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조선왕조실록 세조 3년(1457) 6월4일 기록이다.
『命都承旨韓明澮、右議政鄭昌孫, 問安于明使(도승지 한명회·우의정 정창손에게 명나라 사신에게 문안하게 명하였다.)』
얼핏 봐도 단번에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도승지는 임금의 비서실장으로 정3품에 불과하고 우의정은 삼정승 중 하나로 정1품의 관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히 우의정에 앞서 도승지를 내세웠으니 아리송하지 않을 수 없다.
이뿐만 아니다. 동년 6월11일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실려 있다.
『命都承旨韓明澮、知中樞院事金何, 詣太平館, 請陳鑑等(도승지 한명회·지중추원사 김하에게 태평관에 나아가 진감(명나라 사신) 등을 청하도록 명하였다.』
지중추원사는 궁궐을 수비하며 군사 기밀을 전달하는 등 군사 관계를 맡았던 중추원의 종2품 관직이다. 비록 한 단계에 불과하지만 한명회보다 명백하게 위 직급으로 이 역시 서열을 파괴한 예로 살필 수 있다.
이는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칫하면 중요한 범죄로도 취급 받을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관은 도승지 한명회를 앞세웠다. 물론 세조의 명이 그러했는데 왜 이게 가능했을까. 상기 기록보다 앞선 동년 3월의 기록이다.
『도승지 한명회에게 명하여 술을 올리게 하고는 임금이 말하기를, “정난(靖難)의 일은 한명회가 했고, 나는 한 일이 없다” 하였다. 한명회가 또 세자에게 술을 올리니, 임금이 세자를 돌아보고 이르기를, “한명회의 술은 다른 사람의 술과 같지 않으니, 네가 한명회와 더불어 마땅히 큰 잔을 마셔야 한다”하고는 종친과 대신에게 이르기를, “한명회는 비상한 사람이다” 하였다.』
도승지 한명회를 향한 발언 내용은 파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심지어 권력의 동반자로까지 인정하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명회는 결코 자만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간파하며 생전에 영화를 누린다.
이제 시선을 현재의 도승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돌려보자.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UAE를 방문한 일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최근 그가 자신의 페이스 북에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베트남 정치지도자인 호치민의 철학인 이불변 응만변(以不變應萬變,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 가지 변화에 대응한다)을 인용하며 “새해를 맞아 가슴에 담은 경구로 대통령을 가까이 모시면서 새삼 ‘진심과 정성’의 중요성을 배운다. 대통령은 이 변하지 않는 원칙으로 모든 변화를 헤쳐가고 있다.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으로서 올해는 나도 열심히 따라 해보려 한다”고 덧붙였다.
참으로 주제 파악 안 된다는 느낌이 단번에 들어온다. 비서실장이란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말을 빌어 은근히 자신의 의지를 천명했고 더불어 “나도 열심히 따라 해보려 한다”는 말 때문이다.
도승지에 불과한 자신을 흡사 대통령에 빗대고 있다. 아마도 자신이 한명회를 능가하는 인물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명심해야 한다. 천하에 한명회도 감히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임 실장의 행태를 살피면 노무현정권 시절에 횡행했던 ‘참여’정신이 떠오른다.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이 행담도 개발에 참여하고, 철도청 차장이 시베리아 석유개발에 참여하고….
이제는 한 술 더 떠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직무를 따라하겠다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으니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그냥 “열심히 보필하겠다”는 한 마디로 끝내고 말지.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