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부업’ 상장사 사외이사 대해부

일당 1000만원짜리 한 마디 “오너 말에 동의요~”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거액의 연봉을 받지만 하는 일은 거의 없다. 1년에 열 번 정도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게 전부다. 그마저도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다. 혹 가더라도 올라온 안건에 찬성표만 던지면 된다. 그래도 걱정은 없다. 책임질 게 없어서다. 이는 모두 기업·금융권의 사외이사 얘기다. 이들이 이처럼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업무를 외면한 채 오너가 주는 떡고물을 받아먹고 있는 사이 소액주주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현대제철, 연봉은 9700만원…하루 임금이 970만원  
총 2685건 중 사외이사의 반대로 부결된 안건 4건

국내 100대 상장사 사외이사들의 연봉이 공개됐다. 이들은 최대 1억원 가량의 연봉을 받으면서 1년에 약 열흘만 이사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당이 1000만원 수준인 셈이다. 그야 말로 ‘신이 내린 부업’이다.

최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제철 사외이사의 평균 연봉은 9700만원이었다. 이 회사 사외이사가 정기?임시 이사회에 참석한 날은 모두 열흘. 하루 임금이 970만원 꼴로 계산됐다.

현대모비스 9400만원
LG전자 8300만원

현대제철 사외이사들은 이사회의 분과위원회인 윤리위원회, 감사위원회 위원으로서 각각 별도의 회의를 했다. 하지만 개최일은 이사회 날과 같았다. 이 기업의 사외이사 평균 연봉은 등기이사의 15억5700만원보다는 적지만 직원들의 7000만원보다는 많았다.

현대모비스 사외이사들의 평균 연봉은 9400만원이었으며 모두 11차례 정기·임시 이사회에 참석했다. 1차례에 855만원인 셈이다. 이 회사 사외이사 역시 윤리위와 감사위 위원을 겸직하고 있으나 회의 날은 정기·임시 이사회와 겹쳤다.

LG전자 사외이사 연봉은 8300만원이었다. 10회의 정기·임시 이사회를 고려하면 일당은 830만원으로 환산됐다. 또 현대차 8100만원, SK텔레콤 7800만원, LG 7600만원, 기아차 7100만원 등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 사외이사 연봉은 6000만원으로 중간 수준이었다. 금융기관인 신한지주는 5100만원, 우리금융은 4700만원으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사외이사들의 연봉이 공개되자 하는 일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평소 회사 현안을 고민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해당 회사들의 항변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연봉수준이라는 게 대체적인 정서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사외이사에게 이처럼 많은 돈을 주는 까닭은 뭘까. 그 해답은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감사위 회의 등에 참석해 활동한 내역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100대 상장기업의 이사회 안건은 모두 2685건이었다. 이 가운데 사외이사의 반대로 부결된 것은 전체의 0.15%인 4건에 불과했다. 또 전체 사외이사 466명 중 찬성 이외의 의견(반대·보류·기권·수정의결·조건부찬성)을 단 한 번이라도 낸 사람은 46명(9.8%)에 그쳤다.

나머지 90.2%는 어떤 안건이 올라오건 무조건 찬성표를 던졌다. 이사회에 올라온 2685개 안건 중 사외이사의 반대로 부결된 것도 4건이 전부였다. 웬만하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는 얘기다. 오너 입김이 강한 기업일수록 반대의견이 적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작년에 9차례 이사회를 통해 31개의 안건을 처리했으나 사외이사 4명 중에서 반대의견을 제시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사회 산하 내부거래위원회는 대규모 내부거래를 심의했으나 소속 사외이사 3명이 모두 찬성했다.

오너가 결정하는
선임구조가 문제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이사회를 13차례 열어 28건을 심의했지만 사외이사 4명은 한 번도 반대하지 않았다. 최대주주와의 거래 승인, 계열사에 대한 유상증자 등의 안건이 사외이사의 100% 찬성으로 통과됐다. LG화학 이사회 역시 임원에게 특별상여금을 지급하는 방안 등 24건의 안건을 심의했지만 반대의견은 없었다.

여기서 문제는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노릇을 한 안건 중에 임원 특별상여금 지급, 계열사 유상증자 참여, 회사채 발행한도 승인 등 소액주주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사안도 포함됐다는 점이다. 사외이사들의 무책임한 ‘손들기’에 대한 피해가 소액주주에 고스란히 전가 될 수 있단 얘기다. 결국 사외이사들이 고액의 연봉을 챙기면서도 ‘대주주 견제와 비판’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소액주주 권리를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사외이사들은 어째서 거수기로 전락하는 걸까. 그 이유는 사외이사 선임구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외이사는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주주총회가 선임하게 돼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너, 대주주, 최고경영자, 기존 이사가 사실상 결정권을 행사한다. 그러다 보니 오너의 고향 친구, 대주주의 학교 동문, 사장의 친인척 등이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것이다. 정년퇴직이 가까워진 인사들이 ‘어디 사외이사 자리 없나’라는 농담 섞인 진담을 동문 조직에 흘리는 진풍경이 형성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너 입김이 강한 기업일수록 사외이사 반대 적어
소액주주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사안도 다수 포함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외이사진에는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인사가 포진해 있다. 경영진 의견에 반대할 만한 인사는 애초 싹이 잘린다. 사외이사들이 독립성을 가지기 어려운 구조다.

독립성은 고사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모두 이런 불합리한 선임구조 때문이다. 이런 사외이사들이 회의 때마다 무더기로 상정되는 안건들을 제대로 들여다볼 리 만무하다. 결국 사외이사들의 안건 심의가 형식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사외이사제는 IMF사태 이후 지배주주를 비롯한 이사의 직무 집행을 감시 ·감독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투자자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지난 2001년 도입됐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사외이사는 대기업의 거수기로 전락했다. 기업의 경영 감시는 엄두도 못 낸다. 경영진 의사를 기계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물론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제도 운영에 있다. 

이런 폐단을 없애려면 무엇보다 지배주주가 전권을 휘두르는 사외이사 선임 구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주주 입김을 최대한 배제하고 공익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들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외이사 법적
책임 부여해야”

일각에서는 사외이사에게도 경영실패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이지수 변호사는 “사법부가 법을 적극 해석해 사외이사들도 법적 책임에 부담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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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