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의 달인’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

갈길 멀고 넘어야 할 산 많다 “어여 가세~”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양승태 전 대법관이 대법원장 후보자에 지명됐다. 청문회를 앞두고 몇가지 쟁점이 떠오르긴 했지만 사실상 임명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 청문회를 무사통과한 전력 덕분이다. 도덕적인 흠결이나 신상과 관련된 의혹을 말끔히 털어냈다는 얘기다. 하지만 마냥 좋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양 후보자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호주제 최초 위헌제청…행정지원에도 세밀한 면모
타당성을 갖고 해결책 도출해 국민 권리 보호 앞장


9월에 임기가 끝나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후임에 양승태 전 대법관이 지명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목영준 헌법재판관, 박일환 대법관 등을 대법원장 후보로 함께 검토했으나 이념과 판결 성향 등의 측면에서 양 후보자가 가장 안정적이라고 판단해 지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결정에 법원 관계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모양새다. 양 후보자는 풍부한 사법행정 경험으로 오래전부터 ‘대법원장 1순위’로 거론돼 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후배들 사이에서는 ‘사법행정의 달인’으로 통한다는 후문이다.

36년간 법관으로 재직하다 지난 2월 대법관에서 퇴임한 양 후보자는 주요 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송무국장 및 차장 등 법원행정처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양 후보자가 가장
안정적으로 판단

양 후보자가 두각을 드러낸 건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을 맡으면서다. 당시 양 후보자는 파산재판 절차를 간소화하고 신용불량자 구제제도를 정립했다. 이를 통해 수많은 도산 기업들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법정관리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지법 북부지원장으로 재직할 당시인 2001년에는 남성 우위의 호주제도에 대해 최초로 위헌제청을 했다. 또 2002년 부산지법원장 시절에는 효율적 청사관리와 민원인 위주의 행정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등 행정지원에도 세밀한 면모를 보여줬다. 특히 2003년 법원행정처 차장 때는 형사소송법 개정과 국민참여재판 도입 등의 사법 현안을 매끄럽게 마무리하면서 법원 안팎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개별 사건에 있어서도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줬다. 구체적 타당성을 갖고 해결책을 도출해 국민 권리 보호에 앞장섰다는 평가다. 집회 때 꽃마차 행렬을 하겠다고 신고 후 미신고 품목을 사용한 것을 두고 “집회 방법이 신고한 내용의 범위에서 현저히 일탈하지 않으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놓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동생의 교통사고를 목격한 뒤 수면장애 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인 9세 아동에게도 질환과 교통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도 유명한 판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대법관 재직 시절에는 대부분 다수 의견에 동조하거나 보수적인 판결 성향을 보였다. 이른바 ‘남북공동실천연대’ 사건에서 양 후보자는 “남북 간 교류가 활성화되고 있으나, 적화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북한에 어떠한 실체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반국가단체성을 종전의 대법원 판결과 달리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2009년 ‘삼성특검’ 사건과 관련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에 대해 무죄 의견을 냈다. 2009년 ‘용산참사’ 당시 화재를 일으켜 경찰관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철거민 등에게 중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 법질서 유지에 무게를 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대법관 퇴임 후에는 이례적으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았다. 대신 히말라야와 로키 산맥 트레킹을 떠났다. 그리고 대법원장 후보자에 지명된 최근에서야 귀국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2일 양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며 현재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풍부한 사법행정 경험
‘대법원장 1순위’

9월6일에서 7일 사이 예정된 청문회의 주요쟁점은 ▲대법관 증원 ▲과거사 재심 ▲편향판결 논란 ▲국보법 폐지 ▲사형제 ▲간통죄 ▲사면권 등이다. 양 후보자는 앞서 두 차례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 도덕성 하자나 신상과 관련된 의혹은 모두 털어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번 청문회에선 현안과 관련된 공방이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각 쟁점 대한 양 후보자의 입장은 2005년 대법관 임명 당시 인사청문회와 대법관 재직 시절 표명했던 견해 등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부각될 현안으로는 최근까지 정치권과 사법부가 공방을 벌여온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 문제를 들 수 있다. 양 후보자는 2005년 청문회 당시 사법개혁에 대해 “개혁이라는 게 기존 질서를 뒤엎고 전혀 새로운 걸 도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현재 제도 중 무엇이 잘못됐는지 통찰력과 혜안으로 걸러 제도개선의 의지가 얼마나 강하느냐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법관 증원 문제에 대해선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양 후보자는 “1년에 2만 건이 넘는 사건을 접수·처리하다 보면 정책법원의 역할을 다하기 힘들다”며 “일반 상고사건을 어떻게든 줄여 역할을 할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대법관 증원·과거사 재심·편향 판결 등 7대 쟁점
법조일원화·로스쿨 안착 등 풀어야 할 숙제 산적


이용훈 대법원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한 과거사 청산과 재심 문제에 대해서는 “재판 자체를 내부적으로 다시 점검·조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재판 절차 바깥에서 일어난 일을 재조사하고 그 결과 새 증거가 발견됐을 때 재심을 청구하는 것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전달했다.

사법부의 편향 판결에 대한 외부 비판에 대해 유 후보자는 “재판이 이뤄졌을 때 새로운 방향,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건전하게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너무 감정 섞인 것(대응)은 사법부가 입는 상처가 상당하다”는 태도를 취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에 대해서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정확히 진단한 다음, 국민 여론을 수렴해 국회가 존폐와 개정 여부를 결정할 문제”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또 사형제 폐지와 관련해서는 “폐지됐으면 좋겠으나 국민 여론이 전체적으로 컨센서스를 이루지 않았다고 본다”며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위헌 여부를 심판받게 되는 간통죄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했지만 입법 정책적 측면을 묻는다면 지금으로서는 큰 타당성이 없는 법률인 것 같다”며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을 지켰다.

대통령 사면권과 관련해서는 “사면권을 너무 자주 광범위하게 행사하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사법부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경계했다.

양 후보자의 대법원장 임명은 아직 결정 난 게 아니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과거 두차례 청문회를 무사통과했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양 후보자의 첫 번째 과제는 편향성을 극복하는 것이다. 현재 양 후보자의 보수적인 판결 성향으로 사법부 판결 전체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편향인사를 통해 사법부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양 후보자의 편향성을 판단할 잣대는 오는 11월 바뀌는 2명의 대법관에 누구를 제청하느냐다. 능력이 떨어지지만 이념적 성향이 강한 인사를 대법관에 제청하면 우려가 현실이 될 심산이 크다. 반면 중도 성향을 가진 능력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제청하면 양 후보자의 보수적인 성향이 일선 법원 판사들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위상과 역할의 혼선으로 갈등을 빚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관계 조정도 해묵은 숙제다. 현재 대법원과 헌재를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통합론’을 두고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태다. 대법원에서는 통합론을 지지하지만 헌재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당연히 양 후보자가 내놓을 해법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양 후보자가 통합론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잡음을 최소화하면서 양측의 관계를 봉합하는 게 양 후보자의 임무다.

헌법재판소·대법원
관계 조정해야

현안도 산적해있다. 선결과제는 사법제도 선진화의 도약대가 될 ‘법조일원화’의 안착이다. 법조일원화는 사법연수원생을 법관으로 뽑는 대신 변호사·검사 중 10년 이상 법조경력자를 신규 법관으로 100% 채용하는 새로운 법관임용제도로 2013년부터 단계적 시행에 들어가 2022년에 전면 실시된다. 정치권과의 힘겨운 협상 끝에 로드맵은 마련했지만 세부시행 방안은 아직 미비한 상태다. 따라서 양 후보자는 실행단계에 접어든 법조일원화의 초석을 깔아야 한다. 2009년 도입돼 내년이면 첫 졸업생이 배출되는 로스쿨도 기존 사법연수원생과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탓에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아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

법관의 고유 권한인 양형을 국회에서 법으로 정하는 양형기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요구도 있다. 사법부는 이를 법원의 권위와 독립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무시할 수만은 없다. 따라서 양 후보자는 공감할 수 있는 계획과 비전으로 정치권을 설득함으로써 사법부 주도의 개혁을 끌고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법부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입김이 세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원만한 대외관계를 유지하면서 마찰 없이 외압을 차단하고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나가는 게 차기 대법원장의 역할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 프로필>

2009.02~2011.02 제16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2005.02~2011.02 대법원 대법관
2003.09 특허법원 법원장
2003.02 법원행정처 차장
2002.02 부산지방법원 법원장
2001.02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장
2000.07 서울지방법원 민사수석부장판사
1999.03 서울지방법원 파산수석부장판사
1995.02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1994.07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장
1993.10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1991.02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1989.09 사법연수원 교수
1986 제주지방법원 부장판사
1983.09 서울고등법원 판사
1982.09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
1980.09 대구지방법원 판사
1979.09 서울지방법원 영등포지원 판사
1975.11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1970.08 제12회 사법시험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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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