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온 신경을 집중하여 드문드문 내용을 추론한 바 통화를 나누는 당사자가 청평에서 잠자리를 함께했던 호스티스였음이 밝혀졌다.
이어지는 통화에서 보고 싶다는 등의 대화가 들렸고 자주 일본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말미에 여인으로부터 저녁에 만나자는 통화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하여 행여나 무슨 일이 발생될지 몰라 강철과 경수를 호출하여 함께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 여덟 시 경이 되자 문제의 여인이 석원의 방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확인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흡사 사지에서 돌아온 젊은 연인이 만난 것처럼 곧바로 격정의 순간으로 접어들었다.
이어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난 둘은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테이블로 이동했다.
어지러운 테이블 위에 음식과 술이 준비되어 있었다.
소진된 기를 보충하듯이 허겁지겁 술과 음식을 먹어대던 두 년 놈이 다시 엉켜 붙기 시작했다.
그날 밤 세 사람은 그야말로 오리지널 포르노 영화를 감상하며 연신 하품을 뿜어냈다.
그리고는 자정이 가까워오자 세 사람이 번갈아 당번을 정하여 관찰하기로 하고 동일과 경수가 먼저 취침에 들어갔다.
“저 연놈들 마약한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밤새 한숨도 자지 않고 그 지랄을 하니 거참.”
아침 일찍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자 강철이 푸석한 얼굴로 동일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렇다고 이 특보께서 내처 불침번을 선겁니까, 깨우지 않으시고.”
“그렇게 귀한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데 잠이 옵니까. 그래서 내친 김에 제가 밤새웠습니다.”
“허허, 이거 고맙다고 해야 할지 혹은 아쉽다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동일이 능청스럽게 답하자 순간 웃음이 일어났다. 웃음소리에 경수 역시 비시시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로 대단합디다. 진짜 마약하고 저 짓거리 하는 듯합디다.”
“나이 탓이겠지요.”
동일이 막 자리에서 일어난 경수에게 슬그머니 시선을 주었다.
“팀장님 말씀이 마냥 틀리지는 않습니다.”
경수 역시 능청거리며 답하자 두 사람의 시선이 경수의 아랫도리로 행했다.
경수의 아랫도리가 불룩 솟아 있었다.
물론 취침 후 발생한 젊음의 징표였다.
그를 바라보기를 잠시 이내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다.
잠시 후 정색하고 모니터로 시선을 주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를 살피며 강철을 주시했다.
“화장실에 들어갔습니다.”
“설마 그곳에서도 그 짓거리하는 거는 아니겠지요.”
“그야 모르는 일이지요.”
강철이 능청스럽게 말을 받자 다시 웃음이 일어났다.
이어 웃음기가 사라지는 시점에 두 사람이 막 물기를 닦으며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나와서는 서로의 젖은 몸을 닦아주기를 잠시 석원이 전화기를 들었다.
동일이 급하게 도청기를 들었다.
어제 도청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급하게 임시변통으로 손을 보아 그런지 흐릿하게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호텔 프런트와 통화를 하며 식사를 주문하고 있었다. 물론 2인분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후 석원이 다가온 여인을 힘껏 끌어안았다.
여인이 석원의 품에 안기면서 한손을 아래로 내려 석원의 가운데를 거칠게 다루기 시작했다.
석원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호텔 내에 있는 여행사였다.
석원이 금일 오후 두 시 발 부산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있었다.
순간 동일의 온 신경이 귀로 집중되었다.
상대방에서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는 이내 부산행 티켓 두 장을, 아베와 박경숙 명의로 예약이 되었다는 말이 이어졌다.
석원이 전화기를 내려놓는 동시에 동일 역시 도청기를 내려놓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팀장님, 무슨 일입니까?”
서울 호텔서 여인과 격정적 하룻밤 보내
부산으로 떠난 석원, 밀항일까 여행일까
“지금 저 친구가 식사 주문과 함께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두 시 발 부산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네.”
동일이 두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모니터에 주었다.
두 사람이 다시 테이블에서 함께 뒹굴고 있었다.
“무슨 의미일까요?”
강철이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룸에서의 대화내용은 도청이 불가하기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가벼이 여길 사항은 아닌 듯합니다.”
“어찌 대처하겠습니까?”
강철의 질문에 동일이 경수를 주시했다.
“김 군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가겠습니다. 그러니 이 특보께서 수고스럽지만 이곳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수고라기보다도, 두 사람으로 되겠습니까?”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면 현지에서 지원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김 군, 우리 서두르도록 하게나.”
동시에 시계를 바라보았다.
일곱 시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막상 서두르자고는 하였으나 시간 여유가 있음을 판단하고 포트에 물을 끓여 커피를 탔다.
경수가 거들어 주려는 행동을 제지하고 동일이 직접 커피를 타서 돌렸다.
“팀장님 말씀대로 진짜 살얼음판입니다.”
강철이 커피 잔을 기울이며 모니터로 시선을 주었다.
비록 들리지는 않지만 여인의 입 모양으로 보아 야릇한 소리가 방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을 듯했다.
동일이 경수에게 차에 남아 있으라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가까운 곳에 멈추어 출구를 주시하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두 시 오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서히 사람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어 한 떼의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석원과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석원의 차림을 살펴보았다. 잠시 전 강철과의 통화에서 확인했지만 석원의 행장이 단출했다.
그저 몸 하나 달랑 모습을 드러냈다.
만약 밀항을 시도하고자 했다면 뒷정리를 대강이라도 해야 할 일이건만 그는 아닌 듯했다.
한순간 석원의 지난 행적을 떠올렸다.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그야말로 예측불허였다.
가벼이 한숨을 내쉬며 그 둘의 모습을 추적하기를 잠시 석원 일행이 공항 건물을 벗어나 택시를 잡았다.
동일 역시 서둘러 차에 올랐다. 이미 경수가 그들 뒤에 차를 대기시켜놓고 시동을 켠 상태였다.
“이런 일 익숙하겠지?”
“이 일로 밥 먹고 살고 있습니다.”
동일이 핸들을 잡고 있는 경수를 근심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자 경수가 확신에 찬 표정을 보이며 답을 이었다.
“가세.”
경수가 서서히 액셀을 밟자 미끄러지듯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 상대가 전혀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거리를 두며 뒤따르기 시작했다.
동일이 조수석에서 가만히 차의 진행 방향을 살펴보았다.
부산시내 중심부로 향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교통체증은 일어나지 않고 있어 무리하게 미행을 감행하지 않아도 좋을 듯했다.
스쳐 지나가는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따라가기를 잠시 후 석원이 탄 차가 용두산 쪽으로 방향을 잡아갔다.
“혹시 자갈치 시장!”
순간적으로 동일의 머리에 회가 떠올랐다.
“그러면 저 미친놈이 회 먹자고 부산까지 비행기 타고 왔다는 말입니까?”
경수가 말해놓고 허탈한지 혀를 찼다.
“그런 경우 회만 먹고 말겠는가.”
“그러면?”
“당연히 그 짓도 해야 한다고 봐야 않겠는가?”
“밤 새 그 짓하고도요.”
“왜, 자네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은가.”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