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KT, 구조조정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직원들 피 ‘쭉쭉’ 빨아 경영진 배 ‘빵빵’ 불려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KT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부진인력퇴출(CP)프로그램이다. 직원이 스스로 나가떨어지도록 유도하기 위해 온갖 비윤리적인 수단이 동원됐다. 이 프로그램엔 노동자의 권리와 인간의 존엄성은 물론 기본적인 상식조차 없었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직원을 내보내 얻은 차익이 경영진의 배를 불리는데 쓰였단 것이다. 화들짝 놀란 KT는 CP프로그램은 절대 없다며 시치미를 뚝 떼고 있지만 그 정황과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2001년부터 대규모 구조조정 단행…2003년 5500명
“소외감을 유발시켜라” 등 퇴출프로그램 등장해 경악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KT 민영화 폐해와 대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선 ▲노동자와 소비자를 쥐어짜 수익 챙기는 투기자본 경영수법의 전형 ▲KT 민영화가 노동자 근로조건에 미친 영향 ▲한?미 통신산업 현황 및 한미FTA의 영향 분석 등 세 가지 사안을 놓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건 노동자 근로조건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충격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다.

생소 업무에 투입
어려운 목표 지시

이날 주최 측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KT는 지난 2002년 완전민영화를 앞두고 열린 투자자 설명회에서 인건비와 투자비용을 낮춰 최대한 높은 이익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KT는 지속적으로 구조조정 작업을 벌여왔다. 특히 2003년과 2009년에는 각각 5505명, 5992명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비윤리적 수단이 동원됐다는 점이다. 인력퇴출프로그램(CP)이 바로 그것이다. CP는 C-Player의 약자로 부진인력을 말한다.

CP프로그램의 첫 번째 공정은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이다. 114잔류자, 민주동지회, 명퇴 거부자, 명퇴 기준 미달자 등이 주요 퇴출 대상에 포함됐다. 대상자 선정이 끝나면 해당 인원을 생소한 단독업무에 투입, 달성이 어려운 목표를 지시한다. 그리고 목표에 미달하면 더욱 강도 높은 업무량을 부여한다. 목표를 달성하기 못할 경우 징계조치하고 비연고지로 발령을 낸다. 그리고 이 같은 과정을 반복해 결국엔 스스로 나가떨어지도록 하는 게 CP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이날 공개된 ‘부진인력 퇴출 및 관리 방안’에는 ▲단독업무를 부여하되 개인별 취약점 등을 분석하여 부여하도록 할 것 ▲문서 등 법적 근거들을 확보해두도록 할 것 ▲업무실적이 탁월하거나 또는 비교분석이 불가능하여 조치가 어려운 경우 업무분장 변경 시행하도록 할 것 ▲2차 업무지시 때는 1차보다 기간을 짧게 하고 좀 더 강도 높은 업무량을 부여하도록 할 것 ▲기존의 업무지시서 및 실적과 근무태도에 관한 자료 등을 근거로 감사 실시 후 징계를 하되 지시불이행, 상사에 항거 등 그 동안 행위를 고과노트 등에 구체적으로 기록?관리 하도록 할 것 ▲법적 요건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최대한 중징계를 유도하도록 할 것 등 상세한 지침이 포함 돼 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KT는 수천명에 달하는 직원을 거리로 내몰았다. 마지막까지 버티는 인원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자비’는 없었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해고하는 수순을 밟았다는 게 주최 측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KT는 “CP프로그램은 절대 존재하지 않고 현장에서 기관장 주도로 생산성 향상 차원에서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맞지만 시행되지는 않았다”며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열린 전 KT 관리자의 양심선언을 들여다보면 KT가 CP프로그램을 전사적으로 운용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자신을 1984년 11월 한국전기통신공사 공채 1기로 입사해 2009년말 퇴직한 관리자라고 소개한 반기룡씨는 “KT충북본부 충주지사 음성지점의 고객만족팀장으로 있었을 때인 2007년 2월 중순 당시 충주지사 모 팀장이 ‘부진인력 퇴출 관리방안’이라는 문서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반씨는 “2007년도 퇴출 목표는 충주지사가 5명이 배정됐고 충북본부 목표인원은 20명, 전사 목표가 550명이었다”고 설명했다.

반씨는 “부진인력 퇴출프로그램은 KT본사에서 기본 프레임을 만들어 각 지역본부에 하달하고 각 지역본부가 수정해 각 지사로 보내 각 지사에서 자체적으로 다시 수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반씨는 “KT 본사가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업무체계상 본사 인력관리실과 본부 인사팀과 노사협력팀이 직접 지시하달 및 보고받는 체계라는 점과 KT 전체 퇴출 목표가 정해져 있고 본부에서 본사로 보고하게 돼 있는 등에서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씨는 “퇴출자로 낙인찍힌 자의 사생활을 조사하도록 돼 있고 모든 혜택을 금지시키고 교육조차 참석하지 못하게 하고 다른 직원들과 격리시켜 소외감을 주도록 명문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KT, “CP 절대 없다”
내부고발자 “절대 있다”

반씨는 자신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반씨는 “내키지 않았지만 팀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지침대로 담당직원 장모씨를 스트레스 주는 방식으로 관리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반씨는 장씨가 같은 고등학교 후배여서 가혹하게 하지 못해 불려가 ‘퇴출인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시 어떤 인사상의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각서를 작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반씨는 “본인도 회사 내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에 각서를 쓴 후부터 장씨에 대해서 가혹하게 관리를 시작했다. 이럴수록 스스로 스트레스가 심해져 2008년 1월부터 신경정신과 병원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반씨는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해 달해 약물치료를 받다 중증 우울증으로 악화돼 2008년 11월 휴직했다. 이후 두 차례의 병원 입원치료를 받다 결국 2009년 12월 31일자로 명예퇴직했다.

이날 양심선언에는 CP프로그램의 피해자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이들은 증언을 통해 CP프로그램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다.

2001년 114 분사 때 남았던 육춘임씨는 2006년 3월부터 선로유지보수 직무를 맡았다. 처음에는 차도 없이 온갖 장비를 메고 5㎞ 떨어진 곳에서 개통업무를 진행했다. 여성의 몸으로 높은 전봇대에 오르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쥐가 나면 핀으로 허벅지를 찌르면서 일해야 했다. 육씨는 비연고지로 전출돼 현재 편도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하고 있으며 구조조정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퇴출면담에 심적 고통을 호소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 인권 무시한 행위 자행돼
임원 보수한도 2001년 14억에서 2010년 65억 ‘껑충’


역시 114 분사 때 잔류한 한미희씨는 상품판매활동을 해오다 2006년말 선로 개통직으로 전보됐다. 여직원으로 전봇대를 타는 것을 두려워하자 전화국 국기게양대에 매달리는 연습을 시켰다. 교육이 끝나면 사람들 앞에서 혼자 시범을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관리자는 국기게양대에 오른 한씨에게 ‘엉덩이를 뒤로 빼라’는 등 모멸감을 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한씨는 개통실적이 오르지 않자 결국 2008년 10월 해고 당했다 2009년 5월 구제신청이 받아들여져 복직됐다. 한씨는 법원에 당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냈다.

법원도 CP프로그램이 자행됐다는 주장에 무게를 실어줬다. 법원은 한씨가 낸 손해배상 청구에 CP프로그램 운영이 본사의 암묵적 동의 아래 시행됐다고 봐야 한다는 판단을 최근 내놨다.

지난달 17일 재판부는 한씨가 “퇴출시나리오에 따라 부당 해고당한 만큼 5천만원을 지급하라”며 KT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지만, 본사의 묵인 아래 부진인력관리프로그램이 시행된 점은 인정했다고 밝혔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KT는 “부진인력관리프로그램을 기획?수립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피고 회사가 본사 차원에서 기획한 것은 아니더라도 지역본부와 지사 등에서 본사의 암묵적 동의 아래 자체로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행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KT 서부본부와 충북 충주지사의 프로그램이 대동소이하고 회사 전체의 퇴출인원과 지역본부별 퇴출 목표인원이 설정돼 있는 것은 물론 이를 매주 본사에 보고하도록 한 점, 이 프로그램에 따라 서울, 전북, 경북 등에서 광범위한 퇴출이 이뤄진 점 등을 들었다.

상무급 이상 경영진
보수도 123.7% 인상

여기서 문제는 비윤리적 수단을 동원, 직원들을 거리로 내몰아 발생한 차익을 경영진의 배를 불리는 데 썼다는 점이다. 실제 민영화 이전 14억5000만원이던 이사의 보수한도는 구조조정과 맞물려 급증하기 시작했다. 민영화 다음해인 2003년 23억4000만원으로 61.3% 증가한 이후 꾸준한 급증세를 유지했다. 특히 2009년 45억원이던 보수한도는 대규모 인력감축이 단행된 뒤 65억원으로 44.4%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181억2000만원이던 상무급 이상 경영진의 보수도 405억3800만원으로 무려 123.7% 인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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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