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입수> KT&G 내부 괴문서 공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0.29 10:44:22
  • 호수 1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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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 카르텔’이 꽉 잡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 1팀] 박창민 기자 = KT&G의 ‘내부 사장 승진 원칙은 철옹성 같다. 역대 모든 정부의 외풍을 견딜 만큼 견고했다. 하지만 철옹성 같은 원칙에 이면이 있었다. 이 때문에 조직이 휘청거리는 갈등에 치달았다. <일요시사>가 내부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KT&G 경영실태 보고서’는 전임 사장들로부터 이어지는 특정 인맥이 경영진을 장악해 패거리식 기업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공기업 민영화의 성공모델 KT&G. 민영화 이후 20여년간 내부 인사가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역대 모든 정권서 KT&G에 낙하산 인사를 투입하려고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이명박정부 때 임명된 민영진 전 KT&G 사장은 KT&G가 민영화되기 전인 전매청 시절부터 근무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촌 처남인 김재홍 전 KT&G 사장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에 ‘친이(친 이명박)’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래도 내부 출신이었다. 

누가?
무슨 이유로?

박근혜정부는 KT&G 사장 자리에 노골적으로 눈독을 들였다. ‘최순실 국정 농단’ 수사 과정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KT&G 사장 후보자를 인사 검증한 문건이 발견됐다. 2015년 대대적인 검찰 수사로 민 전 사장을 끌어내렸다. 

하지만 민 전 사장은 측근인 백복인 당시 전무를 후임으로 정하면서 사실상 KT&G 사장 자리를 물려줬다. 박근혜정부의 낙하산 투입은 실패했다. 


문재인정부도 KT&G 사장 인사에 관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기획재정부는 KT&G의 2대주주인 기업은행을 통해 백 사장의 연임에 공식적으로 반대하면서 판을 흔들었다. 그런데도 백 사장은 정부의 외풍을 뚫고 연임에 성공했다.  

KT&G는 ‘사장은 내부 출신’이라는 철옹성 같은 원칙 덕분에 민영화 기업인 포스코, KT에 비해 정치권 입김에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이 원칙에 또 다른 속사정이 있다. 이 속사정 때문에 KT&G가 흔들리고 있다. 

KT&G 내부가 전임 사장들로부터 이어지는 ‘TK 카르텔’로 오랜 반목이 이어지고 있다는 문건을 <일요시사>가 입수했다. ‘KT&G 경영실태와 올바른 방향’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보면 ‘10여년 걸친 TK 고향의 TK대학 출신자 중심 핵심경영층 독점’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문건은 KT&G 고위 관계자들이 내부 자료를 취합해 만든 문건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KT&G 내부 관계자들이 기획실 등 주요 부서의 자료를 토대로 작성했다. 회사 내부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리한 자료”라고 귀띔했다. 

문건에 따르면 경영진 행태에 대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행태 반복’이라고 지적했다. 김·민 전 사장과 백 사장에 이어지는 특정 인맥이 경영층 독점 및 지배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철옹성 같은 내부 승진 원칙    
‘경영실태 보고서’ 보니 ‘헉’

지난 7월1일자로 민 전 사장이 KT&G복지재단 이사장에 올랐다. 


KT&G 내부 관계자는 “백 사장 승인 없이 민 전 사장이 KT&G에 복귀하는 건 불가능하다. 민 전 사장은 비리로 검찰 수사 때 사임한 전 사장이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건 악수”라고 말했다. 이어 “백 사장은 민 전 사장의 최측근이다. 이들은 KT&G ‘TK 카르텔’의 정점”이라고 설명했다.

문건은 또 KT&G복지재단 이사 중 일부가 민 전 사장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일간지 기자 출신인 이모씨는 민 전 이사장이 추천, 탤런트 이모씨는 고모 전 KT&G 사외이사의 추천으로 선임된 것으로 전해진다. 

문건에 따르면 고 전 이사는 민 전 사장과 두터운 친분 관계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백 사장의 추천으로 고 전 이사는 2016년 2월 KT&G 사외이사에 올랐다.  

KT&G의 주요 지배 세력은 TK 출신인 것으로 보인다. 문건에 따르면 출신 지역(대구·경북), 출신대학(영남대, 경북대, 계명대, 대구대)이 모두 TK 지역인 특수한 형태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견고함이 강화됐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역량 있고, 의식 있는 임직원의 성장 기회가 박탈됐다. 인사적 소외와 퇴출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문건은 전했다.

백 사장이 회사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연임과 임기유지에만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백 사장은 연임을 위해 정부와의 협의 내용도 폭로하겠다고 이사회를 협박했다고 한다.

지난 5월16일 MBC가 보도한 ‘기획재정부의 KT&G 사장 인사개입 정황 문건 입수’ 보도가 KT&G의 기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보도는 기재부가 기업은행을 통해 백 사장 연임에 반대했다는 내용으로 당시 파문이 일었다.

문건에 따르면 백 사장이 지난 1월 해당 기재부 문건을 입수했다. 청와대 민수석실의 지인으로부터 입수했다는 설이 파다하다. 이후 지난 1월26일 이사회서 관련 내용을 설파한 것으로 전해진다.

10년간 KT&G 사장
특정 인맥이 장악?

문건에는 또 현재 백 사장이 금융감독원의 정밀감리 대응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써있다. 지난 3월부터 금감원은 KT&G 인도네시아 트리삭티 인수 의혹에 대해 정밀감리에 착수했다. KT&G는 2011년 인도네시아 담배회사인 트리삭티를 인수했다. 

이후 이중장부로 인한 분식회계, 자산 과다계상, 에스크로 자금 지급, 베트남 수출선 무상 양도 등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백 사장은 당시 전략기획본부 본부장으로서 해외 신사업을 주도한 인물이다. 전 임직원들은 지난 1월 백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문건에 따르면 백 사장은 금감원 감리가 시작되자, 김앤장을 로펌으로 선정했다. 금감원의 요구 자료 제출을 최대한 늦추는 방법 등으로 현재까지 대응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문건에는 KT&G 현 경영진에 대한 평가도 있다. 신뢰가 낮고, 미래에 대한 비전 상실로 전반적인 분위기가 침체돼있다고 전했다.


올해 2월 회사는 임직원 30∼50명에 대해 휴대폰 압수조사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인권침해소지가 다분했지만, 임직원들은 생존을 위해 어떠한 저항도 못했다고 문건은 전했다. 지난 7월에는 KT&G가 대대적으로 임직원 컴퓨터를 교체했다. 문건에는 ‘노후 PC교체 명분이었지만 규모·前例(전례)·시기로 볼 때 향후 검찰 수사 대비 일환’이라고 기재돼있다. 

특정 인사들 쥐락펴락…
임직원 성장 기회 박탈?

최근 KT&G 관련 내부고발성 글에 등장한 A사외이사와 관련된 내용도 해당 문건에 자세히 나와 있다. A이사는 도를 넘는 경영·인사 개입으로 도마에 올랐다. 심지어 지난 16일 오후 5시경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왜 우리 KT&G는 A사외이사의 놀이터가 돼야 하나요?’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A이사는 충남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로 국내서 손꼽히는 회계 전문가다. KT&G 이사회 8명(사내이사 2명·사외이사 6명) 중 3명이 A 이사의 지인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외이사 구성을 보면 회계 전문 3명, 정관계 2명, 기타 1명으로 채워졌다. 회계 전문 이사들은 모두 A이사와 관련된 것으로 전해진다.

KT&G가 재선임한 이모 이사는 한국세무학회 이사장이다. A이사와 함께 KT&G 사외이사였던 이모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의 사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규 선임된 이모씨는 외국계 의류기업의 재무, 운영 담당 전무로 근무 중이다. 

A이사의 대학 동문의 부인인 것으로 전해진다. 문건에 따르면 A이사가 이씨를 KT&G 사외이사로 추천했다고 평했다. 


사내 인사개입, 과도한 경영개입 등 전횡을 일으키고 있다고 문건은 전했다. 

KT&G 내부 관계자는 “A이사가 이처럼 KT&G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이유는 백 사장의 약점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이사는 앞서 KT&G 인도네시아 트리삭티 인수 의혹을 조사했던 당사자다. 

앞서 관계자는 “A이사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백 사장의 비리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사”라고 설명했다.

직원들 휴대폰 압수 조사 왜?
경영·인사 개입 사외이사도

문건에는 전임 사외이사의 실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앞서 KT&G복지재단에 탤런트 출신 이사를 추천한 고 이사는 2016년 3월 BH(청와대)내정 주장으로 KT&G 사외이사에 입성했다. 또 BH 추천 사칭 등 문제로 그해 8월경 비밀리 사임각서 제출 후 식물이사로 전락했다고 한다. 그 다음해 3월 주총서 사임했다.

단국대 교수인 손모 전 KT&G 사외이사는 2015년 2월 선임됐다. 2016년 7∼8월 조교 성추행혐의, KT&G 중국 개발 사업 강요와 이권개입 등 문제로 그해 12월 사임했다. 대전국세청장이었던 박모 KT&G 사외이사는 2014년 3월 선임됐다. 세무조사 무마 등 개인 비리 의혹으로 사임했다. 

비리 혐의 사임
전 사장의 컴백

KT&G 측은 이 문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KT&G 관계자는 “해당 문건은 회사 차원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KT&G 입장은? “사실과 다른 부분 많다”

KT&G 측은 ‘KT&G 경영실태와 올바른 방향’문건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회사 관계자는 “관련 문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다만 당사의 성장과 발전을 바라는 의도로 여겨진다”고 답했다. 다음은 회사 관계자와의 일문일답.

-해당 문건에 대해 사측은 알고 있었나?
▲당사는 관련 문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추측건대 아마도 당사의 성장과 발전을 바라는 의도라고 여겨진다. 

-문건에서는 10여년 간 KT&G 경영진이 TK 출신 중심이 독점했다고 한다. 
▲사실과 다르다. 우선 역대 KT&G 사장의 출신은 특정 지역과 학교에 한정돼있지 않다.(백복인 사장: 경북/영남대, 민영진 전 사장: 경북/건국대, 곽영균 전 사장: 인천/서울대, 곽주영 전 사장: 전남/부산대) 당사의 사장은 사외이사들로 독립적으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 엄정한 심사에 거쳐 추천되고 이사회 및 주주총회 의결을 통해서 선임된다. 60여명인 임원들의 출신 또한 특정 지역과 학교에 편중되지 않고 다양하게 분포돼있다.

-특정 인맥이 인사를 독점해서 임직원이 기회를 박탈당하고 소외됐다고 문건은 전했다. 
▲사실과 다르다. 조직 내의 경쟁구도 속에서 탈락하게 되면 일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이는 비단 당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검찰 수사를 받고 사임한 민영진 전 KT&G 사장의 KT&G복지재단 이사장 복귀가 부적절하다는 시각이 있다.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 KT&G복지재단은 동 재단의 이사회에서 당사의 사회공헌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할 적임자로 민영진 전 사장을 추천, 선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 불거졌던 A사외이사 문제에 대해서 회사 차원 입장은?
▲최근 국민청원의 A이사 관련 내용은 당사 직원이라고 밝힌 청원자의 개인적인 의견 내지 주장이다. 이러한 의견은 존중하지만, 내용 중에는 당사가 알지 못하는 개인적인 부분, 소문 내지 추정 등이 포함돼있어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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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