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한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유력한 후계자로 주목받았던 김정남이 타국서 피살됐다. 이 소식에 세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현재까지 배후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목되고 있다. 김정남은 후계구도서 밀려난 이후 끊임없이 신변에 위협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비운의 황태자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서 피살됐다. 한국 정부와 말레이시아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김정남은 이날 쿠알라룸푸르공항서 쓰러진 뒤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에 사망했다.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밖으로 출국하려 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김일성 장손
김정일 눈밖에
<로이터통신>은 말레이시아 경찰을 인용해 “김정남은 마카오행 비행기를 타려고 했으나 쿠알라룸푸르공항에서 뒤에서 누가 얼굴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과 함께 어지럼증을 느꼈다”며 “공항 진료소로 옮겨졌다가 병원으로 후송되는 앰뷸런스 안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말레이시아에는 북한 정찰총국 산하 사이버 작전 기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부는 지난 15일 오전 브리핑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살해된 인물에 대해 “김정남이 확실시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말레이시아 현지 경찰이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라며 암살 도구, 피살 원인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고 입을 닫았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현지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김정남이 피살되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김정남은 이날 마카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 로비서 탑승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난 6일 말레이시아에 들어왔고 일주일 만에 출국하려던 참이었다. 이때 여성 2명이 김정남에게 다가갔고 이들은 독극물로 추정되는 액체로 공격했다.
이후 김정남은 공항 안내데스크로 걸어가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무스타파 알리 말레이시아 출입국관리소장은 “(김정남이) 출국심사대를 통과하기 전에 공격을 당했다”고 밝혔다.
첩보영화 같은 일이…말레이 공항서 피살
용의자 두 여성 검거 “북 지령 받았나”
김정남을 공격한 도구가 무엇인지는 언론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일각에선 ‘누군가 김정남의 얼굴에 무엇인가를 문지르고 갔다’고 보도했으며, 또 다른 언론에서는 ‘누군가 김정남을 붙잡고 얼굴에 액체를 뿌렸다’고 보도했다.
말레이시아 반관영 통신사 <베르나마>는 “남성(김정남) 뒤로 접근한 한 여성이 남성의 얼굴에 액체가 묻은 천을 감쌌다”고 전했다. 다수의 한국 언론과 익명의 정부 관계자들은 김정남이 ‘독침’을 맞고 숨졌다고 밝혔으나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런 보도들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
김정남의 사망 원인과 살해 방법 등을 밝혀줄 시신 부검은 지난 15일 진행됐다. 이날 북한은 김정남 시신 인도를 요청했지만 말레이시아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쿠알라룸푸르병원 안팎엔 긴장감이 돌았다. 강철주 말레이시아 북한대사는 오후 2시경 병원에 도착해 부검이 끝날 때까지 머물렀지만 부검 현장에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정보원은 김정남 독살이 5년 전부터 북한 당국 차원에서 치밀하게 계획한 범행이라고 밝혔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 출석해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 집권 이후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2009년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은 집권 전이자 아버지 김정일이 생존해 있던 2009년과 2010년에도 각각 평양과 중국 베이징서 김정남 암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2년 본격적인 (암살) 시도가 한 번 있었다”며 “그해 4월 김정남이 김정은에게 ‘살려 달라’고 읍소하는 내용의 서신을 발송했다”고 설명했다.
권력서 밀린 후
해외생활 전전
이 때문에 김정남 피살은 북한 소행이라는 관측이 높아지고 있다. 그간 북한은 국제사회서 수많은 테러·납치·파괴·공작 등을 자행했다. 특히 김정남은 김정은의 권력을 위협하는 유력한 경쟁자였다는 점에서 북한의 배후설이 유력한 상황이다.
김정은은 2011년 말 집권 이후 공포통치를 통해 자신의 ‘유일 지배체제’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을 숙청해왔다. 자신의 후견인이자 북한 권력 서열 2위였던 장성택이 첫 희생자다. 장성택의 죄명은 ‘불경죄’였다.
지도자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것인데 당시 장성택이 중국과 김정남의 옹립에 대해 논의했다는 내용이 해외 언론에 흘러나왔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자신들에게 껄끄러운 인사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제거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1995년 발생한 이한영씨 피살 사건이다. 이씨는 스위스 제네바에 유학 중이던 1982년 귀순했다. 그의 이모는 김정일의 첫 번째 부인인 성혜림이며, 성혜림은 김정남의 친모다.
1995년 북한이 보낸 특수공작단에 의해 경기도 성남의 아파트 현관서 총에 맞아 피살됐다. 당시 북한서 내려보낸 암살단은 2인 1조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교가는 김정은이 자신의 절대권력에 대한 잠재적인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암살을 지시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아울러 김정은이 친중파인 고모부 장성택을 지난 2013년 처형한 데 이어 중국의 보호를 받아 외국 생활을 한 김정남까지 제거하면서 북중 관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은 사실상 ‘백두혈통’의 적자다. 북한 내에서 쿠데타 등 권력에 대한 도전이 발생할 경우 그 주도 세력은 해외에 있는 김정남을 새 권력자로 옹립할 것이라는 전망이 끊임없이 나왔던 게 사실이다. 김정남은 김일성 전 북한 국가주석의 장손이자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은 백두혈통의 권력 승계를 명문화하고 있어 김정남은 최고 권력을 쥘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인물이다.
이 때문에 북한 사회서 이번 김정남 피살은 보통 일이 아니다. 장성택 처형보다 의미가 크다. 북한 사회서 백두 혈통에 대한 살해라는 것은 쉽게 꿈꿀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이번 김정남 피살은 김정은이 직접 지시한 것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김정은의 지시를 받아 암살을 실행한 조직은 북한의 정찰총국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복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그 동안 북한 정찰총국이 김정남 감시를 맡아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정찰총국은 요인 암살에 관여하는 조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서운 김정은
수차례 암살 시도
김정남은 그야말로 ‘비운의 황태자’였다. 1990년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뒤를 이을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됐지만, 결국 이복동생인 김정은에게 밀려 북한을 들어가지도 못하는 떠돌이 신세로 전락했다.
김정남은 1971년 5월 김정일과 배우 출신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정일은 유부녀이던 성혜림을 강제 이혼시킬 정도로 사랑했다. 그와 동거하며 낳은 아들 김정남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일의 신임을 받으며 자라온 장남 김정남은 1995년 인민군 대장 계급장과 군복을 직접 선물 받으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후계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김정남은 개방적인 성향 탓에 점차 후계 구도서 밀려났다. 젊은 시절 유흥을 즐기며 방탕한 생활을 했고, 외국인 전용 유흥주점서 외국인 유학생과 시비가 붙자 천장으로 총을 발사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북한 전문가에 따르면 김정남은 어릴 적부터 명품에 둘러싸여 호화로운 생활을 했으며 국가 운영을 위한 자질 면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1980년 스위스 제네바 국제학교로 유학을 떠나 해외에서 생활하며 국제사회의 정보를 습득한 그는 평소 중국식 개혁개방을 북한에 도입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언급했다. 특히 1990년대 말 북한 고위층 자녀들에게 “내가 후계자가 된다면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 후계 구도서 밀려난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연관?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
이모인 성혜랑이 1996년 미국으로 망명한 것도 그의 입지가 좁아지게 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2001년 도미니카공화국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적발돼 중국으로 추방된 사실이 대외에 공개되며 국제적 망신을 산 일로 완전히 김정일의 눈 밖에 났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정일과 유부녀인 성혜림의 부적절한 관계서 태어난 자식이라는 점이 김정남이 후계자가 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일성에게 인정받지 못한 데다 북한 간부들에게 자신 있게 내세우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009년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김정남은 이후 중국과 마카오, 동남아 등지를 떠돌며 호화스러운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김정일이 사망하고 그의 뒤를 봐주던 고모부 장성택마저 처형되면서 경제적인 지원이 끊겨 궁핍한 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장성택이 처형된 이후 한국에 망명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김정은 후계구도가 완성된 2010년 김정남은 일본 <아사히TV>와의 인터뷰서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는 등 체제 비판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으나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북한 정치나 체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살려 달라” 애원
‘백두혈통’ 제거
김정남은 김정은 집권 이후 신변 위협 속에서 동남아 각국으로 거처를 옮기며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김정남은 2014년 1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한식당서 포착됐고, 그 해 5월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레스토랑서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김정남은 주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피살 당일 김정남이 왜 말레이시아에 있었는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정보당국은 말레이시아에 내연녀를 두고 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라진’ 김일성 왕족들
김정남이 피살된 가운데, 그의 가족과 다른 혈육에 대한 신변에도 빨간불이 켜진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김정남을 모종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김정은이 제거를 한 것이라면 그의 장남 김한솔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16일 정보당국에 따르면 김정남과 둘째 부인 이혜경 사이에서 태어난 김한솔은 프랑스 파리 유학 후 마카오로 돌아와 생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피살 직전 김정남의 출국 목적지 역시 마카오였다. 그러나 마카오에서 김한솔의 최근 행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등록하지 않았다.
김한솔은 유학 시절 숙부인 김정은을 독재라라고 언급하고 민주주의를 선호한다고 하는 등 거침없는 언행을 보였다. 이 때문에 김정은에게 부친인 김정남 못지 않게 미운털이 박혔을 가능성이 크다. 2013년 12월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처형된 직후에는 유학 중이던 프랑스 현지 경찰의 밀착 경호를 받는 등 신변 위협설이 끊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김정남의 가족이 중국 당국이 마련한 별도의 장소에서 보호를 받고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가정보원도 김한솔이 마카오에 머물고 있으며 중국 당국이 보호하고 있다고 전날 국회 보고에서 밝혔다.
김정은의 숙부인 주체코 북한대사 김평일의 신변 역시 관심이다. 그는 김일성과 둘째부인 김성애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정일의 이복동생으로, 1988년 주헝가리 대사로 부임한 뒤 핀란드, 폴란드 대사를 거치며 줄곧 외국에 머물렀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절대권력을 위협하는 백두혈통 중 김평일만 유일하게 남았다는 시각도 있다.
또 김정은의 친형제는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형 김정철과 여동생 김여정이 있다. 이들은 모두 김정일의 세 번째 부인인 고용희에게서 태어났다. 김정철은 경호 명목으로 항상 따라다니는 보위부 요원들의 감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감시와 견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애초 김정철은 권력에 관심이 없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행동했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은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김정은을 밀착 보좌하는 실세로 활동 중이다. 그는 지난달 미국 정부가 인권유린 혐의로 올린 제재 대상에 포함돼있기도 하다. 그러나 7개월 이상 공개 활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해 6월2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공식 행사에 참석해서 신분증을 들어 보이는 사진이 노동신문에 실린 게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10월 국정원은 김여정의 활동이 뜸해진 이유에 대해 “신병을 치료 중이거나 임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도 김여정이 보이지 않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