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당연히 그럴 테지. 그 어느 누구도 그런 사실을 발설하지 않으셨으니.”
“하오면, 스승님!”
“말해보게.”
유신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마령간을 주시했다.
“그러한 사실을 스승님께서 어떻게 아셨는지요?”
“어떻게 확신하느냐 이 말이지?”
“그러하옵니다.”
마령간이 답에 앞서 당연한 질문이라는 듯 잔잔한 웃음을 보였다.
“유신 군, 우리 집안의 시조가 누구라고 하였는가?”
“그야, 박혁거세.”
답을 하다 말고 유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가문 대대로 내려 온 비기(秘記)가 있네.”
“비기요!”
유신과 춘추가 동시에 소리를 높이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박제상 선조께서 기록해 놓은 비기, 징심록이 전해 내려오고 있고 그 서적을 내가 보관하고 있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징심록을 되뇌었다.
“어마마마, 소자 효 하례 드리옵니다.”
섣달그믐 저녁 40대 후반의 태자 효가 예고도 없이 두 명의 여인을 대동하고 자신보다 족히 열 살은 어려 보이는 사택비의 거처를 찾았다.
“태자가 어인 일…”
갑작스런 효의 방문에 사택비의 얼굴 가득 긴장감이 묻어나왔다.
“정월을 맞이하여 어마마마께 조그마한 선물을 올리고자 아바마마를 찾아뵈었는데, 직접 전해드리라 하셨기에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선물이라니요?”
효가 자신을 따르던 여인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서 가지고 온 물건들을 어마마마께 전해드려라.”
낮으면서도 위엄 있는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인들이 사택비에게 다가가 고이 싼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펼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비단에 싸여있던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뜻 보기에도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비단옷과 외부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조그마한 괘였다.
그를 바라보는 사택비의 눈이 시시각각 휘둥그레졌다.
“이것들이 무엇이오?”
“정월을 맞이하여 어마마마의 은혜를 그냥 지나친다면 자식 된 도리가 아닌 듯하여 준비하였습니다.”
유독 어마마마란 말에 힘주어 답한 효가 공손하게 고개 숙였다.
그런 효의 모습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택비는 빛깔 고운 비단옷을 펼쳐보느라 정신없었다.
자주색과 황금색으로 뒤섞인 비단옷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면서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내일 행사 때 입으시면 좋을 듯하여.”
잠시 시선을 효에게 주었던 사택비가 비단 옷을 들어 자신의 몸에 둘러보았다.
“어쩌면 이리도 딱 맞게 만들었단 말입니까?”
“어마마마 아니십니까!”
상기된 사택비의 목소리처럼 효의 목소리에도 은근히 힘이 들어갔다.
“그렇지요. 어마마마인데 당연한 일이지요.”
사택비의 시선이 조그마한 괘로 옮겨지자 이번에는 효가 직접 뚜껑을 열었다.
순간 불빛을 받아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광채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이것은!”
“주옥입니다.”
“이 귀한 물건을 어떻게.”
자세를 낮추어 조그마한 손으로 주옥을 어루만지면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어마마마께 선물하기 위해 소자가 직접 신라에서 구해왔습니다.”
“태자가 직접, 그것도 신라에 가서요?”
“그러하옵니다, 마마.”
“어떻게?”
“신라인으로 변장하여 경주에 들어가서 구해왔습니다.”
“그러다 무슨 변고라도 당하면 어쩌시려고.”
“마마를 위한 일인데 어떤 일이든 두렵겠사옵니까.”
목숨 걸고 가져온 ‘주옥’
건강 악화된 무왕 어떻게?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어 신분이라도 노출되었더라면 어쩌려고 그리했습니까.”
물론 효가 가져온 주옥은 일전에 무왕이 신라를 침공할 때 전리품으로 획득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사택비에게는 그 사연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어마마마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중요하지 않사옵니다.”
주옥을 만지작거리던 사택비가 몸을 낮춘 자세에서 효의 손을 잡았다.
순간 사택비의 봉긋하게 솟은 가슴이 효의 시선에 가득 들어왔다.
“역시 태자는 천하의 효자입니다.”
“어마마마, 소자 살아 있는 동안 아니 영원히 어마마마께 성심을 다하겠사옵니다.”
효가 무릎을 꿇자 사택비가 몸을 일으켜 효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쌌다.
방금 전 보았던 아담한 가슴이 효의 얼굴을 지그시 누르기 시작했다.
“내 태자 아니 우리 아들과 함께 한잔할 터이니 주안상을 들여오고 모두 자리를 물리도록 하여라.”
사택비의 촉촉이 젖어든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이어 모두가 물러나자 그를 확인한 효가 양팔로 힘을 다해 사택비를 껴안았다.
순간 사택비의 입에서 터져 나온 뜨거운 기운이 효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마마, 옥체를 온전히 보존하소서.”
세웠던 무릎을 낮추자 사택비의 가슴에 묻혀있던 얼굴이 자연스레 배를 거쳐 양다리가 합쳐진 지점에 닿았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소자가 마마를 보필하겠습니다.”
어느새 효의 목소리도 촉촉하게 변해 있었다.
계비인 사택비를 위한 효의 효도 행위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각종 보석을 비롯하여 비단 그리고 진귀한 음식들을 수시로 사택비에게 보내고 또 자신이 함께하며 그 즐거움을 배가시키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효가 아버지 무왕의 부름에 따라 날이 저물 무렵 대전이 아닌 침소로 들었다.
침소에 들자 무왕이 노구를 곧추세우고 효를 맞이했다.
안으로 스며든 석양빛에 비치는 무왕의 얼굴에 창백함이 묻어나왔다.
“아바마마, 편히 자리하시옵소서.”
“괜찮으니라.”
“소자가 보기에는…”
“바로 말하거라.”“아바마마의 옥체가 염려되옵니다.”
무왕의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묻어나왔고 그에 답하는 효의 목소리는 떨렸다.
“어차피 자연에서 온 몸 자연으로 돌아갈 터인데 그게 무어 그리 중요하냐.”“아바마마!”
소리쳐 부르는 효의 소리에 가래가 끓는 듯했다.
“하기야 내가 너무 오래 살았지.”
너무 오래 살았다, 그러니 이제 죽어야 할 시점이라.
그 말의 의미를 새기던 효의 목덜미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바마마, 아직도 하셔야 할 일이…”
“아니야, 그간 내 욕심이 너무 과했어. 암 그렇고말고.”
“아닙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오래 사시어야 합니다.”
“오래라, 그나저나 우리 태자의 나이가 어찌 되는고?”
답에 앞서 무왕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얼굴에서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게 묻어나왔다.
“아직도 어린 아이에 불과합니다.”
“그렇지. 아직도 어린 아이지. 이 아비의 눈에는 그저 어린 아이로 보여. 교기도 그렇고 모두 다 어려 보여.”
고개를 숙이고 그 짧은 순간을 정리해 보았다.
비록 나이는 있지만 말투로 보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듯했다.
“아바마마, 이만 물러가도록 할까요?”
“아니다. 내가 태자와 긴히 할 이야기가 있느니라.”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