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다. 재계는 벌써부터 ‘인맥 찾기’에 나서면서 바쁘다. 그런데 각 기업들이 트럼프 당선인과 접점을 찾지 못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여기서 유일하게 트럼프 당선인과 인연이 있는 재계 인사가 있다. 바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세계적 부동산 투자가로 이름을 날렸던 1990년대에 두 차례 한국을 찾아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 대우자동차 등을 방문했다. 1999년 서울 여의도 대우트럼프월드 모델하우스에 방문한 트럼프 당선인. 그와 대우그룹의 인연은 1997년 시작된다.
직접 미국 날아가
사업 제의해 성사
미국 뉴욕 맨해튼 섬 중심부 동쪽 46번가 1애비뉴에는 동쪽으로 이스트강과 유엔 본부를, 북쪽으로 센트럴파크를 내려다보는 지상 70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이 솟아 있다. 2001년 준공 당시 주거용도 건물로는 맨해튼 최고층 기록을 가졌던 '트럼프월드타워(Trump World Tower)'다.
2001년 준공 당시 주거용도 건물로는 맨해튼 최고층 기록을 가졌다. 트럼프월드타워는 현재도 맨해튼서도 손꼽히는 고가의 건물이다. 메이저리그 스타인 뉴욕 양키스 데릭 지터는 이 주상복합 70층(엘리베이터 표시 88층) 503㎡(5425평방피트) 펜트하우스에 살았다. 2012년 1550만달러(178억원)에 이 집을 팔았던 게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 헐리우드 스타 해리슨 포드, 소피아 로렌 등이 트럼프월드타워에 살았다. 현재 방 4개짜리 가장 싼 매물이 1600만달러(184억원)에 나와 있다. 3.3㎡ 당 평균 시세는 7만8000달러(8965만원)다.
이 건물을 지은 게 바로 대우건설이다. 이 건물은 1997년 9월 당시 대우그룹의 건설회사였던 현 대우건설이 당시 부동산 개발업자로 이름을 날리던 트럼프 당선인의 '트럼프사'와 합작해 지은 건물이다.
대우건설은 건설사업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CM(건설사업관리)계약을 맺었다.
CM(Construction Management)은 건설사가 건설공사에 대한 기획, 타당성조사, 분석, 설계를 비롯해 조달, 계약, 시공관리, 감리, 평가, 사후관리 등의 업무를 도맡아 하는 계약 방식이다. 기존 유나이티드 엔지니어링 건물을 매입해 철거한 뒤 건설한 것으로 1998년 10월에 착공, 2001년 10월 완공됐다.
대우그룹은 당시 현지법인인 대우 인터내셔널 아메리카를 통해 합작법인 ‘TRUMP-DAEWOO LLP(Limited liability partnership)’를 만들어 사업에 참여했다. 당시 건설과 사업비용 상당을 대우가 대고, 트럼프는 개발 노하우와 현지 네트워크를 이용해 마케팅을 하는 것으로 업무를 분담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지하 2층~지상 70층(260m), 376가구 규모의 최고급 콘도미니엄(분양 아파트)과 부대시설을 짓는 프로젝트였다. 이 사업에는 총 2억4000만~3억달러가 투입된 것으로 전해진다.
아파트는 벽면 전체를 유리로 덮고 대리석 등 고급자재를 사용한 초호화 사양으로 지어졌다. 내부에는 헬스클럽, 수영장, 고급식당을 갖추고 있으며, 지금도 호텔처럼 24시간 발렛파킹, 컨시어지, 케이터링 등 입주민을 위한 초고급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맨해튼 트럼프월드타워 사업을 계기로 트럼프 당선인과 김 전 회장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외환위기였던 1998년 6월, 김 전 회장의 초청으로 비공식 첫 방한을 했다. 이때 대우중공업의 거제도 옥포조선소, 대우차 군산 공장, 경기도 포천 아도니스 골프장 등을 둘러봤다. 골프장에선 김 전 회장 부인인 정희자씨가 동반 라운딩했다.
1999년 5월, 두 번째 방한은 대우가 그의 이름을 빌려 주상복합 사업을 벌이면서 이뤄졌다. 대우건설은 맨해튼 트럼프월드타워를 시공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수요가 늘어날 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주상복합 아파트 대우트럼프월드다.
대우건설의 트럼프 월드는 타워팰리스와 함께 국내에 초고층 아파트 시대를 열었다. 특히 당시로서 드물게 한층 전체를 스포츠센터와 수영장 등으로 꾸미고 1층 입구를 호텔식 로비처럼 꾸미는 등 고급화에 힘썼다.
김 전 회장 초청
두 차례나 방한
대우는 트럼프사와 제휴해 입지 선정, 설계, 공간 배치, 인테리어, 입주자 서비스 등에 대해 자문을 받아 1999년 5월 첫 사업으로 여의도 대우트럼프월드 1차를 선보였다. 당시 이 주상복합 홍보를 위해 방한했던 트럼프 당선인은 “한국의 독특한 양식인 온돌마루나 보안시스템 등이 마음에 든다”며 “미국 뉴욕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는 등 한국 주거문화에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우 트럼프월드 1차는 당시 미국 뉴욕의 재미교포들에게 미리 예약을 받아 40가구를 분양하기도 했다. 사전 청약자들을 대상으로 헬리콥터를 띄워 한강 일대를 조망하는 공격적인 판촉 활동도 벌였다. 트럼프월드 1차는 초고층 주상복합을 철골구조로 짓던 관행을 벗고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도입해 주거안정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우트럼프월드 1차 분양이 성공을 거두자 대우건설은 2000년 여의도에서 2차 분양을, 2001년에는 용산에서 3차 분양을 실시했다. 2003년에는 부산서도 트럼프월드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후 대구 등을 포함해 전국 7개 단지로 늘어났다.
트럼프 당선인 이름을 단 주상복합은 아파트는 서울 여의도와 용산, 대구·부산 등 전국 7곳에 있다. 아파트는 2386가구, 오피스텔은 878실이다. 대우는 약 5년간 이 이름으로 주상복합 사업을 하다가 이후 ‘월드마크’로 브랜드를 교체했다.
이름을 쓰는 동안 대우는 트럼프 당선인 측에 600만~700만달러(75억원)의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트럼프 당선인의 재정사정이 고려됐는지 사업 규모에 비해 통상적인 수준보다 후한 금액이라는 게 건설업계의 시각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서 승리하면서 그와 인연이 깊었던 김 전 회장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전 회장은 1936년 대구서 교육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과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신문배달과 열무·냉차 장사를 한 일화는 유명하다. 학창시절에는 차비를 아낀 돈으로 책을 사 공부했다.
1967년, 김 전 회장은 자본금 500만원과 직원 5명을 모아 충무로의 10평 남짓한 사무실에 대우실업을 차렸다. 대우실업은 셔츠와 내의류 원단을 동남아에 수출했는데, 설립 1년 만에 대통령 표창을 받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1972년, 대우실업은 창립 5년 만에 국내 2위의 수출기업이 됐다. 김 전 회장은 이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인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렸다. 한국기계공업, 옥포조선, 새한자동차 등을 잇달아 인수했고, 1982년에는 대우로 상호를 변경했다.
예상 못한 미 대선 결과…한미관계 비상
국내 인맥찾기 "직간접 연관 인물 없어"
1990년대 들어서면서 대우는 ‘세계경영’을 내걸고 해외시장에 역량을 집중했다.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 사회주의국가서 자동차 공장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세계경영에 대한 김 전 회장의 집념은 대단했다. 연간 해외 체류기간 280일을 넘길 정도로 해외 사업에 매달렸다.
김 전 회장은 ‘수출→성장→고용’으로 이어지는 ‘한국식 개발경제모델’을 가장 잘 이행한 기업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고용정책도 파격적으로 폈다. 1990년대 초, 대부분의 기업들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부정적이어서 운동권 출신을 기피했다.
하지만 대우는 이들을 과감하게 채용해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는 이들을 ‘세계경영’을 실천할 수 있는 주력집단으로 키우기 위해 직접 면접을 봐가며 채용했고, 훗날 이 ‘대우맨’ 중에선 김 전 회장의 호위무사를 자청한 이들도 있다.
당시 대우그룹의 성장은 수치를 살펴보면 두드러진다. 해외고용인력은 1993년 2만2000명서 5년 만에 15만2000명으로 늘었다. 1999년 그룹 해체 직전에는 83조원의 자산에 62조원의 매출을 일으키며 41개의 국내 계열사와 396개의 국외법인을 거느린 재계서열 2위 기업이었다.
대우는 세계로 뻗어갈수록 곪아갔다. 해외사업은 사업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필요하지만, 단기간에 이익을 보긴 어려웠다. 자금난에 허덕이던 대우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현금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채권을 발행하다 보니 부채비율이 급격히 늘어났다.
IMF 이후 높아진 금리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외형은 화려했지만, 사실은 빚을 얻어 빚을 갚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결국 부채가 60조원에 이른 1999년 8월, 대우그룹은 워크아웃에 돌입하며 해체됐다.
1999년 10월18일, 김 전 회장은 중국 산둥성의 옌타이 자동차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국내로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는 한창 대우사태 책임론이 거셌을 때였다. 2005년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6개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 9253억원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 2008년 1월에 특별사면됐다. 추징금은 지금까지 840억원을 갚았다.
복귀설 돌다
지금은 칩거
김 전 회장이 대우사태에 대한 책임을 면하긴 어려웠다. 외환위기 때 대부분의 기업이 긴축 경영에 나선 것과 달리 대우는 쌍용차를 인수하고 고금리 자금을 끌어들이는 등 외형 확대에 치중했다. 결국 대우의 부채 60조여원은 금융권 부실로 이어지며 금융권 구조조정으로 이어졌고, 협력업체의 연쇄도산을 불렀다. 그리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30조원의 공적 자금이 투입됐다.
김 전 회장의 재평가에 관한 찬반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세계를 호령하던 대우그룹의 영광은 분명 ‘신화’였지만, 대우사태는 단군 이래 최대 경제사고라고 할 정도로 국가경제에 미친 파장이 컸다.
지난 26일, 김 전 회장은 저서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출간을 맞아 열린 세계대우경영연구회 특별 포럼에 모습을 비췄다. 그는 “세간의 평가는 억울하다”면서 끝내 울먹였다.
대우가 그 동안 알려진 것처럼 세계경영을 모토로 지나친 확장 투자를 벌이다 대우자동차의 부실로 몰락한 것이 아니라 DJ정부의 경제관료에 밉보이는 바람에 기획 해체됐다는 얘기다. 대우사태 이후 김 전 회장과 ‘대우맨’들은 이 같은 주장을 계속해왔다.
김 전 회장은 현재 베트남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외환위기 당시 대우그룹 해체를 겪은 뒤 베트남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여생을 보내고 있다. 김 전 회장은 국내외를 오가며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해오다 지난해 10월 싱가포르서 열린 세계한인경제인대회에서 강연자로 나서 공식석상에 오랜만에 모습을 비쳤다.
그는 당시 베트남서 차세대 기업가양성 프로그램인 ‘글로벌청소년사업가양성사업(글로벌YBM)’을 시작했다고 근황을 소개한 뒤 청년 인재는 물론 은퇴자의 베트남 현지 취업을 적극 돕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령에 지병으로
김 전 회장 건강이상
현재 김 전 회장은 건강이 좋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회장은 오랫동안 지병이 있었다. 지난 1993년 위암 수술로 인한 합병증인 장폐색증이 여러 차례 발병해 4차례나 수술을 받은데다 뇌질환과 심장질환 치료를 받는 등 건강이 좋지 못했다. 이 뿐만 아니라 오랜 도피 생활과 80세라는 고령이라는 점에서 김 전 회장의 건강 이상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트럼프 당선인 유일한 인맥인 안상수 새누리당 의원
정치권서도 '트럼프 당선인 인맥' 찾기가 한창인 가운데, 새누리당 안상수 의원(3선·인천 중동강화옹진)이 트럼프 당선인과 그의 딸 이방카 트럼프와 맺은 인연을 바탕으로 모종의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안 의원은 인천광역시장 시절이던 지난 2008년 9월, 미국 뉴욕의 트럼프 당선인 집무실서 그와 직접 만나 1시간 넘게 투자 유치 협상을 벌였다.
당시 안 의원은 인천 영종도 경제자유구역에 120층 빌딩을 건설하도록 트럼프 당선인을 설득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협상에는 당시 26세였던 트럼프 당선인의 딸 이방카 트럼프도 배석했다. 이후 이방카는 인천 부동산 투자를 담당하는 팀장을 맡아 인천에 내방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당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며 “한국을 가본 적이 있다”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안 의원은 “특히 남북 분단 사태에 대해 언급하며 언제 통일이 되냐고 반문했다”며 “한국에 대해 상당히 많이 알고 있어서 의외였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트럼프 당선인과의 만남 후 이방카를 팀장으로한 투자 실무자들과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 직전 불발됐다고 했다. 안 의원은 “인천 시장 3선에 실패하며 투자가 무산됐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큰 관심을 갖고 협상에 임했다. 사업가로서 승부사적 기질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디“고 덧붙였다.
한편 새누리당은 지난 15일 공화당 트럼프 당선인 측의 인수위원회에 접촉하기 위한 방미 대표단 명단과 일정을 발표했다. 새누리당 박명재 사무총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서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인으로 교체되면서 우리나라의 외교·통상·안보·국방 등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예상된다”며 “당 차원에서 중진의원과 미국 전문가를 중심으로 방미 대표단을 구성해 대 한반도 정책을 담당할 미국측 인사와 의원외교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표단에는 김영우 국회 외교통일위원장(3선·경기 포천가평)과 윤영석 외통위 간사(재선·경남 양산갑) 이혜훈(3선·서울 서초갑) 김세연(3선·부산 금정) 안상수(3선·인천 중동강화옹진) 의원이 포함됐다.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