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47) 향수

민족의 운명…두 손에 달렸다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그러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대신 극장 배치도를 보여주었습니다.”

“하면, 저격 위치는 결정하였습니까?”

“여러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이 특보께서 행사장 내에서 저격하도록 유도해야겠지요.”

“당연히 그리할 일입니다. 그런데 문석원이 행사장 내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행사 당일 접하겠지요.”

“허허, 거 참.”

잠시 허탈하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던 강철의 눈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생각 들어 그런데. 지금 우리가 술 마시는 것도 좋지만 저 친구 방에 들어가서 그간 행적을 한번 살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철의 제안에 동일이 자동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말 나온 김에 지금 당장 가보지요.”


강철 역시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두 사람이 석원의 룸으로 들어갔다.

석원의 성정을 그대로 나타내듯 어지러웠다. 아니 일본에 머물 당시 주선을 통해 단단히 일러두었었다.

퇴실하는 순간까지 그 어느 누구도 룸에 들이지 말라고.

그를 생각하며 룸 이곳저곳을 둘러보자 더욱 어지러워 보였다.

이어 잠시 전경을 훑다가는 비닐장갑을 끼고 석원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물건들에 대해 세심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거 좀 봐주시겠습니까?”

동일이 침대 위에 있던 물건들을 살피는 중에 강철이 뭔가를 발견했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강철에게 시선을 돌리자 술병이 널려 있는 테이블에서 노트를 들고 그 내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일이 급하게 다가서자 강철이 노트를 동일에게 건넸다.

동일이 일본어로 휘갈겨 쓴 노트를 받아들었다.

그야말로 술 마시다가 울적한 마음에 휘갈겨놓은 듯했다.

“무슨 내용입니까?”


동일이 즉답을 피하고 자세하게 글을 읽어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내용인데 그러십니까?”

“이 친구 바짝 조여야 할 듯합니다.”

동일이 동문서답하자 강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심정을 제 집사람에게 넋두리 형태로 썼는데, 지금 자신은 알 수 없는 그 누군가에게 홀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내용입니다.”

“허허, 그거 보면 정상인 것도 같고. 그나저나 그 친구 아내는 지금 문석원이 이 일로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전혀 모르고 있지요. 그 친구가 다른 곳으로 장기간 일하러 간다 둘러대고 몰래 입국한 것입니다.”

“그러면 별 문제는 되지 않겠습니다.”

“물론 문제될 거는 없지요. 이 내용이 그쪽으로 전달 될 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 친구 상태 보니 그야말로 일이 끝날 때까지 조금도 방심할 수 없겠습니다.”

말을 마친 동일이 진지한 표정으로 강철을 주시했다.

“혹여 하실 말씀이라도.”

“만일을 위해 인원 보강 좀 해야겠습니다.”

“그 이야기는 결국…”

“지금 다른 사람을 투입할 수는 없고 이 특보께서 조금 더 신경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동일이 노트를 있던 자리에 놓고는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부터 이곳에 24시간 대기상태에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

석원, 거사 하루 앞두고 홀연히 부산행
동일·강철의 의심…석원 회유 성공할까

동일이 경수와 함께 수영(부산) 공항에 도착하자 미리 전화를 받고 기다리고 있던 중정요원이 자동차 키를 전하며 운을 떼었다.

“마약 운반책 한 놈 잡는데 그리 호들갑 떨 필요 없네.”

동일이 짤막하게 말을 받으며 그 요원으로 하여금 자리를 물리게 하고 설명 들은 대로 주차되어 있는 곳을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공항과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다시 공항으로 들어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 바늘이 두 시 삼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를 확인하고 공항 전화를 이용하여 호텔에 남아 있는 강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로부터 석원이 전날 밤 함께했던 호스티스와 두 시 발 부산행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팀장님, 무슨 의도일까요?”

“그 미친놈의 대가리를 어떻게 읽겠는가. 아니, 자네 생각을 한번 들어보세.”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이놈이 그새 고향 오사카가 생각나서 바다를 찾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그렇다면 다행인데. 그렇다고 계집과 동행이라니.”

“고향의 향취를 느끼면서 그 짓거리 하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네. 그 놈이 뻑 하면 제 애인이라는 일본인 계집과 오사카 항 근처 바닷가에서 그 짓거리하고는 했으니 말이야. 그런데 지난밤 한숨도 자지 않고 그 짓거리했는데 또 하고 싶을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사일이 바로 내일 오전이었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부산행을 선택한 데에는 필히 다른 사유가 있을 듯했다.

아니, 모든 사유를 떠나 젊은 혈기에 바닷가에서 술을 마시게 되면 예측이 힘들었다.

거기에 더하여 곁에 여자까지 함께하고 있으니 아무리 살펴보아도 내일 거사 전에 서울로 돌아갈 의도는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부산행을 선택한 석원의 의도는 무엇인가.

여차하면 부산에서 배편을 이용하여 일본으로 밀항을 시도하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밀려들었다.

동일이 석원이 청평을 다녀온 날 오후 예고도 없이 석원의 룸을 찾았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않고 그 짓거리했는지 얼굴 색깔이 창백했다. 또한 동일을 바라보는 눈동자 역시 흔들렸다.

동일이 본체만체하고 방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함부로 벗어놓은 옷가지며 술병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호텔 측에서 청소하지 않는 게요.”

“입국하기 전에 거사를 완성할 때까지 제 숙소에 외부 사람 그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던 시선을 석원에게 주었다.

석원의 눈이 다시 흔들렸다.

“무슨 일 있는 게요?”

석원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술병들을 바라보았다.

“하도 적적해서 술 한잔 했습니다.”

석원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그를 살피며 동일이 가볍게 탄식했다.

“물론 적적하겠지요. 당연히 그럴 거요. 그러나 거사를 앞둔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할 정도로 과음하면 어찌되는 게요.”

낮지만 음험한 목소리가 흘러나갔다.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카소네 상.”

“지금부터 거사가 끝날 때까지 단 한시도 잊지 마오. 우리 민족의 명운이 석원 군 어깨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석원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답하고 고개 숙였다.

“아울러 지금 이 시간 이후는 글을 쓰며 마음을 다잡도록 하오. 석원 군의 마음을, 이 민족을 위하는 군의 충정을 글로 쓰면서 조금의 빈틈도 생기지 않도록 하오.”

동일이 노트와 함께 볼펜을 건네주었다.

아울러 다시 한 번 단단히 주의를 주고 물러나자 석원이 즉각 노트 한 장을 찢어 ‘조용히 해 주십시오’라는 글을 써서 방문에 내걸었다.

그를 살피며 슬그머니 가슴을 쓸어내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바로 지난 저녁 석원이 모처로 전화통화를 시도했었다.

즉시 도청을 실시했는데 공교롭게도 저쪽의 목소리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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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