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문화 만신창이’ 유인촌 문화특보

MB 사랑 먹고 사는 ‘공공의 적’ 돌아왔다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촌사마’가 돌아왔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문화특보 ‘완장’을 차고 이명박 대통령 곁으로 돌아왔다. 지난 1월 장관직에서 물러난 지 6개월 만이다. 그러나 축포는 울리지 않았다. 환호와 박수소리도 없다. 국민들 표정도 오묘하다. 마치 벌레를 씹었을 때의 그것과 같다. ‘촌사마의 귀환’이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좌파 인사들은 스스로 물러나라” 발언으로 정쟁 첫발
‘회피연아’ 동영상 유포 네티즌 고발…파리 잡으려 진검

전북 완주 출신인 유인촌 문화특보는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온 정통 연기자다.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둘째아들 ‘용식’ 역을 22년간 연기해 시청자들로부터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유 특보는 1990년 현대건설의 성공신화를 다룬 TV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 역을 맡으면서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런 인연으로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는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맡았으며 대통령선거 때는 선거유세에 함께 나서 열성적으로 돕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깊은 신임을 바탕으로 지난 2008년 2월 문화부장관에 올랐다. 이로써 유 특보는 영화감독 출신 이창동 전 장관, 연극인 출신 김명곤 전 장관에 이은 ‘탤런트 출신 문화부장관’이 됐다.

현대건설 드라마로
MB와 인연 맺어

유 특보는 MB정부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히던 ‘경제적 특권층’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재산 140억원이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큰 걸림돌은 아니었다. 유 장관은 스타였고 CF에도 많이 출연했다. 재산 증식과정을 20여년 간 국민이 TV를 통해 지켜봐온 셈이다. 선하고 친근한 동시에 책임감 있는 이미지를 수십년 간 지켜온 탤런트 출신 정치신인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타업종에서 확고한 인지도와 지위를 쌓은 사람도 일단 정계에 입문하면 이미지 하락을 겪게 되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유 특보의 이미지 하락도 어느 정도는 예견돼 있었다. 그러나 유 특보의 경우 하락을 넘어 추락을 했다. 떨어지는 것엔 날개가 있다는 통념도 그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나락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수직하강 했다. 모든 게 그의 부적절한 언행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건 취임 직후.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임기직 산하기관장 등에 대해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발언을 하면서다. 문화계 요직을 장악한 좌파 인사들은 스스로 물러나라는 압박이었다. 당연히 해당 인사들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문화예술을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것이냐는 비판이었다.

유 특보는 아랑곳 하지 않고 물갈이 작업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15살이나 많은 선배에게 반말을 하는 등 무례한 언사가 폭로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유인촌 장관이 나를 쫓아내려고 여러 사람이 모인 기관장회의 때 반말로 지시를 하면서 모욕을 줬다”며 “(재임 시절) 막말과 삿대질, 회유와 압력 때문에 괴로웠다”고 고백했다. 김 전 관장은 “내 발로 걸어 나가게 하려고 유 장관이 일부러 모욕을 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에 대한 ‘불타는 사랑’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낭패를 본 일도 있다. 지난 2008년 청와대서 열린 올림픽 선수단 초청 만찬에서 IOC선수위원으로 선출된 문대성씨에게 “대통령께서 만들어 주신 거야”라고 말한 것. 그의 IOC위원 선출과 관련해서 국가예산이 2억여 원 들었다는 것이었다.

이 ‘공개 아부발언’에 진땀을 빼야 했던 건 문화부 실무자들이었다. 문화부 대변인실은 국회 7층 기자실을 다섯 차례나 찾아 “접대비나 선물비 같은 IOC 규정에 어긋나는 로비자금으로는 일절 쓰이지 않았고, 홍보물 제작이나 베이징 현지 체제비, 항공료, 통역비 등에 전액 소요됐다”고 일일이 해명해야 했다. 자기 부처 장관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문씨의 IOC위원 박탈뿐만 아니라 올림픽에서 태권도 종목 배제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문화부 실무자들의 초조함이 배어있는 대목이다.

국민들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문화부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학부모를 향해 “세뇌 당하셨네요”라고 말하는 동영상이 공개된 것. 이 영상에 따르면 유 특보는 문광부 정문 앞에서 1인시위 중이던 학부모에게 “자제 분이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내가 다 확인을 해드렸고 믿음을 줬다. 학부모께서 이렇게 오실 필요가 없다”면서 시위를 철회해달라는 입장을 전했다. 시위 학무모가 “부모 된 입장에서 생각해 달라”고 요청하자 유 특보는 “학부모를 왜 이렇게 세뇌 시켰지?”라고 말했다. 이 일로 야당의 집중포화가 이어졌고 유 특보는 만신창이가 됐다.

MB 공개 아부발언에
문화부 진땀 빼기도

그의 ‘막말시리즈’의 정점은 단연 지난해 국회에서의 폭언이다. 자신을 ‘MB의 졸개’라 부르는 야당 의원의 발언에 유 특보는 애꿎은 사진기자들을 향해 “성질이 뻗쳐서” “찍지마. 에이 씨X” 등의 폭언을 퍼부었다.

시위 학부모에 “세뇌 당했다”…기자에 “찍지마, X발”
문화예술계 ‘공공의 적’…“그래서 배우로 못 돌아갔나”

문제가 커지자 화들짝 놀란 유 특보는 고개를 숙이며 사태를 진화하려 했으나 반응이 썩 좋진 않았다.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당시 유 특보는 “국민 여러분과 언론인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고 언짢게 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한다”면서도 국감장에서의 상황이 자신을 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럴만 했다는 것이었다. 형식적인 사과에 비난이 줄을 이었다.

‘막나가는’ 유 특보에 굴욕을 안겨준 사건도 있다. ‘회피연아’ 동영상이 바로 그것. 이 동영상에는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선수단이 입국하던 지난해 3월 유 특보가 인천공항에 마중을 나가 김연아에게 화환을 걸어주고 어깨를 다독이려고 할 때 김연아가 몸을 뒤로 빼는 듯한 모습이 담겨 있다. 물론 이 영상은 원본이 아니다. 중간 부분을 잘라 실제 속도보다 빠르게 돌린 편집본이었다. 네티즌들은 이 영상을 빠르게 퍼 날랐고 이를 본 국민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유 특보 단 한명만은 웃지 않았다. 대신 해당 동영상을 제작?유포한 네티즌을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했다. 파리 한 마리 잡으려 진검을 빼든 형국이었다. 비난의 화살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그러자 유 특보는 “지난날 이 동영상을 유포한 네티즌을 고소했던 것은 인터넷 악플에 대한 교육적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은 오히려 네티즌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네티즌들은 “국민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냐”고 분통을 터트렸고 논란의 불씨는 더욱 크게 타올랐다.

결국 사태는 유 특보가 해당 네티즌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면서 일단락 됐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마음속엔 앙금이 남았다. 이 때문에 유 특보는 역으로 네티즌들에 고소를 당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한 네티즌이 유 특보를 아이패드 불법사용자라며 중앙전파관리소에 신고한 것.

당시 전파관리소는 “아이패드에 대해 전파인증과 형식등록을 거치지 않은 채 유통·판매하는 행위에 대해 금지했다”며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해 처벌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방침대로라면 아이패드를 사용한 유 특보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 된다. 전파법에 따르면 인증 받지 않은 방송통신기기 등을 이용하거나 관련 불법행위를 저지르면 최대 2000만원 이하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퍼져나가자 문화부는 “브리핑이 전자출판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아이패드를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처럼 수많은 논란을 뒤로 한 채 유 특보는 지난 1월26일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가 장관직을 맡은 지 약 3년만의 일이었다. 현 정부 장관 중에서는 최장수였고 역대 문화장관 중에서는 김영삼정부 5년 동안 재직한 오인환 장관에 이어 두 번째였다.

장관 퇴임 이후 유 특보는 안양교도소 소년원생들에게 연기지도를 하고 각종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이 같은 행보에 세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장관을 그만 두고 배우로 돌아갈 것이란 예측이 어긋난 때문이었다.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중의 조롱을 받으며 예전에 가지고 있던 친근한 이미지를 대부분 잃어버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화예술계에서 평가가 좋지 않아 복귀가 쉽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우세했다.

유 특보는 장관 재임시절 문화계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문화예술의 자율성 회복을 위한 미술인’은 성명을 통해 “문화예술의 자율성을 위기에 빠뜨린 유인촌 장관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들도 나섰다. ‘한예종 사태를 염려하는 영화감독 100인’은 “완장과 명찰의 정치를 예술과 학문의 영역에까지 끌어들이지 말라”고 비판했다.

유 특보의 옛 ‘나와바리’도 다르지 않았다. 연극 연출가와 배우 등 연극인 1037명은 “문화와 예술의 환경조차 관치로써 재단하는 퇴행적 행태는 문화대중 및 예술인의 자존심과 정신적 생명권을 참담한 지경으로 유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가운데엔 그의 제자도 끼어있었다. 이 모든 참상이 불과 그의 장관 취임 1년 반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쯤 되니 그가 어째서 배우로 돌아갈 수 없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심지어 믿었던 정부마저 등을 돌렸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는 2008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에서 92개 공공기관 중 최하위인 E등급을 받았다. 또 ‘경고’ 조치를 받은 17개 기관 중 무려 23%에 해당하는 4개 기관(방송광고공사ㆍ체육진흥공단ㆍ국제방송교류재단ㆍ예술의전당)이 문화부 산하였다.
이 같은 업적(?)에 누구도 그가 돌아올 것이라고는 기대치 못했다. 그러나 이 같은 예상을 보기 좋게 깨고 유 특보는 장관 퇴임 6개월만에 이 대통령 곁으로 돌아왔다. 유 특보를 향한 이 대통령의 ‘무한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번 인사로 유 특보는 이변이 없는 한 출발을 같이한 이 대통령과 퇴진도 같이하는 ‘순장 참모’가 될 전망이다.

이기명 후원회장
“MB랑 같이 죽어라”

이를 두고 이기명 전 노무현 대통령 후원회장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유인촌 잘 생각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죽어야지”라고 평했다. 그는 “확실히 문제가 심각하다. 대통령이 잘못된 여론을 듣고 있음이 분명하다”며 “그렇게 비난을 받은 유인촌 문화특보라니. 해도 정도가 있다”며 강하게 꼬집었다.





<유인촌 문화특보 프로필>

이명박 대통령의 ‘무한사랑’

학력


중앙대학교 대학원 연극학 석사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한성고등학교 

경력

2008.02~2011.0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2008.01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부위원장
2008.01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위원회 상근자문위원
2007.04 대덕연구개발특구 홍보대사
2007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 문화예술정책위원장 직무대행
2005.11 제2기 환경부 환경홍보사절
2004~2007.01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2002.03 산림청 산림홍보대사
2001.09~2004.03 중앙대학교 아트센터 소장
2000.10 환경부 환경홍보사절
2000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1997.08~2004.03 중앙대학교 예술대 연극학과 조교수
1997.06 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
1997~1999 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
1996.06 제35차 IAA 홍보위원, 공식모델
1974 MBC 공채탤런트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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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