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궁금해하는 범털들의 옥중생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2.06 09:39:26
  • 호수 1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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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 못 고치고 감옥서도 ‘떵떵’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지난해부터 이른바 ‘범털’들이 쏟아져 나왔다. 돈 혹은 권력을 가진 수감자들이 부쩍 늘었다는 것. 하지만 이들 범털은 감옥에서도 잘 나간다. <일요시사>는 대한민국을 뒤흔들다가 구속되거나 징역형을 선고 받은 범털들의 구치소 생활기를 따라가 봤다.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범털’은 죄수들의 은어로 돈 많고 지적 수준이 높으며 권력을 가진 범죄자를 의미한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영장 실질 검사를 받기 위해 밤을 새우고 15시간 만에 나온 서울구치소는 범털 집합소로 유명하다. 경기도 의왕시에 자리한 서울구치소는 옛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나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한 정치인, 고위 관료, 기업인 등 거물급 인사가 주로 거쳐 가는 곳이다.

실세집합소
서울구치소

지난 정권 실세였던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기업 범죄에 연루된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이 서울구치소에 갇힌 채 수사와 재판을 받았으며 최근엔 진경준 전 검사장도 수용된 바 있다.

사회적 지위만큼 범털들은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수많은 특혜가 따른다. 다른 수감자들과 달리 1인실서 혼자 지내는가 하면,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변호사 접견 등을 할 수 있다. 교도소 측에서 제공한 특별 온수로 목욕까지 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그동안 교도소가 범털들에게 특혜를 제공한다는 의혹은 수도 없이 많이 나왔다.

범털 외에도 죄수들을 뜻하는 은어들은 많다. 범털의 반대말로 돈이나 뒷줄이 없는 일반 재소자를 ‘개털’이라고 한다. 개털은 때론 ‘법자’(법무부의 자식)라는 말로도 통용된다. 범털이 있는 방을 ‘범털방’이라 하고, 개털방 대신 살인범이나 강도범 등 흉악범을 가둔 방을 ‘쥐털방’이라고 한다.
 


‘깃털’도 자주 쓰인다. 깃털은 어떤 사건이나 주범이 아닌 종범(從犯)이라는 의미로 큰 사건이 발생할 때 핵심인물인 몸통의 존재를 아는 관련자들을 뜻한다.

그들만 특별대우? 구치소 내 특혜 의혹
매일 변호사 접견…별도 온수로 목욕까지

지난해 ‘정운호 게이트’의 주인공인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는 범털로 꼽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남성민 부장판사)는 지난달 13일,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 전 대표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정 전 대표는 2014∼2015년 ‘재판 결과가 잘 나오게 해달라’며 김수천 전 부장판사에게 차량 등 금품 1억5000여만원을 건넨 혐의(뇌물공여)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정 전 대표는 100억원대 해외 원정 도박을 한 혐의로 수감됐다. 당시 정 전 대표는 교도관들에게 막말을 하며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2월 정 전 대표는 서울구치소에서 소란을 피우다 교도관들의 지적을 받았다. 이때 정 전 대표는 교도관들에게 “밖에선 눈도 못 마주칠...”이라는 등 모욕적인 말과 욕설을 하며 몸을 밀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당시 직무 방해 혐의로 독방 2주의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정 전 대표는 현재 교도소 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전 대표의 한 지인에 따르면 “교도소에서 수감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정 전 대표 성격이 털털한데 수감자들에게 ‘자기’ ‘자기’라고 하며 잘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1인실서 혼자
독방사용 누려

정 전 대표는 돈 없는 수감자들에게 생활용품 등을 사주는 선행(?)까지 베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도 범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현용선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배임수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신 이사장의 선고 공판에서 징역 3년과 추징금 14억4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신 이사장이 2007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롯데백화점·면세점 사업과 관련해 총 14억여원을 받아 챙긴 혐의(배임수재)를 유죄로 인정했다. 롯데백화점 내 초밥 매장이 들어가게 해주는 대가로 업체 A사로부터 4개 매장의 수익금 일부를 정기적으로 받아 총 5억9000여만원을 챙긴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또 아들 명의를 내세워 자신이 실제로 운영하던 유통업체 B사를 통해 롯데면세점 내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위치를 목 좋은 곳으로 옮기거나 유지해주는 대가로 총 8억4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도 있다.

B사를 내세워 그룹 일감을 몰아받아 거액의 수익을 올리거나 일하지 않는 자녀에게도 급여를 지급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도 실제 용역을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일부 액수를 제외하고 유죄로 인정됐다.

신 이사장은 여전히 교도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해 법원의 영장심사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통곡’에 가까울 정도로 격하게 눈물을 호소했다. 당시 신 이사장은 심사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다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법정을 떠났다.

영치금 4만원
생수 사 마셔

구속 당시 신 이사장은 서울구치소에서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방을 썼는데 이런 생활에 적응하는 데 한동안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고령인 데다 처음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된 것에 망연자실하며 부적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 수감된 범털로는 ‘비선 실세’ 최순실씨를 꼽을 수 있다.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을 농단한 주범으로 현재 구속된 상태다. 그런 최씨에게 구치소에 수감되자마자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최씨가 구치소에서 각종 특혜를 받고 있다는 다수의 증언도 나왔다.

최씨는 지난해 10월31일 밤 긴급체포돼 두 평도 채 안 되는 독방에 수감됐지만 갖가지 특혜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 수용자들은 식료품 구입 등에 쓸 수 있는 영치금 한도가 하루 4만원이지만 최씨는 제한을 받지 않았다.

1병 밖에 살 수 없는 생수도 2∼3개 또는 필요할 때마다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용 인원이 3000여명에 이르는 서울구치소는 운반 사정을 감안해 생수 공급 물량을 1인당 1병으로 제한하고 있다.


최씨가 독방을 쓰는 것도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구치소 내부 규정에 따르면, 공황장애가 있는 수용자는 독방생활을 할 수 없도록 돼 있어 주로 8명이 공동 사용하는 방에 수감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 및 지시한 의혹이 있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장관 등 현 정권 최고 실세들도 구치소 생활을 하고 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지난달 20일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

최순실 수사받느라 정신없어
정운호 적응 못하다 잘 지내
신영자 줄곧 건강문제 호소

이들은 6.56m²의 작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접이식 침대와 TV, 작은 책상이 놓여있고, 한편엔 변기가 마련돼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독거실 바닥엔 열선이 깔려있지만, 추운 날씨 탓에 창문엔 고드름이 맺힐 정도다.

밖에선 최고 권력을 누렸지만 현재는 1400원짜리 밥을 먹으며 설거지도 스스로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온수 목욕은 주 2회로 제한되고, 커피나 차를 타 마실 수 있는 따뜻한 물도 일정량만 주어진다고 한다.이런 환경 탓에 김기춘 전 실장은 구속 다음 날부터 건강 문제를 호소했다.
 

조 전 장관은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적 없다. 문체부장관은 꼭 해보고 싶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조심해가며 반듯하게 살았다”며 “문체부 장관으로서 본연의 업무가 너무 바빠서 블랙리스트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이외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 국정조사 특위의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은 차은택, 안종범 등이 구매 및 반입한 물품들의 내역을 공개했다.

차은택은 지난해 12월19일, 24일 도서 20권 (영어, 추리소설 등)을 반입했다. <영어단어 무작정 따라하기> <영단기 영문법> <능률 롱맨 영어사전> <가면산장 살인사건> <데드 맨>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이다. 서적 목록을 통해 영어 공부에 관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추가적으로 영치금 총 51만8480원으로의류 31만9190원, 생활용품 6만원을 지출했다.

너도나도
공황장애

안종범 전 수석은 두 사람과 달리 서울 남부 구치소에 갇혀있다. 영치금 총 31만4510원으로 <문명의 충돌> 등 정치, 경제도서 4권을 반입했다. 지난달 8일 본인의 신장암 진단서, 당뇨병 소견서, 9일에는 당뇨병약 180일 분과 공황장애 처방약 60일 분, 22일에는 사마귀 치료제 배루말액을 반입해 현재 건강상태를 구치소 주치의에게 전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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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특검 수사 중간점검

국정 농단 사건을 파헤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수사 기간을 한달 정도 남겨두게 됐다. 70일로 보장된 1차 수사의 기한은 이번달 28일까지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달려온 특검팀의 중간수사 결과를 보면 상당한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남은 기간 동안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지난해 12월21일 본격 수사 이후 박 대통령 뇌물죄를 비롯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 청와대 비선진료, 이화여대 입시, 학사 비리 등 다양한 수사를 동시에 진행해왔다. 구속된 피의자가 총 10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박영수 특검이 넘어야 할 험난한 산은 아직 많다. 우선 박 대통령에게 적용된 뇌물 혐의를 입증하는 일은 특검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난제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이 예고대로 내달 초 이뤄질지 관심을 끈다. 앞서 검찰 수사를 받았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건을 넘겨받은 특검이 얼마나 진전된 내용을 내놓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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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