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개 켜는 이수그룹의 이면

소리 소문 없이…이유 있는 승승장구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이수그룹이 대표 계열사인 이수화학을 앞세워 기지개를 켜고 있다. 2015년까지만 해도 부진을 면치 못하던 석유화학 부문의 이익이 시황 호전에 힘입어 급증하고 있고, 골칫거리였던 건설부문과 바이오사업이 흑자로 전환했다. 
 

1996년 4월 지주사 형태의 그룹 체제를 본격화한 이수그룹은 2000년 1월 현 김상범 회장 체제로 들어섰다. 올해로 창립 21주년을 맞은 이수그룹은 이수화학과 PCB 부품 제조 판매사 이수페타시스 등을 포함해 11개 계열사를 휘하에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줄줄이 실적↑
연이은 낭보

최근 이수그룹은 연이은 낭보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계열사 실적개선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데다 사업다각화 작업도 점차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는 까닭이다. 계열사에서 들려오는 희소식은 이수그룹에 대한 세간의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물론 이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하는 데 가장 공헌한 건 이수그룹의 모체인 이수화학이다. 

이수화학은 최근 2015년까지 LAB(합성세제원료, 연성알킬벤젠) 수급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실적 하향세가 뚜렷했다. 2011∼2013년 사이 LAB가 호황을 보이자 경쟁업체들이 대거 증설에 나섰고 이 때문에 수급 균형이 깨졌다. 


공급량이 늘면서 LAB의 가격이 떨어졌고 자연스레 마진폭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2014년 말부터 시작된 저유가도 수익성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유가가 급락하면서 LAB 판가는 크게 떨어졌다. 반면 원재료 하락 폭은 이에 미치지 못했고 마진폭은 급격하게 축소됐다.

결국 이수화학은 2013년 연결기준 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적자 전환했다. 전년대비 600억원 이상 영업이익이 줄어든 셈이다. 이후에도 좀처럼 부진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4년에는 영업손실 357억원을 기록했고, 2015년에는 1억원도 채 안 되는 영업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 

더욱이 이 기간 누적 당기순손실 규모는 자그마치 2000억원에 이르렀다. 

반등의 조짐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수화학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1조5100억원, 영업이익은 600억원 수준이다. 매출액은 2015년과 비슷하지만 영업이익은 1000% 이상 늘었다. 2015년 이수화학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4712억원, 5400만원이었다. 

이수화학의 순항은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수화학은 2분기에 연결기준 영업이익 152억8600만원, 순이익 88억6900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각각 전기 대비  144.74%, 247.45% 증가한 수준이다. 매출은 4122억 8000만원으로 전기대비 1.78% 늘었다.

이수화학의 수익성이 대폭 개선된 건 주력 제품인 LAB에 대한 공급과잉 문제가 해소된 덕분이다. 2분기 평균 국제유가가 배럴당 50.4달러로 전분기 대비 7.8% 하락한 가운데, 2019년까지 증설 공백으로 인해 LAB 공급 증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수화학의 고공행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눈에 밟히는
수상한 흔적
 


이처럼 잘 나가는 이수화학이지만 일감 몰아주기 논란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중심에는 매출의 상당부분을 이수화학에 의존하는 이수엑사켐이 위치한다.  

이수엑사켐은 이수화학서 제품을 매입한 뒤 이를 판매해 수익을 내는 유통 회사다. 2015년 기준 이수엑사켐은 이수화학으로부터 990억원 어치의 제품을 매입해 판매하면서 매출 1340억원, 영업이익 10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이수화학 제품 861억원 어치를 사들여 매출 1344억원, 매출총이익 204억원, 영업이익 110억원의 실적을 거뒀다. 

심지어 이수엑사켐에 대한 그룹사 차원의 봐주기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수화학의 별도기준 1분기 매출채권은 1235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78억원 감소했다. 
 

전체 매출채권서 이수엑사켐의 몫이 절반을 차지한다. 지난 1분기 이수엑사켐이 갚아야 할 매출채권은 약 570억원이다. 

이 같은 기조는 수년 째 이어지고 있다. 2014년 전체 매출채권이 41%, 지난해엔 역대 최고인 56%가 이수엑사켐의 몫이었다. 이수화학의 전체 매출서 이수엑사켐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9%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많은 액수다. 

이수엑사켐의 매출액 비중은 2013년 8.1%, 2014년 8.9%로 8%대를 유지하다 2015년 9.5%, 2016년 9.6%로 소폭 상승했다. 

연이은 계열사 호실적 함박웃음
조직적인 이수엑사켐 밀어주기

전체 매출채권서 이수엑사켐의 몫이 많은 이유는 매출채권 회전기일(receivable turn over period)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지난해와 올 1분기 이수화학의 매출채권 회전기일은 40∼50일이다.  

반면 이수엑사켐을 대상으로 한 매출채권 회전기일은 무려 256일로 다른 고객사와 편차가 컸다. 이수엑사켐을 제외한 나머지 고객사들의 경우 1∼2개월이면 제품 판매 대금을 회수하는 데 반해 이수엑사켐의 경우엔 판매 대금을 회수하는 데 9개월가량이 소요된다는 얘기다. 

‘매출채권회전율(기말 매출채권잔액이 1년간 영업활동을 통해 현금인 매출액으로 회전되는 속도)’을 기준으로 봐도 이수엑사켐이 매출채권 상환을 더디게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수화학의 전체 매출채권 회전율은 2015년 7.8회, 2016년 7.3회, 지난 1분기 9회다. 이수엑사켐으로 한정할 경우 매출채권회전율은 2015년 1.9회, 2016년 1.4회, 지난 1분기 1.4회에 그친다. 


스스럼없는
오너 회사 지원 

공교롭게도 이수엑사켐은 이수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다. 이수엑사켐은 김상범 회장의 100% 개인회사다. 김 회장과 이수엑사켐은 그룹 지주회사인 ㈜이수 지분을 각각 67.4%, 32.5%씩 들고 있다. 

사실상 김 회장이 ㈜이수 지분을 100% 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김상범 회장→이수엑사켐→㈜이수→이수화학→이수건설’로 이어지는 단단한 지배구조가 구축됐다는 뜻이다. 

2000년 들어 3남이었던 김 회장이 적통 후계자로 낙점되자 곧바로 1인 지배체제 구축을 위한 전방위적인 사업 재편 작업이 진행된다. 그 즈음 김 회장 개인회사 2곳이 설립된다. 석유화학제품 판매업체 엑사켐과 자동차 부품·윤활유 판매업체 아이엠에스가 그 주인공이다. 

양 사는 2005년 합병되면서 현재의 '이수엑사켐'으로 재탄생했다. 

공통적으로 두 회사는 모두 계열사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었다. 아이엠에스는 이수화학(3.46%)과 이수건설(4.49%), 이수세라믹(3.87%), 이수전자(3.09%) 지분을 갖고 있었고, 엑사켐은 이수화학과 이수세라믹의 주요 주주였다. 


이수그룹이 2003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서 두 회사는 그룹 지배구조 꼭대기로 올라서게 된다. 당시 이수그룹은 이수건설을 사업회사(이수건설)와 투자회사(㈜이수)로 나눈 후 투자회사를 지주회사로 삼았다.
 

엑사켐과 아이엠에스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들은 지주회사 ㈜이수 지분 확보를 위한 재원이 됐다.

실제 엑사켐은 보유하고 있는 이수화학 주식 44만 9830주와 이수세라믹 주식 37만 9830주를 현물출자해 ㈜이수 주식 559만7219주(8.9%)를 취득했다. 아이엠에스도 이수세라믹 주식 12만6908주를 현물출자한 대가로 ㈜이수 지분 717만5931주(11.39%)를 확보한다.

김 회장도 직접 나서서 ㈜이수 지분을 늘린다. ㈜이수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이수건설 주주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수건설-㈜이수 간 지분 맞교환에 응하면서 ㈜이수 지분을 크게 늘린다. 

당시 그는 보유 중이던 이수건설 지분 24만 5618주(24.73%)를 모두 내주고 대신 ㈜이수 지분 502만 2871주(79.7%)를 확보한다.

다른 이수건설 주주들은 지분 맞교환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지분율 만큼 지주사인 ㈜이수 지분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계열사 간 상호 보유 해소를 위해 실시한 유상감자에 참여해 지분을 모두 현금화한다. 

그 결과 이수그룹 지주사 주주는 김 회장과 김 회장의 개인회사만 남게 됐다. 완벽한 1인 지배체제가 완성된 순간이다. 

이후 이수건설 부실 뇌관이 터지면서 이수그룹 지배구조는 다시 한 번 요동친다. 이수건설 자금 지원 부담 탓에 ㈜이수의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되자 2009년 들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감자와 증자, 출자전환 등이 이뤄진다. 당시 이수엑사켐이 자금 지원 총대를 멘다. 
 

이수엑사켐은 ㈜이수에 빌려준 차입금 317억원과 미지급이자 33억원에 대해 출자전환하기로 결정한다. 350억원을 받는 대신 ㈜이수 주식 350만주를 취득하는 조건이다. 또 유상증자를 통해 현금 15억원을 지원했다. 

출자전환과 증자 단독 참여로 이수엑사켐 지분 67.4%를 보유한 ㈜이수 최대주주로 등극한다. 김 회장 개인 지분율은 기존 79%에서 32%로 희석된다. 이 지분구조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수화학의 이수엑사켐에 대한 채권 회수가 더딘 이유를 이수그룹 지배구조와 연결시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수화학의 다른 고객사와 달리 이수엑사켐은 상대적으로 채권 상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수엑사켐은 안정적인 수익성을 토대로 김 회장의 돈줄 역할 역시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수엑사켐은 지난해 20억8000만원을 배당했으며 이는 고스란히 김 회장에게 돌아갔다. 

최근 6년으로 범위를 넒히면 김 회장이 이수엑사켐을 통해 확보한 배당금의 총합은 51억2000만원에 달한다. 이수엑사켐서 주주들에게 지급한 모든 배당금은 이 회사 지분 100%를 보유한 김 회장 몫이었다. 

일감 몰아주고
배당도 척척

배당재원이 되는 이익잉여금도 꾸준히 증가하면서 지속적인 배당이 이뤄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2008년 89억원 수준이었던 이익잉여금은 매년 순이익이 쌓이면서 수백억대로 불어났고 추가 배당 여력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이수엑사켐이 수직계열화 주축 계열사로서 탄탄한 수익구조를 갖췄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에도 김 회장의 현금창고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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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