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격세지감 ‘지하철 신풍속도’ 엿보기

단지 교통수단? 이젠 놀러오세요!

지하철이 확 달라졌다. 가까운 거리를 출·퇴근하거나 이동할 때만 타던 지하철이 이제는 여행을 위한 수단으로, 또 각종 문화시설을 겸비한 곳으로 바뀌며 이용객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이렇게 단지 교통시설로만 이용되던 것으로부터 이제는 즐길거리로 변모한 지하철, 그리고 대중들의 편의를 위해 더욱 발전된 모습의 지하철에 대해 취재했다.

지난 6월29일 2호선 왕십리역. 점심시간대인 12시15분. 신도림행 열차가 들어오고 한 70대의 노신사가 지하철에 탔다. 의자에 앉아있던 60대 가량의 할머니가 노신사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일어섰다. 이 노신사는 “내가 더 힘이 센 데 비켜주니 고맙다”며 “전화번호 좀 가르쳐줘”라고 말했다. 자리를 양보해 준 할머니는 노신사의 집요한 요구에 지쳐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했다.

당일치기 여행 가능
어르신들 주로 이용

사실 이 노신사는 지하철을 타기 전에도 승강장에 있던 비슷한 연령의 할머니에게 “나이 먹어서 외로운데 전화번호 좀 알려 달라”고 말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렇게 나이든 어르신들에게 외로움은 달랠 수 없는 서러움이다.

하지만 최근 지하철은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인 곳으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은 무료로 지하철을 탈 수 있다. 이들은 지하철로 이곳저곳을 무료로 여행한다. 예전 같으면 무료로 어딘가를 여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현재 지하철은 저 멀리 충남 천안·아산, 강원도 춘천, 경기도 문산까지 운행되고 있다.

종로3가역에서 만난 김모(73·남)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친구들과 같이 지하철을 타고 아산에 가서 온천을 하고 천안에 가서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온다”며 “옛날 같으면 버스로 왔을 거리를 지하철을 통해 편하게 오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지하철을 이용해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이러한 곳에서 성매매를 한다는 내용도 불거져 나오면서 더욱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2010년 12월에는 경춘선이 개통됨으로써 강원도로 향한 발걸음도 한결 쉬워졌다. 물론 이 개통으로 인해 추억 속의 춘천 가는 기차의 로망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누구나 더욱 쉽게 춘천을 오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반기고 있다.

충청도·강원도까지 지하철 연결돼 여행하기 좋아
지하철역사에 각종 문화시설 대중공간으로 탈바꿈

특히 방학을 맞아 이날은 학생들로 더욱 붐볐다. 상봉역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23·여)씨는 “며칠 전에 시험이 끝나 남자친구랑 바람도 쐴 겸 춘천으로 놀러간다”며 “경춘선이 개통되고 나서는 당일치기로도 춘천에 가는 것이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하철은 이제는 단지 교통수단만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 혹은 친구, 가족과 함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여행의 매개체가 되고 있다.  

지하철은 여행수단만이 아니다. 이제는 지하철역 내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지하철역이 단지 지하철을 타러 들어가고 나오고 표를 사는 곳에 그쳤지만 지금의 모습은 너무 다르다. 각 거점이 되는 역사마다 각종 문화시설이 꾸며져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대중적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특히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는 한걸음 더 젊은 층과 교류하고 공감하기 위해 여러 행사들을 진행한다. 하루의 약 10번, 연간 2500회 정도의 예술무대를 지하철역에서 열어 발을 디딜 틈 없이 갑갑했던 지하철역사를 문화공연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이 무대에 서는 예술인들도 1년에 한 번 오디션을 통해 발탁돼 페루, 멕시코 등의 외국인 연주가에서부터 댄스동아리, 아카펠라그룹까지 다양한 콘셉트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이 외에도 3군데의 역에 미술관을 설치해 대중들에게 미술작품들을 쉽게 감상할 수 있게 하고 시민노래자랑 등도 개최해 장기를 뽐내도록 한다.

역에 미술관 장터 운영
친근감 느끼도록 해

이렇듯 자주 이용하는 지하철에서 대중들이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게 만듦으로 인해 지하철에 대한 이미지 자체를 예술적으로 바꾸고 있다.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도 역사마다 새로운 재미를 부여한다. 주요 역사에 서점을 열어 미디어에 중독된 대중들에게 한 번쯤 책을 읽어볼 수 있는 신선한 기회를 제공한다.

또 팔도 농·특산물을 지하철역에서 판매하며 다양한 지역의 물품들을 맛 볼 수 있는 재미도 제공해준다.

이렇게 지하철역이 어두침침한 공간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 누구나가 즐기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의 이미지로 변모한 것에서 최근 지하철에 달라진 풍속도를 엿볼 수 있다.

최모(44·여)씨는 “시대가 변할수록 지하철의 분위기도 점점 트렌드에 맞게 변하는 것 같다”며 “약속이 있어 지하철역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주변에 구경할 만한 것들이 많아 결코 지루하지가 않다”고 답했다.    

지금은 지하철 문화가 다양하게 변모하며 대중들의 시선을 끌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하면 떠오르는 것은 ‘잡상인’들이었다.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던 지난 6월29일, 지하철에는 우연찮게 잡상인들이 보였다. 비오는 때를 맞춰서인지 우비·우산을 파는 사람들 일색이었다. “비오는 날의 필수품 우비, 집에 하나씩 갖다놓고 이 장마철에 대비해 보세요”라는 단련된 말투와 어색하지 않은 표정이 많은 연륜을 쌓은 듯 보였다.

최근 잡상인·구걸인들 집중 단속으로 많이 사라져
지하철 위치파악 실시간 가능, 스크린도어도 설치

예전에는 보통 파란색 단프라 박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단속에 신경써서인지 여행용 캐리어 가방을 끌고 다니고 있었다.

잡상인들의 단속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지하철이 생긴 이래로 꾸준히 단속하려는 역무원·공익요원과 단속에 걸려들지 않으려는 잡상인들의 숨바꼭질은 계속되어왔다. 하지만 최근 이들에 대한 집중 단속을 하면서 그 수는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예전 같으면 지하철을 탈 때마다 보이던 잡상인들이 지금은 눈 씻고 봐도 보이지 않을 정도다.

현재 지하철에서 적발되는 잡상인들은 스티커를 발부받고 벌금 10만원을 내게 된다. 잡상인들 외에도 지하철에서 소란을 피우는 등의 공공질서를 저해하는 사람들도 경범죄처벌법에 의거해 통상 3만원 정도의 벌금을 내도록 되어있다.

유모(36·남)씨는 “요즘에 지하철을 타면 전보다 구걸하는 사람이나 잡상인들이 많이 사라져 지하철 내부가 더욱 쾌적해진 것 같다”며 “일순간의 계도활동으로 끝나지 말고 지하철 관계자들이 더욱 관심을 가져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편안한 이동감을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잡상인 집중단속 효과
열차위치 모니터 편리

지하철역사의 첨단 편의시설도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 중 하나다. 지하철역 내 열차위치 모니터는 현재 열차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위치를 알려줌으로써 기다리는 불편함과 불안감을 해소시켜준다. 장모(39·여)씨는 “지하철을 타러가도 앞뒤 열차 간격까지 다 파악이 되고 어디까지 가는 열차인지도 알 수 있어 좋다”며 “이제는 지하철을 타도 여유있게 이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때 지하철역에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됐던 자살 문제도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그동안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지하철 선로에 뛰어내려 목숨을 끊는 등의 악순환이 이어져왔다. 지하철의 이미지가 안 좋았던 것도 이 때문. 이를 방지하고자 대부분의 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했고, 이후 지하철로 인한 자살률도 현저히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렇듯 지하철이 개통된 이후 생긴 많은 문제점들이 최근 문물의 발달과 시대의 요구와 함께 맞물려 해결되며 지하철에 대한 대중들의 이미지도 날로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고속터미널·충무로역 등지에서 발생한 에스컬레이터 사고 문제는 다시 곱씹어볼 문제다. 주로 높은 연령층에서 발생한 이 사고에 대해 지하철의 한 관계자는 “에스컬레이터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발판에 발을 내디딜 시 좀 더 주의해야 한다”며 “그러나 에스컬레이터 자체에도 이상이 있는지에 대해서 세부적인 안전검사에도 조금 더 신경써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사당역에서 만난 금모(52·남)씨가 “앞으로 지하철이 대구·부산까지 연결되어서 전국을 하나로 묶는 연결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데서 지하철이 앞으로도 변화무쌍하게 달라질 모습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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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