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신라의 사신이 고구려와 백제가 힘을 합쳐 당항성을 치려 한다며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그래서 황제 폐하께서 신을 급히 파견하였소.”
힘을 주어 말하는 상리현장의 표정이 서서히 거만스럽게 변해갔다.
“글쎄요. 신라 놈들이 어떻게 말을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군요.”
황제의 뜻
답을 한 의자왕이 성충과 흥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내용인지 금시초문이니 상세히 말해보시오!”
성충이 조서를 흥수에게 건네고 뚱딴지 같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눈에 힘을 주고 말을 받았다.
그의 반응에 상리현장이 의자왕과 성충, 흥수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녕 귀국은 이런 사실이 없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우리가 일부러 이리 반응한다 생각하시오!”
흥수 역시 뒤질세라 한 마디 하고 나섰다.
모두의 반응이 그러하자 상리현장이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고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신라의 염종이 사절로 다녀갔고 뒤이어 오래지 않아 신라 최고 대신인 알천이 입국하여 황제 폐하를 알현하여 선덕여왕의 간절한 호소를 전했다.
그런 연유로 황제는 급히 상리현장에게 조서를 주어 백제와 고구려에 황제의 뜻을 전하고자 방문했다.
“한심한 계집이로고!”
의자왕이 크게 혀를 차고는 상리현장을 주시했다.
“이보시오, 사농승!”
“말씀하시지요.”
“이왕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고구려와는 별개로 우리가 당항성을 공격한다면 어찌하겠소?”
“그런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신이 방문하였습니다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무나 황당하여 그러는데 진짜 우리가 당항성을 친다면 어쩌겠소?”
“그런 일이 발생하면 황제 폐하께서 즉각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정벌하실 것입니다.”
“뭐라!”
상리현장을 바라보는 의자왕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갔다.
“황제 폐하의 지엄한 명이 있었소. 그러니 지금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명을 따르셔야 합니다.”
의자왕과 성충, 흥수의 얼굴이 벌레 씹은 듯 변해갔다.
그날 저녁 의자왕이 만취하여 사택비를 찾았다.
사택비가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껴안는 의자왕을 슬쩍 밀쳐냈다.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전하.”
질문에 답은 하지 않고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사택비의 온몸을 샅샅이 살폈다.
“부인!”
“말씀하세요, 전하!”
사택비가 의자왕이 밉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은근히 말꼬리를 올리며 지속해서 전하라 불러댔다.
순간 의자왕이 사택비의 허리를 부서져라 껴안았다.
이번에는 밀쳐내지 않고 의자왕의 목을 가볍게 껴안았다.
“여보, 무슨 일 있었어요?”
“내가 오늘 부인을.”
“마저 말씀하세요.”
“아니오, 너무나 부인이 보고 싶었소.”
의자왕이 사택비를 두른 팔에 힘을 빼며 입을 맞추었다.
“무슨 일 있었지요?”
사택비 역시 팔을 내리며 의자왕의 가슴을 만지작거렸다.
“부인과 술 한 잔 더 하고 싶소.”
“지금도 과한데, 그래도 되겠어요?”
“술 한 잔 더 하고 부인 품에서 잠들고 싶소.”
당나라 사신 방문…의자왕 분노
커져가는 고구려-백제 간 앙금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신하들과 술을 마시는 내내 선덕이란 여자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증오가 일었었다.
그런 연유로 사택비에게 그 마음을 위로 받고자 했다.
아니 사택비를 선덕이라 생각하고 마음껏 희롱하며 선덕에 대한 마음을 풀어내리라 생각했었다.
잠시 후 술상이 차려지자 사택비가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그 모습을 보자 얼굴도 보지 못한 선덕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부인, 오늘 부인을 죽여도 되겠소?”
“죽이다니요?”
죽인다는 의미를 되새기는지 사택비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병을 들었다.
“이리 가까이, 곁으로 오시오.”
사택비가 술 따르려던 동작을 멈추고 그대로 의자왕 곁에 자리 잡았다.
“어떻게 죽이시려는지요?”
가볍게 의자왕의 입에 입을 맞추고 술을 따랐다.
“만지고, 때리고.”
“또요?”
“아작아작 깨물고.”
말을 마침과 동시에 의자왕이 사택비의 귀를 입에 넣고 자근자근 물기 시작했다.
“소녀, 서방님 거니 마음대로 하세요.”
답을 하는 사택비의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사택비를 무릎 위에 앞으로 앉히고 가만히 살펴보았다.
술 기운 때문인지 혹은 방금 전에 품었던 분노 때문인지 간헐적으로 사택비가 선덕여왕으로 비쳤다.
“내 반드시 부인을 죽이고 말겠소.”
말을 마침과 동시에 의자왕이 서서히 사택비를, 아니 선덕이란 증오스런 여자를 덮쳐가기 시작했다.
백제와 당항성을 치기로 한 시점 연개소문이 군사를 이끌고 신라의 국경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비록 백제와 협의는 되어 있었지만 그 이유로 신라를 공략하는 차원은 아니었다.
그동안 공들여 증강한 전력을 시험하기 위한 일련의 확인 절차였다.
그를 위해 일찍이 고구려 영토였다 신라 진흥왕 당시 신라 영토로 편입된 두 개의 성을 공략했다.
아울러 조금 더 확인을 거치기 위해 여세를 몰아 남으로 진격하는 중에 평양성으로부터 전령이 달려왔다.
전령이 선도해의 안내로 연개소문 앞에 이르렀다.
“전하께서 급히 모셔오라는 분부를 주셨다 합니다.”
연개소문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전령을 주시했다.
“그 무슨 소린가!”
“당나라에서 사신이 도착하였습니다. 그런 연유로 잠시 전쟁을 멈추시고 평양성으로 돌아오시라는 분부를 주셨습니다.”
“당나라에서 사신이라니!”연개소문이 선도해를 주시했다.
공허한 웃음
“일이 어그러진 모양입니다.”
“그러면 백제 이 친구들이…….”
“그런 모양입니다. 백제가 약속대로 당항성을 쳤다면 우리에게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터인데.”
말을 채 마지지 않은 선도해가 공허하게 웃음을 흘렸다.
“다른 말씀은 없으셨는가?”
“그러하옵니다, 대감.”
“알았네, 그만 물러가도록 하게.”
전령이 자리를 물리자 연개소문이 선도해를 한쪽으로 이끌었다.
“책사!”
“말씀하시지요.”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