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미스터리 부부 김광석 & 서해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10.10 11:40:06
  • 호수 11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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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돌팔매…마녀인가 마녀사냥인가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경찰이 ‘가수 김광석의 딸 서연양 사망 사건’ 재수사에 나섰다. 영화 <김광석>을 통해 김광석의 타살 의혹이 조명된데 이어 그의 딸까지 살해됐다는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현재 두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된 인물은 김광석의 부인 서혜순씨다.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제작한 영화 <김광석>서 김광석 타살 의혹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김광석>은 이 기자가 그의 죽음에 관한 의혹들을 20여년 간 취재해 재구성한 작품이다. 사망 당일 기록부터 유족들의 최근 얘기까지 담아내며, 김광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친다. 

한편의 영화로 
다시 떠오르다

이 영화에서는 유력한 용의자로 부인 서해순씨를 지목했다. 지난 8월3일 서울 용산구 용산 CGV에서 열린 언론 시사회서 이 기자는 “탐사보도 쪽 일을 해와서 김광석 자살은 평소 관심을 가져온 사건 중 하나”였다며 “MBC서 다루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사건은 공소 시효가 지났다. 진실을 밝히는 유일한 방법은 서해순씨가 나에게 소송을 거는 것”이라고 오히려 상대방을 도발했다.

김광석의 갑작스런 사망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1996년 1월6일 자택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당시 아내와 술을 마셨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목에는 전선이 감겨있었다. 사망 원인은 여자 문제로 인한 우울증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영화는 이 사실을 뒤집는다. 죽은 사람이 남긴 일기를 근거로 아내 서씨가 자신의 고교 동창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그것 때문에 김광석이 괴로워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경찰은 서씨의 진술에 따라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 내렸지만 서씨를 제외한 유족들은 모두 “김광석이 자살할 리 없다”고 확신했다. 

이 기자는 “처음 김광석 아버지는 취재를 만류하셨다. 그러다 돌아가시기 전에 창신동 집으로 불러 녹음테이프를 꺼내주며 ‘취재를 막은 건 (서씨 때문에) 내 아들에 이어 다른 가족도 해를 입을까 두려워서 그랬다’고 말했다.

공개되지 않은 테이프에는 더한 내용도 담겨있다”고 이야기했다. 

이 외에도 김광석이 사망 직전 지인과 새 앨범을 계획했다는 사실과 누구보다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다는 점 등을 들어 그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영화는 서씨가 사망 당일과 이후 진술이 오락가락하다는 점에 집중한다. 또한 그가 과거 범죄 전력이 있고 신분 세탁 뒤 김광석과 사기 결혼을 했다는 사실도 밝혀낸다. 

서해순은 정말 남편과 딸 죽였나  
죽음 둘러싼 풀리지 않는 의혹들

영화는 어디까지나 의혹 제기일 뿐이다. 사건을 뒤집을 결정적 증거는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기자도 인정했다. 


그는 “심증과 믿음은 100%지만 결정적 단서가 되는 스모킹 건이 없다. 1%의 여지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1996년과 달리 지금은 인터넷이 있다. 네티즌 수사대의 힘을 믿는다”며 “영화를 통해 집단 양심을 가지고 진실을 밝히고 싶다. 그런 의도서 제작했다”고 전했다.
 

현장에는 두 명의 변호사가 함께 자리했다. 이들은 영화 기획단계부터 법적 부분에 대해 조언을 했다. 작품이 만들어진 후에는 여러 번 반복해 보며 팩트를 체크했다. 

서씨와의 법적 소송에 대해 묻자 한 변호사는 “민감한 사항 가지고 만든 다큐멘터리다. 그래서 법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언하며 만들었다. 소송에 대한 모든 부분을 염두해 두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광석 타살 의혹에 이어 그의 딸 서연양도 이미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김광석 유가족 등이 지난 19일 용인동부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하는 과정서 드러났다. 유가족들은 지난 10년간 서연양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서연양이 2007년 12월 23일 집에서 쓰러진 것을 어머니 서씨가 발견해 수원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졌다”고 밝혔다. 이어 “서연양이 폐질환을 앓고 있었던 병원 진료 기록이 있었고 부검 결과 폐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확실해 변사로 내사 종결했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딸 잘 있다’
왜 거짓말?

사망 당시 서연양은 16세였다. 서연양은 김광석과 서씨 사이에 태어난 유일한 자식으로 어릴 때부터 발달장애가 있었다. 김광석 사망 후 아내 서씨와 함께 살았고 서씨는 주위에 ‘딸은 미국서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연양은 김광석의 음악 저작권(작사·작곡가가 갖는 권리)과 저작인접권(음반제작자 등이 갖는 권리)의 상속자였다. 김광석과 관련 저작권 수입은 서씨와 서연양에게 귀속되고 있으며 전반적인 저작권 관리는 서씨가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서씨는 김광석이 사망한 지 3개월 만에 시아버지를 상대로 저작권 청구 소송을 냈다. 이후 12년 간 법적 분쟁이 이어졌다. 2008년 10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은 딸 서연이에게 모든 저작권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발달장애’로 금치산자로 지정된 서연양의 경제권은 모두 서씨에게 돌아갔다.  

이에 이 기자는 서연양 사망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했다. 그는 유가족과 함께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서씨를 상대로 고소·고발장을 접수했다. 

유족 측의 김성훈 변호사는 “"서연양의 사망과 관련 경찰 발표, 병원진료 기록 검토와 재조사가 필요하다”며 “서씨가 김광석 저작권과 관련해 벌인 여러 건의 소송서 서연양의 사망 영향이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고발 접수 6일 후에 해당 사건을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이첩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이날 서울중앙지검은 “경찰청이 신속한 사건 해결을 위해 수사 인력이 풍부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수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며 “경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광수대로 수사 주체를 변경해 지휘한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해당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 6부에 배당했다. 또 서씨의 주소지를 고려해 관할 경찰서인 중부서가 수사하도록 했다. 검찰은 서씨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광석의 형 광복씨가 경찰에 출석하며 서씨가 "거짓말로 일관한다"고 비판했다. 광복씨는 지난달 27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출석해 고발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그분(서씨)이 하는 말이 사실과 너무나 다른 거짓이 많다”며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말했다.

조카인 서연양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심경이 어땠냐는 질문에는 “하나밖에 안 남은 광석이 혈육인데 흔적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며 “광석이 죽고 나서 미국에 3년 떨어져 있었는데 혼자 얼마나 외로웠겠나. 너무 불쌍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서연양과 왕래가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서씨가 보기 싫어 멀리했을 뿐 서연양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서씨는 이런 의혹에 대해 격앙된 태도로 해명했다. 

지난달 27일 CBS <노현정의 뉴스쇼>에 출현한 서씨는 ‘억울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먼저 서씨는 이 기자에 대해 “ 그분이 왜 나를 20년간 쫓아다니고 괴롭히는지 알 수 없다. 왜 국민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건가”라며 “같이 만나서 얘기하자고 말해 달라. 난 잠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해 안가는
해명과 반박

앞서 서씨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서연양의 죽음을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경황이 없어서”라고 답해 논란에 부채질을 했다. 

이에 대해 서씨는 “독일, 미국 등을 돌아다니며 검사를 했다. 그러나 (서연이가) 키도 안 크고 심장도 제대로 작동을 안했다”며 “우리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장애우 키우는 엄마들은 그들이 잘못되면 마음으로 묻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서씨는 서연양의 죽음과 저작권 소송에 대한 의혹에 대해 “서연이 몫(저작권료)이 탐나면 가져가길 바란다. 난 고지만 안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심지어 담당 변호사에게까지 서연양의 죽음을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그런 관행을 몰랐다”고 밝혔다.  
 

서씨는 김광석의 부검소견서를 공개하겠다고도 선언했다. 이뿐만 아니라 자신을 향한 비난의 시선에 “국가 인권위원회에 제소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날 서씨는 약 30분의 인터뷰 내내 잔뜩 격앙된 태도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심지어 “여자 혼자된 사람을 왜 남자들이 괴롭히는가”라며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다. 

김광석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새롭게 제기된 가운데 또 다시 세상은 그를 조명하고 있다. 김광석은 싱어송라이터이다. ‘가객’ ‘노래하는 시인’ ‘노래하는 철학자’로도 불렸다. 

2014년 제5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장이 추서됐다. <사랑했지만>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먼지가 되어> 등 그가 남긴 명곡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사랑 받고 있다. 

<이등병의 편지>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삽입돼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 남성들을 울리고 있다. 군대하면 생각나는 노래다. 이 곡이 김광석 개인에게도 의미가 큰데 그는 군에서 사고사한 형으로 인해 이등병으로 전역했다. 아울러 〈서른 즈음에〉는 2007년 음악 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됐다.

그녀가 입 열수록 의문 꼬리
해외 행적까지 추가로 드러나 

또한 2010년 그가 태어난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에는 그를 기리는 ‘김광석 거리’(행정명: 김광석다시그리기길)가 조성돼 350m 길에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다양한 벽화와 작품들이 들어서 명소가 됐다. 

김광석은 1964년 1월22일, 경상북도 대구시 대봉동 방천시장 번개전업사서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창신동(현재는 종로구 관할)으로 이주하여 서울창신초등학교, 경희중학교, 대광고등학교를 나왔다. 중학교 시절 현악부 활동을 하며 선배들로부터 바이올린을 다루고 악보를 보는 법을 배웠으며 대광고등학교 시절 합창부로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
 

1982년에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이후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서 공연을 시작했다. 1984년 ‘12월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해 활동했다. 

1985년 1월 입대했으나 군 생활 중 큰형(김광동)이 사망함으로 인해 6개월 단기사병(방위병)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다. 

복학해 다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해 1, 2회 정기공연에 참여한다. 1987년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을 결성해 동물원 1집과 2집을 녹음했다. 1989년 10월 솔로로 데뷔하여 첫 음반을 내놨으며 이후 1991년에 2집, 1992년에 3집을 발표했고, 1994년에 마지막 정규 음반인 4집을 발표했다. 

검찰 재수사
과연 결과는?

정규 음반 외에 리메이크 앨범인 다시부르기 1집과 2집을 1993년과 1995년 각각 발표했다. 1991년부터 학전 등의 소극장을 중심으로 꾸준히 공연했으며 1995년 8월에는 1000회 공연의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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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