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진희가 1년여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다. 박진희는 그동안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올곧은 이미지로 정의의 길을 가르쳤다. <돌아와요 순애씨>에서 순애의 영혼을 받은 초은은 아줌마다운 배짱과 가치관으로 ‘젊은 것’들을 계도했고 <쩐의 전쟁>의 서주희는 돈을 향한 욕망으로 얽힌 사람들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돈과 거리를 두려는 인물이었다. 남한사회에 떨어진 간첩한테 운명을 빌려주는 <간첩 리철진>의 화이는 어떤가. 심지어 <여고괴담>의 소영 또한 이기적인 전교 일등이면서도 사건을 침착하게 바라보는 여고생이었다. 하지만 오는 18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달콤한 거짓말>에서는 짝사랑하는 사람을 잡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지호 역을 맡아 탈선(?)에 나선다.
<달콤한 거짓말>은 방송 작가 지호가 우연히 10년간 짝사랑해 왔던 민우(이기우)의 차에 치이는 사고가 나자 민우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기억상실증에 걸린 척을 하면서 벌어지는 얘기다. 민우는 어쩔 수 없이 지호를 돌보게 되고 남자친구 동식(조한선)이 지호를 찾아오면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최근 충무로가 불황이라 배우의 한 사람으로서 울적했어요. 그러던 중 <달콤한 거짓말> 시나리오를 접하게 됐는데 읽고 나니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아닌 척하는 이중 연기도 인상적이었고요. 또 체질적으로 거짓말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마치고 나니 거짓말이 입에 잘 붙어요.”(웃음)
<달콤한 거짓말>에서 박진희는 단순한 코믹 표정뿐 아니라 상황을 능청스럽게 넘기는 연기를 보여준다.
사랑 위해 기억상실증 연기하는 지호 역…“거짓말이 입에 잘 붙어요”
훌륭한 배우로 가야 하나 인간 박진희로 자연스럽게 살아야 하나 고민
박진희는 2006년 SBS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에서 40대 주부 허순애(심혜진)와 몸이 뒤바뀐 20대 한초은 역으로 차세대 코믹 여왕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영화에서 코믹 캐릭터를 해왔다. 2000년 <하면된다>와 2005년 <연애술사> 등에서 코믹 캐릭터를 선보였으나 뚜렷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강력한(?) 몸 연기 대역 없이 소화
“로맨틱 코미디는 현실감이 떨어져도 관객의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장르인 것 같아요. 이번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장점을 잘 살렸고 배우들과의 호흡도 좋았기에 기대되는 작품이에요. 기억을 상실한 듯한 캐릭터는 보기 드물어서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지 몰랐어요. 내숭을 떠는 연기는 어느 선까지 보여줘야 보기 좋을지 고민이 많이 됐어요.”
박진희는 데뷔 초기, 섹시한 이미지로 화제를 모았지만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 <쩐의 전쟁> 등을 통해 억척스러우면서도 밝은 캐릭터를 주로 선보였다.
“부잣집 딸이나 세련된 커리어우먼 역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라서 그런 역을 못 해봤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 더 좋아요. 일반 사람들에게서 더 풍부하고 좋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뭔가 ‘큰 것’을 날리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지금까지 이미지의 변화 과정은 만족스러워요.”
박진희는 <달콤한 거짓말>에서 달리는 자동차에 몸을 던지고 빠르게 움직이는 러닝머신에 철퍼덕 엎어지는 등 강력한(?) 몸 연기를 대역 없이 소화했다.
“여러 번 차 앞으로 뛰어드는 장면을 촬영했는데 차 보닛이 제 골반에 닿아 움푹 들어갔어요. 사람들이 ‘외제차라 웬만해선 안 그렇게 되는데 여배우 골반이 대체 어떻길래!’라고 놀라더군요. 덕분에 ‘초강력 골반’이라고 별명이 붙었어요. 그런 별명을 들으면 몸을 사리지 않고 연기한 게 인정받는 것 같아 뿌듯해요. 실제로도 골반은 튼튼해요.”(웃음)
뒤늦게 공부에 흥미를 느낀 박진희는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모두 A학점을 받는 모범생이란다.
“잘해서가 아니라, 결석 한 번 안 하고 과제나 시험도 꼬박꼬박 치르니까 교수님들이 가상하게 봐 주시는 거죠.”
사랑 이야기 편하게 할 나이
1997년 KBS 청소년드라마 <스타트>로 데뷔한 박진희는 이제 배우 11년째에 접어든다.
“10년차가 되고 나이가 서른 고개를 넘으니 선택의 기로에 선 것 같아요. 배우로서 거듭나려면 한 꺼풀 벗어야 하는 것을 알겠는데 벗고 나면 그 이전의 나로 돌아가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훌륭한 배우로 가야 하나, 인간 박진희로 자연스럽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많아요.”
박진희는 자신의 성격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좀 빡빡하다고 한다. 예전에 한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해 동네에 폐수가 나오는 곳을 발견하고 구청에 몇 번이나 전화해서 시정하게 만들었다는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사실 매번 그렇게 신고하고 살수는 없죠. 불의를 보고도 잘 참아요. 제가 보기 싫은 건 예의 없는 행동들이에요. 그렇다고 후배들이 인사 안 한다고 해서 그때마다 ‘너 왜 인사 안 하니’ 이러지는 않아요. 요즘에 그러면 욕먹어요. 그때 봤던 몰래 폐수를 버리는 현장은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예의 없어 보였어요. 신고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거죠.”
올해 나이 서른. 절친 박경림도 결혼했고 어느덧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나이가 됐다. “빨리 결혼하고 싶어요. 배우가 나이에 걸맞는 생활을 하며 연기도 사랑도 연륜이 쌓여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몰라요’하며 부끄러워하라고 교육받았어요. 하지만 벌써 데뷔한 지 10년이 지나 10편의 작품에 출연하는 나이가 됐죠. 사랑에 관한 이야기도 편하게 할 수 있어요.”
사진 송원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