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잠룡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6·13지방선거를 통해 대체불가 잠룡으로 급부상한 인물이 있는 반면, 그간 쌓아온 공든 탑이 여지없이 무너진 잠룡도 있다. <일요시사>는 재편된 잠룡구도를 집중조명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인은 명실상부 여권의 가장 강력한 대권주자로 발돋움했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김문수 전 서울시장 후보,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안철수 전 서울시장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3선에 성공했기 때문. 헌정사상 최초로 민선 3선 서울시장에 등극한 박 시장에게 남은 도전은 대권뿐이다.
희비 엇갈려
박 시장은 투표 전날 대권을 염두에 둔 듯 한 발언을 했다. 기자회견을 연 그는 “2011년·2014년 두 번의 선거서 나는 (나 자신의) 당선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오로지 당을 위해, 당이 공천한 후보를 위해 혼신을 다해 뛰었다”고 밝혔다.
자신의 선거보다 서울 25개구 구청장 선거에 나선 같은 당 후보와 시의원·구의원 후보를 지원하는 데 집중했다는 점을 어필한 것이다. 이어 박 시장은 “이제 내가 당과 거리가 있는 후보라고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대선 경선 과정서 자신에게 쏟아졌던 지적을 의식한 발언으로 읽힌다. 당시 박 시장은 당내 지지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선서 끝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박 시장은 출마를 포기하고 서울시장 3선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박 시장의 선택은 최고의 결과로 이어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은 가장 파란만장한 선거를 치렀다. 선거 막판까지 이어진 각종 악재로 이미지에 큰 흠집이 나며 발목이 잡히는 듯했으나 ‘대세론’을 스스로 입증하며 박 시장과 함께 여권 잠룡 쌍두마차로 올라섰다.
주변 상황도 나쁘지 않다. 비록 ‘김부선 스캔들’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지만 그 외 상황은 대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앞서 지난 대선 경선서 맞붙었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성폭행 의혹으로 대선주자로서의 경쟁력을 잃었다.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이 이 도지사에게 압도적 표를 몰아줬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이 도지사가 자신감을 가질만한 대목이다. 인구 1300만명의 경기도 광역단체장에 당선됐다는 점도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무엇보다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 및 장관 중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을 제외하면 뚜렷한 대항마가 없다는 점이 순탄한 대권가도를 예상케 한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당선인은 신흥 잠룡으로 급부상했다. 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인 ‘드루킹 의혹’을 극복하고 당선됐다는 점에서 이 도지사와 유사점이 있다.
박-이-김 차기대권 3파전 압축
원, 보수 주자 대안으로 주가↑
문 진영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 최대 강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그는 드루킹 의혹을 기점으로 친문 진영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일각에선 그를 ‘포스트 문재인’으로 칭하기도 할 정도다.
험지로 통하는 경남서 당선됐다는 점도 그를 신흥 잠룡으로 분류하는 이유다. 김 도지사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후보로는 처음으로 경남도지사에 당선됐다. 민주당 입장서 그동안의 숙원사업을 김 도지사가 풀어준 셈이다.
지난 20대 총선 당시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이 대구 수성갑서 당선돼 단숨에 차기 대권후보로 떠올랐던 것처럼 김 도지사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인은 야권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보수의 텃밭으로 꼽히는 대구·경북 지역을 제외하고 야권서 유일하게 승리한 광역단체장이다.
당적을 떼고 당선됐다는 데 의미가 크다. 한국당과 바미당이 이번 지방선거서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면서 상대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당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개인기에 대한 검증도 끝마쳤다. 선거 초반 원 도지사는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높은 지지율에 고전했으나 ‘인물론’을 내세워 당선됐다.
원 도지사는 당선이 확정된 순간 “당선된 뒤에도 계속 무소속으로 갈 길을 가겠다”며 “보수, 진보를 떠나 도민들의 변화 열망을 실천하는 후보가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그가 향후 있을 야권 재편 과정서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 관측한다.
그가 개혁적 성향을 지녔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출마 선언 당시 그는 “큰 정치에 도전하는 것이 제 평생 목표로 결코 버릴 수 없는 꿈”이라고 강조하며 ‘개혁 정치’와 ‘야권 재편’을 언급했다. 원 도지사는 보수 개혁 소장파 그룹의 원조 격인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의 멤버이자 ‘40대 기수론’의 주인공이다. 그는 이제 ‘50대 기수론’에 한걸음 다가섰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더욱 짙어진다. 지방선거를 통해 잠룡으로 거듭난 정치인이 있는 반면, 패배의 쓴맛을 본 기존 잠룡들은 앞으로의 대권가도에 제동이 걸렸다.
대표적인 정치인은 안철수 전 서울시장 후보다. 그는 이번 선거서 3위에 머물렀다. 한국당 김문수 전 서울시장 후보에게도 밀렸다. ‘양보론’을 내세워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거취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단일화 불발의 책임까지 짊어졌다. 안 전 후보와 김 전 후보는 선거 막판까지 단일화를 두고 줄다리기를 펼쳤다. 박 시장이 줄곧 선두를 달리면서 정치권에선 과연 2위를 누가 차지할지 궁금해 했다. 3위를 한 사람에게 단일화 불발의 책임이 돌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안 전 후보와 당 입장서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바미당은 17개 광역단체장, 12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선거서 전패했다. 안 전 후보는 선거 패배는 물론 당내 공천 파동에 직접 개입한 책임을 받고 있다.
앞서 그는 중앙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가 내놓은 서울 노원과 송파을 재·보궐선거 공천 결과를 뒤집으려다가 실패한 바 있다.
뼈아픈 타격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후보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남 전 후보는 이 도시자에게 패배했다. 정치에 입문한 이래 탄탄대로를 걸어왔던 남 전 후보 정치인생의 첫 패배였다. 16년간 보수정당이 차지했던 경기도를 진보진영에 빼앗긴 장본인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됐다. 이 도지사의 ‘형수 욕설 음성파일’을 공개, 선거를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시켰다는 비판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추미애 새로운 별명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새로운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지난 제15대 대선 당시 민주당 김대중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유세단장을 맡아 당선에 일조했다.
16대 대선 때에는 민주당 노무현후보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아 공헌했다.
19대 대선에서는 당대표로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6·13지방선거서 민주당 압승을 견인한 추 대표는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선거의 여왕으로 통한다.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