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변사자는 사인이 불명한 것이 보통이지만 사인이 명백하더라도 자살 또는 범죄에 의한 사망인지 의심 가는 사망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 변사 사건은 2014년 2만9000여건, 2015년 2만8000여건 등 매년 3만건 안팎으로 발생하고 있다.
한 해 전체 사망자가 약 25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12%가 변사자인 셈이다. 수사 기관에서는 이들이 수만 명 중 한 명에 불과하지만 유족들에겐 단 하나뿐인 가족이다. 27세 강력반 형사의 죽음도 그렇다.
지난 2010년 7월29일 충북 영동의 한 낚시터에서 사람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떠올랐다. 마을 주민이 발견한 물체는 물에 빠진 채 숨져 있는 사람이었다. 기온이 높은 여름의 한가운데서 발견된 사체는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원에 의해 밝혀진 그의 신원은 뜻밖에도 경찰. 서울 강남경찰서 소속 강력반 이용준 형사로, 당시 나이 27세였다.
자살? 타살?
이 형사는 시신으로 발견되기 이틀 전인 7월27일 이미 실종신고된 상태였다. 서울서 근무 중인 강력반 형사가 왜 충북 영동서 사체로 발견됐는지 수많은 의문이 제기됐지만 경찰은 수사 한 달 만인 같은 해 8월 말 이 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보고 수사를 종결했다.
유족들은 경찰 측에서 이 형사의 죽음을 자살로 몰아가고 있다며 반발했다. 또 경찰이 자살로 수사 결과를 정해둔 상태서 부검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유족은 이 형사가 자살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경찰은 타살로 볼 혐의점이 없다고 맞섰다.
이 형사의 사망원인을 자살로 보기에도, 타살로 보기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 형사의 죽음이 자살로 종결되기 전 수사기관서 살폈어야 할 다양한 가능성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점이다. 특히 그의 실종 당일 행적은 의문점이 너무 많았다.
이 형사는 실종 전날 아는 선배와 술을 마셨다. 이 형사와 함께 술을 마신 선배에 따르면, 두 사람은 양주 세 병을 나눠 마셨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두 사람은 선배의 집에서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 이 형사는 반장으로 짐작되는 사람의 전화를 받고 황급히 나갔다. 시간은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때였다.
이 형사는 바로 출근하지 않고 차를 몰아 자신이 담당하고 있던 절도사건 현장으로 갔다. 이후 사건 현장 외견을 몇 장 찍고 난 뒤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갔다. 그의 자동차 번호판은 버스 전용차로를 단속하는 카메라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차 내비게이션에 찍힌 목적지는 부산의 한 자동차 정비소였다. 다시 말해 이 형사는 전날 술을 많이 먹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 지각을 하게 된 상황에서 출근을 하지 않은 채 목적지를 부산으로 정하고 차를 달렸다는 말이 된다.
이 형사는 충북 영동에 멈춘 채 결국 부산으로 가지 못했다. 고속도로서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이 형사의 시신을 옮긴 119구급대원이 일지를 찾아보다가 이틀 전 출동 기록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면서 드러났다.
이 형사는 실종 당일 고속도로서 단독 사고를 내고 영동병원으로 옮겨졌다. 자동차의 앞부분이 대파될 정도로 큰 사고였지만 다행히 그는 이마에 상처를 입었을 뿐 의식이 분명했고, 부축 없이 걷는 등 양호한 상태였다.
이후 그는 치료 도중 화장실에 갔다가 링거를 빼고 사라졌다. 병원 CCTV에는 그가 급하게 병원을 나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CCTV 영상은 그가 살아 있을 당시 찍힌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는 병원서 도보로 30분가량 떨어진 저수지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일각에선 그가 고속도로서 낸 사고가 음주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라 두려운 마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병원서 채혈한 그의 혈액 속 알코올 농도는 0.01% 미만으로 음주와는 무관했다. 자동차의 파손된 흔적을 보아 전형적인 졸음운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었다.
부검 결과는 의문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 형사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던 유족들이 부검을 신청했고 그의 사인이 ‘익사로 보인다’는 소견이 나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폐에 있던 플랑크톤, 추체 내 출혈 등을 들어 익사로 판단했지만 그의 몸속에서 담수에선 살지 않는, 오로지 바다서만 발견되는 플랑크톤이 나왔다. 이 형사가 발견된 저수지는 바다와 연결돼있지 않은 내륙 한가운데에 있다. 국과수 측은 이 플랑크톤의 존재에 대해 검사 결과를 옮겨 적는 과정서 오타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플랑크톤이 폐에서만 발견된 점도 의문으로 제기됐다. 폐나 위는 외부와 연결돼있는 장기인 데 반해 간이나 신장 등은 단절돼있는 장기다. 만약 이 형사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물에 빠져 사망했다면 심장이 펌프질을 하는 동안 모세혈관을 타고 플랑크톤이 단절된 장기로 이동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입장이다.
물에 빠졌을 당시 이 형사가 이미 사망한 상태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의심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형사의 위 내용물에서 종합감기약에 들어 있는 성분의 약물(디펜히드라민)이 검출된 것도 의문점으로 남았다. 이 형사의 누나에 따르면 그는 서울을 떠나기 전 집에 잠시 들러 바나나를 먹고, 샤워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그때 감기약을 먹었을 것으로 예측했지만 위 내용물에서 바나나는 나오지 않았다. 바나나가 소화된 이후 감기약을 먹었다는 말이다.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이 형사의 행적을 꼼꼼히 되짚으면서 영동병원 근처 약국을 전부 뒤졌지만 그를 기억하는 약사는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이 형사가 병원서 나온 뒤 저수지까지 어떤 이동 수단을 사용했는지도 베일에 가려졌다. 병원과 저수지는 도보로 30분 거리인데 길가에 제대로 된 표지판이 없어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라고 한다. 그 근처서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들 역시 실종 당일 이 형사를 태운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이 형사의 시신이 발견된 지점의 수심이 일반 성인 남자의 허리 높이밖에 되지 않는 점, 물의 흐름과 발견 장소가 맞지 않는 점 등도 의문으로 남았다. 그가 왜 부산에 가려고 했는지, 병원에서 왜 뛰쳐나왔는지, 저수지서 발견된 이유 등은 사건 발생 7년이 지난 현재까지 미궁에 빠져있다.
부검도 의문
유족과 이 형사의 친구들은 그의 죽음이 자살로 판명난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근무지 발령 문제, 동료들과의 갈등 의혹이 제기되긴 했지만 자살의 이유가 되기엔 부족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또 많은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은 만큼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