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덕 극치 LIG건설 부도사태 후폭풍

두 얼굴 구씨일가 잘나갈 땐 금둥이 어려울 땐 업둥이

LIG그룹 오너들이 도덕성 논란에 휩싸였다. 계열사인 LIG건설의 부도를 두고 ‘버렸다’는 비판이 거세다. 잘 나갈 땐 옆에 끼고 으스대다 좀 삐거덕거리자 망설이지 않고 등을 돌렸다.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란 지적이다. 그룹이란 든든한 ‘울타리’를 믿고 돈을 꿔준 금융권과 아파트 계약자만 바보가 됐다.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할 오너들은 말짱하기만 하다.

LIG건설 기업회생 신청…대주주 도덕성 논란
투자자 엄청난 손실 나 몰라라 ‘꼬리 자르기’


아파트 브랜드 ‘리가(LIGA)’로 잘 알려진 LIG건설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따르면 시공능력순위 47위(2010년 기준)인 LIG건설은 지난달 21일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단돈 100억원 들여 
3200억 회사‘꿀꺽’

이를 두고 LIG 오너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투자자 등에게 엄청난 손실을 안겨주고 LIG건설을 ‘꼬리 자르기’식으로 버렸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LIG건설 최대주주는 지분 59.16%를 소유한 TAS(티에이에스)다. 나머지는 외국계 투자회사인 넥스젠 캐피탈(16.22%)과 한국증권금융(14.15%) 등이 보유하고 있다.

TAS는 LIG그룹 계열사의 손해사정 서비스와 콜센터 대행업체로 설립됐으나 LIG건설 인수 이후 건설의 지주회사 역할을 해왔다. 이 회사는 LIG일가 2세인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과 그의 동생인 구본엽 LIG건설 부사장, 구 부사장 아들인 창모·영모군 등이 대주주다. 각각 14.31%씩 보유한 이들 4명의 총 지분율은 57.24%다.

구본상 부회장은 구자원 LIG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미국 터프츠대학을 나와 1996년 LG그룹에 입사해 현재 그룹 지주회사인 LIG홀딩스와 방위산업체인 LIG넥스원 대표이사, LIG손해보험 비상무이사 등을 겸직하고 있다.

구자원 회장과 그의 차남 구본엽 LIG건설 부사장은 LIG건설 경영에 참여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사촌인 구자원 회장은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LIG손해보험, LIG홀딩스 회장직과 함께 LIG건설 비등기임원으로 등재돼 있다.

구본엽 부사장은 LIG건설 상근 등기임원에 등재, 사실상 회사 업무를 총괄했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2003년 LIG엔설팅에 입사해 2007년부터 LIG건설 부사장을 맡고 있다. 창모·영모군은 올해 9세로 아직 미성년자다. 이들 형제는 2005년 3세 때 TAS 지분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씨일가가 TAS를 통해 LIG건설을 설립한 것은 5년 전이다. TAS는 2006년 건영을 인수해 LIG건영으로 이름을 바꿨고, 2009년 한보건설을 인수해 LIG건영과 합병하면서 지금의 LIG건설이 됐다.

그러나 설립 과정부터 석연치 않다. 대규모 레버리지(차입)로 건영과 한보건설을 차례로 인수한 것. TAS의 자본금은 1억1100만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인수가격이 2870억원인 건영을 인수했다. 한보건설은 302억원에 인수했다. 구씨일가가 남의 돈으로 두 회사를 인수했다는 얘기다. 우리은행과 국민은행, 넥스젠캐피탈 등에서 4000여억원을 빌렸다. LIG손해보험 주식과 일부 부동산, LIG건설 주식 등이 담보로 제공됐다.

구씨일가가 동원한 돈은 100억원뿐이다. 결국 단돈 100억원을 들여 3200억원짜리 두 건설사를 ‘꿀꺽’한 셈이다. 인수 이후에도 본인들 자금은 별로 투입하지 않았다. 주로 금융권 돈을 빌려 사업을 꾸렸다.

당장은 문제가 없었다. 건영과 한보건설의 축적된 건설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범LG가의 지원도 등에 업었다.

2006년 418억원이었던 매출은 2009년 2793억원으로 6배 이상 뛰어올랐다. 같은 기간 -248억원, -687억원으로 적자였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도 각각 18억원, 33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이 결과 시공능력순위가 100위권 밖에서 2009년 66위를 기록한데 이어 지난해 47위로 점프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LIG가 건설업에 뛰어들은 2007∼2009년은 건설경기가 활황일 때라 재미가 좋았다”며 “2009년 후반부터 상황이 나빠져 주택경기 침체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LIG는 재빨리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실제 구씨일가는 건설시장에 암운이 드리운 지 2년도 채 안 돼 ‘만세’를 불렀다. 회생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투자도 더 이상 없었다. 그저 돈 꾸기에 급급했다.

LIG건설은 장기적인 건설경기 침체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KB국민은행 등에서 총 1000억원가량의 신용대출을 받았고,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등에서 8766억원 규모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일으켰다. 이렇게 쌓인 차입 규모가 1조원에 육박한다. 여기에 미분양과 사업 지연이 누적되면서 경영난을 겪다 이번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게 됐다.

찬바람 불자 ‘가위질’
회생·투자 의지 ‘NO’

LIG건설 측은 “기존 사업장과 신규 사업장 모두 자금회수가 안 돼 유동성위기에 직면했다”며 “운영자금을 지속적으로 조달해야 하는데 상황이 녹록치 않아 그룹에서 기업회생절차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LIG건설 부도 사태는 LIG그룹으로 불똥이 튀었다. 우선 LIG그룹의 ‘꼬리 자르기’에 대해 비판이 거세다. LIG그룹은 LIG건설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그룹 전체에 타격을 우려해 ‘가위’를 들었다. LIG건설의 재무 지원을 거부한 것.

통상적으로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은 채권단과 협의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먼저 추진하고, 실패하면 법원으로 간다. 반면 LIG건설은 그룹이 외면하자 곧바로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더욱이 채권단과 협의도 없이 법정관리 신청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LIG건설은 부도 직전 기업어음(CP)을 발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주주들이 법정관리를 알고도 투자자들을 속였다는 것이다. LIG건설은 지난 1월부터 3월10일까지 600억∼700억원 규모의 CP를 발행했다. 지난달 21일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전인 10일엔 42억원의 CP를 발행했다.

올해 LIG건설이 발행한 CP잔액은 1800억원 상당이다. 우리투자증권은 1290억원 규모로 CP를 가장 많이 중계했다. 신한금융투자는 100억여원, 솔로몬투자증권은 30억여원, 하나대투증권은 10억여원 등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경우 600여명, 그 금액이 580억원에 달한다. CP는 원금 보장이 안 되는 상품이다. LIG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담보가 없는 CP 보유자는 순위에서 밀려 원금을 모두 잃을 수 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LIG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대주주인 구씨일가는 LIG건설에 출자한 범위 내에서만 금전적 책임을 지면된다”며 “LIG그룹도 LIG건설과 지분 관계가 직간접적으로 없어 사실상 계열사가 아니어서 부담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LIG그룹과 ‘로열패밀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재나 보유한 계열사 지분 등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자동차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신의 삼성생명 주식을 담보로 제공한 적이 있다. LIG그룹과 사촌기업인 LG그룹도 LG카드 사태 때 LG투자증권(현 우리투자증권)을 우리금융에 매각하기도 했다. 효성그룹의 경우 최근 부도 위기에 처한 진흥기업을 그룹 차원에서 지원해 살린 바 있다.

남의 돈으로 인수해 사업
1조 빚 떠넘기고 ‘줄행랑’
‘알면서?’ 부도 10일전 어음 발행
‘책임져!’ 그룹 전체 전방위 압박

LIG건설에 돈을 꿔준 시중은행들은 LIG그룹의 무책임한 법정관리 신청에 당혹스런 표정이다. LIG건설에 일반대출을 해준 은행은 우리은행(370억원), 신한은행(208억원), 하나은행(152억원) 등이다. 이 가운데 신한은행은 일반대출 외에도 PF대출 지급보증이 2035억원에 달해 가장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된다.

은행들은 “LIG건설이 아닌 LIG그룹을 보고 대출을 결정했는데 LIG그룹이 계열 건설사의 자금난을 외면하고 금융권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LIG그룹에 제재를 가할 태세다.

CP 투자자들은 연일 서울 역삼동 LIG 사옥 앞에서 LIG그룹과 오너일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대주주가 워크아웃 10일 전에 그런 사실을 모른 채 CP를 팔았다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LIG그룹과 그 일가는 건설 지원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CP 발행을 주관한 우리투자증권 등 증권사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측은 “LIG건설 경영진과 책임 있는 대주주가 법적, 도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금융당국까지 가세해 잔뜩 벼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LIG건설 사태가 확산되자 LIG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에 대한 종합검사에 착수키로 했다. LIG그룹은 LIG건설사 외에 LIG손해보험, LIG넥스원, LIG투자증권 등을 주력 계열사로 두고 있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에서 LIG손해보험 등 LIG 계열사의 LIG건설에 대한 구체적인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물론 계열사간 부당거래 여부 등 전방위적인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LIG건설은 지난달 31일 사과문을 냈다. 그러나 대주주 책임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믿고 투자했는데…
이제와서 시치미”

회사 측은 “유동성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해 국민 여러분과 채권자, 협력업체, 분양고객께 심려를 끼쳐 사과 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 저축은행 구조조정 여파로 금융권이 차입금과 CP에 대한 만기연장을 제한하고 조기회수 압박도 심해 운영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사업장 대부분이 부동산 경기 침체로 투입된 자금이 적기에 회수되지 못했고, 시행사의 지급 보증과 공사대여금이 증가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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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