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조선족 타운’ 한국인 역차별 실태

중국인 밀집지역에 한국인 출입금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서울 속에 작은 중국이 만들어지고 있다. 국내 거주 조선족들이 나날이 늘어가면서 영등포, 금천, 구로구에 자리하고 있는 일명 ‘조선족 특구’가 넓어져 가는 추세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중국의 친·인척들을 불러들이는 조선족의 특성에 지역 거주민들은 희비가 엇갈린다. 사람이 늘어 상권은 살아나지만 그외의 문제들이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4일, 조선족 특구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남구로역으로 향했다. 역에서 내려 밖을 나서니 붉은 간판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중국어와 한글이 섞여있는 간판이 대부분이었다. 알아듣지 못할 중국말와 미묘한 억양의 한국말이 어지럽게 들려왔다. 스쳐 지나가면 외국어로 착각하고 지나갈 듯한 위화감마저 느껴졌다.

붉은 간판 가득
중국에 간 기분

조선족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는 연변거리를 방문하기 위해 한 행인에게 길을 물었다. 연변거리는 가리봉시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자 그는 아래쪽에 보이는 가리봉시장을 가리키며 “여기도 저기랑 같다”고 답했다.

굳이 구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뉘앙스의 답변이라 남구로역 위쪽으로 나 있는 길가도 마찬가지냐고 묻자 그렇다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지역에 대해 잘 아는 걸 보니 인근 거주자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제 갈 길을 갔다. 오후 2시가 좀 넘은 시간임에도 식당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보였다.

가리봉시장을 들어서면 이곳이 한국인지 중국인지 혼동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간판은 중국어로 되어있고 좌판에는 월병 등 중국음식을 판다. 심지어 중국가게에는 개구리 뒷다리나 곤계란(부화 직전의 달걀을 삶은 음식) 등 국내에서 찾기 힘든 기호식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식당에선 문을 열어 놓고 손님을 맞이하다 보니 향신료 냄새가 길가로 퍼져 나오기도 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익숙한 듯 편안해 보였다. 한국사회정착학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리봉동은 갓 한국으로 온 조선족들이 선호하는 첫 정착지라고 한다. 초기 정착에 필요한 인력 시장이 형성돼 있고 교통 접근성이 좋으며 상대적으로 물가와 주거비 등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한 지역이 중국처럼 변한 것은 그만큼 해당 구역에 조선족들이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소수였던 조선족들이 다수가 되어 그들만의 타운을 형성해 주위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는 지역 거주 한국인보다 조선족들이 많은 경우도 있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월1일 기준 국내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69만명으로 국내 거주 전체 외국인 주민의 40%에 가까운 수치라고 한다. 해마다 조선족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불어나는 ‘그들만의 구역’ 매년 팽창세
전용 PC방까지 생겨…연변 현지 방불케

신대방 조선족 특구에 살고 있는 A씨는 조선족들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여기(신대방)는 이미 다 먹혔고 신대방역이랑 구로디지털단지 사이도 다 이제 조선족이에요. 이젠 난곡사거리 넘어서도 조선족들이 있을 걸요? 그쪽은 아직 가게가 없을 뿐이지 애들(조선족) 많이 살아요”라고 답했다.

이어 “피해 간다고 이사 했는데 몇 년 새에 또 근처로 올라 왔다”며 매년 넓어지는 조선족 특구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또 최근엔 조선족들에게 역차별 받는다는 한국인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PC방을 갔더니 중국인 전용이라며 내보낸다” “식당에 들어가면 주문을 받지 않고 일부로 중국어를 사용한다”며 역차별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PC방에 대한 문제를 확인하고자 중국어로 쓰여 있는 PC방을 방문했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니 손님들이 중국어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부의 모습은 다른 PC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카운터에 ‘한국인도 와서 이용하나’라는 질문을 하니 그렇지 않다는 답변을 얻었다. 카운터를 담당하는 사람도 조선족이었다.

그는 “한국인들이 어쩌다가 오기는 하지만 우리는 외국인(중국인) PC방이라 프로그램이 달라서 사용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인 PC방에서 한국인을 받지 않는다는 소문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엔 “어차피 와도 사용을 못하니 되돌려보낸다”고 답했다.

무서운 거리
점차 슬럼화

어떤 프로그램을 한국인이 사용하지 못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PC에 접속을 해보니 중국 프로그램들이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고 다른 점은 없었다. 다만 PC방을 가는 주 목적인 게임 실행을 할 때 중국 클라이언트로 설치돼 있어 한국 클라이언트를 받아 설치해야 한다는 점 외에는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키보드는 국내와 같은 자판을 사용하고 있었다. 다른 외국인 PC방에서도 한국서 쓰는 키보드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답변을 얻었다. 한 매장에선 카운터에 질문을 하던 도중 가까이 있던 고객이 벌떡 일어나 쳐다보는 상황도 있었다. 더 정확한 파악을 위해 다른 특구도 방문하기로 했다.

신대방에 있는 외국인 PC방 매장 주인은 한국 손님들을 받지 않는다는 말에 “굳이 손님들이 온다면 말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프린트 등 문서작업을 하려고 오면 거부하는 편”이라며 '한컴'과 같은 문서 프로그램이 깔려있지 않아 프린트가 용이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잘 안 될게 뻔한데 손님을 받아서 굳이 욕먹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찾아가기 불편한 식당들 빼곡
삥땅·무전취식 등 민심 불안

이번엔 식당의 손님 거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달 5일, 다시 조선족 특구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폭우가 내리고 있어 사람들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전날보다 많은 사람들이 식당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인 손님을 받지 않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가리봉시장, 대림역 8, 12번 출구 앞 장터, 신대방역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식당에 들어가 봤다.

한 식당에서는 정확한 판별이 불가능했다. 종업원이 한국어를 모르는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다. 어느 정도 알아듣는 눈치긴 했으나 종업원은 손사래를 치며 모른다는 제스쳐를 취하기만 했다. 근처의 다른 식당도 비슷했다. 어떤 종업원은 이 질문에 “나는 아무 것도 몰라, 사장이 아니라서 모른다”며 무작정 대답을 회피했다.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유명한 대림에선 다른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고 우리(조선족)랑 안 맞아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먹겠다고 왔는데 왜 막겠느냐”고 말했다. 가게 주인은 메뉴판을 가리키며 한국인 손님을 받지 않을 생각이었으면 메뉴판에 한국어를 집어넣을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밉보이면 끝”
지역상권 점령

지역 주민들이 느끼기엔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한국인 거주자를 찾아보았다. 30~40분쯤 돌아다니다 세탁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세탁소 주인은 “이 지역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80% 정도가 조선족”이라고 했다. 이어 “대부분의 장사는 다 조선족이 한다고 보면 된다. 음식은 물론 옷가게 등 장사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선족들이 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왜 한숨을 쉬냐는 질문에 그는 “여기는 조선족이 많아서 밉보이면 큰일 난다. 근처에 있던 가게는 조선족들한테 밉보인 뒤로 손님이 없어져 문을 닫았다”고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토로했다.
 

택시정거장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택시기사에게 조선족 손님들은 어떤지 물었다. 그러자 택시기사는 손사래를 치며 “걔들(조선족) 갑질이 진짜 심하다. 일단 타고 행선지를 말하는데 모른다면 모른다고 화를 내고 막히면 막힌다고 막 화를 낸다. 한국사람 갑질은 양반”이라고 말했다. 기존 한국인 거주자들이 조선족이 늘어나며 느끼는 박탈감은 생각보다 큰 듯했다.

대림동에 이어 신대방동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그 안에서 생각보다 많은 조선족들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이는 핸드폰으로 중국어 텍스트를 보고 있었고 초등학생으로 짐작되는 아이들은 한국어와 중국어를 번갈아 쓰며 이야기를 나눴다.

가리봉서 대림, 그리고 신대방으로 이어지는 지역에 조선족들이 많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상기됐다. 자연스럽게 지역에 녹아있는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낄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무시당해 되겠습니까”

신대방역서 난곡사거리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식당들은 ‘한국인 손님을 노골적으로 거부한다’는 소문과 딴판이었다. 한국어 메뉴판이 있는 곳은 몇 곳 없었지만 매장에는 어설프게라도 한국어로 메뉴 이름들이 쓰여 있었다. 종업원에게 ‘한국인 손님이 자주 오냐’는 질문을 하니 가끔 술집에서 술 먹고 온다고 답했다. 종업원은 “(조선족)손님들이 더 많아 한국인 손님들이 오면 불편해서 쳐다보곤 한다”고 덧붙였다.


조선족 식당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을 찾기 위해 인근을 돌아다녔다. 난곡으로 가는 길에는 찾을 수 없어 대림역 방향으로 들어갔다. 몇 명의 한국인들에게 ‘조선족 식당을 방문한 적이 있냐’는 질문을 했지만 “전혀 가볼 생각이 없다. 그런 데를 왜 가나”는 대답만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 한 편의점서 아르바이트한다는 B씨를 만났다. 신대방에 거주하고 있다는 B씨는 조선족 식당에 가끔씩 친구들과 방문한다고 말했다.

‘가 보니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느냐’는 질문에 B씨는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처음엔 중국에 가지 않아도 진짜 중국음식을 식당에서 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엔 B씨도 거북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다니다 보니 어느 새 익숙해져 가게 주인과 안면을 트는 사이가 됐다. 지금은 방문하면 가게 주인이 B씨에게 좋아하는 메뉴를 먹을 거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럼 어떤 점이 제일 불편하냐’는 질문을 하자 B씨는 “다른 손님들이 오면 좀 묘해요. 주인처럼 얼굴을 아는 것도 아니고 한 가게서 서로 다른 말 하고 외지인이 된 기분을 느껴요”라는 대답을 했다.

늘어난 조선족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 신대방역서 오랫동안 장사했다는 한 식당을 찾았다. 식당 주인은 “일부라곤 하겠지만 민폐를 끼치는 조선족들이 싫다”며 자신이 겪은 일들을 들려줬다. “주방 보조로 쓰면 가끔 삥땅(돈을 빼돌리는 행위)도 치고 손님으로 오면 무전취식 하려고 한다. 무전취식의 경우 돈을 달라고 하니 언젠가 때가 되면 내가 다 너희 XX들 죽여버린다고 겁박도 줘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이 주된 이야기였다.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었다. 장사는 잘 되는데 수입이 고생하는 것에 비해 없다는 것. 가게주인은 “가격이 좀 세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가격도 싸고 양도 많아야 한다. 전에 물가가 올라 1000원을 올렸더니 손님이 뚝 떨어졌었다”며 이 지역에서 장사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민폐 끼치는
그들이 싫다”

신대방역은 다른 지역들보다 대로변서 조선족들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편이었다. 지나가다 들려오는 중국어와 낯선 억양이 조선족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예쁘게 치장한 아가씨들이나 등가방을 메고 소란스럽게 친구들과 떠드는 아이들이 중국말을 쓸 때면 당혹스럽기도 하다. 중국어로 이야기하다가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나가는 순간 한국어로 말을 바꾸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차단기가 올라갔다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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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