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일요시사 선정> 2011 이슈메이커 50인 ①정계 10인

‘신묘년’ 요동쳤던 정치판 ‘껑충껑충’ 토끼 탓?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능곡지변(陵谷之變)’이란 말이 있다. 이는 높은 언덕이 변하여 깊은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변하여 다시 언덕이 된다는 뜻으로 세상사가 극심하게 뒤바뀔 때 사용하는 말이다. 2011년 정치권에 능곡지변이란 표현보다 더 적합한 말이 있을까. 토끼가 껑충껑충 뛰듯이 정국이 극심하게 출렁였던 신묘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한 해였다. <일요시사>가 ‘송년기획’으로 2011년 정치판을 쥐락펴락 뒤흔들었던 10대 인물을 선정해봤다.

기성정치판에 성난 민심 ‘안철수 신드롬’으로 분출
분당승리로 한나라 아성 깬 손학규 일순 대권 탄력

<신드롬에서 기부까지 안철수>

2011년 정치권은 ‘총체적 예측불허’로 요약될 수 있다. 변화무쌍하며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던 형국이 연출되면서다. ‘안철수 신드롬’이 그렇고 ‘디도스 파문’이 그랬다. 특히나 올 한 해 정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가 커지며 정치권은 계속해서 요동쳤다. 정국을 뿌리째 뒤흔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단연 화제의 인물 1순위로 꼽힌다.

안 원장은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박근혜 대세론’의 아성을 단박에 무너뜨렸다. 안 원장의 묵묵부답에도 ‘대망론’은 거세게 불며 여의도 정가를 뜨겁게 달궜다.

그간 부패하고 부조리한 모습을 보였던 기성 정치판에 대해 불신과 혐오는 극에 달했다. 때문에 전혀 새로운 리더십을 원하는 민심이 안 원장에 열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 원장은 백신을 개발하여 무료로 나눠주며 헌신하는 공적 삶을 살았다. 그는 ‘청춘콘서트’를 통해 대중과의 스킨십을 꾸준히 이어왔다.

기존의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놓고 압도적 지지를 받던 그가 박원순 서울시장과 후보단일화를 하며 ‘아름다운 양보’라는 선례도 남겼다. 게다가 그의 연구소 주식 1500억을 쾌척하는 ‘통큰 기부’도 선보였다.

이러한 안 원장의 행보는 기존 정당정치가 하지 못한 부분을 비정치권 인사인 그가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에 정치계의 판도를 뒤집어 놓을 정도의 ‘안철수 신드롬’으로 번지며 ‘철수’라는 이름은 교과서뿐만 아니라 올 한해 언론까지 화끈하게 장식했다.

<시민세력 전면 등장 박원순>

‘안풍’을 등에 업은 시민후보 박(원순) 시장의 당선은 단연 집중조명을 받았다. 그는 여야 잠룡까지 사활을 걸고 뛰어든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당당하게 승리했다. 특히 박 시장은 탄탄한 정당 조직력을 갖춘 여야의 후보들을 맥없이 무너뜨리며 60년 정당정치의 역사에 충격과 굴욕을 안겨줬다.

박 시장은 국내 대표 진보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만든 시민운동 1세대로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하면서 우리 사회 기부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이에 한때 대권후보로 거론될 만큼 정치권의 영입 제의도 잇따랐지만 박 시장은 그간 시민사회 진영의 울타리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 정치를 더 두고 볼 수 없었다며 출사표를 던졌고 당선으로 이어졌다. 박 시장의 당선으로 시민세력이 정치권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한나라당 텃밭 탈환 손학규>

지난 4‧27 재보선 당시 최대 접전지역이던 분당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주목받았다. 분당을 지역은 단 한 번도 야권성향 후보가 당선된 적 없던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불린다. 이런 불모지에 민주당의 깃발을 꽂으며 이변을 일으킨 장본인이 손 전 대표였던 것.

재보선 당시 투표 마감 직전인 오후 7~8시 사이 한 시간 동안에만 1만389명이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손 전 대표는 ‘넥타이부대’와 ‘킬힐부대’ 결집의 요체였다는 평을 받으며 순식간에 대권가도까지 탄력을 받았다.

<정치인생 벼랑 끝 선 나경원>

반면 재보선으로 정치인생의 나락에 선 인물도 있다. 바로 한나라당 나경원 전 의원이다. 그는 지난 10‧26 재보선 당시 박 시장과 맞붙었지만 처참하게 깨졌다. 후보로 나와 검증과정에서 수두룩한 먼지가 털리며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부친의 사학비리와 1억원 피부샵, 일본 자위대 행사 참석 등의 치명적인 과거로 정치인생까지 위태로워 진 것.

이에 그는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했다. 하지만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12일 서울시장 선거운동 당시 장애아동의 동의 없이 사진을 촬영‧공개한 것에 대해 인권위가 인권침해라고 판정해 또다시 곤혹을 치루고 있다.

‘얼짱 국회의원’으로 불리며 촉망받던 정치인에서 한 순간에 나락으로 곤두박질 친 나 전 의원에겐 이래저래 올 겨울이 어느 때보다 쓸쓸하고 추운 계절임에 틀림없다.

<한나라 저주의 불씨 오세훈>

2011년을 기억하기 힘든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다. 최근 한나라당에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 ‘서울대첩 패배’ ‘디도스 파문’ 등 악재가 겹치며 당의 해체까지 거론되는 위기일발의 상황이다.

이 모든 사태는 오 전 시장의 불명예 퇴진에서 비롯됐다. 이른바 ‘오세훈의 저주’라는 성토가 이어지는 이유이다. 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불장군 식으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밀어붙이다 무산되자 전격적으로 시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저주가 시작됐다는 것.

오세훈의 ‘돌발사퇴’ 저주에 한나라당은 ‘만신창이’
‘자학개그’ 선보여 연예대상감으로 거론된 강용석 

주민투표는 한나라당의 패배로 귀결됐다. 이어진 서울시장 재보선에서도 한나라당은 패했다. 게다가 재보선 당시 선관위 디도스 공격이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의 수행비서 소행으로 밝혀지며 한나라당은 만신창이로 전락했다.

문제는 이 저주의 끝이 언제인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다시 언제 어떤 사건이 터질지 몰라서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내년 선거 때까지 한시도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형국이다.

<개그맨과 개그 배틀 강용석>

2011 불명예 넘버원 정치인은 강용석 무소속 의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올 한 해 누구보다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며 포털 인기검색어 연속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강 의원은 작년 7월 국회 전국대학생토론회 뒤풀이에서 한 아나운서 지망 여대생에게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 “대통령도 예쁜 여학생의 연락처를 알려고 했을 것”이라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했다. 이에 한국아나운서협회와 방송사 여성 아나운서 78명은 지난해 검찰에 집단모욕죄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강 의원은 똑같은 방식으로 KBS <개그콘서트>에서 정치인을 풍자한 개그맨 최효종을 국회의원 집단모욕죄로 고소했다.

자신의 집단모욕죄 부당성을 호소하기 위해 개그맨을 미끼로 고소하는 자학개그를 선보인 셈. 역풍은 생각보다 거세게 불었다. 누리꾼들은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강 의원이 다른 사람을 고소까지 한 입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비난했고, 이때부터 뭘 해도 욕먹는 미운털이 박혔다.

개그맨과 한판 배틀을 벌인 그는 올해 연말 연예대상감이라는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상태이다.

<무죄로 검찰굴욕 준 한명숙>

한명숙 전 총리가 검찰과의 대결에서 잇단 2연승을 거머쥔 것도 화제였다. 지난해 7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 9억7000만원을 받은 혐의와 지난해 4월에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기소된 사건에서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은 것.

당시 수사에 자신감을 내비쳤던 검찰은 한 전 대표와 곽 전 사장의 진술 외에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따라서 검찰은 제보자의 진술에만 의존해 한 전 총리를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검찰이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전 정권 인사를 탄압한 전형적인 사례”라며 ‘표적수사’ ‘정치탄압’이라는 평가도 줄을 잇는다. ‘정치검찰’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족쇄가 풀리며 전세를 역전시킨 한 전 총리는 검찰개혁에 칼을 빼든 상태다.

<헌정 초유 최루탄 테러 김선동>

지난 11월22일 오후 4시8분,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이 터지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최루탄 테러의 주역은 바로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다. 그는 한나라당에 의해 한미FTA가 기습처리 되는 것에 반발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이 사건은 한국 언론뿐만 아니라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로 인해 국회의 ‘날치기’와 ‘테러’ 등 후진적인 한국정치의 치부가 세계만방에 널리 알려졌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 민주당의 양보로 전남 순천에서 단일후보로 출마해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금배지를 달았던 김 의원은 이번 사태로 정치 앞날이 가물가물한 지경에 처한 형국이다.

<상왕통치시대 종식 이상득>

현 정권의 실세로 통하던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은 ‘상왕통치 시대’의 폐막을 알렸다. 그는 불출마 배경에 대해 “한나라당이 새롭게 태어나는데 하나의 밀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불명예퇴진이라는 평이다.

15년지기 보좌관 박모씨가 제일저축은행 및 SLS그룹 구명 로비자금을 받아 검찰조사 중에 있어서다. 보좌관이 받기에는 너무 거액이라는 의심에 검찰의 칼날이 이 의원을 향해 있는 상태다.

게다가 현 정권에서 의혹이 일었다 하면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해 ‘만사형(兄)통’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절대권력으로 통했던 그의 불출마 선언은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을 여실히 증명한 셈이다. 


<한나라의 ‘5개월 천하’ 홍준표>

지난달 디도스 파문이 불거지며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고 지난 9일 사퇴한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올 한 해 천당과 지옥을 오간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선출직 최고위원 3인의 동반사퇴로 ‘억지춘향격’으로 밀려난 홍 전 대표 체제는 ‘5개월 천하’로 막을 내렸다. 7‧4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당선된 이후 한나라당의 온갖 악재와 맞물려 그 역시 막말로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

홍 전 대표는 당 대표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며 갖은 사퇴 압박 속에서도 당 쇄신안을 앞세워 사퇴를 거부했었다. 하지만 결국 여론에 밀려 대표직에서 물러나며 한나라당은 다시 격랑에 휩싸인 분위기다.

올 한 해 정치권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특히 국회의 고질적 병폐인 폭행사태가 난무했고, 대통령 친인척‧측근비리가 봇물을 이루며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과 불신을 더했다. 때문에 유난히도 올 한 해 민심이 계속해서 출렁였고, 2012년의 정치 일정까지 미리 앞당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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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