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68) 전면전

  • 황천우 작가 shs@ilyosisa.co.kr
  • 등록 2018.01.23 08:17:23
  • 호수 1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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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소탕작전 개시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우리 흉내를 내보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는지요.”

“하면 우리를 당나라 영토로 끌어들이겠다는.”

연개소문이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는 듯 턱을 괴고 침묵을 지켰다.

“이 놈들 그냥 박살내버리지요!”

연정토의 분노의 소리를 들으며 연개소문이 선도해를 주시했다.


“하문 있으십니까?”

“아니오. 내가 직접 그를 확인해보고 싶어 그러오.”

“직접 현장에 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저들의 진정이 무엇인지 현장에서 살펴보아야겠소.”

“어디로 가시렵니까?”

파안대소

“우진달이란 놈의 행태를 보아야겠소. 어차피 이세적이란 놈은 일전에 부딪친 적이 있으니.”


연개소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도해가 두루마리 지도를 펼쳤다.

당나라와 고구려의 국경 그리고 고구려의 성들이 일목요연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세적의 부대가 이리로 온다면.”

요동을 지적하던 연개소문이 압록수(압록강)로 시선을 돌렸다.

“이세적의 부대가 요동으로 진군하고 있다면 우진달의 군사들은 바로 이곳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선도해가 압록수 가까이 위치한 석성(石城)과 적리성(積利城)을 가리켰다.  

“혹시나.”

“말씀하시지요, 전하!”

“저들이 곧바로 평양성으로 오지 않을까 그런다오.”

연개소문이 연정토를 주시했다.

“전하, 소장이 신명을 바쳐 보필하겠사옵니다.”

연정토의 걸쭉한 소리에 모두가 파안대소했다.


“대감, 그러면 소신은 어찌할까요?”

“책사는 이세적이 들어오는 요동으로 가서 그들의 행태를 살피시지요.”

선도해와 그의 경호를 위해 소수의 정예병을 요동으로 보낸 연개소문이 압록수로 향했다.

혹여나 모를 일이었다.

적리성 근처에 있는 박작성에 들러 작금의 상황을 전하며 지시사항을 하달하고 곧바로 석성으로 이동했다.

석성에 도착하여 성주에게 당나라 군사들의 모습이 나타나면 백성들을 적리성으로 보내고, 병사들로 하여금 나가 싸우다가 적의 변죽을 올리고 곧바로 퇴각하라는 지시사항을 하달하고 적리성으로 이동했다. 


석성의 경우 이만의 적군을 감당하기에는 여건이 열악했고 또한 당나라 군사들이 고구려 군사를 유인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고구려 영토로 끌어들여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우진달의 당군이 고구려 영토에 들 즈음 요동의 선도해로부터 시시각각 전황이 전해졌다.

결국 이세적은 요동의 조그마한 성 몇 개를 공격하였는데 결국 선도해의 소개 작전으로 조그마한 이익도 건지지 못하고 애꿎은 성에 불만 지르고 철군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보고를 접했다.

선도해가 연개소문이 머물러 있는 적리성에 도착했을 무렵 우진달이 이끄는 당군이 석성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를 살핀 석성의 성주가 연개소문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속사정을 알 길 없는 당군이 석성에서의 승리에 도취되어 거침없이 진군하여 적리성에 이르렀다.

그곳에 이르자 곧바로 공격을 감행하지 않고 성 가까이 진을 치기 시작했다.

진이 완성되자 당군에서 한 사람이 말을 몰아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고구려를 벌하기 위해 온 이해안이다. 성주는 어서 항복하여 목숨을 건사하라.”

성루 한쪽에서 그를 바라보던 연개소문이 적리성 성주인 종덕에게 눈짓을 주었다.

종덕이 느릿느릿 성루 한 가운데로 이동했다.

“어서 오시오, 장군. 적리성 성주인 종덕이오.”

종덕의 부드러운 말투에, 혹은 말소리가 너무 작아 알아듣지 못했는지 이해안이 거리를 좁혔다.

연개소문 계략…당나라 유인책
우진달의 죽음…전의 상실한 당

“성주는 어서 항복하지 않고 뭐하는 게요. 어서 황제 폐하의 명을 받잡도록 하시오!” 

“지금 황제 폐하라 하였소?”

“그렇소, 황제 폐하요!”

종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그러는 게요.”

“내 익히 들었는데, 당나라 왕은 황제 폐하가 아니라 쥐새끼라고.”

이해안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모양으로 멍한 표정으로 종덕을 응시했다.

“말귀가 어두운 모양인데 내 다시 일러 주리오?” 

그제야 정신 들었는지 이해안의 얼굴이 벌겋게 변해갔다.

“네 이놈, 죽지 못해 환장했느냐!”

“돌아가서 쥐새끼에게 전하시게. 조만간 고구려가 네 놈들을 소탕할 것이라고.”

종덕의 차분한 말에 이해안이 기수를 돌려 당의 진지로 돌아가기를 잠시 후 함성과 함께 당의 공격이 감행되었다.

그를 살피던 연개소문이 즉각 지시 내리자 고구려 군 역시 성문을 열고 부대를 출정시켰다.

이어 접전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흡사 용호상박의 형태로 진행되다 오래지 않아 고구려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성루에서 그를 살펴본 연개소문이 퇴각의 북소리를 울리자 고구려군이 슬금슬금 후퇴하여 성으로 들어왔다.

“성주 이놈, 어서 항복하지 못하겠느냐!”

고구려군을 바짝 뒤쫓던 당군이 내친 김에 바로 적리성 아래 도열한 시점 한 장수가 앞으로 나섰다.

“네놈은 또 누구냐!”

“나는 청구도행군대총관인 우진달이다. 어서 항복하여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라!”

“이보시게 나 알겠는가!”

성주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선도해가 나섰다.

우진달이 잠시 선도해를 주시하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놈은!”

“놈이 아니라 대 고구려의 책사인 선도해라 하느니라.”우진달이 막상 말은 해놓고 선도해를 알아보지 못하겠다는 듯 시선을 집중했다.

“내 일찍이 너희들이 황제 폐하라고 하는 쥐새끼 상태를 점검하러 들어갔었던 분이니라. 그런데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고구려를 넘보다니 너희들이 정녕 죽지 못해 환장한 게로구나.”

“뭐라, 네 이놈!”

우진달이 분에 겨운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순간 성루에서 삼족오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 이놈, 나 대 고구려의 막리지 연개소문이다. 가서 이세민에게 조만간 내 직접 목을 취하겠노라 전하거라!”

삼족오기 

말을 마침과 동시에 연개소문의 활에서 화살이 떠났다. 잠시 후 기세등등했던 우진달이 고통소리와 함께 칼을 떨어트리자 어깨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고구려 진영에서 북소리와 함성이 이어지고 갑작스런 상황에 전의를 상실한 당군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저놈들을 모두 죽이도록 하라!”

연개소문의 외침과 함께 성문이 열리며 고구려 군사들이 급하게 치고나가자 당나라 진영이 어지러워지며 급격하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살피던 연개소문이 선도해에게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대감, 기병을 보낼까요?”

“당연하오. 한 놈도 살아 돌아가지 못하도록 해야겠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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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