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000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 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냈다. <일요시사>가 김 대표의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백수가 된 나는 흡사 흐느적거리는 낙지와 비슷했다”
‘여성 전용바’ 창업에 박차를 가하지만 자금난에 부딪혀
■ 또 다시 무너진 꿈
그렇게 YX클럽은 승승장구를 하고 있었다. 문화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여성음주문화를 바꿔나가는 선두 주자의 역할을 했으며 경영학적으로는 새로운 ‘블루오션’의 개척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써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3개월 동안 밤의 세계는 YX가 휘어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회장님이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그의 얼굴에는 이미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부사장, 이곳에서 더는 영업을 못하겠어. 이 호텔이 헐린다고 하네. 업장을 옮겨야 되겠는데.”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옮겨야 하면 옮겨야 했다. 이제 겨우 반석 위에 올려놓은 여성음주 문화를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나와 성사장님은 강남역을 이 잡듯이 뒤집고 다녔다. 그래서 겨우 찾은 것이 강남역 인근의 아데나라는 나이트였다.
이곳은 한때 큰 호황을 누렸지만 주변에 우후죽숙처럼 클럽들이 생겼고 그에 따라 과거의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전체적인 공간으로 봐서는 아데나가 훨씬 작았지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그마저도 황송할 따름이었다. 가장 큰 타격은 쇼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에 이제 더 이상 쇼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50테이블 이상이 꽉꽉차는 영업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나로서는 기사회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다시 일주일 후, 또다시 절망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오후 2시, 밤샘 영업을 한 후 한참 잠들어 있을 시간에 끊임없이 핸드폰이 불안한 벨소리를 울렸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벌떡 일어섰다.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상황에서 헐레벌떡 영업장으로 뛰어갔다.
업장에 있던 모든 집기들은 큰 트럭에 실려 있었고 입구는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대못질이 되어 있었다. 바닥에 그만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이유는 ‘명도 소송’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경매를 통해 부동산을 낙찰받았음에도 불구하고 6개월 동안 점유자가 자진해서 집기를 비워주지 않을 때는 재판을 통해 강제로 점유자를 내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전전세로 들어온 우리들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아데나에서의 꿈은 또 다시 무너져 버렸다. 하늘도, 땅도 야속했고 원망스러웠다. 세상은 이 김동이 편이 아니었다. 수많은 마담과 선수들의 눈빛이 아련했다. 그들을 책임지고 싶었지만 이제 더 이상 나에게 그럴 만한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나 둘씩 떠나가기 시작했고 여성음주 문화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려는 나의 꿈마저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꿈을 잃은 사람은 방황을 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세상이 싫어지고 사람도 만나기 싫은 게 당연하다. 하루 아침에 ‘부사장’에서 백수가 된 나는 흡사 흐느적거리는 낙지와 비슷했다.
“동이야 뭐해?” 호스트빠에서 알게 된 순수한 여자 친구 지희였다. 만나자고 했지만 만나고 싶지 않았고 술을 사주겠다고 했지만 술을 먹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끈질겼다. 맥빠져 있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단단히 마음 먹고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다.
포장마차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희가 소주를 따라줬다. “나 요즘 재미있는데서 술마신다” 뭔 뜬금없는 이야기냐. 관심도 없었고 흥미도 없었다. “그냥 일반적인 포장마차인데, 잘생긴 남자애들이 써빙을 하고 말동무도 해주고 그래. 거기 장사 엄청 잘되거든” 눈이 번쩍 뜨였다. “가자, 거기 어디야?” 지희의 말을 듣는 순간 그곳에 새로운 답이 존재하고 있다는 육감이 떠올랐다. 그리 멀리 않은 곳이라 곧 그곳을 찾아갈 수 있었다. 총 다섯명의 잘생긴 미남들은 손님들과 편안하고 능숙하게 대하면서도 분위기를 유쾌하고 이끌어가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맑았고 그들이 하는 행동에는 가식이라곤 전혀 보이질 않았다. 그것은 나에게 또 하나의 영감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호빠에 찌들어 살았던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저것이었다. 여성 손님과 남성 웨이터 간의 건전하고 밝은 문화, 음주를 즐기지만 절제가 있고, 서로의 아름다움을 유쾌하게 즐길 줄 아는 문화. 또한 거기에는 그 어떤 인위적인 것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었고, 손님은 손님으로서 그 모든 서비스들을 누릴 뿐이었다.
“지희야 집에 가자”
“왜 벌써 가려고?”
“미안하다. 다음에 보자. 집에 가서 할 일이 좀 있을 것 같아서”
■ 새로운 세계 경험
컴퓨터에 워드프로그램을 띄워 놓고 한자 한자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여성 전용바 창업 계획서’
드디어 ‘김동이의 레드모델바’의 전신이라고할 수 있는 ‘레드모델바’에 대한 컨셉이 완성됐다. 그때부터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나만의 사업을 하나씩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우선 어렵사리 돈을 구해 업장을 마련했고 나 스스로가 인테리어에 참여했다. 돈이 많았으면 일급 인테리어업자에게 모두 맡기면 편하겠지만, 당시 나의 상황은 그게 아니었다.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목수 두명과 함께 인테리어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는 유난히도 추운 겨울이었다. 공사가 밤늦게까지 계속될 때는 한쪽에서 톱밥 냄새를 맡으며 쪽잠을 자기까지 했다. 너무 추운 날에는 5만원 짜리 석유 난로를 구입하기도 했다. 꽁꽁 언 손을 녹여가며 망치질을 하고 합판을 이리 저리 옮기며 하나씩 완성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은 구석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 속에서 한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는 것은 ‘직원과 고객을 위한 인테리어’라는 것이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고급스러움이 덜 할지 모르지만, 직원들이 편하게 일하고 고객들이 즐겁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 30분을 있어도 3시간을 있어도 즐거울 수 있는 인테리어. 그것이 고객감동이고 고객본위의 영업이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