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⑤평등한 나라

차별 없는 세상 꿈꾼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에는 우스갯소리처럼 나왔던 ‘금수저·흙수저’ 이야기가 ‘헬조선’의 핵심 키워드가 됐다. 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식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의 비율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또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차이, 여성의 유리천장 등 곳곳에 산재한 불평등도 사회를 좀먹고 있다. 19대 대통령은 기울어진 ‘대한민국호’를 다시 정상화해야 한다.

노동절인 지난 1일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현장서 크레인 충돌사고가 발생해 6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번 사고로 숨진 6명 전원과 목숨을 건진 25명이 대부분 사내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었던 게 알려지면서 누리꾼 사이에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불평등 시대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지나칠 정도로 양극화돼있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격차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제기된 문제지만 해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격차는 2004년 관련 통계를 잡기 시작한 이래 가장 크게 벌어졌다.

정규직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이 279만5000원인 데 반해 비정규직은 149만4000원이었다.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의 53.5%에 그친 것이다.

정규직이 월급을 100만원 받을 때 비정규직은 54만원밖에 못 받는다는 말이 된다.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여러 방안을 내놨다. 사업주가 비정규직 근로자를 일정 비율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각종 지원금을 준다는 대책도 폈지만 효과는 미미한 상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곧바로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최상위 10%는 하위 10%보다 4.79배 많은 소득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5.01배) 바로 다음 순위로, 일본(2.94배)이나 스페인(3.08배), 영국(3.56배)보다 높았다. 가계소득 중 근로소득, 즉 임금의 비중이 가장 높다는 것을 고려하면 격차의 원인은 양극화된 노동시장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여성·성소수자에 관심
정부 차원 전향적인 대책 필요

문제는 ‘한번 비정규직이면 영원히 비정규직’으로 굳어지는 노동시장의 현실이다. 가장 극단적으로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임금뿐 아니라 복지, 고용 안정성, 사회보험 등 임금 외적인 부분서도 처우 차이가 크다.
 

하지만 중소기업서 대기업으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이동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첫 직장이 중요하다’ ‘첫 직장 임금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취업준비생 사이서 나오는 게 과장이 아닌 이유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대두되면서 선거 때마다 ‘비정규직 철폐·개선’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대선공약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노동공약으로 비정규직 대책이 1위에 꼽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노동절에 진행한 대규모 집회에서도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비정규직 철폐’가 첫 머리에 등장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이날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었던 비정규직이 1000만명이 넘는 헬조선 세상이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녀 간 격차도 균형이 필요한 부분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29개국 중 유리천장 지수 부문에서 29위로 꼴찌에 자리했다. 유리천장(보이지 않는 장벽) 지수는 고위직 여성 비율, 남녀 경제활동 참여 비율 등을 종합해 산출한다.

점수가 낮을수록 유리천장의 굳기가 단단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나라는 일본(28.8점), 터키(27.2점)와 함께 25점으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또 민간을 포함한 각국 여성 관리직 비율은 10.5%로 OECD 평균인 37.1%에 크게 못 미쳤다. 고위직 공무원 중 여성 비율은 5.5%로 여군 간부보다도 적었다. 특히 금융권의 유리천장은 콘크리트 수준이다.

지난달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4대 은행과 3대 생명보험사, 3대 손해보험사, 4대 신용카드사, 6대 증권사 등 금융회사 20곳의 임직원 11만9039명 중 여성 임원은 22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11곳은 여성 임원이 아예 한 명도 없다.

지난 3월 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유엔개발계획이 전 세계 18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성불평등 지수에서 한국이 10번째로 성평등한 국가로 나타났다. 성불평등 지수는 생식건강, 여성권한, 노동참여 등 3개 영역의 각종 통계를 토대로 각국의 성평등 정도를 측정하는 지수다. 수치가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55개국 중 23위서 13계단 상승했고, 아시아에서는 순위가 가장 높다. 문제는 이 같은 결과가 생식건강 부문서 높은 점수를 받아 나온 순위라는 점이다. 실질적 여성 개발능력을 보여주는 여성의 권한과 노동 참여 부문에서는 앞선 국가들과 큰 차이를 보였다.

기울어진 운동장 정상화
소수라고 외면 말아주길

생식건강은 모성사망비(출생아 10만명당 산모 사망자 수), 청소년 출산율(15~19세 여성 1000명당 출생아 수)을 종합해 계산한다. 우리나라의 성평등 지수가 크게 상승한 것은 모성사망비가 27명서 11명으로, 청소년 출산율은 2.2명서 1.6명으로 줄어든 덕이 크다.

반면 여성의원 비율, 중등교육 이상 받은 인구,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등은 20~30위권 수준이었다. 특히 여성 의원 비율은 16.3%로 125위를 기록한 인도(12.2%), 69위의 터키(14.9%), 105위의 인도네시아(17.1%)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성소수자와 장애인 차별 문제도 심도 있게 접근해야 할 현안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의 94.6%가 온라인에서 혐오표현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온라인 혐오표현 피해 경험률은 성소수자가 가장 높았고, 이어 여성(83.7%), 장애인(79.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비난을 받을까봐 두려움을 느끼느냐는 질문에는 성소수자의 84.7%, 장애인의 70.5%가 ‘그렇다’고 답했다.

성소수자 현안은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언급되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꾸준히 광장의 목소리를 담아냈던 촛불집회에서도 성소수자 인권 관련 발언이 쏟아졌다.


지난달 29일 성소수자인권연대의 남웅 활동가는 “성소수자들은 매주 거리로 나와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적폐를 청산하자고 외쳤다. 하지만 변화를 요구할 시간도 부족한 지금, 성소수자는 공격당한다”며 “성소수자의 권리는 시기상조며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어 “혐오는 인권을 후퇴시킨다”며 “인권을 미루면 민주주의도 멀어진다”고 강조했다.

외면받는 소수

장애인 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시각이 많다. 대선후보 TV토론서 후보들의 말을 통역하는 수화통역사가 1명씩만 배치됐다. 집에서 토론을 보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잇달았다.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라고 꾸준히 요구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은 “그동안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미진한 부분이 있다. 이후에 본격적으로 연구해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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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