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5주년 기획특집>⑤강릉 잠수함 침투 생포 ‘공비’ 이광수

자책감에 울고, 죄책감에 통곡했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남북은 극도의 긴장상태에서 치열한 첩보전을 펼쳤다. 북한은 쉴 새 없이 간첩을 내려 보냈고, 정보를 캐는데 열을 올렸다. <일요시사>가 창간하고 4개월 뒤 터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혔다. 국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당시 무장공비들은 모두 사살되고 단 한명만 생존했다. 바로 이광수씨다. 그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강릉 잠수함 침투 무장공비 26명 중 유일 생포
군사시설 정보 캐러 남파…전향 후 해군서 근무

1996년 9월18일 새벽. 경찰에 한통의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부근 해안도로를 운행 중이던 택시기사였다.

“해안가에 정체가 불명한 선박이 둥둥 떠 있습니다. 거동이 수상한 자들도 왔다 갔다 하고요.”

비슷한 시간, 강동면 대포동에 위치한 해안초소에서도 이 지점에서 비치는 수상한 불빛과 연기를 감지해 상황실로 보고했다. 군경은 좌초된 선박이 북한 잠수함으로 확인, 공비들의 침투 사실을 인지했다.

결혼하고 학위 취득

무장공비는 모두 26명. 북한 대남공작기구중 하나인 인민무력부 정찰국 해상처 제22전대 소속 공작요원과 안내원, 그리고 승조원들이었다. 침투 목적은 남한 군사시설 자료 수집과 강원 전국체전에 참석한 주요 인사 암살. 이들이 이용한 잠수함은 길이 35m, 폭 3.8m, 300톤 규모의 상어급이었다. 이미 침투시킨 공작조의 복귀를 위해 해안으로 접근하다가 좌초된 것이었다.

군경은 즉각 예비군 동원과 함께 이 지역에 ‘진돗개1’을 발령하고 무장공비 소탕작전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무려 49일간에 걸쳐 실시된 소탕작전에서 군경은 ▲9월18일 청학산 11명 자살 주검 발견 ▲18일 모전리 1명 생포 ▲19일 단경골 3명 사살 ▲19일 칠성산 3명 사살 ▲19일 괘일재 1명 사살 ▲22일 칠성산 2명 사살 ▲28일 성산면 1명 사살 ▲30일 묵계리 1명 사살 ▲10월5일 용대리 2명 사살 등 공비 26명 중 25명을 소탕했다. 나머지 1명은 월북했다.

아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군인 11명, 예비군 1명, 경찰관 1명이 전사했다. 민간인도 4명이나 희생됐다.

국민들은 생포된 이광수씨를 주시했다. 무장공비 26명 중 유일한 생존자였기 때문이다. 고교 졸업 후 북한 해군 잠수함 부대에 입대한 이씨는 상사까지 진급했다가 정찰국으로 차출되면서 장교가 됐다. 남파 때 계급은 국군 계급으로 중위와 대위 사이인 상위였다. 생포 당시 31세이던 이씨는 잠수함 발견 당일 오후 4시40분께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 민가에 숨어있다 경찰에게 붙잡혔다. 이씨가 직접 밝힌 생포 과정은 이랬다.

“(좌초된) 잠수함에서 먼저 내려 주위를 경계하다 승조원들이 모두 나오는 것을 보고 둘러보니 안내조장과 정찰조가 산으로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일행을 따라가다 흩어졌고, 한 민가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노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산골까지 전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주인 할아버지가 신고하러 가는 것처럼 차가 있는 쪽으로 가기에 따라갔더니 말을 붙여 나를 안심시켰죠. 그 사이에 할머니가 신고해 붙잡혔습니다.”

잠수함 조타수였던 이씨는 권총 1정과 실탄을 휴대하고 있었지만, 경찰의 칼빈 소총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투항 직후 이씨가 경찰에게 “동무, 배가 몹시 고파서 그러는데 먹을 것 좀 달라우. 광어회가 먹고 싶습네다”라며 음식을 요구한 일화는 유명하다.

사건 한달 뒤 이씨는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그는 당시 “남한보다 북한이 군사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해 국민들의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이후 이씨는 안기부 직원들의 안내로 서울 시내를 둘러봤다. 한 가정집도 방문했는데 이씨는 남한의 높은 생활수준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남한을 보고 북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싹 없어졌습니다.”

전향 의사를 밝혀 주민등록증을 받은 이씨는 사건 이듬해인 1997년 5급 해군 군무원으로 특채됐다. “대한민국 해군에서 일하고 싶다”는 그의 희망이 받아들여졌다. 그는 현재 해군교육사령부 ‘이충무공리더십센터’에서 안보교관으로 근무 중이다. 북한군의 편제와 실상 등 장병들의 정신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군부대, 기관, 단체 등을 대상으로 특강도 한다.

경남 진해시에 살고 있는 이씨는 1999년 부인 임모씨와 만나 해군사령관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다. 그는 결혼한 해 경남대에 진학했다. 박재규 경남대 총장과의 인연으로 법행정학부(야간)에 입학, 2003년 2월 행정학사 학위를 취득한 이씨는 곧바로 행정대학원 안보정치학과에 진학해 2005년 8월 안보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낮엔 교관, 밤엔 학생인 ‘주경야독’의 결실이었다.

천안함 발언 화제


이씨는 학위수여식에서 “일단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무척 힘들었다. 고민도, 방황도, 외로움도 많았다”며 “그러나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줘 극복할 수 있었다. 남한에서 가정을 꾸리고 석사학위까지 받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 뒤로 일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씨는 지난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소신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건이 날조됐다는 북한 주장이 엉터리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천안함 사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를 받은 정찰총국이 한 것이라고 본다. 정찰총국이 성과를 내기 위해 저지른 것"이라며 "2009년 11월 대청해전 때 당한 것을 보복하려고 준비해서 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어뢰에 새겨진 ‘1번’을 두고선 "내가 어뢰를 오래 다뤘기 때문에 잘 아는데 북한에선 어뢰를 정비하기 위해 분해하면서 1, 2, 3번 등 번호를 적는다"며 "어뢰 뇌관도 그렇게 한다. 분실이나 다른 어뢰 부품과 혼동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를 다 이해한다"며 "의혹을 제기하는 일부 인사들 언급을 보면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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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