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우리 흉내를 내보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는지요.”
“하면 우리를 당나라 영토로 끌어들이겠다는.”
연개소문이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는 듯 턱을 괴고 침묵을 지켰다.
“이 놈들 그냥 박살내버리지요!”
연정토의 분노의 소리를 들으며 연개소문이 선도해를 주시했다.
“하문 있으십니까?”
“아니오. 내가 직접 그를 확인해보고 싶어 그러오.”
“직접 현장에 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저들의 진정이 무엇인지 현장에서 살펴보아야겠소.”
“어디로 가시렵니까?”
파안대소
“우진달이란 놈의 행태를 보아야겠소. 어차피 이세적이란 놈은 일전에 부딪친 적이 있으니.”
연개소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도해가 두루마리 지도를 펼쳤다.
당나라와 고구려의 국경 그리고 고구려의 성들이 일목요연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세적의 부대가 이리로 온다면.”
요동을 지적하던 연개소문이 압록수(압록강)로 시선을 돌렸다.
“이세적의 부대가 요동으로 진군하고 있다면 우진달의 군사들은 바로 이곳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선도해가 압록수 가까이 위치한 석성(石城)과 적리성(積利城)을 가리켰다.
“혹시나.”
“말씀하시지요, 전하!”
“저들이 곧바로 평양성으로 오지 않을까 그런다오.”
연개소문이 연정토를 주시했다.
“전하, 소장이 신명을 바쳐 보필하겠사옵니다.”
연정토의 걸쭉한 소리에 모두가 파안대소했다.
“대감, 그러면 소신은 어찌할까요?”
“책사는 이세적이 들어오는 요동으로 가서 그들의 행태를 살피시지요.”
선도해와 그의 경호를 위해 소수의 정예병을 요동으로 보낸 연개소문이 압록수로 향했다.
혹여나 모를 일이었다.
적리성 근처에 있는 박작성에 들러 작금의 상황을 전하며 지시사항을 하달하고 곧바로 석성으로 이동했다.
석성에 도착하여 성주에게 당나라 군사들의 모습이 나타나면 백성들을 적리성으로 보내고, 병사들로 하여금 나가 싸우다가 적의 변죽을 올리고 곧바로 퇴각하라는 지시사항을 하달하고 적리성으로 이동했다.
석성의 경우 이만의 적군을 감당하기에는 여건이 열악했고 또한 당나라 군사들이 고구려 군사를 유인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고구려 영토로 끌어들여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우진달의 당군이 고구려 영토에 들 즈음 요동의 선도해로부터 시시각각 전황이 전해졌다.
결국 이세적은 요동의 조그마한 성 몇 개를 공격하였는데 결국 선도해의 소개 작전으로 조그마한 이익도 건지지 못하고 애꿎은 성에 불만 지르고 철군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보고를 접했다.
선도해가 연개소문이 머물러 있는 적리성에 도착했을 무렵 우진달이 이끄는 당군이 석성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를 살핀 석성의 성주가 연개소문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속사정을 알 길 없는 당군이 석성에서의 승리에 도취되어 거침없이 진군하여 적리성에 이르렀다.
그곳에 이르자 곧바로 공격을 감행하지 않고 성 가까이 진을 치기 시작했다.
진이 완성되자 당군에서 한 사람이 말을 몰아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고구려를 벌하기 위해 온 이해안이다. 성주는 어서 항복하여 목숨을 건사하라.”
성루 한쪽에서 그를 바라보던 연개소문이 적리성 성주인 종덕에게 눈짓을 주었다.
종덕이 느릿느릿 성루 한 가운데로 이동했다.
“어서 오시오, 장군. 적리성 성주인 종덕이오.”
종덕의 부드러운 말투에, 혹은 말소리가 너무 작아 알아듣지 못했는지 이해안이 거리를 좁혔다.
연개소문 계략…당나라 유인책
우진달의 죽음…전의 상실한 당
“성주는 어서 항복하지 않고 뭐하는 게요. 어서 황제 폐하의 명을 받잡도록 하시오!”
“지금 황제 폐하라 하였소?”
“그렇소, 황제 폐하요!”
종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그러는 게요.”
“내 익히 들었는데, 당나라 왕은 황제 폐하가 아니라 쥐새끼라고.”
이해안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모양으로 멍한 표정으로 종덕을 응시했다.
“말귀가 어두운 모양인데 내 다시 일러 주리오?”
그제야 정신 들었는지 이해안의 얼굴이 벌겋게 변해갔다.
“네 이놈, 죽지 못해 환장했느냐!”
“돌아가서 쥐새끼에게 전하시게. 조만간 고구려가 네 놈들을 소탕할 것이라고.”
종덕의 차분한 말에 이해안이 기수를 돌려 당의 진지로 돌아가기를 잠시 후 함성과 함께 당의 공격이 감행되었다.
그를 살피던 연개소문이 즉각 지시 내리자 고구려 군 역시 성문을 열고 부대를 출정시켰다.
이어 접전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흡사 용호상박의 형태로 진행되다 오래지 않아 고구려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성루에서 그를 살펴본 연개소문이 퇴각의 북소리를 울리자 고구려군이 슬금슬금 후퇴하여 성으로 들어왔다.
“성주 이놈, 어서 항복하지 못하겠느냐!”
고구려군을 바짝 뒤쫓던 당군이 내친 김에 바로 적리성 아래 도열한 시점 한 장수가 앞으로 나섰다.
“네놈은 또 누구냐!”
“나는 청구도행군대총관인 우진달이다. 어서 항복하여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라!”
“이보시게 나 알겠는가!”
성주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선도해가 나섰다.
우진달이 잠시 선도해를 주시하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놈은!”
“놈이 아니라 대 고구려의 책사인 선도해라 하느니라.”우진달이 막상 말은 해놓고 선도해를 알아보지 못하겠다는 듯 시선을 집중했다.
“내 일찍이 너희들이 황제 폐하라고 하는 쥐새끼 상태를 점검하러 들어갔었던 분이니라. 그런데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고구려를 넘보다니 너희들이 정녕 죽지 못해 환장한 게로구나.”
“뭐라, 네 이놈!”
우진달이 분에 겨운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순간 성루에서 삼족오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 이놈, 나 대 고구려의 막리지 연개소문이다. 가서 이세민에게 조만간 내 직접 목을 취하겠노라 전하거라!”
삼족오기
말을 마침과 동시에 연개소문의 활에서 화살이 떠났다. 잠시 후 기세등등했던 우진달이 고통소리와 함께 칼을 떨어트리자 어깨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고구려 진영에서 북소리와 함성이 이어지고 갑작스런 상황에 전의를 상실한 당군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저놈들을 모두 죽이도록 하라!”
연개소문의 외침과 함께 성문이 열리며 고구려 군사들이 급하게 치고나가자 당나라 진영이 어지러워지며 급격하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살피던 연개소문이 선도해에게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대감, 기병을 보낼까요?”
“당연하오. 한 놈도 살아 돌아가지 못하도록 해야겠소.”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