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겁니다. 쉰아홉 번째 주인공은 맨홀 질식사로 아들을 잃은 반재상씨입니다.
지난 4일 경기도 화성시의 한 택지개발지구 앞 맨홀서 질식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반항석씨의 유가족은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있다. 사고 이후 회사서 사과는커녕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책임 회피 급급
반씨의 아버지 반재상(61)씨는 “사고 후 지금껏 건설사 측의 경위 설명조차 없었다. 그들은 ‘현장소장이 입원해 있어 (경위 설명이)어렵다’고 말했다”며 “아들을 포함해 30대 근로자가 2명이나 죽었는데 진심 어린 사죄도 하지 않으니 울분이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다못한 반씨는 지난달 12일부터 한 달간 사고 현장 주변 등에 집회신고를 내고 회사의 사과를 촉구하기로 했다.
반씨는 “회사 측은 맨홀 작업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막 대리를 단 아들이 아무런 지시 없이 작업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또 사고 후 회사 측이 아들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가 돌려줬는데 무언가 은폐하려던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반씨는 또 “억울해서 아직 아들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있다. 사고 현장에 아들의 관을 가지고 나가서 집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숨진 아들 반씨는 지난달 4일 오전 10시 18분께 화성시 남양 뉴타운 택지개발지구 아파트 단지 앞 도로 맨홀서 작업 도중 숨졌다. 그는 동료 작업자와 함께 오는 10월 준공 예정인 택지지구의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상수도 밸브 시험 가동 작업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
순찰 중이던 경찰관이 도로 위에 맨홀 뚜껑이 있는 것을 안전조치를 위해 근처에 갔다가 이들을 발견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당시 근로자 한 명은 밖에, 한 명이 내부서 작업하던 중 내부 근로자가 쓰러지자 이를 구하러 들어갔다가 두 명 모두 저산소증으로 질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남양 뉴타운 도로서 작업 중 숨져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 없었다”
이들이 숨진 지하 공간은 성인 남성 한 명이 들어가기에도 좁았고 산소농도 측정 결과 10%대에 불과했다. 유독가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유족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건설사 관계자는 “사고 경위에 대해서는 수차례에 걸쳐 충분히 설명했으며 관련자들은 경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는 중”이라며 “책임을 통감한 회장과 직원들이 병원을 직접 찾아 유족에게 사과하기도 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숨진 반씨는 상수도를 담당하는 직원으로 평소에도 별도 지시 없이 작업을 했다”며 “휴대전화는 사고 당일 병원으로 가져가 유족에게 돌려줬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된 건설사의 공사현장은 총체적 안전불감증이 도사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이 공사현장을 대상으로 벌인 특별감독서 무려 110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실이 적발됐다.
중부청은 이 가운데 60건의 법 위반 사항은 사법처리를, 50건의 위반 사항에 대해 1억6600여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구체적인 사법처리 위반사항을 보면 밀폐공간 관련 작업절차 미수립 및 안전보호구 미지급 등이 21건이나 적발돼 지난달 발생한 질식사고가 예고됐었다는 지적이다.
또 추락위험장소에 안전 난간과 개구부 덮개 등 추락 방지조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점과 굴착면 기울기 미준수 등도 각각 14건씩 적발, 현장서 추락과 붕괴위험도 도사리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관리책임자 업무 미수행, 안전교육 미실시 등 관리적인 사항도 다수 적발됐다.
이 건설사는 지난 2009년부터 화성남양뉴타운 도시개발사업 조성공사 현장서 상하수도와 도로시설 등 기반시설(토목공사)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현장은 사망사고가 발생한 이후 한달 간 전면 작업중지 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사고 현장을 관할하는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관계자는 “특별감독을 통해 현장서 밀폐공간 작업절차 미수립, 안전보호구 미지급 등이 적발돼 사고 이전에도 안전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작업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며 “밀폐공간 등 유해 위험 공간에 대해 파악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건설사 측은 “경영난 등으로 지난 2011년부터 직영으로 공사를 벌이고 있으며 현장에 안전관리가 미흡했던 점을 인정한다.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해명했다.
이 사고를 수사 중인 경기 화성서부경찰서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건설사 안전관리자 최모(51)씨와 현장소장 주모(54)씨 등을 상대로 조사하고 있다.
예고된 사고
경찰은 “사고 당일 관련 업무 지시(상수도 밸브 시험 가동)가 없었다”는 최씨 진술에 따라 올해 초부터 사고 당일까지의 작업 현황이 담긴 서류를 받아 건설사 측의 작업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또 숨진 반씨 등 2명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각각 확인하고 기기 내에 삭제된 메시지나 파일이 있는지도 조사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책임이 건설사 측에도 있는 만큼 면밀히 수사해 입건자를 가릴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