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지난해부터 이른바 ‘범털’들이 쏟아져 나왔다. 돈 혹은 권력을 가진 수감자들이 부쩍 늘었다는 것. 하지만 이들 범털은 감옥에서도 잘 나간다. <일요시사>는 대한민국을 뒤흔들다가 구속되거나 징역형을 선고 받은 범털들의 구치소 생활기를 따라가 봤다.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범털’은 죄수들의 은어로 돈 많고 지적 수준이 높으며 권력을 가진 범죄자를 의미한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영장 실질 검사를 받기 위해 밤을 새우고 15시간 만에 나온 서울구치소는 범털 집합소로 유명하다. 경기도 의왕시에 자리한 서울구치소는 옛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나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한 정치인, 고위 관료, 기업인 등 거물급 인사가 주로 거쳐 가는 곳이다.
실세집합소
서울구치소
지난 정권 실세였던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기업 범죄에 연루된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이 서울구치소에 갇힌 채 수사와 재판을 받았으며 최근엔 진경준 전 검사장도 수용된 바 있다.
사회적 지위만큼 범털들은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수많은 특혜가 따른다. 다른 수감자들과 달리 1인실서 혼자 지내는가 하면,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변호사 접견 등을 할 수 있다. 교도소 측에서 제공한 특별 온수로 목욕까지 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그동안 교도소가 범털들에게 특혜를 제공한다는 의혹은 수도 없이 많이 나왔다.
범털 외에도 죄수들을 뜻하는 은어들은 많다. 범털의 반대말로 돈이나 뒷줄이 없는 일반 재소자를 ‘개털’이라고 한다. 개털은 때론 ‘법자’(법무부의 자식)라는 말로도 통용된다. 범털이 있는 방을 ‘범털방’이라 하고, 개털방 대신 살인범이나 강도범 등 흉악범을 가둔 방을 ‘쥐털방’이라고 한다.
‘깃털’도 자주 쓰인다. 깃털은 어떤 사건이나 주범이 아닌 종범(從犯)이라는 의미로 큰 사건이 발생할 때 핵심인물인 몸통의 존재를 아는 관련자들을 뜻한다.
그들만 특별대우? 구치소 내 특혜 의혹
매일 변호사 접견…별도 온수로 목욕까지
지난해 ‘정운호 게이트’의 주인공인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는 범털로 꼽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남성민 부장판사)는 지난달 13일,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 전 대표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정 전 대표는 2014∼2015년 ‘재판 결과가 잘 나오게 해달라’며 김수천 전 부장판사에게 차량 등 금품 1억5000여만원을 건넨 혐의(뇌물공여)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정 전 대표는 100억원대 해외 원정 도박을 한 혐의로 수감됐다. 당시 정 전 대표는 교도관들에게 막말을 하며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2월 정 전 대표는 서울구치소에서 소란을 피우다 교도관들의 지적을 받았다. 이때 정 전 대표는 교도관들에게 “밖에선 눈도 못 마주칠...”이라는 등 모욕적인 말과 욕설을 하며 몸을 밀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당시 직무 방해 혐의로 독방 2주의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정 전 대표는 현재 교도소 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전 대표의 한 지인에 따르면 “교도소에서 수감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정 전 대표 성격이 털털한데 수감자들에게 ‘자기’ ‘자기’라고 하며 잘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1인실서 혼자
독방사용 누려
정 전 대표는 돈 없는 수감자들에게 생활용품 등을 사주는 선행(?)까지 베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도 범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현용선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배임수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신 이사장의 선고 공판에서 징역 3년과 추징금 14억4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신 이사장이 2007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롯데백화점·면세점 사업과 관련해 총 14억여원을 받아 챙긴 혐의(배임수재)를 유죄로 인정했다. 롯데백화점 내 초밥 매장이 들어가게 해주는 대가로 업체 A사로부터 4개 매장의 수익금 일부를 정기적으로 받아 총 5억9000여만원을 챙긴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또 아들 명의를 내세워 자신이 실제로 운영하던 유통업체 B사를 통해 롯데면세점 내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위치를 목 좋은 곳으로 옮기거나 유지해주는 대가로 총 8억4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도 있다.
B사를 내세워 그룹 일감을 몰아받아 거액의 수익을 올리거나 일하지 않는 자녀에게도 급여를 지급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도 실제 용역을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일부 액수를 제외하고 유죄로 인정됐다.
신 이사장은 여전히 교도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해 법원의 영장심사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통곡’에 가까울 정도로 격하게 눈물을 호소했다. 당시 신 이사장은 심사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다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법정을 떠났다.
영치금 4만원
생수 사 마셔
구속 당시 신 이사장은 서울구치소에서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방을 썼는데 이런 생활에 적응하는 데 한동안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고령인 데다 처음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된 것에 망연자실하며 부적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 수감된 범털로는 ‘비선 실세’ 최순실씨를 꼽을 수 있다.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을 농단한 주범으로 현재 구속된 상태다. 그런 최씨에게 구치소에 수감되자마자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최씨가 구치소에서 각종 특혜를 받고 있다는 다수의 증언도 나왔다.
최씨는 지난해 10월31일 밤 긴급체포돼 두 평도 채 안 되는 독방에 수감됐지만 갖가지 특혜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 수용자들은 식료품 구입 등에 쓸 수 있는 영치금 한도가 하루 4만원이지만 최씨는 제한을 받지 않았다.
1병 밖에 살 수 없는 생수도 2∼3개 또는 필요할 때마다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용 인원이 3000여명에 이르는 서울구치소는 운반 사정을 감안해 생수 공급 물량을 1인당 1병으로 제한하고 있다.
최씨가 독방을 쓰는 것도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구치소 내부 규정에 따르면, 공황장애가 있는 수용자는 독방생활을 할 수 없도록 돼 있어 주로 8명이 공동 사용하는 방에 수감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 및 지시한 의혹이 있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장관 등 현 정권 최고 실세들도 구치소 생활을 하고 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지난달 20일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
최순실 수사받느라 정신없어
정운호 적응 못하다 잘 지내
신영자 줄곧 건강문제 호소
이들은 6.56m²의 작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접이식 침대와 TV, 작은 책상이 놓여있고, 한편엔 변기가 마련돼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독거실 바닥엔 열선이 깔려있지만, 추운 날씨 탓에 창문엔 고드름이 맺힐 정도다.
밖에선 최고 권력을 누렸지만 현재는 1400원짜리 밥을 먹으며 설거지도 스스로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온수 목욕은 주 2회로 제한되고, 커피나 차를 타 마실 수 있는 따뜻한 물도 일정량만 주어진다고 한다.이런 환경 탓에 김기춘 전 실장은 구속 다음 날부터 건강 문제를 호소했다.
조 전 장관은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적 없다. 문체부장관은 꼭 해보고 싶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조심해가며 반듯하게 살았다”며 “문체부 장관으로서 본연의 업무가 너무 바빠서 블랙리스트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이외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 국정조사 특위의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은 차은택, 안종범 등이 구매 및 반입한 물품들의 내역을 공개했다.
차은택은 지난해 12월19일, 24일 도서 20권 (영어, 추리소설 등)을 반입했다. <영어단어 무작정 따라하기> <영단기 영문법> <능률 롱맨 영어사전> <가면산장 살인사건> <데드 맨>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이다. 서적 목록을 통해 영어 공부에 관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추가적으로 영치금 총 51만8480원으로의류 31만9190원, 생활용품 6만원을 지출했다.
너도나도
공황장애
안종범 전 수석은 두 사람과 달리 서울 남부 구치소에 갇혀있다. 영치금 총 31만4510원으로 <문명의 충돌> 등 정치, 경제도서 4권을 반입했다. 지난달 8일 본인의 신장암 진단서, 당뇨병 소견서, 9일에는 당뇨병약 180일 분과 공황장애 처방약 60일 분, 22일에는 사마귀 치료제 배루말액을 반입해 현재 건강상태를 구치소 주치의에게 전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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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특검 수사 중간점검
국정 농단 사건을 파헤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수사 기간을 한달 정도 남겨두게 됐다. 70일로 보장된 1차 수사의 기한은 이번달 28일까지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달려온 특검팀의 중간수사 결과를 보면 상당한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남은 기간 동안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지난해 12월21일 본격 수사 이후 박 대통령 뇌물죄를 비롯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 청와대 비선진료, 이화여대 입시, 학사 비리 등 다양한 수사를 동시에 진행해왔다. 구속된 피의자가 총 10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박영수 특검이 넘어야 할 험난한 산은 아직 많다. 우선 박 대통령에게 적용된 뇌물 혐의를 입증하는 일은 특검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난제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이 예고대로 내달 초 이뤄질지 관심을 끈다. 앞서 검찰 수사를 받았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건을 넘겨받은 특검이 얼마나 진전된 내용을 내놓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