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유리가 안방극장에서 ‘고부갈등’과의 질긴 인연을 다시 한 번 이어간다. 이유리는 MBC 일일극 <사랑해 울지마>(극본 박정란·연출 김사현)에서 공교롭게도 결혼과 함께 무서운 시어머니를 만나 힘든 고부갈등을 겪어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유리는 앞선 출연작인 <엄마가 뿔났다>에서 시어머니 장미희와 고부갈등을 벌이며 시청자의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새 작품에서도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오히려 이번에는 전작처럼 단순한 갈등에 머물지 않고 시어머니의 구박에 못 이겨 결국 이혼까지 이르는 극한의 상황이다.
‘참한’ 선입견 벗고 새로운 캐릭터 도전
“김수현의 배우·선생님은 연기학교장”
이유리는 <사랑해 울지마>에서 백수로 지내면서 잡지사 아르바이트도 하는 조미수로 등장한다. 솔직하고 따뜻한 성격으로 최근 몇년 동안 그가 출연했던 <엄마가 뿔났다>, <사랑과 야망> 등에서의 얌전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지난 3년 동안 착한 역만 맡다 보니 ‘이유리는 참하고 착할 것 같다’는 좋은 선입견이 생겼어요. 나중에 악역에 다시 도전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타당성 있게 새로운 느낌으로 악역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에는 발랄하고 소리도 막 지르고 쾌활하고 남자 같기도 하고, 안에 있는 것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역할이어서 선택했어요. 한동안 물 속에 있는 아이처럼 차분하고 조용하게 지냈으니까, 이제 물 밖으로 나가야죠.”(웃음)
“오랜 만에 발랄한 연기”
조미수는 잡지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건축가 한영민(이정진)과 인연을 맺게 된다. 한영민과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마음이 조금씩 끌리게 되지만 그에게 결혼할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속내를 표현하지 않는다.
와중에 조미수는 동성보다 더 친하게 지내던 이성친구 장현우(이상윤)와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 후 유산을 하는 등 고부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게 되자 장현우는 조미수를 위해 이혼을 결심한다.
“<엄마가 뿔났다>에 이어 이번에도 독한 시어머니를 만난 셈이죠. 제게도 장현우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다만 실제 제 경우라면 우정이 결혼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요. 애매한 관계를 싫어해서 선을 분명히 긋는 성격인데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다시피한 동성친구도 없기 때문이에요.”
올해 26살인 이유리는 아직 미혼. 하지만 계속 유부녀 역할을 맡은 것을 큰 부담 없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드라마에서 시어머니에게 자주 혼나다 보면 실제로 결혼했을 때는 시어른께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결혼과 이혼은 풍부한 에피소드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연기하기엔 오히려 흥미로워요,”
이유리가 어느 때보다 여유를 보이는 이유는 출연자 중 든든한 버팀목이 있기 때문. 이유리는 <엄마가 뿔났다>에서 가족으로 함께 출연했던 이순재, 강부자와 <사랑해 울지마>에서 다시 한 번 만난다. 강부자는 외할머니이고, 이순재는 시할아버지다.
두 연기자 모두 전작에서 젊은 후배들에게 ‘연기 선생님’으로 통해 이유리는 이번에 다시 호흡을 맞추면서 연기자로 한 단계 도약하는 것을 은근히 기대하는 중이다.
“첫 대본 연습 때 강부자 선생님이 ‘이번에도 잘해보자’고 용기를 북돋아줬어요. 이순재 선생님은 워낙 따뜻하고 꼼꼼하게 연기를 가르쳐 주어 마음 편안하게 할 수 있어요.”
그는 <엄마가 뿔났다>의 김수현 작가의 추천으로 이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다. 김 작가는 <부모님 전상서>, <사랑과 야망> 등에 이유리를 출연시키는 등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왔다.
“김 작가님이 ‘지금까지 맡았던 배역과 다르니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며 이 드라마를 추천하셨어요. 김 작가님은 제게 너무나 고맙고 조심스러운 분이에요. 저를 발굴하다시피 하셨기 때문에 제게 기회를 자주 주시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저는 김 작가님으로 인해 연기 기회를 얻으면서 연기의 폭도 넓히는 행운을 갖게 됐어요.
1999년 MBC <베스트극장>으로 데뷔해 어느 덧 연기 생활 9년을 꽉 채운 이유리. 그녀에게 화려한 스포트 라이트를 받을 기회가 마냥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니시리즈 주연 캐스팅 제의를 받은 상황에서도 가족극을 택했다. ‘화려한 스타’보다는 ‘깊이 있는 연기자’로 성장하고 싶었던 욕심이 컸기 때문이다.
“감히 작품성을 논하며 차기작을 선택해 온 것은 아니에요. 다만 제가 더 많은 표현력을 키우고 발휘할 수 있는 작품 속 역할을 찾은 거죠. 미니시리즈는 크지만 짧잖아요. 역할이 진짜 내가 됐다 싶을 때 작품과 헤어져야 하는 게 좀 싫었죠. 일일극이나 주말극의 경우는 아주 긴 호흡으로 가기 때문에 아쉽지 않을 만큼 역할에 흠뻑 빠져서 살다가 나올 수 있거든요.”
호흡이 긴 드라마를 하면서 이유리는 배우로서 조금씩 성숙해 가고 있다. 이런 좋은 모습은 그녀가 캐릭터 몰입력이 한층 깊고 빨라진 데서 오는 현상이다. 이유리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진짜 나 없이 사는 행복한 나날들”
“사실 이제는 제 실제 성격이 어떤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 성격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아요. 캐릭터에 맞게 빨리 변해버리는 타입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너 악역 맞으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걱정하시는 주위 분들도 있을 정도라니까요.”
이유리는 자주 변하는 자신이 마냥 즐겁다. <사랑과 야망>의 선희 때는 감정을 잘 절제하고 인내할 줄 아는 자신을 얻었고, <엄마가 뿔났다>의 영희가 되면서 상처받으면 곧잘 주눅이 들기도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의 미수를 통해 유쾌 발랄한 평범한 20대 여성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