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경주에 있을 때도 여자 문제로 여러 번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었다. 여자가 반반하다 싶으면 임자가 있건 없건 가리지 않고 집적대고 들이대다 종국엔 반 강제적으로 취하고는 했었다. 그러한 일을 쉬쉬하고 넘어간 데에는 차마 부끄러워 감추고자 했던 장인인 김춘추의 역할이 지대했었다.
“여하튼 명심하세요.”
“무엇을 말이오?”“이곳은 경주가 아니고, 당신은 성주라는 점 말입니다.”
“그를 모를 리 있겠소.”“그리고 하나 더요.”
“뭐요?”
“이곳이 백제군과의 최전방이니 만큼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철저하게 준비하세요. 계집에 눈독 들이지 말고.”
고타소의 서슬에 눌려 아무 말도 못하는 품석의 표정이 영 떨떠름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를 백제군의 침입에 대비해서 군사 훈련을 강화하는 중이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훈련하던 중 한날 저녁 품석이 전과는 다른 훈련을 지시했다.
성을 방어하는 훈련 중 하나로 성 밖에서 적의 침입에 대비한 매복 훈련이었다.
그를 위해 모척, 용석, 검일, 죽죽 등 네 명의 사지들에게 병력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가 여러 지점에 분산해서 매복하라 지시했다.
아울러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자신의 순찰에 대비해 경계를 엄히 하라 덧붙였다.
군사들이 사지들의 인솔 하에 성 밖으로 나가자 성루에서 그를 바라보던 품석이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는 급히 성 안의 모처로 움직였다.
마치 제집 찾아가듯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가기를 오래지 않아 얼기설기 짜 놓은 대문이 있는 한 허름한 집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하다 당당하게 대문을 밀치고 들어가 방을 향해 기침을 해댔다.
잠시 후 불이 꺼지면서 한 여인, 애랑이 나와 품석을 맞이했다.
“제 서방은!”
“걱정하지 말게. 내일 아침까지 성 안에는 얼씬도 하지 못할 터이니.”
애랑이 품석의 팔짱을 끼고 급히 방으로 안내했다.
“불은 켜는 게 좋지 않겠는가?”
“혹시 그림자라도 비칠까봐 그러하옵니다.”
“이 야심한 시간에 누가 찾아오겠는가?”
“그렇기는 하지만.”
“그러면 어서 켜게. 그래야 자네의 자태를 감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애랑이 어둠 속에서 꼼지락거리기를 잠시 호롱불이 켜졌다.
순간 품석이 애랑에게 달려들어 품에 안았다.
급작스런 품석의 행동에 잠시 머뭇거리던 애랑이 이내 그의 목을 휘감았다.
“성주님, 보고 싶었어요.”
“성주님이 뭐냐, 이것아.”
“그러면요.”
“단 둘이 있을 때는 서방님이라 부르라 하지 않았느냐.”
“그래도.”
“뭐가 어떻다는 말이냐?”
“아직은 서방님의 아낙이 아니잖아요.”
품석이 대답 대신 양팔을 애랑의 허리로 가져가서는 으스러져라 힘을 주었다. 애랑의 입에서 단내가 흘러나왔다.
“술 한잔하시지 않고요?”
애랑과 사랑 나누는 품석
군기문란 병사 군율로 처리?
“술보다 너를 먼저 먹어야겠다. 너를 먹고 술 마시고. 긴긴밤 다하도록 먹고 또 먹자꾸나.”
“저를 어찌 먹는데요?”
“몰라서 묻느냐. 오늘은 앞으로, 뒤로, 옆으로, 또 앉아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너를 먹을 것이니 각오해라.”
“서방님이 드시면 저야 좋지요.”
애랑이 콧소리를 내고는 품석의 옷을 벗기자 품석 역시 서둘러 애랑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애랑의 겉옷을 벗기고 나니 곧바로 알몸이 드러났다.
애랑의 나신을 바라보며 품석이 의아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방님 드시기 편하도록 속곳은 입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지요.”
애랑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곧바로 하나로 엉키어 뒹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자 두 사람이 동시에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어 애랑이 일어나 방구석에 준비해두었던 상을 중앙으로 가져왔다.
“서방님, 혹여 사지가 눈치 채면 어떡해요.”
애랑이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술을 따랐다.
“눈치라, 하면 그 전에 자네를 먼저 내 색시로 만들어야겠지. 그리고 그동안 자네를 먹는데 정신 팔려서 미처 물어보지 못했는데 그런 놈을 어떻게 서방으로 들이게 되었는가?”
애랑이 답에 앞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 늦게 서방님을 만난 죄지요.”
“그 이야기는?”
말을 함과 동시에 품석이 애랑을 끌어당겨 자신의 다리위에 올려놓고 양팔로 가녀린 허리를 감쌌다.
“워낙에 가진 것 없는 집에서 태어났지요.”
“그러면 팔려왔다는 말인가?”
“부끄럽게도.”
채 말을 맺지 못한 애랑이 품석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백제의 침공에 대비한 훈련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훈련은 주로 밤에 그것도 야외에서 매복과 정찰을 반복하는 일 외에 다른 것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검일이 이끄는 부대는 항상 성에서 가장 먼 지역을 담당하곤 했다.
품석이 그날 밤도 애랑과 함께 뒹굴다 새벽녘이 되어 망루로 돌아왔다.
“성주님, 가시지요.”
품석의 최측근 막료인 서천이 마치 품석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다가왔다.
“어떤가?”
“방금 전 모두 곯아떨어져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내처 달려오는 길입니다.”
“지금 가도 아무 이상 없겠지?”
“제가 누굽니까.”
서천이 히죽거리자 품석 역시 미소를 보이고는 앞장섰다.
품석이 성을 나와 순찰을 빌미로 가까운 곳부터 들러 각 부대의 지휘자인 사지들을 대동하고는 검일이 지휘하는 부대로 이동했다.
검일이 매복하고 있는 지역에 도착하자 경계 근무자의 흔적은 아예 없고 여기저기 코 고는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가르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노여움에 가득 찬 품석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소장이 알아보겠습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강직한 성품을 지닌 죽죽이 앞으로 나서자 곁에 있던 서천이 뒤를 따랐다.
그들이 앞장서기를 잠시 서천의 고함과 함께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품석 일행이 서둘러 현장에 도착하자 죽죽이 아직도 꿈속을 헤매는 검일을 깨우는 중이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품석의 외마디 소리가 새벽하늘에 울려 퍼졌다.
마치 그 소리가 신호라도 된 듯 여기저기서 희뿌연 물체들이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이 사람아, 근무 중에 이게 무슨 일인가?”
곁으로 다가선 용석이 혀를 차며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검일을 추슬렀다.
“내 이놈을 당장!”
품석이 말을 함과 동시에 칼을 뽑아들었다.
“성주님!”
모척이 급히 앞으로 나서며 막아섰다.
“왜 그러느냐?”
“정신이라도 차린 연후에 군율에 따라 처리하심이 가당한 줄로 아룁니다.”
“군율에 따르면 어찌 되느냐?”
“물론 현장에서 참형에 처할 수도 있으나….”
“그러면 되었지, 무슨 말이 필요한가.”
“뭔가 석연치 않아 그럽니다.”
“석연치 않다니.”
“한두 사람도 아니고 부대 전체가 이 지경에 처하게 된 데에는 사정이 있을 듯합니다.”
“뭐라!”
“그렇습니다, 성주.”
찬찬히 상황을 살피던 용석이 다가섰다.
“그러시지요. 일단 성으로 돌아가서 이 사태에 대한 자세한 정황을 파악하시고 처벌은 그 후에 내려도 늦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죽죽 역시 품석 곁으로 다가서며 거들었다.
품석이 주위에 모여든 사지들의 표정을 살피고는 검일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정신이 들지 않았는지 자세를 바로잡지 못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