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면 간다’ 공정위 사정권 기업들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4.09 10:14:39
  • 호수 1161호
  • 댓글 0개

재계 저승사자 철퇴 들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자비는 없다. 걸리면 여지없이 철퇴가 내려진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과거 정부와 달리 각종 불공정거래 현안을 예의 주시한다. 총수 사익편취, 비트코인, 게임 아이템 등 여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사안을 발 빠르게 다루는 중이다. 여기에는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 가릴 게 없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취임한 지 10개월이 됐다. 공정위는 김 위원장 취임 전과 이후로 나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김 위원장은 취임 당시 내부 기강부터 다잡았다. 

심상찮은 움직임
드러나는 타깃

공정위는 사건 처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서 ‘외부인 접촉 관리규정’을 제정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공정위 직원은 관련 업무를 하는 법무법인 변호사나 대기업 직원, 공정위 퇴직자와 접촉했을 때 5일 이내에 반드시 서면 보고해야 한다.

부적절한 로비나 청탁이 없어도 접촉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보고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대면 접촉뿐 아니라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등 비대면 접촉도 포함된다. 정부기관 가운데 외부인 접촉 관련 규정을 도입·운영하는 곳은 공정위가 처음이다.

더불어 김 위원장은 ‘공정위의 특수부’로 불리는 기업집단국(지난해 9월 신설)을 본격 가동시켜 대기업 개혁을 전면에 내세울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기업집단국은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사안을 전담하는 부서로 ‘대기업 저승사자’로 불린 조사국이 폐지된 지 12년 만에 부활했다. 


재벌 개혁 몰아붙이는 김상조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도 신설 

기업집단국은 총 5개과, 54명의 조직으로 꾸려졌다. 공정위 국단위 조직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기존 기업집단과를 세부적으로 분화해 기업집단정책과(13명)·지주회사과(11명)·공시점검과(11명)를 비롯해 시장감시국 내 기능을 끌어온 내부거래감시과(9명)·부당지원감시과(9명) 등 5개 과로 구성했다.  

현재 이들 기업집단국 관계자들이 모두 30대 대기업에 파견을 나간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는 “지금 주요 대기업에 기업집단국 관계자들이 모두 파견 가 있다”며 “각사에 한 명씩 상주하고 있다. 대기업들의 지배구조나 내부거래 사항 등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공정위는 올해부터 대기업을 향한 강도 높은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 첫 시작이 효성그룹이다. 공정위는 자금난에 빠진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개인회사를 살리기 위해 우회적으로 지원에 나선 효성그룹 계열사와 조 회장 등을 ‘총수일가 사익편취’ 혐의로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공정위가 총수 사익편취로 총수 일가를 검찰에 고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단 조석래 명예회장은 직접 지시하고 관여한 증거가 없어 고발 대상서 빠졌다. 

공정위는 지난 3일 “조 회장의 개인회사인 발광다이오드(LED) 제조회사 갤럭시아 일렉트로닉스(갤럭시아)가 경영난·자금난으로 퇴출 위기에 처하자 그룹 차원서 자금 조달을 지원한 행위가 드러났다”고 밝혔다. 


검찰 고발 대상은 조 회장과 임석주 효성 상무, 송형진 효성투자개발 대표이사 등이다. 

공정위는 효성(17억2000만원)과 갤럭시아(12억3000만원), 효성투자개발(4000만원)에 과징금도 부과했다. 조 회장이 지분 62.78%를 보유한 갤럭시아는 2012년 13억원을 시작으로 2014년(157억원)까지 매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14년 말 부채비율이 1829%에 달했고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자비는 없다
불공정 중점

효성그룹은 파생금융상품의 일종인 총수익스와프(TRS) 거래수법을 이용했다.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가 발행한 25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금융회사가 인수하도록 효성투자개발이 사실상 지급보증을 서 줬다. 

효성투자개발은 거액의 신용 위험을 지며 지급보증을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에 제공했지만,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했다. 반면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는 상대적으로 낮은 연 5.8% 금리로 거액을 조달할 수 있었다.

공정위는 갤럭시아만 이익을 얻는 계약에 효성투자개발이 부동산 담보를 제공하며 위험 부담을 떠안은 것은 정상적인 거래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계열사의 부당지원으로 조 회장의 갤럭시아는 퇴출 위기를 모면했고, 저리의 CB발행으로 조 회장은 9억6000만원, 갤럭시아는 15억3000만원의 금리차익을 얻었다고 밝혔다. 
 

경영 승계 과정서 경영실패에 따른 평판 훼손도 막을 수 있었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공정위는 시장논리 상 퇴출당해야 할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가 살아남아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LED조명 시장의 공정한 경쟁 기반을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효성에 이어 한화그룹을 정조준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이날 오전 서울 장교동 한화 본사에 조사관을 파견해 대대적인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총수일가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한화그룹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12일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에 현장조사를 벌였다. 

공정위는 김승연 회장의 아들 3명이 실질적인 지분을 갖고 있던 한화S&C에 그룹 차원의 일감 몰아주기 여부 등을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대상은 한화S&C, 에이치솔루션, 한화, 한화건설, 한화에너지, 벨정보 등 6개사로, 이달 16일까지 조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S&C는 2016년 기준 전체 매출인 3641억 원의 절반이 넘는 2461억원이 내부거래를 통한 매출이었다. 이후 한화그룹은 작년 8월 총수일가가 보유한 한화S&C 지분 44.6%를 2500억 원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를 대비해 지분 정리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있었다.

더불어 하림그룹도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공정위로부터 추가 현장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림은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 취임 후 9개월 동안 7번의 공정위의 현장조사를 받고 있다. 

내부거래 조사
편법승계 도마


하림은 지난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됐다. 공정위는 작년 3월부터 45개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 실태점검서 하림그룹의 부당 지원행위를 포착했다.

공정위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6년 전 아들 김준영씨에게 비상장 계열사 올품의 지분을 물려주는 과정서 문제가 있는지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품은 10조원 이상 자산을 가진 하림그룹의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회사로, 아들 김씨가 100억원대 증여세만 내고 이 회사를 인수했다. 
 

공정위는 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확보한 것과 관련해 하림의 편법 증여와 일감 몰아주기 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사정에 이어 공정위는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의 불공정 약관에 철퇴를 내렸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자기 책임을 피하면서 고객의 수수료로 큰 이익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 조사 결과, 이들 거래소는 시스템 불량, 서버점검, 외부 해킹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상화폐 하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조항을 뒀다. 불가항력 요소, 고객과실 외 발생하는 모든 손해는 사업자가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민법상의 기본원칙조차 위배한 것이다. 

소비자가 해킹 등으로 피해를 입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광범위한 면책 조항을 포함한 불공정 약관으로 거래 위험을 고객에게 떠넘겨왔다. 


특수부 기업집단국 예의주시
30대 기업 상주하며 조사 중

이외에도 ▲특정 업체와의 거래 제한 강제 ▲운영자 자의적 판단에 따른 입출금 제한 ▲광고수신 강제 ▲장기미접속자 가상화폐 임의 처분 ▲손해배상의 금전배상 원칙 위반 등 다양한 불공정 약관을 운영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14개 유형 가운데 가장 많은 불공정 약관을 둔 거래소는 빗썸·코인네스트(10개), 업비트·이야비트(9개) 순이었다.

공정위는 국내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 12개 사업자의 이용약관을 심사한 결과 14개 불공정 약관 조항을 발견하고 시정 권고했다고 지난 4일 밝혔다. 공정위는 각 거래소에 적발한 불공정약관을 시정할 것을 명령한 한편, 미이행 시 검찰고발 수순을 밟을 방침이다.
 

게임 업계도 공정위의 철퇴를 피할 수 없었다. 게임 이용자에게 이른바 ‘뽑기 아이템’(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며 아이템을 뽑을 확률을 부풀려 광고한 게임업체들이 공정위가 적발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모바일·PC용 게임서 이용자가 구매 후 실제로 사용하기 전까지는 구체적인 아이템의 종류나 성능 등을 알 수 없는 ‘상자형’ ‘캡슐형’ 상품을 의미한다. 과도한 현금결제를 유도해 사행성을 조정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던 판매 방식이다.

공정위는 지난 1일 전자상거래법을 위반한 넥슨코리아, 넷마블게임즈, 넥스트플로어 등 3개 게임업체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9억8400만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는 전자상거래법 위반행위에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업체별 과징금은 넥슨(9억3900만원) 넷마블(4500만원) 순이었다. 넥스트플로어에는 과태료 500만원이 부과됐다.

예고되는 
과징금 폭탄

이처럼 공정위의 광폭 횡보에 기업들은 철퇴를 맞을까 몸을 사리고 있는 형국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과거 어느 때보다 공정위의 영향력과 파워가 매서워졌다. 향후 오너 기업들에게는 공정위가 가장 큰 리스크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