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포비아로 본 2017년 대한민국

1년 내내 공포 속에서 살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17년도 이제 일주일 남짓 남았다.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 가상화폐 광풍, 연예인 죽음 등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 간다. 2017년은 그 어느 때보다 공포에 민감한 해였다. ‘포비아’라는 단어가 올 한해를 관통하는 키워드라 해도 무방할 정도. <일요시사>는 연말을 맞아 숱한 사건사고로 불거진 공포증을 되짚어봤다.
 

‘포비아(공포증)’는 두려움이나 공포를 의미하는 그리스어로부터 왔다. 객관적으로 볼 땐 위험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은 상황이나 대상을 필사적으로 피하고자 하는 증상을 가리킨다. 올 한 해는 특정 단어와 포비아가 합쳐진 ○○포비아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돌았다. 굵직한 사건사고가 만들어낸 사회적 공포의 등장이다.

무섭다
공포증↑

▲도그(개) 포비아 =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증가했다. 그 인구는 2017년 현재 10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5가구 중 1가구는 강아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른바 펫족(Pet+족)에 합류한 셈이다. 펫족은 반려동물을 친구나 자식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펫족의 성향은 곧바로 시장의 활성화를 이끌어냈다. 좋은 사료나 간식은 물론 옷이나 목줄, 방석 등 반려동물이 먹고 사용하는 물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최근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호텔, 이동 가능한 택시도 등장했다. 

농협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반려동물 관련 시장 규모는 2012년 9000억원서 2015년 1조8000억원, 지난해 2조3000억원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20년에는 5조8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자신의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펫티켓, 이른바 반려동물과 함께 다니면서 지켜야 할 예절을 어기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면서 목줄을 하지 않은 개가 사람을 물어 죽이거나 상처 입히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10월에는 전남 여수서 목줄 풀린 진돗개가 길 가던 고등학생의 허벅지를 무는 사고가 발생했다. 7월에도 경북 경주시의 한 주택가서 산책을 나온 일가족이 진돗개에 물려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각종 사건사고로 공포증 증가
반려견 공포부터 회식 기피까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14∼2017년 개 관련 사고 부상으로 병원 이송한 환자’ 기록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개 물림으로 병원에 이송된 환자는 1125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2015년 월 평균 154.3명, 2016년 175.9명이 이송된 것과 비교해 올해는 상반기에만 월 187.5명이 개에게 물려 병원 신세를 졌다.

그 결과 ‘도그 포비아’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도그 포비아는 한정식 식당 한일관 대표가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 최시원의 반려견에 물린 뒤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확산됐다. 


CCTV 등으로 확인된 사실에 따르면 최씨의 가족들은 반려견을 산책시킬 때 목줄을 하지 않았다.

목줄을 하지 않거나 풀린 개에 대해 해당 견주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자 정부는 공공장소서 목줄이나 입마개를 하지 않는 등 반려견 관리에 소홀한 견주에 과태료 부과 기준을 높이는 등 처벌기준을 강화하는 ‘개파라치’ 제도의 도입을 예고했다. 

일각에서는 도그 포비아가 혐오 감정으로 번져 펫티켓을 잘 지키는 일반 견주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푸드(음식) 포비아 =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거리 안전에 민감하다. 올 한 해는 여느 때보다 음식 관련 사고가 잦았다. 먹거리에 대한 각종 사건사고는 푸드 포비아를 확산시켰다. 푸드 포비아는 식탁에 오르는 음식을 믿을 수 없어 섭취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계란을 둘러싼 문제는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사태로 연초부터 계란 수급에 차질이 생겼다. 이어 지난 7월 유럽서 시작된 살충제 계란 사태가 국내까지 번졌다. 계란은 우리 식탁에 오르는 가장 흔한 식재료 중에 하나였기에 그 여파는 더 컸다.
 

정부는 전국 모든 산란계 농장의 계란 출하를 전격 중단하고 잔류 농약 검사를 실시했다. 전수 검사 과정서 전국적으로 52개 농장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31개 농가는 친환경 인증을 받은 곳으로 밝혀졌다.

대처과정서 주무부인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엇박자를 내면서 국민들의 불신은 더욱 커졌다.

피프로닐, 비펜트린 등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계란들은 모두 폐기 처분됐고 대형마트들 역시 판매를 중단했다. 연초부터 AI로 치솟은 계란 값은 살충제 사태를 거치면서 또 다시 몇 배로 치솟았다. 

정부는 피프로닐에 오염된 계란을 성인이 하루 126개까지 먹어도 위험하지 않다고 발표하면서 국민들의 원성만 샀다.

유럽서 발생한 간염 소시지 파문도 국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식약처는 유럽서 햄과 소시지로 인한 E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자가 급증했다는 정보에 수입·유통 중인 유럽산 비가열 햄·소시지의 유통과 판매를 잠정 중단시켰다가 해제하기도 했다. 

E형 간염은 주로 감염된 물이나 덜 익은 돼지고기 등을 통해 감염되는데 대부분 경미해 증상만 앓고 넘어가지만 간혹 간 손상이나 간 부전을 일으키기도 한다.


고기 패티가 덜 익은 햄버거를 먹은 5세 어린이가 용혈성요독증후군에 걸렸다는 주장이 제기된 이후 햄버거 포비아가 확산되는 일도 발생했다. 속칭 햄버거병이라 불라는 용혈성요독증후군은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의 일종으로 신장이 불순물을 제대로 걸러주지 못해 체내에 쌓이면서 발생한다. 

1982년 미국서 덜 익힌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먹고 이 병에 걸렸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붙은 것이다. 해당 어린이의 부모는 한국 맥도날드를 식품위생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과도한 오버
혐오로 발전

▲케미(화학물질) 포비아 = 화학물질 공포는 올해도 사회를 덮쳤다. 여성환경연대가 김만구 강원대 교수팀이 조사한 ‘생리대 방출물질 검출 실험 결과’를 발표하면서 1회용 생리대에 독성물질이 검출됐다는 게 알려졌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여성들은 공포와 불신을 동시에 표출했다. 이 과정서 제품명에 알려진 제조사는 소비자 불안이 극대화 되자 전량 환불을 결정하기도 했다.

식약처는 의료·분석·위해평가 전문가로 구성된 생리대안전검증위원회를 통해 생리대서 검출된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가 인체에 흡수되는 전신 노출량과 독성 참고치를 비교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최대 검출량을 기준으로 해도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누적된 공포
학습효과 돼

이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인한 학습효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우리 사회에 케미 포비아를 불러들인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가습기 살균제는 2000년 국내에 처음 유통됐고 흡입으로 인한 폐 질환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때는 2006년부터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1년 8월에서야 보건당국은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 위험 요인이라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시민단체가 추정한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1239명(8월 기준)에 달했으며 실제 피해자 규모는 20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기부 포비아 = 연말이면 거리나 자선 단체 등에서 느낄 수 있던 기부 열기가 차갑게 얼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부에 대한 불신이 싹텄기 때문이다. 기부한 돈의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는 점과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서 행한 선행이 특정인의 호화생활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부 심리가 얼어붙은 모양새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을 꼽을 수 있다. 집에 놀러온 딸의 친구에게 수면제를 먹여 성추행 하려다 들키자 살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과거 희귀병인 거대 백악종을 앓고 있는 부녀로 알려졌던 천사표 아빠는 희대의 악마로 대중 앞에 다시 모습을 보였다.

이영학이 경찰에 검거되면서 그의 악행이 차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이영학이 후원금으로 고급 외제차를 구입하는 등 호화 생활을 누렸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분노가 들끓었다. 이영학은 13억원의 후원금 중 정작 딸의 병원비로는 700만원만 입금했다.

특정 사건 사회적 공포로 번져
‘어금니 아빠’ 사건 기부 열기↓

8월에는 결손아동돕기 단체인 새희망씨앗 관계자들이 2014년부터 기부 받은 128억원 중 2억원가량만 실제 불우아동을 돕는 데 쓰고 나머지는 호화관광, 고가 수입차나 아파트 구매 등에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줬다. 

일각에서는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들의 성금 유용사건, 세월호 참사, 국정농단 사태 등 대형 사건의 여파가 우리 사회 전반의 신뢰를 감소시켰다고 지적한다.

기부 포비아의 확산은 즉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은 목표 금액을 1% 달성할 때마다 1도씩 올라간다. 지난 14일 기준(19일차) 모금액은 1113억원으로 27.9도를 기록했다. 
 

2∼3년 전과 비교했을 때 크게 낮은 수치다. 희망2016나눔캠페인 당시 2015년 12월15일(17일차)에는 모금액이 1411억원 모여 41.1도였다. 지하철역서 모금운동을 벌이는 구세군 자선냄비 자원봉사자들도 예년에 비해 도움의 손길이 줄었다고 토로했다.

▲지진 포비아 = 지난 11월15일 경북 포항시에 규모 5.4의 지진이 덮쳤다. 포항 지진은 지난해 9월 발생한 경주 지진(규모 5.8)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이 지진으로 다음날 예정됐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주일 연기되는 등 피해가 상당했다. 

밤새 여진이 포항을 덮치면서 시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부서지면서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은 체육관서 생활하는 등 불편을 겪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강진이 일어나면서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진 안전국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져 나갔다. 

인식은 공포증으로 발전했다. 포항 지진 발생 이후 11번가나 G마켓 등 온라인 오픈마켓에선 생존 구호용품 매출이 급증했다. 평소 판매가 별로 없던 카세트 라디오의 판매량이 3배 가까이 급증한 것은 재난 상황서 정부의 방송을 청취할 목적으로 구매했다는 분석이다.

포항 지진을 포함, 최근 2년 새 규모 5.0을 웃도는 지진이 4차례나 이어지면서 내진설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우리나라는 지진에 특화된 구조물 안전 설계인 내진설계를 적용한 건축물이 20%에 불과하다. 

국토교통부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윤영일 의원에게 제출한 ‘전국 건축물 내진설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내진설계 대상 건축물 273만 8172동 중 내진확보가 된 건축물은 56만3316동에 그쳤다.

내진설계 현황이 드러나자 고층 건물이나 노후건축물을 기피하는 현상이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또 포항 지진 당시 필로티 구조 건축물의 피해가 크게 발생하면서 필로티 구조 건물에 사는 시민들의 불안은 높아진 상태다.

여기에 시민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진 발생 횟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이재민들은 집으로 돌아갈 엄두조차 못 내는 형편이다. 심한 경우 휴대폰 진동음 같은 사소한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정부는 심리적 불안을 호소하는 시민이 늘자 재난심리지원단을 꾸려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에이즈 포비아 = 에이즈 포비아는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고 맹목적으로 믿으며 이에 따른 막연한 불안감과 정신적 증상을 호소하는 것을 뜻한다. 2014년 사단법인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산하 에이즈상담센터 상담건수는 전화와 인터넷, 대면상담 등을 합쳐 1만1000건을 넘는다. 

다만 이 중 실제 감염인은 1.8%(200명) 수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에이즈 감염자는 담담히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에 에이즈에 감염된 여성이 채팅앱을 이용, 성매매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역 사회에 에이즈 포비아가 창궐했다. 지난 10월 부산에선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숨기고 성매매한 20대 여성이 검거됐다. 
 

이 여성은 2010년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지난 5월서 8월 사이 10∼20차례에 걸쳐 채팅앱을 이용해 성매매를 한 전력이 있다고 진술했다. 채팅앱은 추적이 어려워 상대 남성은 확인이 안 된 상황이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에이즈 감염사실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에이즈 자가 검사 키트’를 구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을 중심으로 에이즈 자가 검사 키트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 

에이즈 자가 진단기는 구강액을 검사기로 훑은 다음 전개액에 담아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오프라인 약국서도 판매량이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식 포비아 = 송년회 시즌을 맞아 쏟아지는 회식을 기피하는 회식 포비아가 증가하고 있다. 여성들은 술자리 성추행 문제, 남성들은 술을 강권하는 문화 때문에 회식을 꺼리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여기에 장기자랑까지 시키면 그야말로 최악의 회식자리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최근 회식 문화가 조금씩 바뀌고는 있다지만 여전히 ‘음주가무’는 대세다. 구인구직 사이트 사람인서 직장인 62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송년회식에 대한 설문조사서 회식 형태는 음주가무형이 70%로 가장 많았다. 정작 직장인들은 ‘저녁 대신 점심’ ‘콘서트 등 문화 활동’ ‘호텔 뷔페 등 고급스런 식사’ 등을 선호했다.

특정 사건으로
기피증 생기기도

직장인의 절반 이상(57%)은 송년 회식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수치는 남성(46.9%)보다 여성서 71.8%로 크게 높았다. 부담을 느끼는 이유로는 ‘늦은 시간까지 이어져서’를 1순위로 꼽았다. 이어 ‘연말을 조용히 보내고 싶어서’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 ‘임원들과 회식 부담’ ‘과음하는 분위기’ 등이 기피 이유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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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