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비운의 황태자 김정남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2.21 08:58:01
  • 호수 1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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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저 나라 떠돌다 ‘객사’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한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유력한 후계자로 주목받았던 김정남이 타국서 피살됐다. 이 소식에 세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현재까지 배후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목되고 있다. 김정남은 후계구도서 밀려난 이후 끊임없이 신변에 위협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비운의 황태자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서 피살됐다. 한국 정부와 말레이시아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김정남은 이날 쿠알라룸푸르공항서 쓰러진 뒤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에 사망했다.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밖으로 출국하려 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김일성 장손
김정일 눈밖에

<로이터통신>은 말레이시아 경찰을 인용해 “김정남은 마카오행 비행기를 타려고 했으나 쿠알라룸푸르공항에서 뒤에서 누가 얼굴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과 함께 어지럼증을 느꼈다”며 “공항 진료소로 옮겨졌다가 병원으로 후송되는 앰뷸런스 안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말레이시아에는 북한 정찰총국 산하 사이버 작전 기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부는 지난 15일 오전 브리핑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살해된 인물에 대해 “김정남이 확실시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말레이시아 현지 경찰이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라며 암살 도구, 피살 원인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고 입을 닫았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현지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김정남이 피살되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김정남은 이날 마카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 로비서 탑승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난 6일 말레이시아에 들어왔고 일주일 만에 출국하려던 참이었다. 이때 여성 2명이 김정남에게 다가갔고 이들은 독극물로 추정되는 액체로 공격했다.

이후 김정남은 공항 안내데스크로 걸어가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무스타파 알리 말레이시아 출입국관리소장은 “(김정남이) 출국심사대를 통과하기 전에 공격을 당했다”고 밝혔다.

첩보영화 같은 일이…말레이 공항서 피살
용의자 두 여성 검거 “북 지령 받았나”

김정남을 공격한 도구가 무엇인지는 언론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일각에선 ‘누군가 김정남의 얼굴에 무엇인가를 문지르고 갔다’고 보도했으며, 또 다른 언론에서는 ‘누군가 김정남을 붙잡고 얼굴에 액체를 뿌렸다’고 보도했다.

말레이시아 반관영 통신사 <베르나마>는 “남성(김정남) 뒤로 접근한 한 여성이 남성의 얼굴에 액체가 묻은 천을 감쌌다”고 전했다. 다수의 한국 언론과 익명의 정부 관계자들은 김정남이 ‘독침’을 맞고 숨졌다고 밝혔으나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런 보도들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

김정남의 사망 원인과 살해 방법 등을 밝혀줄 시신 부검은 지난 15일 진행됐다. 이날 북한은 김정남 시신 인도를 요청했지만 말레이시아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쿠알라룸푸르병원 안팎엔 긴장감이 돌았다. 강철주 말레이시아 북한대사는 오후 2시경 병원에 도착해 부검이 끝날 때까지 머물렀지만 부검 현장에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정보원은 김정남 독살이 5년 전부터 북한 당국 차원에서 치밀하게 계획한 범행이라고 밝혔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 출석해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 집권 이후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2009년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은 집권 전이자 아버지 김정일이 생존해 있던 2009년과 2010년에도 각각 평양과 중국 베이징서 김정남 암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2년 본격적인 (암살) 시도가 한 번 있었다”며 “그해 4월 김정남이 김정은에게 ‘살려 달라’고 읍소하는 내용의 서신을 발송했다”고 설명했다.

권력서 밀린 후
해외생활 전전

이 때문에 김정남 피살은 북한 소행이라는 관측이 높아지고 있다. 그간 북한은 국제사회서 수많은 테러·납치·파괴·공작 등을 자행했다. 특히 김정남은 김정은의 권력을 위협하는 유력한 경쟁자였다는 점에서 북한의 배후설이 유력한 상황이다.

김정은은 2011년 말 집권 이후 공포통치를 통해 자신의 ‘유일 지배체제’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을 숙청해왔다. 자신의 후견인이자 북한 권력 서열 2위였던 장성택이 첫 희생자다. 장성택의 죄명은 ‘불경죄’였다.

지도자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것인데 당시 장성택이 중국과 김정남의 옹립에 대해 논의했다는 내용이 해외 언론에 흘러나왔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자신들에게 껄끄러운 인사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제거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1995년 발생한 이한영씨 피살 사건이다. 이씨는 스위스 제네바에 유학 중이던 1982년 귀순했다. 그의 이모는 김정일의 첫 번째 부인인 성혜림이며, 성혜림은 김정남의 친모다.

1995년 북한이 보낸 특수공작단에 의해 경기도 성남의 아파트 현관서 총에 맞아 피살됐다. 당시 북한서 내려보낸 암살단은 2인 1조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교가는 김정은이 자신의 절대권력에 대한 잠재적인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암살을 지시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아울러 김정은이 친중파인 고모부 장성택을 지난 2013년 처형한 데 이어 중국의 보호를 받아 외국 생활을 한 김정남까지 제거하면서 북중 관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은 사실상 ‘백두혈통’의 적자다. 북한 내에서 쿠데타 등 권력에 대한 도전이 발생할 경우 그 주도 세력은 해외에 있는 김정남을 새 권력자로 옹립할 것이라는 전망이 끊임없이 나왔던 게 사실이다. 김정남은 김일성 전 북한 국가주석의 장손이자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은 백두혈통의 권력 승계를 명문화하고 있어 김정남은 최고 권력을 쥘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인물이다.
 

이 때문에 북한 사회서 이번 김정남 피살은 보통 일이 아니다. 장성택 처형보다 의미가 크다. 북한 사회서 백두 혈통에 대한 살해라는 것은 쉽게 꿈꿀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이번 김정남 피살은 김정은이 직접 지시한 것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김정은의 지시를 받아 암살을 실행한 조직은 북한의 정찰총국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복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그 동안 북한 정찰총국이 김정남 감시를 맡아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정찰총국은 요인 암살에 관여하는 조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서운 김정은
수차례 암살 시도

김정남은 그야말로 ‘비운의 황태자’였다. 1990년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뒤를 이을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됐지만, 결국 이복동생인 김정은에게 밀려 북한을 들어가지도 못하는 떠돌이 신세로 전락했다.

김정남은 1971년 5월 김정일과 배우 출신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정일은 유부녀이던 성혜림을 강제 이혼시킬 정도로 사랑했다. 그와 동거하며 낳은 아들 김정남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일의 신임을 받으며 자라온 장남 김정남은 1995년 인민군 대장 계급장과 군복을 직접 선물 받으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후계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김정남은 개방적인 성향 탓에 점차 후계 구도서 밀려났다. 젊은 시절 유흥을 즐기며 방탕한 생활을 했고, 외국인 전용 유흥주점서 외국인 유학생과 시비가 붙자 천장으로 총을 발사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북한 전문가에 따르면 김정남은 어릴 적부터 명품에 둘러싸여 호화로운 생활을 했으며 국가 운영을 위한 자질 면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1980년 스위스 제네바 국제학교로 유학을 떠나 해외에서 생활하며 국제사회의 정보를 습득한 그는 평소 중국식 개혁개방을 북한에 도입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언급했다. 특히 1990년대 말 북한 고위층 자녀들에게 “내가 후계자가 된다면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 후계 구도서 밀려난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연관?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

이모인 성혜랑이 1996년 미국으로 망명한 것도 그의 입지가 좁아지게 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2001년 도미니카공화국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적발돼 중국으로 추방된 사실이 대외에 공개되며 국제적 망신을 산 일로 완전히 김정일의 눈 밖에 났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정일과 유부녀인 성혜림의 부적절한 관계서 태어난 자식이라는 점이 김정남이 후계자가 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일성에게 인정받지 못한 데다 북한 간부들에게 자신 있게 내세우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009년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김정남은 이후 중국과 마카오, 동남아 등지를 떠돌며 호화스러운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김정일이 사망하고 그의 뒤를 봐주던 고모부 장성택마저 처형되면서 경제적인 지원이 끊겨 궁핍한 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장성택이 처형된 이후 한국에 망명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김정은 후계구도가 완성된 2010년 김정남은 일본 <아사히TV>와의 인터뷰서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는 등 체제 비판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으나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북한 정치나 체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살려 달라” 애원
‘백두혈통’ 제거

김정남은 김정은 집권 이후 신변 위협 속에서 동남아 각국으로 거처를 옮기며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김정남은 2014년 1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한식당서 포착됐고, 그 해 5월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레스토랑서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김정남은 주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피살 당일 김정남이 왜 말레이시아에 있었는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정보당국은 말레이시아에 내연녀를 두고 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라진’ 김일성 왕족들

김정남이 피살된 가운데, 그의 가족과 다른 혈육에 대한 신변에도 빨간불이 켜진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김정남을 모종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김정은이 제거를 한 것이라면 그의 장남 김한솔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16일 정보당국에 따르면 김정남과 둘째 부인 이혜경 사이에서 태어난 김한솔은 프랑스 파리 유학 후 마카오로 돌아와 생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피살 직전 김정남의 출국 목적지 역시 마카오였다. 그러나 마카오에서 김한솔의 최근 행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등록하지 않았다.

김한솔은 유학 시절 숙부인 김정은을 독재라라고 언급하고 민주주의를 선호한다고 하는 등 거침없는 언행을 보였다. 이 때문에 김정은에게 부친인 김정남 못지 않게 미운털이 박혔을 가능성이 크다. 2013년 12월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처형된 직후에는 유학 중이던 프랑스 현지 경찰의 밀착 경호를 받는 등 신변 위협설이 끊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김정남의 가족이 중국 당국이 마련한 별도의 장소에서 보호를 받고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가정보원도 김한솔이 마카오에 머물고 있으며 중국 당국이 보호하고 있다고 전날 국회 보고에서 밝혔다.

김정은의 숙부인 주체코 북한대사 김평일의 신변 역시 관심이다. 그는 김일성과 둘째부인 김성애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정일의 이복동생으로, 1988년 주헝가리 대사로 부임한 뒤 핀란드, 폴란드 대사를 거치며 줄곧 외국에 머물렀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절대권력을 위협하는 백두혈통 중 김평일만 유일하게 남았다는 시각도 있다.

또 김정은의 친형제는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형 김정철과 여동생 김여정이 있다. 이들은 모두 김정일의 세 번째 부인인 고용희에게서 태어났다. 김정철은 경호 명목으로 항상 따라다니는 보위부 요원들의 감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감시와 견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애초 김정철은 권력에 관심이 없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행동했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은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김정은을 밀착 보좌하는 실세로 활동 중이다. 그는 지난달 미국 정부가 인권유린 혐의로 올린 제재 대상에 포함돼있기도 하다. 그러나 7개월 이상 공개 활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해 6월2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공식 행사에 참석해서 신분증을 들어 보이는 사진이 노동신문에 실린 게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10월 국정원은 김여정의 활동이 뜸해진 이유에 대해 “신병을 치료 중이거나 임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도 김여정이 보이지 않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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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