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9) 신하국

  • 황천우 작가 shs@ilyosisa.co.kr
  • 등록 2016.11.21 10:28:45
  • 호수 10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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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신라, 그 해법은?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적장이 유신의 칼날이 목에 닿기 바로 전에 그 경황 중에도 위급을 알아차렸는지, 아니 본능적으로 몸을 뒤틀어 유신의 칼이 적장의 목을 비껴 어깨에서 겨드랑이를 깊게 베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적장이 그 일격에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를 살피며 곁에서 알몸으로 심하게 떨고 있는 여인을 살펴보았다.

완전히 혼이 빠져나간 듯 보였다.

여인을 무시하고 유신이 고꾸라진 적장의 목에 칼을 휘둘렀다.


이어 재차에 거친 칼질로 적장의 수급을 베어 한손으로 들고 바로 밖으로 나섰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들이 신속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시선에 들어오자 수급을 높이 치켜들었다.

“고구려 장수의 수급이 이 손에 있다. 신라 병사들이여,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이도록 하라!”

고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라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사에 불을 지르고 술에 취해 비몽사몽에 빠져있는 고구려 군사들을 무 자르듯 베어 나갔다.

동시에 한 병사가 신라 진영을 향해 불화살을 쏘아 올렸다.

유신을 위시한 신라 병사들의 기습공격에 대비할 겨를이 없었던 고구려 진영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게다가 신라 본진이 돌진해오자 전의마저 상실한 고구려 군사들이 퇴로도 없는 진영 안에서 갈팡질팡했다.

신라군은 기세를 몰아 바로 성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이미 모든 정황을 감지한 고구려 군은 싸울 기력도 없는 듯 칼도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선선히 항복하였다.

신라군은 첫 패전을 완전히 설욕하였음은 물론 고구려 군사 오천여 명을 죽이고 일천여 명을 사로잡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 전투를 계기로 확고한 위상을 확립해나가던 중에 아버지 김서현과 최대 후원 세력이었던 김용춘이 이어 이승을 떠났다.

그러자 희한한 일이, 유신의 역할이 급격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변해버린 자신의 처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늘 뒤에서 힘이 되어주던 아버지와 김용춘이 이승을 떠났을 뿐 달라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빈자리가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더욱 더 자신과 나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으나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막상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나 결국에는 슬그머니 따돌림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니 자연 겉돌게 되고 그저 들러리서는 역할에 만족해야했다.

특히 선덕여왕이 보위에 앉자 더욱 심화되었다.


선덕여왕은 즉위 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국가를 경영하기 시작했다.

매사 종교의식과 외세 특히 당나라에 의존하는 경향이 매우 심했다.

그러다보니 번번이 당나라에 조공을 바쳐야 했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신하국으로 전락했다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게다가 백성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사에만 전념했다.

그를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몇날 며칠을 고민하다 작심하고 선덕여왕을 알현했다.

그 자리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군사력을 강화해야 함을 역설했다.


아울러 국경 근방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 부탁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선덕여왕은 김유신의 간곡한 요구를 거절하였고, 그런 연유로 시름에 겨워 홀로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집 가까이 이르자 대문 앞에서 유신의 아내 유모가 서성이고 있었다.

그를 확인하고 취한 몸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움직이자 유모 역시 황급히 다가와 유신의 한쪽 팔을 잡았다.

성장하는 고구려·백제…선덕여왕 알현
당나라 신하국으로 전락…신라 미래는?

“어인 일로 이리 취하셨어요?”

유모의 음성이 살짝 떨렸다.

“왜 아직도 자지 않고 나와 있소?”

“왜라니요. 귀가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오시지 않으니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랬구려.”

부인을 바라보는 유신의 얼굴로 공허한 미소가 흘렀다.

“무슨 일 있었나요?”“일은 무슨 일이 있겠소. 그저 부인에게 면목 없구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느닷없이 면목이 없다니요. 여하튼 어서 방으로 들어가시지요.”

“아니오, 부인. 우리 정원에서 저 달 구경 좀 하다 들어갑시다.”

“달구경이오!”

“달이 얼마나 밝고 환한지 모른다오.”

유모가 정자로 향하는 유신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없이 따랐다.

“뭐 좀 내올까요?”

정자에 자리 잡자 유신의 아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럴 필요 없소. 그냥 이대로 달구경이나 합시다.”

유신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부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순간 잠시 주춤하던 유모가 유신의 무릎 위로 자연스럽게 넘어졌다.

자세를 바로하려는 부인을 제지하고 다정하게 끌어안았다.

“왜 이러세요, 서방님!”

“부인이 너무 좋소. 그리고 미안하고.”

자신보다 열 살이나 어린, 한참 물이 올라 농익은 아내의 체취를 맡으려는 듯 얼굴을 가슴에 묻었다.

부인이 자세를 바루고는 유신을 사랑스러운 듯 감쌌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장군 마음이 온전하시겠어요.”

한동안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듯 그대로 있던 유모가 자세를 바로 했다.

“부인, 저 달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내 자신 처량하다는 생각이 듭디다.”

술기운 혹은 달빛 탓인지 유신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내 나이 벌써 마흔 여덟인데 아직도 반달은커녕 초승달만도 못하니.”

유모가 아무 말 없이 유신의 손을 어루만졌다.

“휴우!”

유신이 술기운을 쫓아내기라도 하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서방님, 제가 민망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이 나이 되도록 아직 아들 하나 없으니.”

제 11대 풍월주(화랑도의 수장)를 지낸 진골 하종공의 딸로 언니인 영모가 김유신과의 사이에 딸 넷을 낳고 사망하자 바로 유신의 아내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 때까지 아들은커녕 자식 하나 낳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을 안겨드렸어야 하는데.”

유신이 가만히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요?”“부인, 아시오?”

“무엇을 말인가요?”

“기분이 언짢을 때 그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말이오.”

아내가 그 방법을 가르쳐달라는 듯 유신의 얼굴을 빤히 주시했다.

달빛에 비친 아내의 얼굴이 창백하리만치 곱게 느껴졌다. 순간 유신이 범처럼 아내를 덮쳤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아니오, 부인. 저 달에게 간절히 기원하며 여기서 일을 벌입시다.”

잠시 말을 되새긴 부인이 유신의 목을 휘감았다. 하늘에서는 보름달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충과 효 

순행을 마치고 돌아온 바로 그 날 잠자리에 들었던 무왕이 생을 마감하고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마냥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은 아버지의 모습을 살핀 효가 국상을 서둘렀다.

급히 국상을 준비하는 중에 성충을 비롯한 몇몇 대신들이 효를 찾아 급히 보위에 오를 것을 주청했다.

그러나 아버지 상중인데 차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상을 마치고 보위에 오르겠노라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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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