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입수> KT&G 내부 괴문서 공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0.29 10:44:22
  • 호수 1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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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 카르텔’이 꽉 잡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 1팀] 박창민 기자 = KT&G의 ‘내부 사장 승진 원칙은 철옹성 같다. 역대 모든 정부의 외풍을 견딜 만큼 견고했다. 하지만 철옹성 같은 원칙에 이면이 있었다. 이 때문에 조직이 휘청거리는 갈등에 치달았다. <일요시사>가 내부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KT&G 경영실태 보고서’는 전임 사장들로부터 이어지는 특정 인맥이 경영진을 장악해 패거리식 기업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공기업 민영화의 성공모델 KT&G. 민영화 이후 20여년간 내부 인사가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역대 모든 정권서 KT&G에 낙하산 인사를 투입하려고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이명박정부 때 임명된 민영진 전 KT&G 사장은 KT&G가 민영화되기 전인 전매청 시절부터 근무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촌 처남인 김재홍 전 KT&G 사장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에 ‘친이(친 이명박)’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래도 내부 출신이었다. 

누가?
무슨 이유로?

박근혜정부는 KT&G 사장 자리에 노골적으로 눈독을 들였다. ‘최순실 국정 농단’ 수사 과정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KT&G 사장 후보자를 인사 검증한 문건이 발견됐다. 2015년 대대적인 검찰 수사로 민 전 사장을 끌어내렸다. 

하지만 민 전 사장은 측근인 백복인 당시 전무를 후임으로 정하면서 사실상 KT&G 사장 자리를 물려줬다. 박근혜정부의 낙하산 투입은 실패했다. 


문재인정부도 KT&G 사장 인사에 관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기획재정부는 KT&G의 2대주주인 기업은행을 통해 백 사장의 연임에 공식적으로 반대하면서 판을 흔들었다. 그런데도 백 사장은 정부의 외풍을 뚫고 연임에 성공했다.  

KT&G는 ‘사장은 내부 출신’이라는 철옹성 같은 원칙 덕분에 민영화 기업인 포스코, KT에 비해 정치권 입김에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이 원칙에 또 다른 속사정이 있다. 이 속사정 때문에 KT&G가 흔들리고 있다. 

KT&G 내부가 전임 사장들로부터 이어지는 ‘TK 카르텔’로 오랜 반목이 이어지고 있다는 문건을 <일요시사>가 입수했다. ‘KT&G 경영실태와 올바른 방향’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보면 ‘10여년 걸친 TK 고향의 TK대학 출신자 중심 핵심경영층 독점’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문건은 KT&G 고위 관계자들이 내부 자료를 취합해 만든 문건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KT&G 내부 관계자들이 기획실 등 주요 부서의 자료를 토대로 작성했다. 회사 내부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리한 자료”라고 귀띔했다. 

문건에 따르면 경영진 행태에 대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행태 반복’이라고 지적했다. 김·민 전 사장과 백 사장에 이어지는 특정 인맥이 경영층 독점 및 지배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철옹성 같은 내부 승진 원칙    
‘경영실태 보고서’ 보니 ‘헉’

지난 7월1일자로 민 전 사장이 KT&G복지재단 이사장에 올랐다. 


KT&G 내부 관계자는 “백 사장 승인 없이 민 전 사장이 KT&G에 복귀하는 건 불가능하다. 민 전 사장은 비리로 검찰 수사 때 사임한 전 사장이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건 악수”라고 말했다. 이어 “백 사장은 민 전 사장의 최측근이다. 이들은 KT&G ‘TK 카르텔’의 정점”이라고 설명했다.

문건은 또 KT&G복지재단 이사 중 일부가 민 전 사장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일간지 기자 출신인 이모씨는 민 전 이사장이 추천, 탤런트 이모씨는 고모 전 KT&G 사외이사의 추천으로 선임된 것으로 전해진다. 

문건에 따르면 고 전 이사는 민 전 사장과 두터운 친분 관계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백 사장의 추천으로 고 전 이사는 2016년 2월 KT&G 사외이사에 올랐다.  

KT&G의 주요 지배 세력은 TK 출신인 것으로 보인다. 문건에 따르면 출신 지역(대구·경북), 출신대학(영남대, 경북대, 계명대, 대구대)이 모두 TK 지역인 특수한 형태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견고함이 강화됐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역량 있고, 의식 있는 임직원의 성장 기회가 박탈됐다. 인사적 소외와 퇴출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문건은 전했다.

백 사장이 회사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연임과 임기유지에만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백 사장은 연임을 위해 정부와의 협의 내용도 폭로하겠다고 이사회를 협박했다고 한다.

지난 5월16일 MBC가 보도한 ‘기획재정부의 KT&G 사장 인사개입 정황 문건 입수’ 보도가 KT&G의 기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보도는 기재부가 기업은행을 통해 백 사장 연임에 반대했다는 내용으로 당시 파문이 일었다.

문건에 따르면 백 사장이 지난 1월 해당 기재부 문건을 입수했다. 청와대 민수석실의 지인으로부터 입수했다는 설이 파다하다. 이후 지난 1월26일 이사회서 관련 내용을 설파한 것으로 전해진다.

10년간 KT&G 사장
특정 인맥이 장악?

문건에는 또 현재 백 사장이 금융감독원의 정밀감리 대응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써있다. 지난 3월부터 금감원은 KT&G 인도네시아 트리삭티 인수 의혹에 대해 정밀감리에 착수했다. KT&G는 2011년 인도네시아 담배회사인 트리삭티를 인수했다. 

이후 이중장부로 인한 분식회계, 자산 과다계상, 에스크로 자금 지급, 베트남 수출선 무상 양도 등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백 사장은 당시 전략기획본부 본부장으로서 해외 신사업을 주도한 인물이다. 전 임직원들은 지난 1월 백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문건에 따르면 백 사장은 금감원 감리가 시작되자, 김앤장을 로펌으로 선정했다. 금감원의 요구 자료 제출을 최대한 늦추는 방법 등으로 현재까지 대응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문건에는 KT&G 현 경영진에 대한 평가도 있다. 신뢰가 낮고, 미래에 대한 비전 상실로 전반적인 분위기가 침체돼있다고 전했다.


올해 2월 회사는 임직원 30∼50명에 대해 휴대폰 압수조사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인권침해소지가 다분했지만, 임직원들은 생존을 위해 어떠한 저항도 못했다고 문건은 전했다. 지난 7월에는 KT&G가 대대적으로 임직원 컴퓨터를 교체했다. 문건에는 ‘노후 PC교체 명분이었지만 규모·前例(전례)·시기로 볼 때 향후 검찰 수사 대비 일환’이라고 기재돼있다. 

특정 인사들 쥐락펴락…
임직원 성장 기회 박탈?

최근 KT&G 관련 내부고발성 글에 등장한 A사외이사와 관련된 내용도 해당 문건에 자세히 나와 있다. A이사는 도를 넘는 경영·인사 개입으로 도마에 올랐다. 심지어 지난 16일 오후 5시경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왜 우리 KT&G는 A사외이사의 놀이터가 돼야 하나요?’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A이사는 충남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로 국내서 손꼽히는 회계 전문가다. KT&G 이사회 8명(사내이사 2명·사외이사 6명) 중 3명이 A 이사의 지인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외이사 구성을 보면 회계 전문 3명, 정관계 2명, 기타 1명으로 채워졌다. 회계 전문 이사들은 모두 A이사와 관련된 것으로 전해진다.

KT&G가 재선임한 이모 이사는 한국세무학회 이사장이다. A이사와 함께 KT&G 사외이사였던 이모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의 사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규 선임된 이모씨는 외국계 의류기업의 재무, 운영 담당 전무로 근무 중이다. 

A이사의 대학 동문의 부인인 것으로 전해진다. 문건에 따르면 A이사가 이씨를 KT&G 사외이사로 추천했다고 평했다. 


사내 인사개입, 과도한 경영개입 등 전횡을 일으키고 있다고 문건은 전했다. 

KT&G 내부 관계자는 “A이사가 이처럼 KT&G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이유는 백 사장의 약점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이사는 앞서 KT&G 인도네시아 트리삭티 인수 의혹을 조사했던 당사자다. 

앞서 관계자는 “A이사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백 사장의 비리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사”라고 설명했다.

직원들 휴대폰 압수 조사 왜?
경영·인사 개입 사외이사도

문건에는 전임 사외이사의 실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앞서 KT&G복지재단에 탤런트 출신 이사를 추천한 고 이사는 2016년 3월 BH(청와대)내정 주장으로 KT&G 사외이사에 입성했다. 또 BH 추천 사칭 등 문제로 그해 8월경 비밀리 사임각서 제출 후 식물이사로 전락했다고 한다. 그 다음해 3월 주총서 사임했다.

단국대 교수인 손모 전 KT&G 사외이사는 2015년 2월 선임됐다. 2016년 7∼8월 조교 성추행혐의, KT&G 중국 개발 사업 강요와 이권개입 등 문제로 그해 12월 사임했다. 대전국세청장이었던 박모 KT&G 사외이사는 2014년 3월 선임됐다. 세무조사 무마 등 개인 비리 의혹으로 사임했다. 

비리 혐의 사임
전 사장의 컴백

KT&G 측은 이 문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KT&G 관계자는 “해당 문건은 회사 차원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KT&G 입장은? “사실과 다른 부분 많다”

KT&G 측은 ‘KT&G 경영실태와 올바른 방향’문건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회사 관계자는 “관련 문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다만 당사의 성장과 발전을 바라는 의도로 여겨진다”고 답했다. 다음은 회사 관계자와의 일문일답.

-해당 문건에 대해 사측은 알고 있었나?
▲당사는 관련 문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추측건대 아마도 당사의 성장과 발전을 바라는 의도라고 여겨진다. 

-문건에서는 10여년 간 KT&G 경영진이 TK 출신 중심이 독점했다고 한다. 
▲사실과 다르다. 우선 역대 KT&G 사장의 출신은 특정 지역과 학교에 한정돼있지 않다.(백복인 사장: 경북/영남대, 민영진 전 사장: 경북/건국대, 곽영균 전 사장: 인천/서울대, 곽주영 전 사장: 전남/부산대) 당사의 사장은 사외이사들로 독립적으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 엄정한 심사에 거쳐 추천되고 이사회 및 주주총회 의결을 통해서 선임된다. 60여명인 임원들의 출신 또한 특정 지역과 학교에 편중되지 않고 다양하게 분포돼있다.

-특정 인맥이 인사를 독점해서 임직원이 기회를 박탈당하고 소외됐다고 문건은 전했다. 
▲사실과 다르다. 조직 내의 경쟁구도 속에서 탈락하게 되면 일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이는 비단 당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검찰 수사를 받고 사임한 민영진 전 KT&G 사장의 KT&G복지재단 이사장 복귀가 부적절하다는 시각이 있다.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 KT&G복지재단은 동 재단의 이사회에서 당사의 사회공헌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할 적임자로 민영진 전 사장을 추천, 선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 불거졌던 A사외이사 문제에 대해서 회사 차원 입장은?
▲최근 국민청원의 A이사 관련 내용은 당사 직원이라고 밝힌 청원자의 개인적인 의견 내지 주장이다. 이러한 의견은 존중하지만, 내용 중에는 당사가 알지 못하는 개인적인 부분, 소문 내지 추정 등이 포함돼있어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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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