오는 노인들 틈에 껴 낙원상가를 빠져나왔다. 가만히 노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대부분 식사를 하러 가는 듯 했다. 노인전용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노인들은 어디서 식사를 할지 궁금해졌다. 뒤를 따라 걸었다. 노인들은 기자가 낙원상가를 가기위해 지나왔던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탑골공원 돌담을 따라 2000~3000원짜리 메뉴로 가득한 허름한 식당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노인들이 그 중 한곳으로 들어가리라 생각했던 기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골목을 빠져나간 그들은 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건물을 올려다보니 '파고다타운'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식당 내부는 라이브공연이 한창이었으며 골목에서 봤던 식당과는 다르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아버지 대신에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박상준 사장의 안내에 따라 가게 전경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박 사장의 말에 따르면 이 식당은 노인전용식당이다. 지난해 3월 오픈한 이 식당은 초기부터 노인들을 대상으로 삼아 영업을 해왔다. 종업원들도 50대 이상이며 정기적으로 무료급식도 진행한다. 식당 내부는 노인들을 배려해 모두 금연구역이고 영업시간도 노인들의 생활패턴에 맞췄다. 종업원 모두 이윤을 추구하기보다는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가게를 빠져나와 60세 이상의 어르신 바리스타가 직접 커피를 타고 서빙도 한다는 실버카페로 향했다. 안국역 5번 출구를 나와 50여m를 걸었을까? '삼가연정'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실버 북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과 포근한 느낌이 드는 인테리어는 여느 북카페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근무하는 직원들이 조금 달랐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 노인들이 카운터를 지키고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커피류는 2000~3000원으로 서울 시내의 커피전문점에 비해 저렴하고 직접 만든 케이크, 양갱, 쿠키는 1000원에 제공됐다. 

운현궁이 잘 보이는 창가 쪽 자리에는 노인들이 자리했고 군데군데 직장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한 노신사는 "자주 이곳을 찾냐"는 기자의 질문에 칭찬일색이었다.

"카페는 젊은층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 쉽게 찾아지지 않았는데 이곳은 마음 편히 책도 볼 수 있고 저렴한 가격에 차도 마실 수 있어 자주 찾아요."

노인전용공간
아직 부족하다

이밖에도 시니어 문화 발전을 향한 다양한 모색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지난 7일 포항시시설관리공단 문화사업팀이 주최한 실버영화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유료상영에도 인기를 끌었던 실버영화제는 <겨울나그네> 상영을 시작으로 오는 12월까지 매월 두 번째 주 목요일 오후 2시 무료입장으로 진행된다.

그런가 하면 각 지역마다 60세 이상 노인들이 참여하는 악단 창설도 붐이다. 각자 방법은 다르지만 이 모두가 시니어세대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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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