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영’ 장서희가 3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온다. 오는 11월3일, SBS에서 첫 방송되는 <아내의 유혹>(극본 김순옥·연출 오세강)에서 여주인공 은재 역을 맡았다. ‘장서희가 일일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됐다’는 소식이 번지자 네티즌이 먼저 관심을 표했다. 캐스팅 관련 보도가 나간 날, 주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하루종일 장서희라는 이름이 검색어 순위 상위를 차지했다. 장서희라는 배우의 활동중단과 복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장서희는 “더 이상 ‘아리영’으로 불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는 ‘은재’로 살겠다”고 말했다.
<아내의 유혹>은 현모양처가 남편의 외도를 겪으면서 이혼한 뒤 180도 돌변, 요부가 돼 전 남편을 다시 유혹하는 이야기. 장서희는 현모양처에서 요부로 변하는 여주인공 은재 역을 맡았다. 일일극으로는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 복수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는 그를 스타덤에 올린 MBC <인어 아가씨>와 겹치기도 한다.
현모양처에서 요부로 변하는 여주인공 은재 역
결혼 생각 많이 하지만 일 시작하면 싹 사라져
“오랜만의 복귀라 밋밋한 역보다는 좀 세고 강한 역을 맡고 싶었어요. 그러던 차에 이 작품을 만났는데 한눈에 마음에 들었어요. 복수극이라는 점에서는 <인어 아가씨>와 비슷하지만 그것 빼고는 전혀 다른 이야기에요.”
<인어 아가씨>의 아리영은 어머니를 대신해 복수에 나서고 처음부터 복수를 계획하지만 <아내의 유혹>은 순진하고 착한 현모양처 은재가 속고 살다가 남편과 자신의 절친한 친구가 내연의 관계였음을 알게되면서 변하게 된다는 것.
“솔직히 <인어 아가씨> 이후 5년 만에 몰입할 수 있는 역을 만난 것 같아요. 은재는 여배우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초반에는 청순한 모습을 보여주다 곧 섹시하고 도발적인 모습으로 바뀌거든요. 팜므파탈로 변해 전 남편을 유혹하니까요. 제가 지금껏 섹시한 역을 해본 적이 없어 더 도전의식이 생기네요(웃음).”
장서희는 <인어 아가씨> 때 시청자들이 자신을 ‘아리영’이라 불렀듯, 이번 작품에서는 ‘은재’로 부르길 기대하고 있다.
“제가 신인도 아니고 경력이 오래됐는데 이제는 ‘연기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는 아닌 것 같아요. 그건 기본으로 해야 하는 것이고, 그보다는 극중 인물 그 자체가 돼야하는 것 같아요.”
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도 장점
아역 광고 모델을 거쳐 1989년 MBC TV 공채 탤런트 19기로 뽑히며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한 장서희는 2003년 막을 내린 MBC TV <인어 아가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오랜 기간 조연에 머물렀다.
“매일 다른 사람이 주인공을 맡은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저 역할 시켜주면 잘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임성한 작가 선생님이 기회를 주신 거죠. 제게는 정말 은인이죠. 저도 그야말로 서러운 시간을 많이 보낸 덕분에 ‘인어 아가씨’를 만났을 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해요. 모든 것에는 단계가 있듯, 그 단계를 거쳐야 제대로 된 연기가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숨은 인재들에게 기회가 많이 갔으면 좋겠어요.”
<인어 아가씨>의 ‘아리영’을 떠나보낸 지 벌써 5년. 이후 2편의 국내드라마와 3편의 영화, 거기에 중국드라마까지 6편의 작품을 했다. 귀여운 귀신, 조선족 공중곡예사, 덧없는 욕망 때문에 몰락하는 여자까지 변신도 꾸준히 했다.
하지만 <인어 아가씨>의 잔영은 생각보다 컸다. 배우 중에는 ‘변신의 귀재’가 있는 반면, 변신이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인어 아가씨>의 엄청난 성공 이후 장서희도 변신에 목말랐지만, 영화 <귀신이 산다> 외에는 기억에 남는 변신이 없다.
“<인어 아가씨> 이후에는 아리영처럼 이중적 역할만 들어왔어요. 불만도 있었죠. 하지만 대표적인 자기 이미지나 캐릭터를 갖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다양한 역할도 좋지만 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외모는 여전하지만 연륜이 묻어나는 말이다. 연기자로서, 연예인으로서 걍팍할 수 있는 삶에서 여유를 찾아낸 듯 말 하나, 표정 하나에 풍요로움이 깃들었다.
“좀 더 여유가 생겼어요. 예전에는 당장 내 앞밖에 못 봤죠. 나이 먹어서 좋은 건 담담해지고 대범해지는 거에요.”
장서희는 연기인생 20년 만에 연기를 ‘즐기면서’ 하고 싶다고 한다. 솔직히 그동안 직업으로서, 일로서만 받아들이면서 느꼈던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없을 거란다.
“회의가 들 때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지루할’ 시간은 없는 게 연기인 것 같아요. 방송과 연기는 생활의 일부에요. 연기자를 ‘직업’이라고 하는 게 어색할 정도죠. 솔직히, 이제 와서 뭘 하겠어요.”
“30대 배우의 무게감을 보여 드릴게요”
장서희는 스스로가 나이에 대한 부담을 드러내고 있다. ‘나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에서 여배우의 나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30대 노련한 여배우의 연기에 대한 깊은 성찰이 되레 시청자들에게 만족감을 주고 있다.
“30대 배우의 무게감을 보여 드릴게요. 드라마에서 3년 정도 공백이 생기니까 카메라 앞에서 떨리긴 하더라고요. 좋은 연기를 보여줄 자신은 있는데 그 떨림까지 어쩌지는 못하겠어요.”
어느덧 극 속에서 주부가 돼 버린 상황도 그리 낯설어 하지는 않았다. 만약 결혼을 한 상태에서 이 역을 맡았으면 어땠을까.
“글쎄요. 또 다른 깊이가 있었겠죠. 한 동안 결혼 생각이 많았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일을 시작하면 또 싹 사라져 버려요. 일에 몰입하면 다른 건 모조리 귀찮아지니 또 한 동안은 남자 생각 못하겠죠.”
사진 송원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