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검증 끝난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0.01 10:42:24
  • 호수 11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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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엄함 벗고 젊은 감성 가동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드디어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섰다. 최근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에 오른 것. 현대차그룹의 유일한 승계자로서 그룹 내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며 ‘확고한 2인자’가 됐다. 업계선 한층 더 폭넓은 경영 보폭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지난달 14일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부회장으로 승진한 지 9년 만이다. 옛 현대그룹서 분가한 1999년 이래 현대차그룹의 최종 의사 결정자는 늘 정몽구 회장이었다. 

1999년 입사
55개 계열 책임

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이 글로벌 통상문제 등 복잡한 대외 변수에 더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며 “그룹의 미래 경쟁력 강화와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인사”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에는 원래 ‘총괄 수석부회장’ 자리가 없었다. 정 수석부회장과 윤여철 김용환 양웅철 권문식 현대·기아차 부회장,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부회장 등 7명의 부회장이 각자 업무를 책임지는 형태였다. 

정 수석부회장이 이날 신설된 총괄 수석부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정 수석부회장은 아래로는 나머지 6명의 부회장을 이끌고, 위로는 아버지 정 회장을 보좌하는 역할로 그룹 내 입지가 확대됐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이 올 연말 인사를 대폭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그룹 내 6명의 부회장보다 높은 위치서 그룹 전반을 지휘하게 된 만큼 인사를 통해 계열사 장악력을 키우고, 이를 통해 계열사 간의 시너지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4개사의 등기이사를 맡았지만 현대차 경영에만 관여해왔다. 정 수석부회장은 1999년 현대자동차 이사로 경영 참여를 시작한 뒤 2001년 상무에서 전무로, 2003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5년부터는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있다가 2009년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번 인사로 정 수석부회장은 그룹의 미래사업전략을 짜고 계열사 간 투자를 조율하는 업무를 책임지면서 계열사를 총괄하게 됐다. 자동차(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등), 철강(현대제철 등), 건설(현대건설 등), 금융(현대카드·캐피탈, 현대차증권 등) 등 그룹 55개 계열사 전반을 책임져야 한다. 

지금까지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의 미래차 투자 등 주요 경영상황을 폭넓게 챙겼지만, 이번 승진으로 정 회장에 이어 회사 경영을 걸머질 명실상부한 ‘2인자’로서 그룹경영 전반에 직접 관여할 수 있게 됐다.

그간 정 회장을 대신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하는 등 대외 행보서 이미 그룹을 대표해왔지만 이번에 공식적인 직책으로 실질적 리더십이 뒷받침된 셈이다. 이 때문에 이번 인사로 현대차그룹이 ‘3세 경영 체제’에 한발 더 다가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
9년 만에 후계자 이미지 벗어 


재계에선 정 회장이 위기 때마다 아들 정 수석부회장의 책임을 확대하며 경영능력을 키워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로 기존 산업이 위기를 맞은 시점에 정 수석부회장의 책임을 확대한 것 역시 정 회장의 신중한 결단이라는 의미다.  

정 회장은 2005년 기아차가 적자에 허덕일 때 정 수석부회장을 기아차 사장으로 임명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과감한 디자인 경영 전략으로 K시리즈를 선보이며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기아차는 2007년 영업적자 554억원서 2008년 3085억원으로 흑자를 이뤘다. 

정 회장이 정 수석부회장을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시킨 2009년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자동차 시장이 요동치던 때였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자동차 기업이 모두 파산 위기에 몰렸다. 정 수석부회장은 당시 공격적인 글로벌 경영으로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

또 정 수석부회장은 정 회장 대신 주요 신차 발표회 자리나 행사장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7일 인도에선 ‘무브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의 기조연설을 맡아 “현대자동차를 자동차 제조업체서 스마트 모빌리티 설루션 제공 업체로 탈바꿈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5월에는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이 추진했던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 방식에 반대한 끝에 직접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자율주행·커넥티비티·모빌리티·수소차·전기차 등 자동차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해외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에만 미국·이스라엘·호주·중국·인도·싱가포르 등 11개의 해외 기술 기업에 투자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풀어야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먼저 가장 시급한 건 미국의 관세 폭탄이다. 정 수석부회장의 첫 대외 행보는 ‘미국행’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대표단 일정도 마다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만큼 급박한 상황에 놓인 현재의 회사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룹 진두지휘 
경영전면 나서

지난달 17일 현대차그룹과 업계에 따르면, 전날인 16일 미국으로 출국한 정 수석부회장은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 등 미 행정부와 의회 고위인사들과 만났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수입 자동차 관세 부과 문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남북 정상회담 때 대통령을 수행하는 방북단서도 빠졌다. 

미국은 현대·기아자동차의 최대 수출 시장 중 하나다. 미국 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 자동차가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을 줄 수 있다며 최대 25%의 관세를 물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관세폭탄'이 현실화할 경우 현대·기아차의 국내 공장 일부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기아차 광주공장서 작년 생산한 전체 차량 49만2233대 가운데 미국 수출량은 37.37%(18만3959대)를 차지하고 있다. 쏘울 10만9146대(전기차 포함)와 스포티지 7만3717대가 광주서 생산된 미국 수출 주력 품목이다. 


특히 미국서 판매하는 쏘울은 광주공장서 전량 생산했다. 쏘울은 2009년 출시 이후 미국 시장서 닛산 큐브 등 기존 소형 박스카 시장 대표 모델을 제치고 작년까지 미국 엔트리 CUV(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급 판매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오고 있다. 관세폭탄이 현실화하면 차량 가격이 500만원가량 상승해 가격경쟁서 밀릴 수밖에 없다.
 

더불어 정 수석부회장은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큰 숙제도 있다. 경영 승계를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런데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압박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지난 5월 29일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임시 주주총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시장의 거센 반발로 계획을 잠정 중단했다. 엘리엇이 끼어들어 계획에 반기를 든 것이 시발점이었다. 

이로 인해 주주 신뢰에도 금이 갔다. 정 부수석회장이 엘리엇의 공세에 “흔들리지 않겠다”며 정면돌파 의지를 보였지만, 결론적으로 주주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1차 공세 이후 현대차그룹의 지분을 추가로 사들였다. 현대차 3.0%, 기아차 2.1%, 현대모비스 2.6%를 각각 보유 중이다. 이는 기존 5월 밝힌 것보다 각각 1.5%씩 늘어난 것이다. 

채비를 마친 엘리엇은 직접 지배구조 개편안까지 제시하며 또다시 현대차그룹 흔들기에 나섰다. 일단 현대차그룹이 난색을 표하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총수일가 지분 30% 이상→20% 이상)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현대차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응책 마련과 지배구조 개편을 동시에 진행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2014년 10조5500억원에 사들인 GBC 신사옥 부지가 4년째 놀고 있는 것도 문제다. GBC 신사옥은 정 회장의 숙원사업으로 지난 4월 서울시 환경영향평가를 조건부 통과했지만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위원회서 지난해 12월, 지난 3월과 7월에 잇따라 퇴짜를 맞으며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계열사별 전략 
조율 역할 맡아

수도권정비위원회는 현대차그룹에 ‘인구유발 저감대책 보완 및 세부대책’ ‘저감대책 실효성 확보방안’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삼성동으로 몰릴 경우 1만여명의 직원이 이주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분산대책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서울시는 이달 중 현대차그룹 측으로부터 보완책을 받아 재심의를 요청할 계획이지만 연내 착공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시공을 담당하고 있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역시 사업 지연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인허가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만나 신사옥 건립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등 GBC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재계는 정 수석부회장이 그룹총괄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만큼 GBC 문제에 더욱 공을 들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1970년 10월10일 서울서 정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현대를 창업한 정주영 명예회장이 할아버지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작은 어머니, 정몽준 전 국회의원이자 현대중공업 고문이 작은 아버지다. 형제로는 위로 정성이 이노션 고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로 누나가 셋이다.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 정문선 현대비앤지스틸 전무, 정대선 현대비에스엔씨 대표,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장, 정지이 현대유앤아이 전무,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정교선 현대백화점 부회장과 사촌지간이다. 

 자동차 위기 돌파 승부수 던져
“세계로∼” 글로벌 행보 가속화

정 수석부회장은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장녀 정지선과 1995년 결혼했다. 장인인 정도원 회장은 정 회장과 경복고 선후배 사이로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수석부회장 1983년 경복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86년 구정중학교(현 압구정중학교), 1989년 휘문고등학교(81회)를 졸업했다. 1993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 경영대학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정 수석부회장은 일찌감치 현대차그룹의 후계자로 결정됐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사원부터 착실하게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바닥부터 시작하라는 정 회장의 지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현대정공에 과장으로 입사했으나 1년 만에 미국 유학길을 떠났다. MBA 학위 취득 후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서 2년간 근무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1999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2002년까지 국내영업본부 영업담당 겸 기획총괄본부 기획담당 상무를 맡았다. 

2002년 국내영업본부 부본부장 전무로 승진했고 2003년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부본부장 겸 기아차 기획실장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고 2009년부터 현대자동차 기획 및 영업담당 부회장 재직했다. 2005부터 지금까지 대한양궁협회 및 아시아양궁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재벌 3세인데도 소박하고 겸손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를 두고 할아버지인 정 명예회장의 밥상머리 교육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정 수석부회장은 정 명예회장과 아버지 정몽구 회장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 정몽구 회장을 대단히 깍듯하게 모신다. 경영권 승계 얘기가 나오면 “아버지가 건재하신데 왜 그런 말이 나오냐”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경영 능력도 검증됐다. 제네시스 브랜드가 성공하면서 경영 능력에 대해 확고한 합격점을 받았다. 워커홀릭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일을 많이 하며 항상 오전 6시30분 출근하는 아침형 CEO로 꼽힌다.

현대차에 젊은 감성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지난해 6월, 코나 신차 발표회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나와 관심을 끌었으며 종종 직원들과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원들이 검정색 세단을 주로 이용하는 걸 알면서도 다크블루 색상의 에쿠스를 타기도 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017년 7월14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오너 경영인으로서 정 수석부회장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김 공정위원장은 당시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이 정의선을 기아차 사장으로 임명하고 그룹 차원서 지원해 기아차를 회생시켰다. 정의선의 능력에 대해 시장에서는 의구심이 거의 없다”며 “그에 비하면 삼성이나 이건희 회장은 이재용에게 경영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게 부족했다”고 밝혔다. 

관세, 지배구조…
풀어야할 과제

한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가끔 골프도 함께 친 것으로 알려졌으며 골프와 테니스 실력이 수준급이다. 폭탄주 10여잔은 거뜬할 정도로 주량이 센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의 자동차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인 <탑 기어>를 즐겨 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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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