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74)희생

온군해 김춘추와 옷을 바꾸고…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내 명색이 당나라 황제로서 그대 보기 민망하오.”

손사래를 치는 당태종의 얼굴에서 아직도 지난 전투의 상흔이 그대로 드러났다. 

비록 안대를 했으나 눈뿐 아니라 안면 신경체계에 적지 않은 이상이 보일정도로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고는 했다.

“폐하, 저희 폐국(弊國, 폐습이 많아 어지러운 나라 혹은 자기 나라를 낮추어 이르는 말)의 불찰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춘추가 다시 머리를 조아리자 이세민이 흡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대를 지그시 눌렀다.


“경에 대한 이야기는 전에 입조한 사람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네만, 황제의 나라를 방문한 느낌은 어떠하오?”

당태종의 환대

“황제 폐하를 알현할 수 있는 이 자체가 그저 커다란 광영이옵니다.”

“그 이야기는?”

“저희 폐국이 황제 폐하를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모습을 시기한 백제의 지속적인 침공이 황제 폐하의 명으로 중지되어 직접 뵐 수 있으니 그로 족합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오로지 폐하의 황은에 감읍할 따름입니다.”“요즈음 백제와의 사이는 어떠하오?”


“황제 폐하의 은총으로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오나 워낙 변덕이 심한 자들이라 언제 다시 침공할지 불안하옵니다.”

“그런 사실은 내 이미 익히 알고 있거늘.”

“하여 황제 폐하께서 지속적으로 하늘과 같은 위엄으로써 다스려주지 않는다면 저들은 기필코 폐국을 침범하고 조공을 바칠 수 있는 기회조차 막고자 할 것입니다. 그것이 걱정스럽습니다.”

“고얀놈들이로고.”

“그런 경우 오로지 바닷길로만 상국에 들 수 있는 저희는 황제 폐하를 뵙는 일조차 불가능해 질 수 있습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소.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내 친히 대군을 이끌고 백제를 정벌할 것이오.”

말을 하는 이세민의 얼굴이 가볍게 떨렸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건 그렇게 처리하기로 하고, 일전에 입조했던 사람이 경과 김유신이란 자에 대해 극구 칭찬하던데 그 자는 어떠하오?”

“폐하, 유신이 비록 약간의 재주를 가지고 있으나 그 모든 바탕에는 황제 폐하의 위엄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혹여 조금이라도 폐하의 위엄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 조그마한 재주 역시 무용지물에 불과하옵니다.”

“당연히 그러하겠지.”

이세민이 거들먹거리며 말을 받고는 턱을 가볍게 쓸었다.


“금번에 짐이 고구려를 친 이유도 그런 맥락이었소.”

“말씀 주십시오, 폐하.”

“짐은 항상 그대 나라에 대해 연민의 정을 지니고 있소. 그런 연유로 그대 나라가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에 끊임없이 침략 당하는 모습을 어여삐 여겨 그 본을 보이고자 한 것이오.”

“그 사실은 폐국의 산천초목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여주가 신으로 하여금 지극정성으로 사은하라는 엄명을 주었습니다.”

이세민이 거듭되는 춘추의 치사에 가벼이 밭은기침을 했다.

“고구려와 백제가 지속적으로 그대 나라에 위해를 가한다면 당나라의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정벌하고 평양성 이남의 땅은 모두 신라에게 주도록 하겠소.”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 폐하!”

춘추가 평양성 이남을 되뇌면서 다시 고개를 조아리자 이세민이 곁에 시립한 장수를 바라보았다.

“짐의 말을 소정방 장군은 항상 염두에 두고 즉각 출전할 차비를 갖추고 있도록 하라!”

“폐하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전이 울릴 정도로 우렁차게 답하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한눈에 대단한 용력의 소유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춘추, 당태종 환대 속에 사신임무 완수
돌아가는 길 마주친 고구려 배 ‘일촉즉발’

“폐하, 소신에게 한 가지 청이 있사옵니다.”“청이라니, 기탄없이 말해보오.”

“저희 폐국이 황제 폐하를 섬겨온 지 여러 해가 흘렀는데 아직 미숙하여 상국의 복제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여 저희 폐국이 상국의 복제를 따를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허허, 그런 일이 있었소. 당연히 그리할 일이오.”

이세민이 바로 그 자리에서 당의 화려한 의복을 내려주고 김춘추와 아들 인문에게 당의 벼슬을 내려줄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간이 이어졌다.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사절임무를 마친 춘추 일행이 바야흐로 신라로 돌아갈 시점이 다가왔다. 

소식을 접한 당태종의 파격적인 환대가 이어졌다. 

그 일환으로 당나라 조정의 3품 이상의 모든 관리들을 소집하여 전송하게 했다.

그에 감읍한 춘추가 다시 당태종에게 부복했다.

“황제 폐하의 하해와 같은 황은에 보답하기 위해 소신의 아들로 하여금 이곳에 남아 숙위(宿衛, 황제를 호위하던 의장대)할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아들로 하여금 숙위라.”

“신에게는 아들 일곱이 있사오니 금번에 함께 온 아들이 황제 폐하께 충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옵소서.”

당태종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으며 기꺼이 허락했다.

춘추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배에 올라 당항성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서해 바다 한 가운데 이르자 저 멀리서 여러 척의 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식을 접한 춘추가 혹여나 자신을 환영하기 위해 나온 신라의 선박이 아닐까하는 호기심에 부풀어 한참을 주시했다. 

그러다 한 순간 흐릿하게 보이는 깃발을 보고 기겁했다.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으나 깃발의 글씨 중에 ‘大高句麗’(대고구려)란 글자가 시선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순간 고개를 돌렸다. 

저만치 어디엔가 당나라 영토가 보이리라 생각했는데 그저 보이는 거라고는 망망대해뿐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고구려의 배들을 주시했다. 

분명 고구려 병사들이 승선하고 있을 빠른 배를 자신이 타고 있는 배로 도망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시선을 주위로 돌렸다. 

뒤에서 작은 배가 따라오고 있었다.

순간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자신의 정체를 고구려 군사들이 알아챈다면 그야말로 답은 죽음밖에 없었다. 

이미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을 만났을 때 당나라와의 관계를 청산하겠다고 약속했던 터였다. 

그 생각이 일어나자 여하한 경우라도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절박감이 온몸으로 번져갔다.

한참 갈등에 사로잡혀 있을 즈음 인부들과 하인들이 승선하고 있는 작은 배가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감지하고 춘추의 배 옆으로 붙어 섰다. 

멀거니 그 배를 바라보는 중에 종사관인 온군해가 춘추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다가섰다.

“대감, 저 배들은 고구려 배들이 확실하지요?”

“그러네, 바로 고구려 배라네.”

“그렇다면 무얼 그리 망설이십니까?”

“그게 무슨 소린가?”

“어서 옷을 벗으십시오.”

“옷이라니.”

“서둘러 제 옷과 바꾸어 입자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대감께서는 빨리 작은 배로 신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온군해의 말을 들으니 춘추의 가슴에 뭉클한 기운이 치솟았다.

“그럴 수는 없네.”

“이놈도 사람답게 살고 갔다는 이름을 남기고 싶습니다. 그동안 이 놈은 대감 덕분에 호의호식하였습니다. 그러니 대감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온군해가 말을 마치고는 그 자리에서 큰 절을 올렸다. 

순간 춘추가 고개를 돌려 배에 달린 깃발을 바라보았다.

온군해의 희생

‘新羅 角干 金春秋’(신라 각간 김춘추) 아뿔싸 하는 생각과 함께 춘추가 엎어져 있는 온군해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자네의 진정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네.”

춘추의 눈동자가 붉게 충혈되었다.

“아니옵니다, 대감. 그저 이 몸이 조금이라도 소용될 수 있음에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이보게, 아니 대아찬!”

대아찬(大阿飡)이라는 소리에 온군해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갔다. 

그도 그럴 것이 대아찬은 십칠 관등 중 다섯째로 진골만이 오를 수 있는 관등이었고 온군해는 결코 그 직급에 오를 수 없는 육두품의 신분이었다.

“내 자네의 희생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네.”

“어찌 저 같은 놈이. 대아찬이라니 당치않으십니다.”

“그도 부족하이. 여하튼 자네 가족을 위해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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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